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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847화 (847/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47화

데스나이트의 전투는 눈이 부셨다. 장밋빛 검광이 허공을 수놓고, 적이 선혈을 뿌리며 쓰러져 간다.

압도적인 힘.

무의 정점.

이래서 사람들이 데스나이트, 데스나이트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윽."

시몬의 상태는 썩 온전치 못했다. 옆에서 데스나이트의 활약을 응원하던 라울이 뒤늦게 시몬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눈치챘다.

"왜 그래 시몬?"

"아니, 아무것도 아냐."

시몬이 애써 웃으며 괜찮은 척했다.

'진짜 꼼짝달싹도 못 하겠네.'

그 유명한 '3대 고위 언데드'답게, 데스나이트는 어마어마한 여력이 소모되는 소환수였다.

술사의 칠흑 소모야 말할 것도 없고, 정신력까지 상당히 갉아먹고 있었다. 데스나이트를 꺼내면 술사의 모든 집중력이 이를 유지하는 데 소모되는 바람에 간단한 마법진 하나 펼치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이거, 대체 몇 티어 소환수인 거야?'

현재 시몬이 동시에 컨트롤할 수 있는 1티어 소환수의 수는 16마리.

그러나 이 데스나이트를 쓰고 있는 도중에는 다른 소환수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시험 삼아 옷 안에 넣어둔 뼈들을 움직이려 했는데 꿈쩍도 안 한다.

'16티어? 아니, 최소가 그렇겠지.'

데스나이트는 가끔 힐끔힐끔 시몬 쪽을 응시하곤 했는데,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데스나이트 쪽에서 시몬에게 여력을 맞추고 있는 것에 가깝고, 사실은 훨씬 더 높은 티어의 언데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묘사하자면, 머리에 커다란 괴물이 들어차서 칠흑이고 사념이고 정신력이고 술사의 여력을 죄다 모조리 빨아먹는 느낌.

꼼짝할 수가 없다. 아직까지 자신의 실력으로는 사용하기 버거운 소환수라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쩌어어어어어엉!

나열한 단점들을 모조리 상회하는 강함.

한 도시국가의 경비병력을 단신으로 무너뜨리고 있는 모습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강할 뿐만 아니라 안정적이고 지속적이기까지 하다.

"조심해, 시몬!"

그때 라울이 소리쳤다.

"저것들은 만만치 않을 거야!"

데스나이트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던 드워프들은 결국 괴물을 풀었다.

쿠웅-! 쿠웅-! 쿠웅-!

대형 공룡 화석 같은 뼈 언데드 두 기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온몸에 마공학 무기들을 잔뜩 실어둔 모습이다.

'네크로맨서의 시대가 맞긴 하네. 드워프들까지 언데드를......!'

절컥!

철컥!

언데드의 몸에 장착된 포문이 일제히 열리고, 온갖 미사일이나 투사체 등이 데스나이트에게 날아왔다.

그것을 태연히 응시하던 데스나이트는 검의 중간 부분을 양손으로 붙잡고 좌우로 벌리는 시늉을 했다.

촤아아아아아아-!

오러블레이드가 양쪽으로 길게 늘어났다.

틀림없는 창의 형태. 그것을 만족스럽게 붙잡은 데스나이트가 몸을 던졌다.

후웅! 후웅! 후웅!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는 동시에 창을 좌우로 빙글빙글 돌리면서 모든 미사일과 투사체들을 막거나 튕겨냈다.

역시 데스나이트에겐 검보다는 창 쪽이 숙련도가 조금 더 높은 듯했다.

절묘하게 스탭을 밟으면서 창을 풍차처럼 회전시키는 모습은 화려함의 극치. 두 팔로 세게 휘두르다가도, 나중에는 손가락 힘만으로 창을 회전시키는 모습은 진기명기에 가까웠다.

쏟아지는 미사일들을 낙엽처럼 모조리 갈라내는 모습을 넋 놓고 감상하고 있는데, 옆에서 라울의 다급한 외침이 귓가를 때렸다.

"이, 이쪽으로도 날아와!"

쏟아지던 미사일들이 방향을 돌려 시몬과 라울을 노리고 있었다.

소환술사의 기본 중의 기본. 소환수보다 소환술사가 먼저 노려지니 주의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모든 집중력이 데스나이트에게 빨려 들어간 상태였다.

'이런!'

시몬이 라울을 감싸고 돌아서는데, 데스나이트가 번개처럼 두 사람의 앞에 나타났다.

이어지는 굉음이 귀를 먹먹하게 만들고, 눈이 아릿한 섬광과 후폭풍이 휘몰아쳤다.

'크으윽......!'

어마어마한 화력. 저 멀리서 드워프 용병들이 '맞았다!', '이겼어!' 하고 좋아하는 외침이 들린다.

시몬은 라울을 감싼 채 고개를 들었다.

휘오오오오오-!

화염과 연기 속에서 데스나이트는 너무나 멀쩡히 제자리에 서 있었다.

이내 뒤를 돌아보며 시몬 쪽을 응시했다. 특유의 둥그스름한 안광이 몇 번 점멸하는 게 보인다.

저벅 저벅.

화염 속에서 데스나이트가 갑옷의 쇳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시몬이 희미하게 웃었다.

"또 그거 하려고?"

투욱.

이번엔 시몬과 데스나이트가 동시에 이마를 맞댔다. 시몬은 연결된 사념으로부터, 데스나이트가 이 의식으로부터 안정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구해줘서 고마워."

끄덕.

데스나이트가 고개를 끄덕인 뒤 드워프들을 돌아보았다.

이내 자욱한 연기가 걷히며, 드워프 용병들은 하나같이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완만하게 둥글었던 데스나이트의 안광이 날카롭게 각진 형태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슈콰악!

이어지는 반격.

데스나이트가 오러스피어를 던져서 대형 언데드의 두개골에 쑤셔 박고는, 몸을 날려 반대쪽 괴물의 몸을 주먹으로 박살 내기 시작했다.

데스나이트의 주먹이 지나가는 곳마다 장미들이 터져 나오며 드워프들이 달아놓은 포대들이 산산조각 난다.

이내 오러를 일으켜 새 창을 만들어 반대쪽 언데드에도 쑤셔 박았다. 두 거체가 기우뚱하더니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부딪혀 무너져 내린다.

"1호기와 2호기 모두 당했소!"

"내 걸작이!"

걸작을 잃고 분노한 드워프들이 해머와 대포 따위를 들고 덤벼들었지만 상대가 될 리 만무했다.

시몬은 데스나이트의 전투를 여유롭게 지켜보았다.

'역시 검보다 긴 무기가 더 익숙한 것 같네.'

시몬은 언제쯤 본인의 무덤에서 발견된 그 '깃발'을 데스나이트에게 줄지 고민하고 있었다.

아론의 말에 따르면, 바로 무구를 주면 언데드가 생전의 기억때문에 혼란에 빠질 수 있으니 최대한 시간을 들인 뒤에 주라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상상황이니까.'

동원할 수 있는 건 모두 동원해야 했다.

모든 드워프들을 정리한 데스나이트가 시몬에게 다가왔다.

"데스나이트, 줄 게 있어 "

시몬은 아공간을 열고는, 문제의 그 깃발을 꺼내 건네주었다.

그것을 붙잡은 데스나이트의 안광이 큼지막하게 확대되었다.

-.......

느낀 게 있는 걸까. 사념으로부터 묘한 감정들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이내 자리에 그것을 붙들고 가만히 있던 데스나이트가 등에 깃발을 매달고는 다가와 시몬의 이마에 다시 한번 제 이마를 툭 부딪쳤다. 감사의 의미 같았다.

"그나저나 이거, 쓸 수 있을까?"

시몬의 물음에 데스나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방금 쓰러트린 공룡 언데드에게 다가간 뒤, 깃발을 들어 언데드의 두개골에 내리쳤다.

우우우웅-!

그러자 쓰러졌던 거대 언데드의 몸이 데스나이트의 오러처럼 로즈색으로 물들었다. 이내 그 거대 언데드들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오오! 뭔데 뭔데?"

라울이 소리쳤다.

"설마 부하로 만든 거야?"

'......데스나이트에 이런 기능은 없는 걸로 아는데.'

아마도 이 데스나이트만의 고유한 기능, 혹은 깃발의 힘이 더해진 덕분인 것 같았다.

저 데스나이트만의 병력을 쓸 수 있는 모양. 물론, 시몬은 데스나이트를 유지하는 것 외에 추가로 여력을 소모하지 않아도 됐다.

처억!

데스나이트가 깃발을 휘두르자 그 방향으로 언데드 두 기가 움직여 문 쪽으로 걸어갔다.

마침 그쪽에는 드워프들이 설치한 함정들이 있었다. 철제화살들이 날아오고 불길이 솟구쳤지만, 두 언데드는 무시하고 계속 걸어갔다. 덕분에 드워프들이 설치한 함정을 보기 좋게 모두 소모시키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시간 절약하겠네."

지름길이 생기자 시몬이 말했다. 라울도 씩 웃으며 앞을 가리켰다.

"바로 가자! 이제 얼마 안 남았어!"

* * *

지름길로 통과한 시몬 일행은 경비병력을 더 만나지 않고 안전하게 나아갔다.

이제 라울이 말한 시장이 유폐된 곳에 다다를 무렵이었다.

'너무 쉬워서 그런지 오히려 불안하네.'

정규병은 거의 없고, 지키고 있는 병력도 용병들이 다수였다. 데스나이트의 적수는 없었다.

쿠데타 첫날이 채 지나지도 않은 시기라 여전히 혼란에 빠져 있는 모습. 밖에 있는 프린스 또한 잘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간혹 병사들이 우르르 밖으로 몰려나가며 적의 공격이니 어쩌니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으니까.

어쨌거나 드디어 중요한 길목에 도착했다.

"여기가 의회장 내 감옥으로 가는 유일한 입구야."

라울이 숨을 헐떡이며 문을 열어젖혔다.

거대한 광장과도 같은 곳이 모습을 드러낸다. 곳곳에 핏자국이 보였는데, 쿠데타 측과 시장 측이 전투를 벌인 흔적이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 태연히 앉아 있는 한 남자.

"키젠에서 들어오는 텔레포트 마법진이 작동됐다더니, 역시 단순한 오작동이 아니었군."

근위대장이자, 그랜드포지의 유일한 인간 일원.

게오르그가 앞을 막고 있었다.

"너였구나, 전 학생회장."

"다시 뵙겠습니다."

시몬도 고개를 움직여 인사했다.

"지금 그랜드포지 전역이 정체불명의 적의 공격을 받고 있어. 아티팩트 공장이 테러당했고, 텔레포트 마법진을 지키던 병사들까지 쓰러졌지. 아마도 네 소행이겠지?"

시몬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게오르그는 거의 확정적인 사실을 말하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소란을 틈타 너는 시장을 구하러 의회건물까지 잠입했을 테고. 괜찮은 양동이야."

게오르그가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라울은 시몬 뒤에 숨어 있었지만 이글거리는 눈빛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게오르그도 그를 보았다.

"이러면 못쓰죠. 라울 도련님. 외세를 끌어들이다니요."

"입 다물어 게오르그! 널 데려온 우리 아버지를 감히 배신해?"

"하하, 시장님께는 미안하게 됐습니다. 저는 조금이라도 승산이 높은 쪽을 선택할 뿐이라서요."

시몬이 입을 열었다.

"왜 쿠데타에 가담한 겁니까? 게오르그 경."

"혹시 알고 있어? 내일 그랜드포지의 시장과 키젠본부 측이 만난다는 거."

게오르그가 손바닥을 펼쳤다.

"이게 시의회에서는 복장이 뒤집힐 만한 사태거든. 쉽게 말하면 시장은 개혁파, 의회는 정통파야. 개혁파인 시장은 이번 일을 계기 삼아 그랜드포지에 키젠을 끌어들이고, 그들의 투자와 지원을 받아 정체된 그랜드포지를 발전시킬 생각이야."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반면 시의회는 그랜드포지와 드워프들의 전통을 중시하지. 키젠의 자금이 풀리고, 그들이 내정을 간섭하기 시작하면 그랜드포지의 전통이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시장은 막강한 힘을 가진 시의회를 견제하기 위해 키젠을 끌어들이려 하고, 시의회는 그것을 막으려 한다.

결국은 자신의 이윤에 관련된 정치문제였다.

"게오르그 경은 네크로맨서인데, 그럼 시장 쪽에 붙어야 하지 않나요?"

"아니지. 말했잖아? 나는 조금이라도 승산이 높을 쪽을 선택할 뿐이라고."

게오르그가 눈을 빛냈다.

"그러니 너도 선택해, 시몬. 쿠데타는 완벽히 성공했어. 나와 저 뒤에 기다리고 있는 병력을 모두 뚫고 시장을 구하는 건 불가능해. 지금이라도 라울 도련님을 넘기고 백기투항해라."

"......!"

라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물론 네 목숨만큼은 보장할게. 의회가 정권을 잡으면 키젠과의 교류가 단절될 테니 바로 돌아가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책임지고 6개월 안에는 돌아가게 해줄......."

"저는."

시몬이 그의 말을 끊으며 묵묵하게 말했다.

"제 운명을 남의 자비 따위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제 운명은 제가 정합니다."

"그거 유감이군."

게오르그가 손끝을 턱에 댔다.

"하지만 뭘 믿고 그러는 거지? 이 그랜드포지에는 드워프의 허가 없이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어."

터벅. 터벅.

그때 시몬과 라울의 뒤에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내 검은 그늘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건 백은색 갑주를 입은 시몬의 데스나이트였다.

"......!"

게오르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러다.

하.

그의 입가에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하하하하!

그 웃음은 이내 커다란 웃음소리로 발전했다.

"아무리 무모함이 젊은이의 특권이라지만 설마, 학교 수업시간에 조립하던 데스나이트를 이제 막 완성시켰고, 그걸 믿고 내 앞에서 뻗대는 거였어?"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심지어 그 멍청한 몽상가의 '타락형 데스나이트' 같은걸?"

아론을 모욕하니 시몬의 표정도 싸늘하게 굳어졌다.

갑자기 두 네크로맨서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에 압도된 라울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증명해 주마, 애송아."

게오르그가 손을 뻗었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는지, 세 개의 마법진이 펼쳐지고 이내 아공간에서 튀어나온 해골이 마법진들을 통과했다.

철컥!

철커덩!

갑옷이 입혀지고 마법진의 수식이 들러붙으며 게오르그의 데스나이트가 작동을 시작한다.

투구로 보이는 횃불 같은 안광이 타오르듯 커졌다.

"프로의 격의 차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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