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46화
데스나이트의 활약으로, 결국 연구실에 진입한 드워프 경비병 전원을 쓰러트리는 데 성공했다.
"대단해!"
신이 난 라울이 방방 뛰었다.
"진짜 데스나이트라니! 이 정도라면 시의회 경비병력은 어렵지 않게 쓰러트릴 수 있을 거야! 같은 데스나이트를 쓰는 게오르그 경과 직접 부딪히지만 않는다면 확실히 승산이 있어!"
시몬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으로 몸에 묻은 액체를 닦고 있었다.
덤덤한 척했지만, 사실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내, 내가 이런 걸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네.'
데스나이트의 구조 설계는 완벽해 보인다. 관절도 제대로 움직이고, 특히 발차기를 날릴 때의 동작은 상당히 가볍고 경쾌해 보였다.
다크홀의 상태도 정상적인지, 다크오러도 제대로 흘러나오는 모습이다. 몸을 보호할 때나 검을 꺼낼 때 확실히 오러를 사용해 주고 있다.
다만 전투를 지켜보고 있으려니, 몇 가지 특이한 광경이 보였다.
'우선 다크오러의 색부터가 이질적이네.'
데스나이트들의 다크오러는 주황색 혹은 검은색 계통이 일반적이지만 이 데스나이트의 경우는 적색과 분홍색 사이에 위치한 로즈 계통의 색상에 가까웠다.
그리고 주먹에 오러를 담아 내지르거나 검을 휘두르거나 할 때, 장미가 개화하며 터지는 듯한 임팩트도 있었다.
이건 아마 생전에 힘을 다루던 습관이나 특질에 가까운 것 같았다. 트레이드 마크 같은 느낌.
저벅. 저벅.
그때 데스나이트가 시몬을 향해 다가왔다.
"왜 그래?"
시몬이 눈을 깜빡이며 데스나이트를 보았다.
토옥.
코앞까지 다가온 데스나이트가 시몬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살짝 맞댔다. 데스나이트의 키가 시몬보다 작아서 그런지 저쪽에서 까치발을 세워야 했다. 이내 뒤로 물러나 한쪽 무릎을 꿇고 경배의 자세를 취했다.
'주인으로 인정한다는 건가.'
시몬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어나,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으니 준비하자."
끄덕.
데스나이트가 경건한 자세로 일어났다.
-?
그러다 바닥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보았다. 휑하다고 느꼈는지 얼른 제 몸을 팔로 감싸 안는 자세를 취했다.
"왜 그래?"
시몬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데스나이트는 깜짝 놀라며 테이블 뒤로 샥 숨어버렸다.
'언데드가 부끄러워하는 건...... 아닐 테고, 휑하게 바뀐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 건가?'
어느 쪽이건 문제없다.
데스나이트가 완성되면 입힐 갑옷도 준비해 두었으니까.
"라울! 마지막 조율만 끝내고 가도 되지?"
"그럼!"
라울은 쓰러진 드워프들이 혹시나 눈을 뜰까 봐 한 곳으로 옮겨서 밧줄이나 수갑 따위로 모조리 묶어두고 있었다.
뒤처리는 그에게 맡기기로 하고, 시몬은 아공간을 연 뒤 그 안에서 갑옷을 꺼냈다.
테이블에 숨어있던 데스나이트는 자신이 입을 거라는 걸 아는지 관심을 보였다. 둥그런 안광이 더더욱 밝게 빛났다.
"잠깐만 기다려."
보통의 갑옷이 아니다. 바닐라 측에서 맞춤 제작해 준 전용 '데드아머'다.
데스나이트의 신체에 완전히 종속되고 칠흑으로 연동도 된다. 손상되더라도 칠흑으로 자가회복기능까지.
시몬도 예전에 아론의 수업에서 '데드아머'를 제작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갑옷의 마법진을 작동시키고 펼쳐서 데스나이트에게 입힐 수 있었다.
"잘 어울리는데!"
시몬이 뒤로 두 걸음 물러나 보며 감탄했다.
전체적으로 데스나이트의 몸처럼 새하얀 백색에 은빛 광택이 도는 갑주였다.
부츠부터 건틀릿까지 깔끔하고 심플한 디자인이었고, 특히 갑옷과 갑옷 사이의 이음새에서 다크오러의 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게 인상적이었다. 남자의 로망 그 자체다.
이렇게 보면 언데드가 아니라 백은의 갑옷을 입은 여기사 같다.
데스나이트도 마음에 드는지 제 몸을 휘휘 돌아보며 좋아하는 눈치다. 그러다 또 자기 멋대로 다가와 자신의 이마를 시몬의 이마에 툭 하고 가볍게 부딪힌다.
감사, 혹은 긍정이나 경의를 표하는 동작 같았다.
"좋아. 이제 손을 한번 움직여 봐."
끼릭 끼릭.
데스나이트가 주위를 걸어 다니면서 건틀릿을 움직였다. 제 손가락처럼 제대로 움직이는데 전용무구다운 착용감이 느껴진다.
"다음은 오러."
스스스스스-!
그 즉시 갑주 전체에서 로즈색 오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데스나이트는 전신에서 뿜어내는 다크오러를 주력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갑옷이 방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오로지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는 데드아머 계열 갑옷만 입을 수 있다.
데스나이트는 건틀릿 끝에 다크오러를 모아 주먹을 휘둘러 보기도 했다. 곳곳에 아름다운 장미 문양이 일어났다가 흩어졌다.
"마지막으로 검."
키이이이이이잉!
데스나이트가 건틀릿으로 허공을 움켜쥐고 잡아당기자 맹렬한 섬광과 함께 오러블레이드가 뽑혀 나왔다. 가볍게 허공에 휘둘러보는데 불편한 곳은 없어 보인다.
"좋아, 수고했어. 잠깐 쉬고 있어."
데스나이트가 오러블레이드를 거두어들였고, 시몬이 고개를 들였다.
"다 끝났어. 라울! 이제 네 아버지를 구할 계획을 짜보자!"
"지금 가!"
기다렸다는 듯 라울이 달려와 지도를 펼쳤다.
"시장님이 어디 잡혀 계시는지 알아?"
"당연하지! 아버지가 시의회 건물에 끌려가시는 걸 봤어! 건물째로 봉쇄해서 감옥으로 쓸 생각인 것 같은데, 정문째로 돌입하면 바로 들킬 테니까 우회하는 루트로......."
시몬과 라울이 앞으로의 행적을 논의했다. 회의가 길어지는 동안 두 손을 포갠 채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데스나이트가 고개를 돌렸다.
-.......
근처에 밧줄에 속박당한 채 피를 흘리고 있는 드워프 하나가 보였다. 아까 오러블레이드에 베인 상처에서 피가 멎지 않고 있었다.
데스나이트가 그리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두 손바닥을 모아쥔 다음, 앞으로 내밀었다.
우웅-
건틀릿 너머로 칠흑이 원형의 형태로 일렁였고, 그것을 드워프의 상처 앞에 가져다 대었다.
끄윽!
드워프가 몸부림치며 격렬히 고갯짓했다. 시몬이 그 모습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서 말렸다.
"아, 안 돼! 데스나이트. 이제 네 힘으로는 살아 있는 사람을 회복시킬 수 없어!"
데스나이트도 화들짝 놀랐는지 얼른 두 팔을 내렸다. 드워프의 상처가 오히려 더 심해진 모습이다.
'생전의 습관 때문에 힐링을 쓰려고 한 건가.'
시몬이 다가가 심해진 상처에 붕대를 꺼내 매어주고 포션을 부었다.
"전투라면 몰라도, 부상자에게 그러면 안 돼."
데스나이트가 고개를 푹 숙였다.
꽤 시무룩한 반응이다.
"네 데스나이트. 너무 말괄량이 같은 거 아냐?"
라울이 키득댔다.
"게오르그의 데스나이트는 그냥 감정 없는 살인 기계 같은 느낌이던데."
"으음."
원래는 그런 느낌이 기본이다. 최소 100년 이상이 지난 시체가 데스나이트가 되면, 습관 같은 비교적 간단한 행동양식은 대부분 사라져야 한다.
이 데스나이트는 확실히 뭔가 특별하긴 했다.
과거에 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시몬은 그 정체가 궁금했다.
* * *
그랜드포지 시장 탈환 작전이 시작되었다.
라울과 움직일 대략적인 방향을 확정한 시몬은, 우선 에이션트 언데드 '프린스'를 이곳으로 즉각 소환했다.
-무슨 일이야? 시몬! 가출한 라미아 찾느라 바빠죽겠는데.
-미안하지만 이쪽 일부터 도와줘. 여기도 급해.
현재 배신의 제7군단장은 피어를 입은 '피온'의 모습으로 대륙민들에게 알려져 있다.
피어를 입으면 바로 시몬이 배신의 군단장이라는 사실을 들켜 버리겠지만, 프린스는 아직 그 모습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쓰러지면 다시 본래의 좀비로 돌아와 버려서 흔적을 남기지도 않으니, 군단의 힘을 쓸 거라면 프린스에게 기대는 게 최선이었다.
물론 군단의 힘 자체를 아예 쓰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상황이 급박하니 어쩔 수 없다.
시몬은 프린스에게 머리까지 덮는 로브를 입힌 뒤, 지도를 쥐여주고 깃펜으로 표시한 지점을 가리켰다.
-이쪽, 이쪽. 이쪽이야. 라울이 공장이나 시설을 망가뜨려도 상관없대. 최대한 요란하게 박살 내서 다른 경비병들의 시선을 끌어줘.
-조오아! 그사이에 시몬, 네가 적진으로 침투한다 이거지? 군단의 히든카드인 나한테 맡기시라!
프린스가 떠나고 얼마 안 가, 멀리서 쿵-! 쿵-! 하고 폭발음이 들렸다.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이야, 라울. 가자!"
두 사람은 하수도를 통해 시장이 감금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앙 의회건물로 진입했다.
원래는 사람들이 한참 일하는 중이여야 하지만,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이쪽!"
라울의 길 안내는 탁월했다. 그렇게 최단거리로 시장이 잡혀 있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적이다!"
"저기 시장 아들이오! 붙잡으시오!"
아무리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도 전투 없이 무혈입성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쭉 깔려 있던 열댓 명의 드워프 경비병들이 몰려들었다.
'이리로 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나.'
평소라면 경비가 없어야 할 장소고,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쉬운 곳으로 왔는데 병사들이 빈틈없이 지키고 있었다.
물론 이럴 때 싸우려고 데스나이트를 완성한 거다.
"부탁해, 데스나이트."
시몬의 말에 새로운 하얀 갑주의 데스나이트가 지면을 짓밟고 섬광처럼 쇄도했다.
"한 놈 먼저 온다!"
"확실하게 잡고 다음 놈들도......!"
스릉!
승!
스응!
다음은 없었다.
데스나이트가 번개처럼 적진을 헤집으며 돌파했고,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본 드워프들의 몸에 장미가 터지는 효과가 일어났다.
드워프들이 동시에 피를 뿜으며 공중으로 날아오르거나 바닥을 나뒹굴었다.
"뭐, 뭐였지 지금?"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소!"
"......."
뒤쪽에서 경비병들이 무력화되는 모습을 구경하듯 바라보던 한 무리의 드워프들이 설렁설렁 걸어왔다. 이들은 하나같이 청색 갑주를 입고 특수한 장비를 짊어지고 있었다.
"저거 데스나이트요."
안대를 쓴 드워프 하나가 말했다.
"그 근위대장 놈이 쓰는 것과 같은 소환수지."
"저, 정말인가?"
안대를 쓴 드워프가 등 뒤에서 무기를 꺼내 들었다.
손잡이가 길어지고 망치가 철컥거리며 펼쳐졌다. 망치 끝에는 파직거리는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전력을 다해야 할 거요."
그가 전투에 뛰어들었다.
라울이 그 모습을 보고는 말했다.
"제길! 무쇠 용병단이야!"
"응?"
"그랜드포지 최강의 용병단 중 하나라고! 시의회놈들이 고용한 게 틀림없어!"
크하하하!
망치가 든 드워프 용병이 바닥을 딛고 공중으로 치솟았다. 일반 경비병들을 상대하고 있던 데스나이트가 한발 늦게 그 모습을 보고는 검을 치켜들었다.
쩌어어어어어어엉!
데스나이트가 딛고 있는 바닥이 움푹 파였다. 용병이 덥수룩한 수염 속에서 입을 벌렸다.
"언데드 따위! 부서져라!"
카가가각!
오러블레이드와 망치가 팽팽하게 부딪혔다.
시몬은 머리를 긁적였다.
"최강의 용병단이고 뭐고-"
데스나이트가 비어 있는 한 손을 주먹 쥐고는, 가볍게 망치를 후려쳤다.
쩌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망치가 산산조각 나버리고, 드워프 용병의 몸이 짐짝처럼 날아갔다.
저 멀리 벽에 붙어 있던 초상화가 날아온 드워프에게 부딪혀 박살 나고, 벽에는 커다란 크레이터가 생겼다. 후두둑 소리와 함께 벽이 장난감 블록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들고 있는 건 데스나이트야. 순수한 스펙차이가 나지."
스릉! 스르릉!
데스나이트가 검을 휘두르자 허공에 연달아 로즈색 검광이 일어났다. 죽음의 장미들이 피어나고, 달려들던 열댓 명의 드워프들이 동시에 피를 뿌리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냥 검술만 뛰어난 게 아니다.
압도적인 힘.
데스나이트는 '강함' 그 자체로 정의할 수 있는 언데드다.
"크윽!"
뒤쪽의 용병단 드워프가 철컥! 소리와 함께 기관총을 꺼냈다. 바닥에 고정하는 거대한 형태의 공학장비였다.
이내 마정석 엔진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여섯 개의 포문이 회전하며 탄환을 쏘아 보내기 시작했다.
"기사의 시대는 지났다! 천박한 검 따위로!"
두두두두두두두두!
데스나이트는 제자리에서 한 손으로 검을 고쳐잡고 휘두르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드워프들이 일제히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검으로!'
'베면서 다가오고 있다고?'
로즈색 검광이 허공을 무수히 수놓는다.
분당 수백 발을 쏟아내는 마력 기관총이지만 단 한 발도 닿지 않는다. 탄환을 베고 튕겨내면서 저벅저벅 데스나이트가 다가온다.
팅-
티잉-
심지어 검으로 총알의 방향을 의도해서 튕겨낸다. 갑자기 가만히 있던 드워프 경비병들이 하나둘 총에 맞아 피를 뿌리며 쓰러지기 시작한다.
"도탄이다!"
"멈춰! 아군이 먼저 죽겠어! 멈추라니까!"
그러나 데스나이트가 검을 휘두르며 다가오는 모습에 공포에 질린 드워프 용병은 탄환을 쏟아붓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마력 기관총 몸에 금이 가듯 실선이 그어지더니.
쩌적.
쩍.
쩍.
파이 갈라지듯 다섯 갈래로 찢어졌다.
"이건 말이 안......!"
슈우우우우욱!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데스나이트가 오러블레이드를 가슴 앞에 치켜세운 채로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내 뭔가 검으로 허공을 가볍게 한 번 긋자, 드워프들의 몸에 일제히 장미가 터져나가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대......."
라울의 눈에 탄성이 서렸다.
"대단하다!"
숨을 헐떡이며 지켜보던 시몬이 진땀을 흘렸다.
'......아까 말은 멋지게 하긴 했는데.'
데스나이트는 이제 오러블레이드의 형태를 변화시키기도 했다. 창의 형태로 바꿔서 빙빙 돌리며 적을 난자하고 있다.
포탄은 그냥 오러를 두른 채로 맨몸으로 받아내기도 했고, 바닥에 떨어진 방패를 걷어차 포대를 박살내기도 했다.
그야말로 전술병기와도 같은 모습.
'워, 원래 데스나이트가 이 정도로 강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