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38화
화이트의 입국 절차는 결국 취소됐다.
아론과 조교들이 누차 항의해 봤지만 드워프들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우리 아티팩트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요.
-드워프의 도구는 거짓말을 하지 않소! 아티팩트를 제작한 장인들을 모욕할 셈인가!
입국거부. 외교에 관련된 문제였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화이트도 이 상황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저 못 간다면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결국 로크섬에 머물며 다른 언데드 제작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시몬은 이 상황에 대한 의아함을 느끼고, 이번에 호감을 얻은 드워프들에게 이유를 살짝 물어보았다. 드워프들은 보안상 기밀이라고 하면서도 짧게나마 대답해 주었다.
-우리 드워프의 아티팩트로도 정체를 읽어낼 수 없는 미지의 존재요. 우리는 우리가 분석하지 못하는 미지의 존재를 결단코 영토에 들일 수 없소.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어떻게 알겠소.
그래도 화이트 외에 학생들은 모두 무사히 입국심사를 통과했다.
학생들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이제 드워프 왕국으로 가기 위한 텔레포트 마법진을 향해 걷고 있었다.
"나 드워프들한테 엄청 혼난 거 있죠? 시몬."
산언덕을 오르는 중에, 세르네가 칭얼거리는 소리를 내며 시몬의 팔에 들러붙었다.
"황금에 낼름 손을 뻗어서 품에 숨기는 바람에 그만. 드워프들이 자기네 언어로 '욕망이 가득하다!', '탐욕스러운 여자!' 하고 노발대발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들은 시몬이 조용히 웃었다.
"그런데 어떻게 통과했어?"
세르네의 눈매가 여우처럼 휘었다.
"비밀이에요."
'......안 들어도 알 것 같은데.'
시몬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불퉁한 표정으로 걷고 있던 로레인이 끼어들었다.
"너 설마 정신지배로 드워프들을 조종해서 불법심사를......!"
"어머나. 그럴 리가요."
세르네가 혀를 삐쭉 내밀었다.
"다시 하겠다고 졸랐어요. 이번엔 내 몸에 깃털을 꽂고 해서 성공."
"......그래, 차라리 낫네."
로레인이 스트레스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불법심사가 아닌가 싶었지만, 어차피 세르네가 술수를 부리는 걸 막지 못할 거라면 외교적 결례가 없는 편이 나았다.
"나도 손을 몇 번 움직여서 황금에 닿았다 뗐다 한 것 같아."
에슈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토토는 어때?"
"아! 나, 나도 중간에 계속 손이 파르르 떨려서 힘들었어."
"오! 그래도 초인적인 인내력인데?"
주위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들 황금에 한두 번은 손을 댄 게 평균이었다.
시몬은 끝까지 욕망에 저항했던 자신에게 왜 드워프들이 악수까지 청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평소에 자주 임무평가 등으로 들렀던, 로크섬 산맥 위의 초대형 텔레포트 마법진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전원 주목."
아론이 입을 열었다. 삼삼오오 모여든 학생들이 '주목!'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복창했다.
"지금부터 7박 8일간 우리 소환학과가 이 좌표 고정형 텔레포트 마법진의 사용을 허가받았다."
아론이 학생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이 기간 동안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그랜드포지'와 '로크섬'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학생들이 탄성을 토해냈다. 드워프들의 도시인 그랜드포지에서 계속 머물면서 합숙하는 게 아니라, 수업만 저쪽에서 듣고 잠은 이쪽에 와서 잘 수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방식이라면 여러모로 부담이 덜하네.'
시몬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면 길었던 입국심사가 이해되었다.
아론이 손목시계를 확인한 뒤 말했다.
"이제 우리는 그랜드포지의 장비를 이용해 '타락형 데스나이트' 제작에 착수한다. 소환학 수업이 없어도, 교내일정을 끝낸 뒤 그랜드포지로 넘어가 계속 작업물을 제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기숙사 통금시간까지는 돌아올 수 있도록."
"네!"
"다시 강조하지만 그랜드포지에 머물도록 허용된 기한은 7박 8일이다."
아론이 팔짱을 꼈다.
"마지막 날까지 타락형 데스나이트를 완성하지 못하는 학생은 자연히 불합격이다."
학생들의 눈에 긴장감이 어렸다.
"예전에 통지했듯, 타락형 데스나이트를 만들지 못해도 데몬나이트 제작을 비롯한 대체 수업을 제공하겠지만."
척.
아론이 등을 돌려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올라갔다.
"너희는 키젠이다. 완성을 향해 나아가라."
"네!"
학생들이 힘차게 대답하며 텔레포트 마법진 위로 하나둘 올라섰다.
* * *
텔레포트가 끝나고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학생은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웅장한 지하세계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깊은 지하에 들어와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늘은 보이지 않았고, 천장에는 커다란 석순들이 주룩주룩 매달려 있었다.
도시 곳곳에 산업용 조명들이 가득했는데 지하라도 주위가 전혀 어둡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눈부시게 화려했다.
"덥네."
로레인이 교복 넥타이를 붙잡아 흔들었다.
그녀의 말처럼 도시가 열기로 후끈했다. 바닥에 설치된 통로로 시뻘건 쇳물인지 용암인지가 콸콸 강처럼 흐르며 지나갔다.
이 지하세계는 평평하지 않았다. 곳곳에 섬처럼 지반이 튀어나온 지형이 있었고, 그곳에 사람들이 마을과 공장을 지었다. 마을과 마을 사이로는 광차가 다니는 철로가 연결되어 있었다.
촤르르르르르르-!
갑자기 머리 위에서 들리는 소리에 학생들이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다. 머리 바로 위에 보이는 철로에서 광차에 올라탄 드워프들이 껄껄거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저런 걸 만들었지?'
"얘들아! 여기 봐!"
절벽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에슈가 손을 붕붕 흔들었다. 시몬과 10조 조원들이 그쪽으로 몰려갔다.
"조심해, 에슈."
"알았어! 알았어! 아래를 봐!"
세 사람이 나란히 쪼그려 앉아 밑을 보았다.
와아-!
절로 탄성이 나오는 광경.
끝도 없이 이어지는 아래로 무수한 도시와 철로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곳곳에서 자욱한 연기가 흘러나왔으며 광차를 탄 드워프들이 정신없이 사방으로 오가고 있었다.
아래는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끝도 보이지 않았다.
"진짜 신기하다! 그치 그치?"
에슈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시몬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드워프들의 왕국, '그랜드포지'다.
과거에는 수많은 무구들이 탄생한 전설적인 장소였고, 현재에도 전체 병장기 물동량의 70%, 금속제품의 80%를 연합에 공급하며, 값비싸고 뛰어난 아티팩트들이 만들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드워프들의 왕국이라고 흔히 불리지만, 그랜드포지는 4대 왕국에서 중립 포지션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이런저런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왕 대신 '시장'이 우두머리인 도시국가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물론 세습이 이어지는 등 사실상의 왕국에 가깝지만 말이다.
'역시 책이랑 눈으로 직접 보는 거랑은 다르구나.'
시몬은 드워프 왕국에 가본다는 사실에 흥분한 나머지, 이곳에 관한 공부를 밤새워 다 해온 상태였다.
"하, 학생 여러분! 멀리 나가시면 안 돼요!"
"모이세요!"
활력 넘치는 10대들이 저마다 뛰어다니며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조교들은 고생하며 말리는 중이었다.
그들이 흥분으로 날뛰는 학생들을 잡아 올 즈음.
"누가 오는데?"
앞에서 한 무리의 드워프들이 이리로 오고 있었다.
"허허허허! 어서들 오시오!"
이 더운 도시에 플레이트 아머에 장창을 든 드워프 병사들이 걸음을 멈췄다. 그 사이로 딱 봐도 좋은 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걸어 나왔다.
"나는 그랜드포지를 통치하고 있는, 윌카르트 솔베인이라고 하오!"
상당히 유창한 대륙어였다.
아론도 모두를 대표해 앞으로 나아갔다.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윌카르트 시장님."
"어서 오시오! 아론 교수!"
두 사람이 가볍게 악수하며 미소 지었다. 아론이 키가 커서 드워프인 윌카르트가 팔을 머리 위로 쭉 뻗어야 했다.
"그리고 여기는 내 아들...... 음?"
윌카르트 시장이 주위를 휙휙 둘러보았다.
"참 이상하게도 생겼네."
시몬은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웬 땅딸막한 소년 드워프가 실실대며 웃고 있었다.
"키만 멀대같이 크지 근골이 허약해. 몸이 너무 길고 가늘어."
그가 슬쩍 시몬의 손을 들어 올렸다.
"이렇게 얇은 손목으로 망치는 제대로 내려칠 수 있나? 저 비리비리한 다리로 발풀무는 밟을 수는 있고?"
"라울!"
윌카르트 시장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라울이 칫 하고 혀를 차더니, 이내 종종걸음으로 아버지에게 돌아갔다.
"손님들 앞에서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하지 않았느냐!"
"아! 땅 위에서 온 것들 웃기게 생겼잖아요!"
"이놈이!"
윌카르트가 아들 머리를 쥐어박았다. 땅이 울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이었는데, 시몬은 이거 아들 잡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입을 벌렸다.
하지만 라울도 그냥 평범하게 꿀밤 맞은 아들처럼 멀쩡히 툴툴댔다. 드워프들은 상당한 근력과 맷집을 가지고 있다는 게 사실인 것 같았다.
"너는 이 아비의 뒤를 이어 그랜드포지를 통치해야 한다! 이리 무게감이 없고 가벼워서야!"
"왕좌에 앉아서 까닥까닥 손가락질이나 하고, 인간들 언어 억양 연습하는 거 전혀 재미없거든요,"
라울은 그렇게 내뱉고는 후다닥 사라졌다. 시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저놈 저. 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미스테리한 종족인 드워프들을 보고 긴장했던 학생들은 긴장이 풀렸는지 슬쩍 미소를 지었다.
험험!
시장이 요란한 기침을 하며 등을 돌렸다.
"그럼 갑시다! 내 직접 안내해 주겠소!"
"예, 영광입니다."
시장과 아론이 앞장서서 걸어갔고, 그 뒤를 조교들이, 마지막으로는 학생이 시끌벅적하게 뒤따랐다.
이내 소환학 수석조교가 학생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 여러분! 잠깐 저 좀 주목해 주세요."
그러나 학생들은 그랜드포지의 놀라운 풍경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수석조교가 '크흡' 하고 울상을 지었다.
'우리 애기들 이제 3학년 다 됐다고 말도 안 듣는 거 봐.'
막 학교에 입학한 신입생 시절부터 학생들을 지켜봐 왔던 그녀였다. 삐악삐악 병아리처럼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사소한 것 하나하나 물어보던 시절이 그리웠다.
"애들아."
그때 로레인이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수석조교 선생님께서 할 말 있으시대."
그제야 학생들이 말을 멈추고 수석조교를 보았다. 수석조교는 잠깐 감격의 눈으로 로레인을 향해 살짝 감사의 인사를 한 뒤, 얼른 입을 열었다.
"방금 출발한 텔레포트 마법진에서 작업장으로 가는 루트를 잘 외워두는 게 좋을 거예요. 저희가 없어도 여러분 스스로 오갈 수 있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중요한 점 하나."
그녀가 검지를 세웠다.
"그랜드포지는 연합법이 적용되지 않는 지역이에요. 즉, 여러분이 이곳에서 저지른 잘못은 전부 그랜드포지의 법령에 따라 처벌받습니다."
"아."
수석조교의 말에 따르면, 그랜드포지의 법령은 어마어마했다.
물건을 훔치면 교수형, 집에 있는 가임기 여인에게 말을 걸면 손가락 끝을 자르고, 침을 뱉으면 그 자리에서 혓바닥을 자르는 등 고대의 법령 그대로였다.
수석조교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학생들의 걸어가는 동작이 주뼛주뼛해졌다.
"침 삼켜. 침 삼켜."
"'곡' 자를 발음하면 드워프 언어로 욕이라서 혓바닥을 자른다고? 말도 제대로 못 하겠네."
수석조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다른 드워프들이 학생들에게 시비를 걸더라도 모른 척해야 해요. 금품이나 뭔가를 요구하면 그냥 줘버리고 자리를 피하는 게 좋아요. 암흑연합과 키젠의 영향권이 닿지 않은 지역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즉, 경거망동하지 말고 최대한 몸을 사리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그랜드포지에 오면 몸가짐에 신경 쓸 것. 가급적이면 혼자서 다니지 말고 조별로 다니거나 최소 2~3명이서 움직일 것. 명심해 주세요."
학생들은 수석조교의 이야기를 꼼꼼히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그때 창을 든 드워프 경비병 한 명이 헐레벌떡 달려와, 윌카르트 시장에게 속닥거리며 귓속말로 보고했다.
"시장님! 라울 도련님의 발명품이 장비공장에서 폭발을......."
"뭐야?"
윌카르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아들 라울은 어느샌가 사라진 뒤였다.
그가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뒷목을 붙잡았다.
"내, 내, 내 이놈이!"
"아무래도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시장이 미안한 표정으로 아론을 바라보았다.
"아, 이거 정말로 미안하오."
"괜찮습니다. 시장님께서 여기까지 마중 나와주신 것만으로도 큰 영광입니다."
"근위대장이 이쪽으로 와서 나 대신 안내할 텐데 곧 도착할 거요. 아."
시장이 앞을 바라보았다. 아론의 시선도 앞으로 향했다.
한 무리의 언데드 병사들과 함께 누군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마침 오는군. 먼저 가보겠소."
시몬도 앞을 응시했다.
그랜드포지 시장의 경비 총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근위대장.
가장 최측근이어야 할 그는 놀랍게도 드워프가 아니었다.
'인간?'
그는 어깨까지 닿을 정도로 길고 치렁치렁한 장발에, 인중과 턱이 말끔한 수염으로 덮인 인간 남자였다.
"키젠의 아론 데이아 교수님 되십니까."
"그렇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근위대장 게오르그입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게오르그는 본래 암흑연합에서 활동하던 네크로맨서였으나, 그 뛰어난 무용이 윌카르트의 귀에 들어가 이곳의 경비책임자가 되었다고 한다.
게오르그가 하품을 한번 하고는 학생들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
"드워프들 비위 맞춰주는 게 어렵다니까."
그는 꽤 서글서글하고 친근한 성격이었다.
아론은 물론, 학생들과도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에슈로부터 키젠 학생들이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듣게 됐다.
"뭐? 새로운 데스나이트를 제작하러 온 거라고?"
그가 웃었다.
"이거 흥미롭군. 내 주력도 데스나이트야. 데스나이트가 없었으면 이 자리까지 오르지 못했겠지."
그 말을 들은 학생들의 눈이 하나같이 반짝였다. 에슈가 즉각 물었다.
"호, 혹시 보여주실 수 있나요?"
그가 손바닥을 펼쳤다.
"못할 거 뭐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