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24화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유령선 내부.
그리고 이곳에 타고 있는 전체 7위 엘리사는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었다.
그녀는 한 손에 포인트로 구매한 통신 수정구를 들고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다.
"아니, 내가 그 자식이 어딨는지 어떻게 알고 가냐고!"
엘리사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반면, 통신 수정구에서는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건 네가 머리를 쥐어짜서 알아낼 문제야. 알지? 이번 기회에 시몬을 잡지 못하면 신 학생회의 눈 밖에 나게 될 거고, 그럼 너희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사업도.......
"알았어! 알았다고!"
엘리사는 꽥꽥 소리 지르고는 통신 수정구를 껐다.
그리고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어쩌다 이런 꼴이 된 거지."
괜히 시몬을 잡겠다고 덤벼들었다가, 난전에 휘말려서 유령선을 두 척이나 잃었다.
돕겠다던 아세라즈와 메르디아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타나지도 않았다.
지금 타고 있는 이 유령선이 이번 시험에 들고 온 마지막 한 척이었다.
파라라라락-!
그녀가 한탄을 하고 있는 사이, 갑자기 갑판 쪽의 방향키가 자동으로 움직였다.
"또 시작이네."
보나 마나 또 하늘에서 화산 쇄설물이 떨어지고 있는 모양. 엘리사는 지긋지긋하단 표정으로 근처의 기둥을 붙잡으러 팔을 쭉 뻗었다.
쐐액-!
그때 유령선이 급제동했다. 미처 기둥을 붙잡지 못한 그녀의 몸이 날아가 반대편 바닥에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아, 운전 똑바로 좀 해!"
그녀가 쓰린 엉덩이를 매만지며 울상을 지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조타석에, 방향키를 붙잡은 흐릿한 유령이 나타나 클클거리다가 사라졌다.
"다 싫어!"
그녀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시몬 폴렌티아도! 아세라즈 미켈도! 이 망할 시험도!"
갑자기 울컥하고 화딱지가 치민 그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솔직히! 외교 실패를 저지른 건 내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 아냐? 재상이나 되는 사람이 괜히 딸내미 학교에 사업을 시작해서 딸내미의 정치적인 약점이나 만들고! 그것 때문에 내가 휘둘리고 공격받고 있잖아! 적을 늘리는 건 하수의 처세라고 분명히 아버지가......!"
"유감이야."
갑자기 불쑥 들린 제삼자의 목소리에, 엘리사가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떨었다.
이내 뒤를 돌아보자, 에메랄드빛 칠흑에 감싸진 스켈레톤의 '두개골'들이 입을 척 벌리고 있었다.
<시몬 오리지널 - 스컬드론>
화르르르르륵!
딸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두개골의 입이 열리더니, 새까만 화염을 뿜어냈다.
순식간에 갑판에 불이 붙고 말았다.
"이건 또 뭐야아!"
엘리사가 다급히 손끝에 마법진을 펼치고 유령선을 조작했다.
<고스트 오퍼레이터 - 리페어>
유령선의 방화 및 보조 시스템이 작동한다. 곳곳에 매달려 있던 양동이들이 스스로 움직여 물을 뿌리고, 타버린 바닥은 빠르게 교체되었다.
"아이 씨!"
유령선의 복원을 마친 그녀가 몸을 빙글 돌리며 허리춤의 나무총을 붙잡고는 번개처럼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상당한 솜씨였다. 스컬 드론들이 스피릿 탄환에 부딪히자 흑마법이 취소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녀가 후- 하고 투명한 연기가 흘러나오는 총의 입구에 바람을 불고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떤 간 큰놈이 내 배에......!"
<본 프리즌>
촤라라라라라락!
엘리사의 몸이 거칠게 당겨지더니, 뒤로 붙들려 날아갔다.
"?!"
반응할 틈도 없이 그녀의 몸이 유령선의 객실 벽에 쿵! 하고 강하게 부딪혔다. 이내 그녀의 두 팔이 강제로 들어 올려지며 뼈로 빈틈없이 봉쇄되었다. 두 다리도 벽에 철썩 들러붙은 채 고정되었다.
"어?"
그녀가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움직여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 뭔데! 왜 유령선의 방호 시스템이 작동 안 하는......!'
"안녕."
저벅. 저벅.
그녀의 고개가 돌아갔다.
이번 시험, 그녀가 잡아야 하는 목표가 눈앞에 태연한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다시 보네, 엘리사."
"시, 시몬 폴렌티아!"
그녀가 시뻘게진 얼굴로 외쳤다.
"너, 너, 너! 이렇게 높은 곳까지는 어떻게......!"
"친위대를 써서 날아왔어."
시몬이 아공간을 열고 '스컬드론' 상태였던 스켈레톤 메이지들을 회수했다.
물론 엘리사를 붙잡고 있는 스켈레톤들은 그대로 두었다.
그녀가 벌겋게 물든 얼굴로 바둥거렸다.
"당장 이거 풀어!"
"내게 협력해 주겠다고 약속하면 그렇게 할게."
"하?"
엘리사의 이마에 빠직하고 혈관이 뭉쳤다.
"개나 소나 협력! 협력! 내가 진짜 만만해 보이지? 나 엘리사 셀린이야! 밖에서는 내 눈도 못 마주칠 것들이 학교 안이라고 자기 잘난 듯이......! 내가 이대로 키젠에서 퇴학당하면 셀린가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미안, 시간이 없어서 오래는 못 들어줘."
가문 위세까지 들먹이는 건 그만큼 궁지에 몰렸다는 이야기.
시몬은 팔에 착용한 출력장치를 보았다. 이제는 아는 이름들도 나오고 있었다.
[제이미 빅토리아가 탈락했습니다.]
[피츠제럴드 잉겔스가 탈락했습니다.]
.......
.......
.......
[토토 아모리가 탈락했습니다.]
이 시험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점으로 달리고 있었다.
시몬의 눈빛이 한 층 더 진지해졌다.
"난 화산성주를 반드시 잡아야 해."
"그, 그게 나랑 무슨 상관......."
"넌 사령학과 대표에, 노블(Noble) 동아리 부장이잖아. 너희 애들도 이대로는 대거 퇴학당할 텐데, 책임감을 못 느끼는 거야?"
그녀가 혀로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조용히 주변을 거닐던 시몬이 다시금 말했다.
"메르디아나 측에서 날 잡으라 제안했지?"
엘리사가 시선을 피했다.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는데."
"메르디아나는 신 학생회와 연결되어 있고, 네 아버지의 사업을 빌미로 널 압박했을 거야. 그렇지?"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눈을 돌렸지만, 안색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봐. 키젠 재학생으로서 네 아버지의 사업을 지키지 못하는 게 무능일지. 아니면-"
시몬이 말을 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을 지키려고 시간낭비나 하다가, 네가 학과대표로 앉아 있는 학과에서 학과생의 절반을 지키지 못하는 게 더 큰 무능일지."
"......."
타악.
시몬이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그녀를 똑바로 응시했다.
"나도 감정적으로는 널 이번 시험에서 깔끔하게 배제하고 싶어. 넌 날 먼저 공격했고, 너는 내 적이니까."
그 말을 들은 엘리사의 심장이 철렁했다. 사실 즉결심판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그런 사적인 감정은 배제하고, 지금은 더 큰 목적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할 때라고 생각해."
달그락.
시몬이 손바닥을 펼쳐 푸른 피가 든 캡슐주사를 보였다.
엘리사의 눈이 커졌다.
"잠깐, 그건......!"
"엘리시아도 탈락하기 직전에 내게 이것들을 맡겼어. 무슨 의미인지 알 거라고 믿어."
주사기를 소중히 안 주머니에 넣은 시몬이 이내 그녀의 앞에 쪼그려 앉아 깍지를 꼈다.
"이제 선택해."
'......큭.'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덜덜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그, 그럼 나도 조건이 하나 있어."
"?"
"네가 다시 학생회장이 되면 그때는......."
그녀가 침을 꼴깍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아버지 사업......."
"이 상황에서도 정치야?"
시몬의 표정이 싸늘해지자 엘리사가 움찔했다.
늘 온화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나?
그때 시몬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로비는 안 되지만, 내 학생회 시절에 네 아버지 사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건 사실이니까. 그때와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
'아!'
이렇게 되면 당장 발락 학생회대에서 거래가 끊기더라도, 시몬이 다시 학생회장을 차지한 뒤로는 달라질 거라고 아버지에게 이야기할 변명거리도 생긴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정치에 조금 더 가치를 뒀다고 말하면 '무능' 낙인은 받지 않을 것이란 게 엘리사의 판단이었다.
"그, 그래. 알았어! 협력할 테니까 빨리 이것 좀 풀어!"
엘리사가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말했다. 시몬이 손가락을 휘젓자 그녀를 묶고 있던 스켈레톤의 뼈들이 촤르륵 날아와 시몬의 아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잘 부탁한다."
비로소 옅은 미소를 보인 시몬이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칫 하고 입술을 빼쭉이며 시몬의 손을 붙잡고 일어났다.
"약속은 지켜."
"당연하지."
삐이이이-
그때 알림음이 들렸다.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바닥에 떨어져 있던 통신수정구를 붙잡았다.
"바, 받아도 돼?"
그녀가 시몬의 눈치를 보았고, 시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통신 수정구를 작동시켰다.
"나야, 왜?"
-우리 먼저 이동할까 해서. 같이 가자.
아세라즈의 목소리였다.
"뭐래, 아까는 시몬 폴렌티아를 잡으라며?"
엘리사가 그렇게 말하며 시몬의 눈동자를 보았다.
"그 녀석을 찾은 것 같아. 적당한 타이밍에 공격해 보고 안 되면 물러나려고."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너무 무리하다 탈락당하진 말고.
삑 하는 소리와 함께 통신이 끝났다.
그녀가 흐하아아 하고 긴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방금 그 목소리는......."
"이제 와서 숨길 것도 없고. 아세라즈야."
그녀가 통신 수정구를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사실 엘리사의 입장에선, 시몬을 돕는 척하면서 뒤통수를 치고 메르디아나나 아세라즈 쪽에 붙는 게 더 안전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사람 약점 잡았다고 줄기차게 협박만 하는 그 얄미운 둘을 따르는 것보다는, 저렇게 회유하는 척이라도 하는 쪽에 조금 더 마음이 가는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매하면 대의와 명분이 있는 쪽을 따라라.'
아버지의 가르침이었다.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시몬을 보았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음."
시몬은 생각에 잠겼다. 엘리사도 물론 중요한 전력이긴 하지만, 엘리사를 먼저 손에 넣은 건 화산성 공략에 가장 중요한 열쇠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동쪽으로 뱃머리를 돌려줘."
"으응? 동쪽이면 시작지점으로 가려고? 지금 거긴 용암 천국일걸."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반드시 협력이 필요한 녀석이 있어."
시몬이 바라보는 방향에는, 하늘에 떠 있는 수묵화 색의 해골섬이 있었다.
* * *
칠흑대지계 흑마법중에서도 이질적인 흑마법인 '영역반전'.
그것으로 만든 공중에 떠 있는 섬.
수묵화 색의 섬에는 마치 붓으로 그린듯한 해골의 입이 떡 하니 벌어져 있었다.
"진심이야? 샤텔 마에르를 데리러 갈 거라고?"
엘리사가 펄쩍 뛰었다.
"대체 어떻게? 너 그 거인이랑 친해?"
"친한 건 아니지만, 예전에 한번 결투평가에서 겨뤄봤어."
그녀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아니, 겨우 그 정도? 자신 있는 거 맞아? 걔 결투 대상자를 피떡으로 만드는 소문으로 유명하잖아!"
"그건 좀 과장된 소문이야."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유령선은 샤텔의 해골섬에 도착했다. 시몬이 앞으로 나왔다.
"샤텔! 할 이야기가 있어!"
큰소리로 외쳤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뒤에 숨어 있던 엘리사가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그냥 돌아가자. 괜히 잘 자고 있는 녀석을 건드렸다가......."
"엘리사."
시몬이 그녀를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유령선으로 문을 부수고 돌파하자."
"뭐어어?"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결국 이 관계에서 주도권을 가진 건 시몬이었다. 엘리사도 한숨을 푹푹 쉬며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난 이제 몰라! 꽉 잡아!"
유령선이 엘리사의 방대한 칠흑으로 뒤덮이더니, 그대로 해골 입을 향해 돌진했다.
쿠콰콰콰콰쾅!
유령선의 전면부가 입가의 문을 부수고 안으로 돌파했다.
어마어마한 충격에 유령선이 거칠게 뒤흔들렸고, 문을 부수자마자 기우뚱하며 뒤집어졌다.
"끼약!"
난간을 붙잡고 있던 엘리사가 유령선에 튕겨 나와 흙바닥을 굴러다녔다. 깃대를 붙잡고 있던 시몬은 사뿐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샤텔의 해골 은둔처 내부.
곳곳에 크고 작은 칠흑대지계 마법진이 펼쳐져 있었고, 그 마법진의 회로는 모두 중앙에 보이는 커다란 불상으로 향해 있었다.
어떤 강력한 마법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시몬은 불상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샤텔, 듣고 있지? 할 말이 있어."
"자, 잠깐마안! 함부로 손대지 말라니까!"
시몬을 뒤따르던 엘리사가 힉! 소리를 내며 멈칫했다. 불상의 얼굴 부분이 파지직 소리가 나며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내 불상의 눈 부분이 깨져나가며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눈동자가 나타났다.
[......할 말?]
"그래."
시몬이 빙긋 웃었다.
"협력이 필요해서 왔어. 화산성주를 잡고 퇴학 위기에 빠진 동기들을 구하고 싶은데."
쿠구구구구구구구-!
갑자기 발을 딛고 있는 섬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다.
투둑. 투둑.
불상 전체에 빠르게 금이 가기 시작했다. 몸을 일으켜 다가오던 엘리사는 어쩐지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는 얼른 유령선 뒤에 숨었다.
꽈아아아앙-!
불상이 완전히 깨져나가며, 그 안에 있던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몬 폴렌티아."
그의 눈동자가 기울어졌다.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