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43화
시몬은 즉각 언데드 다이브를 종료한 뒤, 덮개를 열고 밖으로 나왔다.
잔뜩 긴장한 표정의 로레인과, 그 너머로 한 드워프가 보인다.
다른 드워프들처럼 키가 작고 몸통이 굵직굵직했지만, 드워프의 상징이자 명예인 '수염' 없이 깔끔한 턱이 보였다.
'그랜드포지 시장의 아들!'
라울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한다.
그 드워프가 입꼬리를 희끄무레하게 올린 채 다가오고 있었다.
"이 시간까지 연구실을 사용하다니 으음- 너희 분명 다이브 장치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
로레인이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금방 마무리하고 갈게."
"마무리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이 사실을 나, 라울에게 들켰다는 게 중요한 거지!"
어린 드워프가 눈썹을 위아래로 꿈틀꿈틀 움직였다.
"이 늦은 시간에, 너희 둘만 그랜드포지까지 넘어와서 이런 짓을 한 거. 어른들이 알게 되면 엄청 혼나지 않을까?"
"시장님께 이야기할 생각이니?"
"아니."
라울이 손끝을 시몬과 로레인을 향해 돌리며 말했다.
"너희 교수한테 말해야지. 그게 직방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아빠는 손님들한테 영 관대해서."
"너......!"
"알았어, 알았어."
그때 수건으로 젖은 몸을 닦고 있던 시몬이 픽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야?"
"시몬!"
"저쪽이 더 말이 통하네!"
손뼉을 짝! 친 라울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내가 원하는 건 말이야-"
꿀꺽.
로레인이 침을 삼켰고, 시몬은 태연한 얼굴로 젖은 머리를 닦으며 기다렸다.
이내 걸음을 멈춘 라울이 눈을 반짝이며 소리쳤다.
"지루한 작업 따윈 때려치우고, 지금 당장! 이 몸이랑 놀아줘야겠다!"
* * *
시몬과 로레인은 라울을 따라 그랜드포지의 중심가를 걸어가고 있었다.
마침 이쪽도 퇴근 시간이었던 건지, 어딜 봐도 드워프들이 보였다. 주점에 앉아서 거품 넘치는 흑맥주잔을 부딪히고 있었는데 광부, 대장장이, 연구자 등 온갖 직군이 뒤엉켜 놀고 있었다.
'기분이 이상하네.'
평범한 사람은 생에 한번 볼까 말까 한 신비의 종족이라는데, 이렇게 주점에 우르르 몰려들어 술주정을 부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다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는 드워프들의 솜씨로 조명이 상당히 화려했다. 그리고 주변에는 온통 주점이었는데, 드워프들이 물보다 술을 더 많이 마신다는 이야기는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오, 시장 아들!"
"차세대 시장! 인간 친구들을 데리고 어디 가시는감?"
몇몇 드워프들이 말을 걸어왔다. 앞장서서 걷고 있던 라울이 울컥한 표정으로 외쳤다.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나는 라울이야!"
그가 팔을 휙 휘둘렀다.
"그리고 시장 자리 따위, 줘도 안 가질 거고!"
"하하하하! 사춘기 때는 다 그렇게들 말하지!"
"자아! 잔을 들자고! 우리 미래의 시장을 위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드워프들이 잔을 세웠다.
건배-!
딴짓을 하다가도, 주먹다짐을 하거나 술에 수염이 젖어서 박박 닦는 중에도, 건배사가 등장하니 드워프들이 무조건적으로 잔을 들어 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멀리 있던 드워프들도 그 모습을 보고는 건배해서, 파도타기 응원처럼 아주 멀리까지 건배가 이어진다.
흥 하고 콧방귀를 뀐 라울이 옆을 가리켰다.
"술주정뱅이들은 내버려 둬. 우린 저기부터 들어가자!"
시몬이 뒤따르려는데, 로레인의 시몬의 소매를 살짝 붙잡았다.
"시몬, 그랜드포지는 치외법권이야. 조교 선생님 말씀 잊었어?"
그녀가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시몬이 말했다.
"라울은 딴생각을 품고 있는 것 같진 않아. 우리와 친구가 되고 싶은가 봐."
먼저 술집 안으로 들어가서 손을 휘휘 흔들고 있는 라울을 보며 시몬도 손을 흔들어주었다.
"드워프 주민들도 선량해 보여. 혹시나 시비가 걸릴 것 같으면 바로 빠져나가자. 우리 실력이면 충분해."
어떤 말썽에 휘말린다고 해도, 실력이 뒷받침되는 자신감이 있었다.
사실상 이런 야시장 거리에서 시몬과 로레인을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라울을 바람맞히면, 정말로 아론에게 일러바칠지도 모른다.
로레인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민하다가 이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좋아. 따라오겠다고 한 건 나였으니까."
기왕 교칙을 어기고 여기까지 따라온 거, 그녀도 각오를 다지고 주점으로 들어갔다.
와하하하하하!
커다란 웃음소리가 튀어나온다. 드워프들이 오래된 나무 바닥 위에 서서 맥주잔을 든 채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앞의 구경거리에 몰두하고 있었다.
"잘한다!"
"더 빨리!"
시몬 일행도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쭉 내밀었다. 저 앞에 드워프 두 명이 양손에 공구를 든 채 뭔가를 조립하고 있었다.
일종의 게임을 하는 것 같았는데, 고장 난 보일러 두 개를 들여다 놓고 먼저 고치는 쪽이 승리인 것 같았다.
"멍청한 놈! 반대쪽 나사부터 조여야지! 수평이 안 맞잖아!"
"그렇게 하면 연기가 배관으로 빠져나가겠냐! 하중을 생각해!"
사방에서 드워프들이 시뻘게진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훈수를 두고 있었다. 이런 것 또한 그랜드포지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었기에 시몬은 눈을 빛냈다.
바로 옆에서는 라울이 주점주인에게 술을 요구하고 있었다.
"술! 우리도 술 줘요!"
"어디 보자, 어린 도련님과 교복 입은 인간 아이들은 오렌지 주스 쪽이 더 어울리지."
"아저씨! 나 체면 좀 세워달라니까!"
마실 건 아무래도 좋다. 시몬은 어느새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처음엔 저게 뭔가 싶었는데, 보다 보니 은근히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곳곳에 나사가 핑핑 날아다니고 연기가 치솟는다. 오른쪽 드워프는 작업이 막혔는지, 잠시 다른 관중들의 훈수들을 듣고 있었고, 왼쪽 드워프는 뒤에서 뭐라고 하든 고집스럽게 자기 작업에 열중했다.
바텐더 앞 테이블에는 동전들이 산처럼 쌓여가는 중이었다. 드워프들이 누구에게 얼마! 하면서 돈을 실시간으로 베팅하고 있었다.
"나도 걸어도 돼요?"
시몬이 빙그레 웃으며 1골드짜리 동전을 꺼냈다. 바텐더가 끌끌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이자, 시몬은 1골드를 왼쪽 드워프에게 베팅하고는 달려갔다.
"시, 시몬? 같이 가!"
옆에 있던 로레인은 살짝 당황했다. 이렇게 새로운 장소에서 바로 적응하고 즐기는 시몬의 모습이 조금은 새롭게 느껴졌다.
티잉-!
그때 보일러에 꽂혀있던 나사 하나가 날아갔다. 그것은 정확히 로레인에게 떨어졌고, 그녀가 손을 뻗어 안전하게 낚아챘다.
"베럴리!"
"베럴리다!"
베럴리! 베럴리! 베럴리!
로레인이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마침 주스를 들고 다가온 라울이 설명했다.
"결투 중에 튕겨 나오는 부품 따위를 맞거나 잡은 사람은 베럴리라고 해. 잠깐 동안 조수가 돼서 작업을 도울 수 있어."
가라 인간! 가서 도와줘!
술에 취한 드워프들이 온갖 언어를 섞어 말하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손뼉을 치며 그녀를 부추기기도 했다.
로레인은 망설이는 눈치였지만, 시몬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는 이내 흡 숨을 들이마시며 무대로 진입했다.
오른쪽 드워프가 말했다.
"고맙다, 인간. 내가 말하는 거 손에 쥐여줘."
"저는 부품의 상세한 이름은 모르니까 모양으로 말씀해 주세요."
"똘똘한데? 그렇게 하지."
그렇게 조수 로레인의 활약이 시작됐다. 준비된 비품과 장비를 척척 적절하게 조달했고, 나중에는 직접 관중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는 조언까지 했다. 시몬은 돈을 건 왼쪽 드워프를 독려했지만 이미 그의 멘탈은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로요크의 승리다!"
이예에에에에에!
로레인이 돕던 드워프의 승리였다. 모두가 팔을 번쩍 들며 환호했고, 로레인도 작게 손뼉을 쳤다.
드워프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내밀었다.
"베럴리가 좋았던 탓이지."
"과찬이세요."
로레인은 그와 악수한 뒤 조수값으로 20실버를 받았다.
시몬이 다가왔다.
"대단한데, 1골드 잃었어."
"미안하다고는 안 할게."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며 푸훗 하고 웃었다.
이어서 라울을 따라 그랜드포지 주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주점은 무조건 하나 이상의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기에 골라 들어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리고 수업 초기에 들었던 경고와는 달리 드워프들은 모두 친절하고 호탕했으며, 심지어 인간인 그들을 섬세하게 챙겨주었다.
어느새 로레인도 마음을 열고 즐기고 있었다. 심지어 노래가 나오는 주점에서는 로레인도 가볍게 어깨를 들썩이며 리듬을 탔는데, 막 화장실에서 나오던 시몬이 그 모습을 보고는 입을 벌렸다.
'......로레인이 춤을 춘다고?'
그러다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로레인은 부끄러웠는지 동작을 멈추고 다가와 시몬의 이마에 딱밤을 먹였다.
그렇게 여러 주점들을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초대형 경기장. 라울이 설명했다.
"여기가 드워프들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경기가 열리는 곳이야!"
시몬이 쓰게 웃었다.
"......'운동경기'라고?"
쿠르르르르르르!
용암과 쇳물이 들끓는 이 경기장에, 커다란 쇠구슬이 트랙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좌우 끝에는 드워프가 한 명씩 서 있었는데, 각종 개성 넘치는 발명품이나 장치들을 작동시켜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구슬을 적의 진형을 향해 보내려 하고 있었다.
트랙을 움직여서 구슬을 다른 방향으로 흘리는 건 기본 중의 기본. 스프링으로 구슬을 띄워 반대쪽 트랙으로 한 번에 날리거나 그물, 빙판, 끈적이 등 안 쓰이는 물건이 없을 정도였다.
와하하하하하!
껄껄껄껄껄!
경기는 막바지. 속도가 붙은 쇠구슬이 경기장 밖에 서 있는 드워프에게 굴러갔다. 드워프가 트랙을 움직여 방향을 바꾸려고 했지만, 가속이 붙은 쇠구슬이 그대로 통과. 드워프의 몸에 부딪히고 골인했다.
-루헤벨 선수! 득점!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뜨거운 함성이 쏟아졌다. 시몬이 놀라서 물었다.
"저분 괜찮은 거 맞아?"
"음, 드워프는 튼튼해서 저 정도로 안 죽어."
라울이 말했다. 마침 그 쇠구슬에 깔렸던 드워프가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바닥을 탕! 치며 분해하고 있었다.
"자! 이제 돌아갈까?"
라울은 돌아가면서 시몬과 로레인에게 바깥 이야기를 해달라고 무척 졸라댔다.
두 사람은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했고 라울의 눈은 점점 더 흥미로 반짝였다.
돌아가는 길 동안만 이야기를 듣는 것도 아쉬워서, 라울은 걸음을 멈추거나 잠시 어디 앉아 쉬어가면서도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
텔레포트 마법진 앞, 라울이 눈을 빛냈다.
"세상은 넓어! 나도 더 많은 곳을 모험하고 싶어!"
시몬과 로레인도 미소 지었다.
"다음엔 같이 밖에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네."
"그러게!"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한 두 사람이 텔레포트 마법진을 밟았다. 라울이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
이내 붕 뜨는 감각과 함께 로크섬에 도착했다.
"후우."
로레인이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붙잡으며, 잠시 별이 뜬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재미있었어."
"그렇담 다행이네."
"라울을 따라 그랜드포지를 둘러보면서 느낀 게 하나 있어."
로레인이 시몬의 눈을 바라보았다.
"드워프의 세계는 무서운 곳이고, 드워프들은 험상궂은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어. 하지만 남이 알려준 틀 안에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어. 이번에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드워프의 세계가 이렇게 멋진 곳이란 걸 평생 모르고 살았을 거야."
"응."
"그렇다고 해서-"
로레인이 시몬의 이마를 약한 힘으로 눌렀다.
"오늘처럼 무작정 교칙을 어기란 소리는 아냐."
"하하하. 알았어."
두 사람은 사이좋게 웃으며 시몬의 골렘보드를 타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 * *
시몬은 데스나이트 제작에 더더욱 집중했다. 라울은 아론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제작도를 보니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이런 걸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 거야?
라울이 놀러 왔다.
이 장소와 장비들을 대여해 준 그랜드포지의 시장 아들이었기에, 학생들은 물론 아론이나 조교들까지 그를 쫓아내지 못했다.
가장 집중해야 할 시기, 쉴 새 없이 수다를 떨며 돌아다니는 라울을 좋아하는 학생은 없었지만 시몬은 달랐다.
-흑마법은 잘 모르겠지만, 공학적으로 보면 우회로를 만드는 게 현명해 보이는데.
-그거 좋은 아이디어네.
라울의 식견과 시야는 시몬에게 도움이 되었다. 모식도를 수정한 시몬이 다시 실험관으로 들어가 다이브했고, 라울은 노트를 들고 소통하며 이런저런 보조를 맞춰주었다.
다른 학생들도 시몬이 라울을 붙들어주는 쪽이 덜 귀찮았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 대가로 라울이 원하는 건 바깥 세계의 모험 이야기. 시몬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라울의 눈이 커져갔다.
-블루하버에서 시작해서 칼로스 북부라니! 넌 정말 안 가본 곳이 없구나!
그렇게 시간이 지나 7박 8일 중에서 마지막 날을 딱 하루 앞둔 오늘.
"이제 내일이다."
아론이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은 스무명가량의 학생들을 보며 선언했다.
"지금까지 잘했건 못했건, 내일 타락형 데스나이트가 완성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준비는 됐나?"
네!
학생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마지막 작업.
그리고 이 중에서 데스나이트를 가지는 건 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는 사실도, 학생들은 직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