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27화
하늘이 괴생명체들로 뒤덮였다.
괴물 가오리처럼 생긴 비행형 소환수들이 하늘을 날아다녔고, 그 위에는 키젠 학생들이 올라타 있었다.
병력의 수는 자그마치 스무 명이 넘었다.
"가자!"
학생들이 하나둘 소환수 위에서 뛰어내리며 흑마법을 퍼부어댔다. 보스 몬스터인 라바골렘들이 강력한 화력에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이 데려올 줄은 몰랐는데.'
시몬이 슬며시 웃었다.
사실 시몬도 처음부터 샤텔과 엘리사 둘만 데리고 공략대에 오려 했던 건 아니었다.
다른 Top10들도 합류시키려고 다른 학생들에게 정보를 얻고 있는데, 갑자기 공략대가 무리하게 산을 오르는 바람에 서두른 것이다.
대신 대규모 운반능력을 가진 키젠 학생에게 부탁해 두었다.
-먼저 가서 길을 열어놓고 있을 게. 다른 Top10을 찾으면 바로 공략대에 합류해 줘.
바로 그 운반능력을 가진 말총머리의 여학생이 가오리에서 뛰어내려 시몬의 옆에 착지했다.
"데려오는 것 자체는 의외로 쉬웠어."
시몬과 같은 소환학과의 기네비어 벤너스.
학과 내에서도 최상위권 학생이었다.
"너희가 길을 다 닦아준 덕분에, 그냥 산기슭을 따라 쭉 올라왔으면 됐으니까."
어마어마한 전력보충이었다.
특히.
촤아아아아아악-!
함께 온 마검 사용자 쥴의 힘이 압도적이었다. 그가 허리에 찬 마검 손잡이를 붙잡는 것만으로 몬스터들이 검광에 썰려 나갔다.
"늦었소."
그가 몸을 돌려 시몬을 바라보았다. 찰칵! 하고 장검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마지막 남아 있던 라바골렘의 머리가 일자로 갈라지며 쓰러졌다.
시몬의 눈이 감격으로 차올랐다.
"쥴!"
"공략대의 분발은 전교생이 알고 있소. 미처 합류하지 못한 다른 학생들도 필요한 자리에서 움직여 줄 거요."
후욱-
길게 숨을 내뱉은 그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나도 최소한의 분별은 있소. 내 친우들도 적지 않게 탈락했지. 상황이 상황인 만큼, 사사로운 개인감정에 휘둘리지 않겠소."
"그래, 고마워."
"그리고 이 시험을 끝낼 무기를 데리고 왔소."
쥴이 그렇게 말하고는 뒤를 보였다.
그가 등 뒤에 매달고 있는 하얀 포대. 아니, 자세히 보니 이불이었다. 그 안에 꼼지락거리는 뭔가가 있었다.
사람이었다.
"메리다?"
쿠울-
메리다가 이불 안에서 세상 모른 채 자고 있었다.
"무아몽중을 사용한 뒤, 고지대에서 자고 있던 걸 주웠소. 전력으로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데려오긴 했소만, 신뢰하기 힘들다면 용암에 빠트리겠소."
"아냐, 아냐. 메리다도 지금 상황을 듣고 나면 이해해 줄 거야."
고개를 끄덕인 쥴이 한 손으로 마검 손잡이를 붙잡는 모습이 보였다. 검광이 대각선으로 그어지며 용암 몬스터의 머리가 연달아 날아갔다.
"무슨 낯짝으로 기어들어 왔나."
그때 뒤에서 헥토르가 퉁명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패배자 패거리에 농락당해 사냥개 노릇이나 하던 놈이."
"헥토르."
시몬이 그에게 눈치를 주었으나 쥴은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부터 그자들과는 상관없는 문제요. 나는 시몬과 검을 맞대고 싶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오."
그가 시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참고 있는 이유는 그저, 우리끼리 싸우면 학과에 폐를 끼치기 때문이오."
"......."
헥토르는 쯧 하고 혀를 찼다.
헥토르나 쥴이나 학과대표 신분.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킬 단계는 화산성주가 등장한 후부터 지났다.
이제는 힘을 합쳐야 할 때였다.
쥴은 자유로운 한 손을 움직여, 등에 메고 있던 메리다를 묶은 끈을 풀었다.
"누가 성주를 상대할 것이오?"
"나랑 헥토르가 상대할 것 같은데."
"그럼 그대에게 맡기겠소."
쥴이 화물 집어 던지듯 메리다를 시몬의 품에 던져놓았다. 시몬은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 쳤지만, 깃털처럼 가벼운 메리다의 무게에 더 놀랐다.
그녀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민트색 머리카락이 이불 밖으로 몇 가닥 삐쳐 나와 흔들렸다.
"깨어날 때까지 지키면 전세를 바꿀 전력이 될 거요. 그럼."
쥴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마검이 들썩일 때마다 수십 마리의 용암 몬스터들이 시커먼 검광에 양단됐다.
"길을 열겠소!"
* * *
[남은 시간 - 03:23:15]
쥴을 위시한 지원군들은 칠흑은 물론, 체력도 쌩쌩했다.
바글거리는 용암몬스터들을 시원하게 뚫어내며 길을 만들어냈다. 지켜보는 시몬의 입장에선 숨구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열어주는 길을 따라 달리고 있던 시몬은 마침내 화산성의 자태를 목격했다.
'보인다!'
정말 바라고 바라왔던 목적지가 드디어 코앞이다. 이 시험도 끝이 보인다.
"오래 기다렸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헥토르는 벌써 몸에 비늘을 붙이고 있었다. 시몬도 그 심정을 이해했다.
너무 많은 학생들이 승리를 위해 희생했다. 이제는 나 하나의 목숨이 아니었기에 참고 있었을 뿐, 당장이라도 싸우고 싶었다.
"다들 저길 봐!"
전체 7위의 엘리사가 화산성을 가리켰다.
"성에서 뭔가 나온다!"
삐빅!
동시에 학생들의 출력장치에서 동시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화산성주가 출현합니다.]
저벅. 저벅.
커다랗게 울려 퍼지는 구둣발 소리와 함께, 화산성 1층에서 붉은 갑주를 입고 망토를 두른 화산성주가 드디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우매한 불청객들이 기어이 여기까지 왔구나.]
'역시.'
시몬은 목소리만 듣고 그녀가 진 아르스칼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표정은 벌써 다 이긴 표정이구나. 하지만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무대의 시작일지어니.]
그녀가 손짓하자 지면이 급격히 떨리기 시작했다. 곳곳의 학생들이 바닥에 넘어지거나 엉덩방아를 찧었다.
'뭔가 또 있다고?'
시몬은 심상치 않은 기분을 느끼며 화산성주에게 온 시선을 집중했다. 이내 화산성주가 분화구 쪽으로 팔을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퍼어어어어어어어엉!
화산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대폭발을 일으켰다.
이건 사고의 영역 밖에 있는 화력이었다.
"피해애애애!"
학생들이 혼비백산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솟아오른 마그마가 하늘에서 죽음의 재앙을 쏟아붓는다.
쥴이 급히 하늘에서 내려오는 용암유성을 베고, 샤텔은 범람하는 마그마의 방향을 틀어서 막아내는 사이.
"아!"
화산성이 더 높은 고공으로 치솟고 있었다. 화산성주가 눈을 감고 두 팔을 치켜세우고 있었는데, 그녀가 자신의 힘으로 성을 띄우는 것 같았다.
"다, 당했다!"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야?"
이제 화산성은 전보다 훨씬 높은 고도에 위치했다. 화산성주가 하늘에서 학생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절망하라.]
공중에 뜬 화산성의 내부에서도 몬스터들이 벌떼처럼 튀어나왔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용암 몬스터와는 외형이 달랐다. 화산성주가 입고 있는 갑주와 흡사한 것을 둘렀으며, 손에는 창을 들고, 등에는 곤충의 날개가 붙어 있었다.
화산성주의 정예병들이었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라.]
콰아아아아아아아아-!
분화구에서 화산이 재차 폭발했다.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친 용암이 비가 되어 떨어지고, 비탈길로 범람하여 학생들을 집어삼켰다.
[도리스 벤턴이 탈락했습니다.]
[마테우스 맥모린이 탈락했습니다.]
공략대에서 탈락자가 속출한다. 학생들은 높게 떠버린 화산성과, 하늘을 나는 정예병들을 보며 의지가 정면으로 꺾이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또 올라가라고?"
엘리사가 제 머리를 마구 쥐어뜯었다.
"으으, 내 유령선이 한 척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그렇게 말한 그녀가 찌릿 헥토르를 노려보았다. 헥토르는 덤덤한 표정으로 스트레칭을 하다가, 무릎을 굽혔다.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드래곤 폼>
순식간에 시룡의 비늘과 날개를 붙이고, 용의 형상으로 변한 헥토르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러나 다시 분화구에서 거칠게 폭발하는 용암 때문에 얼마 가지도 못하고 선회하는 수밖에 없었다.
[짜증 나게 하는군!]
끊임없이 쏟아지는 용암.
높아진 화산성.
그리고 성을 지키는 정예병까지.
가히 절망스러운 상황의 연속이었으나.
"내가. 맡겠다."
샤텔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주위의 학생들이 말렸다.
"샤, 샤텔! 아무리 너라도 칠흑대지계로는......!"
흙바닥에 걸터앉은 샤텔이 두 손바닥을 쿵! 소리가 나게 맞부딪혔다.
<샤텔 오리지널 - 수하석상(樹下石上)>
"가능하다."
일순 샤텔의 몸이 스스로 석화되어 돌처럼 변했다. 그것은 웃고 있는 거대한 돌석상의 형상이었다.
<영역장악>
뒤이어 샤텔의 진가가 드러난다. 화산 전체가 수묵화와도 같은 검은 빛으로 물들었다.
곳곳에 먹으로 그린 듯한 풀이 자라나고, 소나무가 일어났다. 지면이 먹물에 잠긴 것처럼 이질적인 색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때 공략대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위험해! 화산이 또 폭발한다!"
<영역봉쇄>
이에 샤텔은 또 한 번 흑마법을 사용했다. 산의 지면이 반죽처럼 변하더니 그대로 분화구를 틀어막아 버렸다.
"......!!"
그냥 지형자체를 모래 놀이하듯 바꿔 버리는 괴현상.
발을 딛고 있는 지면의 떨림으로 산 내부에 화산이 폭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산의 곳곳에서 용암이 끓는 냄비 뚜껑 사이로 줄줄 새어 나오기 시작했지만, 그뿐이었다.
[준. 비해라.]
석상이 된 샤텔이 눈을 감았다.
<영역 반전>
[하늘을. 등반할 준비를.]
뒤이어 샤텔에게 장악된 지면이 일제히 공중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늘에 떠 있는 섬처럼 조각조각 난 채로 공중에 머물렀다.
"와......!"
마치 용암을 건널 때 썼던 돌다리처럼, 지반은 띄엄띄엄 떨어진 원형 계단의 형태를 이루었다.
이 지형들이 원을 빙빙 그리며 화산성으로 향하는 길을 만들었다.
다들 눈앞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고마워, 샤텔! 다들 가자!"
제일 먼저 이성을 되찾은 시몬이 훌쩍 도약해 공중에 떠 있는 지면 위로 올라갔다.
제1위가 움직이자 다른 학생들도 퍼뜩 정신을 차리고 뒤따랐다.
"우리도 가자!"
"오오오오오!"
학생들이 앞다투어 칠흑을 일으키며 지면을 밟고 오르기 시작했다.
샤텔이 분화구를 틀어 막아준 덕분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용암의 공포도 더 이상은 없다.
[무의미한 발버둥이니라.]
화산성주가 공격명령을 내렸다.
화산성 곳곳에 대기 중이던 날개 달린 정예병들이 일제히 내려와 공습을 시작했다. 학생들도 정신없이 달리면서 흑마법과 저주를 쏘아 보내며 반격했다.
"웃차!"
시몬은 메리다를 등 뒤에 업은 채, 달리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신기한데.'
흙들이 올라와 부유하는 지면을 이루고, 검은 풀과 소나무들이 자라나 있다. 작은 돌멩이나 바위 따위도 모두 공중에 떠 있어서 마치 징검다리를 밟고 뛰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모든 지면이 향하는 곳은 하늘 꼭대기.
화산성이다.
우우우우웅-!
바로 그 화산성에서, 이번 시험 중 가장 공포스러운 광경이 보인다.
화산성의 한쪽에 붉은 원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화산성주의 화살!'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학생들 중 누군가가 반드시 탈락한다는 사형선고.
"조심해!"
"한 발 온다!"
시몬은 심장이 철렁했다. 붉은 원이 자신이 달리는 방향을 따라 아주 서서히 움직이고 있는 게 보인다. 조준점이 이쪽을 향하고 있다.
'아니, 내가 아냐.'
시몬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은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메리다가 있었다.
"비켜!"
"여기서 두 사람이 탈락하면 곤란하오!"
그 순간. 두 사람의 앞을 신디와 쥴이 뛰어들어와 가로막았다. 시몬이 다급히 뭐라고 외치려는 그때.
후우우우우-!
갑자기 붉은 원이, 절전이 된 전구처럼 꺼졌다.
"응?"
나름 각오를 했던 신디와 쥴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 멀리서 화산성주가 인상을 와락 구기며 활을 내리는 게 보인다. 시몬은 직감했다.
'화산성주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거야!'
그의 시선이 즉각 출력장치로 향했다.
[도전자들이 봉인석을 추가로 점령했습니다.]
[화산성주가 약해집니다.]
'그렇지!'
해일처럼 몰아치는 환희를 느끼며 시몬이 주먹을 꽈악 움켜쥐었다.
"아래에서도 싸우고 있나 봐! 계속 가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왜 쏘려다가 멈춘 건데? 설명을 해줘!"
* * *
레흘른 군도에 서리가 끼고 있다.
뜨거운 용암 벌판에, 새하얀 냉기를 내뿜는 빙하들이 속속 세워지고 있었다.
"하아."
입가에 흰 입김을 뿌리며 두 팔을 교차해 제 어깨를 끌어안고 있는 소녀.
"으, 진짜."
전체 8위의 메이린 빌렌느.
코가 벌게진 그녀가 훌쩍거렸다.
"나 추위에 언제쯤 적응할까."
그녀의 주위에는 빙하에 파묻힌 용암 몬스터들이 활동을 중지한 채 굳어져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가운데.
모습을 드러낸 봉인석이 우뚝 솟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