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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832화 (832/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32화

"드디어 마지막 전투에 돌입했습니다! 10분도 채 남지 않은 시점! 싸우고 있는 건 수석의 시몬 폴렌티아 학생과, 4위의 메리다 휴 이켈 학생입니다!"

흥분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해설자가 벌게진 얼굴에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치고 있었다.

"마지막 전투! 어떻게 보십니까 아론 교수님!"

"......."

아론의 얼굴은 담담해 보였다. 그러나 가끔 손끝으로 입술을 쓱쓱 훑거나 오른쪽 다리를 간헐적으로 떨곤 했다.

한참을 마나 스크린에 집중하던 그의 입에서 마침내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이대로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 그렇습니까? 일단 제 눈엔 밀어붙이고 있는 건 시몬, 메리다 학생 쪽 같은데요! 화산성주는 자신의 흑마법이 봉인된 만큼 충분히 승산이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동의하냐는 의미로 반대쪽에 앉아 있던 제인을 보았지만, 그녀 또한 고개를 내저었다.

"진 아르스칼트 대공이 어떤 사람인지 아시나요?"

"예, 예?"

"전쟁의 천재입니다. 일생을 전장에서만 보냈죠."

제인이 눈을 감았다.

"어떤 행동이 승리로 이어질 수 있는지 본능적으로 체득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녀의 팔다리를 봉하고 오크 소굴에 던져놔도 일주일 후에는 이빨로 모든 오크를 짓이겨 놓고도 남겠죠."

"그, 그 말씀은 흑마법을 봉한 걸로는 진 대공에게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는......."

"예."

제인이 깍지를 꼈다.

"애초에 저런 자를 학교시험의 시험관으로 앉혀놨다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그녀에게서 직장상사인 네프티스를 향한 분노가 흘러나왔다.

해설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그, 그럼 학생들이 화산성주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시간도 여력도 화산성주의 편입니다. 그녀는 시간을 끌면서 100% 이기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길 방법은 역시 작든 크든 변수를 만들어내는 것뿐이겠죠. 제가 바라는 건 하나."

그녀가 깍지 낀 두 손을 뭉쳐 손바닥을 맞닿게 했다.

"그녀도 한 명의 인간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 * *

시몬은 데스나이트의 깃발을 꺼내든 채 화산성주를 살피고 있었다.

'틀림없이 이성을 뒤흔드는 혼돈의 효과가 들어갔어. 그런데 왜.'

그녀의 모습은 사뭇 멀쩡해 보였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은 가상하나, 실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아집일 뿐이니라.]

그녀가 깨져 있는 투구를 붙잡았다.

화산성주의 눈동자와 얼굴의 절반이 드러나 있었는데, 깨진 투구 사이로 맹금류처럼 부리부리한 눈동자와 눈물점이 보인다.

[고작 투구를 조금 부수는 정도가 너희들의 한계다.]

시몬의 혼돈은 물론, 메리다의 슬립까지 들어갔는데 제자리에 우뚝 서서 아무런 이상 없이 시몬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가히 초인적이며, 초월적인 정신력.

전투능력에는 빈틈이 없으니 다른 쪽으로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그녀는 육체도 정신도 완전했다.

시몬은 경건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펄럭!

붙잡은 깃발을 들어 올린 뒤, 힘껏 바닥에 내리찍었다.

'그저 나 자신을 믿고, 다음 한 수에 모든 걸 걸어야 해.'

기회는 한 번뿐, 수많은 동기들의 퇴학이 걸려 있다. 사소한 판단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다.

[시몬.]

그때 장난감 궁전 속에서 메리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준비 다 됐어.]

"부탁해."

메리다에게 벌어달라고 부탁한 '찰나의 시간'.

지금부터 시작된다.

[오는구나. 이것이 마지막 공격임을 알고 신중히 하거라.]

화산성주가 턱을 당기며 태연히 말했다.

어떤 공격이 와도 자신이 있어 보이는 모습.

이내 마법진을 펼친 메리다가 두 팔을 들어 올렸다. 무아몽중 상태였던 그녀의 눈이 치켜떠졌다.

<메리다 오리지널 - 여진여몽(如眞如夢)>

[......!]

시몬과 메리다를 경계하던 화산성주의 얼굴에 흠칫하는 기색이 어렸다.

갑자기 주위의 환경이 강제로 뒤바뀌었다. 붓으로 붓칠을 하듯 주위가 뒤덮이고, 그녀는 뜬금없이 라일락 꽃들이 가득한 꽃밭을 보고 있었다.

전의가 사라지고 마음이 나른해진다. 자기 자신을 인지할 수도 없다. 그저 바람에 흔들리는 평화로운 꽃밭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

판타서스류 슬립 저주의 극의.

잠들지 않아도 상관없다. 잠들지 않는 상대에게 강제로 꿈을 꾸게 하는 극단적인 환몽계 흑마법.

꽃향기가 코를 간질이고, 새소리가 귓가를 가득 메우며, 마음에는 평화가 몰려든다.

조금 전에 전투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수십 년 전의 일처럼 느껴질 만큼, 고통도 걱정도 전의도 아득해진다. 판타서스류 슬립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평화로운 광경을 보여줘 놓고, 실제로는 적의 칼날이 다가오고 있을 터.

그녀는 입꼬리를 올렸다.

[고작 이것이 너희들의 마지막 공격이느냐.]

그녀는 손끝에 감각을 집중시켰다. 흐릿한 감각 속에서 미세하게 손끝에 찌릿한 통각이 오는 게 느껴졌다.

이거면 됐다.

잠을 자는 중에도 사람은 움직일 수 있다.

꿈을 꾸는 중에도 사람은 꿈인 것을 자각할 수 있다.

화산성주는 보이지도 않고, 잘 인지되지도 않는 몸에게 동작을 명령한다. 지금까지 수백, 수천만 번 반복한 동작. 몸의 기억을 믿고 몸에게 그것을 실행시킨다.

해야 할 행동은 간단하다.

시위에 화살을 메기고 활을 들어 올린 뒤.

쏜다.

화아아아아아아아-!

주위에 펼쳐졌던 아름다운 꽃밭이, 찢어진 스케치북처럼 찢어발겨지며 이내 현실로 되돌아왔다.

바로 보이는 광경은, 화살에 맞아 날아가고 있는 메리다의 모습.

그리고 지척까지 접근한 시몬의 모습이었다.

'동료를 희생했지만 기어이 내게 접근하는 데 성공했느냐.'

그녀의 눈이 상황을 살폈다.

탈락되는 메리다. 마지막 일격에 모든 걸 걸고 돌진한 시몬.

한 번의 공격쯤은 허용해도 된다. 어떤 공격이든 단 한 번만 버틴 뒤.

화르르륵!

화산성주의 왼손이 용암으로 휘감겼다.

'반격으로 꿰뚫으면 그만이니라. 얼마든지 오거라.'

그런데.

그녀는 뒤늦게 이상한 점을 자각했다.

시몬은 무기를 들고 있지 않았다. 마법진을 펼쳐놓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시몬이 쓸 기술은 마투. 이런 마지막 찬스에 굳이 마투라니.

어색하다.

현실적이지 않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심리전? 아니면 아직도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시야 내의 시몬이 점점 더 가까워진다.

이제는 시몬이 하려는 짓이 '마투'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주먹을 뻗을 최소한의 거리조차 좁혀오며 흩날리는 머리칼 사이로 시몬의 콧대와 입술이 드러난다.

그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이제는 꿈으로 나를 우롱하려는 것이냐!'

뻔하다.

너무 뻔하고 유치해서 할 말이 없을 정도다. 딱 머리에 그런 생각만 가득할 한창대의 10대 여학생이 할 만한 발상답다.

그런데 왜.

'그런데 왜!'

동공이 흔들린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맥박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녀의 은인이자, 가장 존경했던 남자인 리처드 폴렌티아.

그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아 그와 똑 닮은 소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 옆으로 혼돈 스파크가 파직거리며 튀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네, 네, 네 이놈들!

시몬이 가까워진다.

평생을 전장에서 구르고 누군가를 죽여왔던 그녀는 이런 상황에 대한 경험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평생 연심만 간직한 채 홀로 늙어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몬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 쪽으로 다가오는 순간.

뱀 앞에 놓인 쥐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막을 수가 없었다.

스으-

그 순간, 시몬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 바로 앞에서 멈췄다.

<워드 바이 밴시>

이내 시몬의 입에서 형상화된 목소리가 흘러나와 그녀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

얼굴이 벌게져 있던 화산성주의 눈에 뒤늦게 힘이 바짝 들어가더니, 다급히 발차기를 날렸다.

저주를 거는 데 성공한 시몬은 고개를 젖히며 물러났다. 화산성주에 눈에 불똥이 튀었다.

[감히 나를......!]

그녀는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시몬이 손끝으로 위를 가리켰다. 메리다가 펼쳐놓은 보라색 안개를 뚫고, 머리 위에서 뭔가가 내려오고 있다.

시몬의 비장의 기술.

친위대의 힘에, 혼돈을 덧입혀 완성하는 필살기.

<시몬 오리지널 - 카오스 오브>

자줏빛 구슬이 그녀의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 화산성주가 급히 활대를 들어 올려 받아냈지만.

'!'

이건 막을 수 있는 종류의 공격이 아니었다.

꾸드드드드득!

활대가 그대로 오브에 닿은 채 일그러졌다. 그녀가 급히 두 팔을 교차해 오브를 받아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녀의 몸이 강력한 무게와 질량에 짓눌려 바닥에 쓰러지고.

'이런!'

쿠르르르르르르르!

5층 바닥을 뚫고 그녀의 몸이 내려갔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4층.

3층.

2층.

1층까지.

콰아아아아아앙-!

그녀의 몸이 마침내 화산성의 1층 바닥을 박살 내며 떨어졌다. 주위로 뻥 뚫린 하늘이 펼쳐지고, 차가운 바람이 투구에 삐쳐나온 머리카락을 거칠게 뒤흔든다. 그녀는 고공에서 낙하하고 있었다.

[흡!]

그래도 화산성주의 대처는 신속했다. 전신에 용암을 일으킨 채 몸을 비틀어 카오스 오브 옆으로 빠져나갔다.

이내 앞을 보니, 뒤따라 1층까지 내려온 시몬이 깃발을 든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시험은 나를 잡아야 끝나는 것이거늘, 거리를 벌리면 어쩌잔 것이냐!]

그녀가 용암을 일으켜 다시 손에 쥔 찌그러진 활을 복구했다. 이내 활시위를 붙잡았다.

시몬과 메리다의 맹공 때문에 쓰지 못했던 최강의 기술.

우우우웅-!

그녀의 활을 중심으로 붉은 원이 그려졌다.

[화산성에서 나를 끝내지 못하고, 거리를 다시 벌리고 만 네 패배이니라!]

숨을 거칠게 헐떡이던 시몬은, 멀어지는 그녀가 자신에게 활을 겨누는 모습을 직시했다.

"시몬 폴렌티아!"

1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헥토르와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헥토르가 짜증스럽게 인상을 굳혔다.

"제기랄! 계획이 다르질 않나! 성주에게 걸겠다는 그 저주는 어떻게 됐지?"

척!

그때 구멍 뚫린 아래를 내려다보던 시몬이 팔을 뻗었다.

"가까이 오지 마."

"뭐?"

쿵-!

시몬이 다시 한번 바닥에 깃발을 내리찍었다.

"후읍!"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모두가 움찔하며 물러섰다. 아무것도 없는 봉대에서 칠흑이 십자가 형태로 갈라지고 있었다.

헥토르의 인상이 굳어졌다.

'...칠흑의 역십자가라니.'

십자가는 암흑연합에서 공포와 두려움의 상징이다. 그런데 그 십자가가 칠흑의 형태로 일어났다.

'대체 또 무슨 괴팍한 물건을 손에 넣은 거냐?'

시몬이 봉대를 붙잡은 채 피를 줄줄 흘리며 앞을 응시했다.

이내 기술을 완성한 화산성주가 화살을 날렸고.

꽈드드드드드드득!

그것은 정확히 시몬의 복부에 명중했다.

시몬은 바닥에 박은 깃대를 붙잡은 채 밀려나지 않고 버텼지만, 화살은 시몬의 몸을 관통해서 그 첨단이 등 너머로 삐져나왔다.

쿵!

시몬이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시, 시몬이 화살에 맞았다!"

"멍청한 놈! 어째서 피하지 않았나!"

헥토르가 버럭 외쳤다.

하아. 하아.

그때 시몬이 몸을 일으켰다. 깃발을 지팡이 삼아 덜덜 떨리는 다리를 붙잡아 몸을 세운 것이다.

학생들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화산성주의 화살을 맞고도...... 살아 있어?"

"아, 아니. 오히려 라이프 게이지가 오르고 있는데?"

시몬이 입꼬리를 올리며 헥토르를 보았다.

"......피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뭐?"

"우리가 이겼어."

* * *

단체 시험 일주일 전.

시몬은 새롭게 얻은 이 깃발의 사용법을 익히기 위해 한 교수를 찾아갔다.

-그래서 이 무구는 전례 없는 네크로맨서와 언데드에 대한 대규모 광범위 회복 능력을 가졌고.

그 교수는 저주학 담당의 바힐이었다.

-이 무구를 제대로 쓸 방법을 찾고 싶다는 거군요. 시몬 학생.

-네, 그렇습니다.

시몬이 바힐을 보았다.

-1학년 때 저한테 가르쳐 주신 4대 저주. 그중에서도 무통의 저주 인돌렌스(Indolence).

일정 시간 동안 고통을 받지 않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상대와 고통을 분담하는 저주였다.

시몬은 예전에 이 기술을 이용해, 친위대로 받은 고통을 상대에게 분담시켜 승리를 따낸 적이 있었다.

-그 저주처럼, 고통뿐만 아니라 피해를 상대와 분담하는 저주를 배우고 싶습니다.

소파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던 바힐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물론 가능하지요. 암요. 하지만 내가 버튼만 누르면 해결책을 제시하는, 그런 편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그 말을 들은 시몬은 조용히 가방에서 노트들을 꺼내 테이블 위에 쭉 펼쳤다.

-이게 뭡니까?

-버튼만 누른 적 없습니다. 제가 생각해 본 피해 분담 저주의 아이디어입니다.

바힐은 눈을 빛내며 그 노트들을 살펴보았다.

자그마치 노트 다섯 권 분량에 수식과 공부량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인돌렌스를 어떻게든 피해 분담 저주로 발전시키려 고민하고 생각했던 노력이 보인다.

시몬 폴렌티아가 스스로 저주를 공부했다.

그것도 내가 가르쳐준 오리지널 저주를.

이렇게도 열심히.

-그 어떤 저주보다 강력한 건 마음이지요.

-예?

기어코 입가에 웃음을 드러낸 바힐이 제 가슴에 손을 올렸다.

-모든 의도를 알고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감히 가장 강한 저주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시몬은 바힐로부터 새로운 기술은 전수받았다.

이미 시몬은 비슷한 유형의 기술인 친위대를 익히고 있었기에 습득도, 운용도 빨랐다.

이 저주는 밴쉬의 능력을 참고했다. 상대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다소 까다로운 사용조건이지만, 한번 걸리면 5분 동안 상대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어도 효과는 적용된다.

"제가."

뻥 뚫린 구멍 사이로 저 멀리 떨어지고 있는 화산성주의 모습을 보며, 시몬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겼습니다."

언데드와 망자와 네크로맨서를 회복하는 역십자가의 기술.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콰콰콰콰!

깃발에 십자가 형상이 더더욱 거칠게 일어나며 시몬의 몸이 회복되었다. 그와 동시에 입은 피해를 적과 함께 공유하는 입는 기술.

<바힐 오리지널 - 워드 바이 밴시>

터어어어어어어어엉-!

시몬이 화살에 직격당한 직후, 화산성주가 입고 있던 갑옷이 산산조각 나며 깨져나갔다.

시몬은 깃발을 잡고 있었기에 멀쩡하게 버텨냈다.

그것으로.

[남은 시간 - 00 : 00 : 54]

[시험이 종료됩니다.]

화산성.

분화구.

봉인석 앞.

캠프섬까지.

[화산성주가 토벌당했습니다.]

거대한 함성이 해일처럼 밀려들고. 시몬은 주먹을 번쩍 쥐어서 하늘로 움켜 들었다.

사방에서 학생들이 격렬한 환호성을 내지르며 시몬에게 달려들었다.

[시험을 종료합니다.]

* * *

"......."

화산성의 한 풀밭.

박살 난 화산성주의 갑옷의 파편이 널려 있는 사이로, 타이즈 차림의 진 아르스칼트가 멍하니 누워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화산성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박살 난 건틀릿이 조각조각 나서 흩뿌려지는 게 보인다.

"기어코 나를 이겼느냐. 건방진 것."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는 순간 얼굴이 다시금 붉어지고 가슴이 뛰었다.

전장에서 마음이 흔들리다니.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바로 이성을 증발시킨다는 혼돈의 효과라는 걸 깨달았다.

"내 순정을 이딴 식으로. 하아."

그녀가 후련한 미소를 지으며 떨리는 손으로 제 입술을 훑더니 이내 팔을 툭 늘어뜨렸다.

-대공, 바로 모시러 가겠습니다.

통신구에서 조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얼굴이 벌게져 있던 그녀가 버럭 소리 질렀다.

"아, 안 된다! 꼴이 말이 아니니 십 분 뒤에 오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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