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830화 (830/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30화

-오빠, 나 힘들어.

메리다는 늘 신나게 들판을 뛰어놀다가 집에 갈 시간만 되면 그렇게 주저앉아 칭얼거렸다.

그러면 오빠가 말없이 몸을 돌려 등을 내어주었다.

산길을 내려가는 기분 좋은 귀갓길.

오빠의 따뜻한 등에 몸을 기댄 채, 살살 간지럽게 밀려드는 졸음을 즐기며, 떠다니는 구름 한 조각, 날아다니는 나비 하나 바라보는 기분은 각별했다.

그때는 좋았는데.

하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오빠는 조금 바뀌었다.

책임감이라는 걸 느끼는 것 같았다.

-메리다. 너도 이제는 주도적인 삶을 살아.

언제까지고 오빠와 함께 있고 싶은데, 오빠는 늘 자신에게 자신을 떠날 것을 강조했다.

-내가 방해되는 거야? 날 떼어놓으려는 거야? 엄마 아빠처럼 내 곁에 떠날 거야?

판타서스가 키젠에 입학하는 첫날, 메리다는 심한 말을 했다.

하지만 판타서스는 화를 내지 않았다. 가방을 둘러매고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언젠가,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때가 오리라고 믿는다. 그때는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다.

졸음이 한 차례 가시고.

눈꺼풀이 밀려 올라간다.

오빠의 등.

포근하고 따듯하다.

-리다......!

그리고 귓가에 윙윙거리는 외침.

-메리다!

눈이 번쩍 뜨인다. 차가운 바람이 느껴지고, 제일 먼저 보인 건 등이었다.

'오빠가 아니었어?'

편안하게 잘 수 있는 따뜻한 등.

당연히 판타서스 오빠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럴 리가 없었다.

오빠는 이미 이 학교를 떠났으니까.

"허억! 헉! 이제 눈 떴어?"

자신을 업고 있는 소년이 거칠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사방에서는 격렬한 금속음과 폭발음이 울려 퍼지고, 뭔가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도 들렸다.

땀을 뻘뻘 흘리던 시몬이 이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슬슬 내려와서 도와줄래?"

순간 시몬의 얼굴에서.

판타서스의 얼굴이 희미하게 겹쳤다가 사라졌다.

"!"

메리다는 뭔가 속에서 이상한 감정이 치솟는 것을 느끼며 허겁지겁 등에서 뛰어내렸다. 이내 제 몸에 두르고 있던 이불을 더더욱 감싸며 말했다.

"나, 얼마나 잤어?"

"거의 반나절 내내."

시몬이 그렇게 말하며 팔을 휘둘렀다. 오버로드가 굉음을 일으키며 일어나 화산성주의 병사들을 베어냈다.

"그리고 보다시피 여긴 화산성이야."

헥토르와 쥴이 공략대를 가로막은 아세라즈와 메르디아나를 맡았다.

그사이 나머지 멤버들은 2층, 3층을 돌파하여 4층까지 도달했다. 이제 5층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다들 지칠 대로 지쳐 있었기에 탈락자가 수두룩하게 나왔다.

"어떻게 좀 해줘! 이젠 진짜 칠흑이 없다고!"

엘리사가 양갈래 머리를 흔들며 비명처럼 외쳤다. 그녀의 주위에는 투명한 화포들이 연신 스피릿 포탄을 발포하고 있었다.

메리다가 고개를 돌렸다.

"시몬."

"그래."

이곳은 전장이었지만, 두 사람은 아직 풀 이야기가 있었다.

시몬은 보채지 않고 덤덤하게 그녀의 시선을 받았다.

"발락에게 이겨."

시몬의 눈이 커졌다.

"응?"

"내가 인정하는 건 발락에게 빼앗긴 학생회장직을 되찾았을 때뿐이야. 발락에게 패배하고 굴욕적으로 학생회장직을 물려받는다면 그때는-"

그녀의 옥색 눈동자가 이채를 발했다.

"내가 널 끌어내릴 거야."

시몬이 희미하게 웃었다.

"좋아, 그렇게 하자."

메리다가 악수를 청하듯 자그마한 손을 샥 내밀기에, 시몬이 손을 붙잡았다.

"!"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감촉이었을까. 그녀는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홱 뺐다.

이내 이불을 망토처럼 뒤집어쓴 채 총총 걸어갔다.

어쩐지 머리의 말단부가 화끈거리는 기분이었다.

"꺄아아악! 니들 지금 그럴 때야? 어떻게 좀 해보라니까!"

엘리사가 비명을 질러댔고, 공략대원들도 하나둘씩 쓰러져갔다.

이에 메리다가 펄럭! 소리를 내며 몸에 두른 이불을 던졌다. 그러고는 두 팔을 들어 올렸다.

<판타서스 오리지널 - 슬립>

단지 그 동작뿐.

그 뒤에 일어난 광경을, 학생들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열풍이 휘몰아치고, 무수한 칠흑 다발이 빛줄기처럼 날아가고, 눈을 아리게 하는 섬광이 번뜩이고, 그리고 그 뒤에는.

후두두두두두둑-

날벌레 같던 화산성주의 병사들이, 그야말로 벌레처럼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전부 깊게 잠든 모습이다.

"이제 가자."

메리다가 뒤를 돌아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살아남은 공략대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진짜 세다."

"우리가 위기에 빠졌던 게 우스워질 지경이네."

엘리사는 옆에서 '이런 힘이 남아있으면 진작 좀 도우라고.' 하면서 칭얼대고 있었다. 시몬이 웃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이제 곧 5층이야."

시몬과 공략대원들이 우르르 달려갔다. 그런데 메리다는 제자리에 가만히 선 채 눈을 말똥거리고 있었다.

달려가던 시몬이 다시 돌아왔다.

"왜 그래? 메리다."

메리다는 아무 말 없이 두 팔을 벌렸다.

시몬이 난처히 웃었다.

"또?"

"저주 시전 중에는 무방비. 저주에만 신경 쓰고 싶어."

"수석은 이미 널 업고 오느라 지쳤어!"

공략대의 남학생 하나가 그렇게 말하며 다가왔다.

그러고는 등을 돌려 한쪽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뒤쪽으로 내밀었다.

"내 등에 업혀! 과대!"

퍽!

메리다가 서늘한 눈으로 노려보며 그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공략대 학생이 벌러덩 넘어졌다.

메리다는 시몬만을 바라보며 다시 두 팔을 쓱 벌렸다.

"알았어, 알았어."

하는 수 없이 시몬이 그녀를 업고 달렸고, 공략대 학생들이 두 사람을 지키듯 달렸다.

"크흡."

그녀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인 남학생은 어쩐지 상처받은 표정이었다.

"온다!"

윙윙거리는 소음과 함께, 날개 달린 화산성주의 경비병들이 살벌한 속도로 강하했다. 시몬의 등에 업혀 있던 메리다가 그의 어깨를 두 손으로 짚고 몸을 쭉 내밀었다.

<판타서스 오리지널 - 슬립>

저주포대의 진가를 보여주는 순간.

그녀의 몸에서 무수한 저주 줄기들이 공중에 검은 곡선을 남기며 뻗어 나가 경비병들이 들이닥치는 족족 맞혀서 떨어뜨렸다.

잽싸게 도망치는 경비병들도 저주가 끝까지 쫓아가 적중하는 모습. 시몬은 감탄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예전엔 이 정도로 슬립을 날리려면 무아몽중 상태가 돼야 가능했는데.'

현재는 무아몽중의 스케일이 훨씬 커져 버리고, 저주난사가 거의 기본기처럼 된 모습이다.

"저기 문이 있어!"

엘리사가 앞을 가리켰다. 화산성의 마지막인 5층으로 향하는 입구였다.

끼이이이이-

그때 화산성의 문이 스스로 열렸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정면을 응시하던 시몬이 이내 다급히 외쳤다.

"다들 피해!"

문이 열리는 즉시, 화산성 실내에서 마그마가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시몬은 거의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칠흑을 밟고 뛰어오른 뒤에, 두 다리를 천장에 댄 채로 본 아머로 고정했다.

아아아아아아아-!

[번리 이미터가 탈락했습니다.]

[신디 비바체가 탈락했습니다.]

마지막까지 함께 온 공략대원들도 탈락했다. 시몬이 식은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크흡!"

엘리사가 벌벌 떨며 천장에 붙어 있었다.

"엘리사! 괜찮아?"

"번리가."

그녀가 굳은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번리가 날 던지느라 자기가 용암에 휘말렸어."

"......."

그때 등에 업혀 있던 메리다가 시몬의 옷깃을 휙휙 당기는 게 느껴졌다.

"시몬, 앞에."

"?!"

시몬의 고개가 급히 돌아갔다. 열린 문틈으로 용암이 내려앉고, 그 뒤로 붉은 원이 그려지는 모습이 보였다.

키이이이이이잉-!

화산성주의 공격의 징조였다.

'위험해! 나인가? 아니면......!'

시몬의 고개가 돌아갔다. 화산성주의 공격을 처음 보는 메리다가 고개를 쭉 빼 밀고 있었다.

'설마 다시 메리다를......!'

퍼어어어어어어억!

시몬의 동공이 확대되었다.

그의 머리 위로 굉음과 함께 붉은 효과가 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막지 못했다.

'제기랄!'

시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는데, 앞으로 쓰러지고 있는 건 메리다가 아니었다.

엘리사가 두 팔을 벌린 채 양갈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가슴에는 화살이 틀어박혀 있었다.

"니들 진짜."

천천히 용암 속으로 떨어지던 그녀가 손끝으로 두 사람을 가리켰다.

"너희한테 내 정치적 생명을 거는 거야! 절대 지지 마!"

이내 그녀의 몸이 용암 속으로 빠져들며 작은 파문이 번져나갔다.

[엘리사 셀린이 탈락했습니다.]

엘리사가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줄은 몰랐지만, 시몬은 정신을 차렸다.

모든 것은 승리를 위해.

"가자, 메리다."

시몬은 마음을 다잡고 움직였다.

"응."

메리다의 표정도 한층 더 진지해졌다. 두 사람은 천장을 기어서 이내 열린 문틈으로 들어갔다.

문 너머에는 별것 없었다. 단지 5층으로 향하는 계단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다. 여기서부터는 내 발로 가겠다며 메리다가 시몬의 등에서 떨어져 나왔다.

두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남은 시간 - 00 : 32 : 56]

시간이 별로 없었다.

제일 먼저 계단을 올라간 시몬이 문을 열고 5층에 도착했다.

'아.'

천장 너머로 하늘이 올려다보이는 장소. 그곳에는 달빛이 들어왔고, 그 안에 왕좌에 턱을 괴고 앉은 붉은 갑주를 입은 여인이 보인다.

그 낯선 위압감에, 시몬은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너희 둘뿐이느냐.]

투구 속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화산성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압감이 드넓은 방 전체로 퍼져나간다.

[도전자들이여.]

북부대공이 적이다.

이런 사태는 상정해 본 적조차 없었다. 늘 아군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기에, 그녀가 적으로 돌아선 지금의 상황이 더더욱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네, 도전하러 왔습니다."

시몬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투구 속 동공이 번뜩였다.

[각오는 되었느냐.]

봐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그녀는 정말로 전력을 다할 것이다.

"가자, 메리다."

"응."

시몬은 손바닥에서 굴리고 있던혈묘족, 엘리시아의 주사 하나를 허벅지에 꽂았다. 푸른 피가 쭈우욱 들어오며 시몬의 눈이 번뜩였다.

'이제 남은 건 하나!'

엘리시아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여기까지 왔다.

그나마 상대는 군단의 힘을 쓰지 못할 테고, 무엇보다 자신의 칠흑도 봉인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 화산성주에게서 흐르는 칠흑은 진의 칠흑과는 달랐다. 승산이 있다.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화산성주가 팔을 들어 올렸다.

[몇 번이고 절망하거라.]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화산성 5층의 벽면이 번쩍이며 빛났다.

마법진이었다. 이내 그 안에서 용암 몬스터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런 걸로는, 안 돼."

메리다가 아공간에서 새로운 이불을 꺼내 공중에 띄우고는 그 위에 누웠다.

그녀의 눈이 감기며 세상이 격변한다.

<메리다 오리지널 - 무아몽중>

화아아아아아아악!

용암 몬스터들을 쏟아내던 마법진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주위가 검게 물들었다. 갑자기 천장에서 거대한 동물 인형의 팔이 떨어져 용암 몬스터를 손바닥으로 찍어 눌렀다.

꾸우우우우웅!

용암 몬스터들이 단번에 납작하게 변했다.

[여기는 이제 내 꿈속이야.]

주위가 장난감성으로 변하며, 문이 벌컥벌컥 열린다. 장난감 병정과 인형들이 우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