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49화
드워프 시의회 의장, 하미론의 표정은 싸늘했다.
성큼성큼 의회 건물에 들어온 그의 옆에는 여섯 명의 드워프 의원들이 나열해 있었다. 그 뒤로는 무수한 드워프 병사와 용병들이 완전무장 상태로 뒤따르고 있었다.
하미론은 미역 같은 수염을 짜증스럽게 쓸어내리며 소리쳤다.
"보고하시오!"
"예!"
책임자로 보이는 병사가 고개를 숙였다.
"의회 본관, 아티팩트 공장, 그리고 텔레포트 마법진까지 공격받았습니다. 적의 수는 한 명으로 추정됩니다."
하미론 옆에 있던 드워프 의원이 벌컥 소리 질렀다.
"한 명? 고작 한 명에 그랜드포지가 뒤집혔단 말이오!"
"죄송합......."
"계속해 보시오."
하미론이 이를 빠드득 갈며 말했다. 드워프 의원이 얼른 입을 다물었고 책임자가 계속 보고했다.
"우리 전사들이 마지막 행선지인 텔레포트 마법진에서 침입자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무래도 주요 건물들을 테러한 뒤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빠져나갈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체는?"
"화포의 화력에 잿더미가 됐는지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언데드로 추정되는 조각이 조금......."
하미론의 입술이 뒤틀렸다.
"언데드였다고? 뻔하군. 이건 양동이오! 언데드로 민감한 핵심시설들을 공격해 우리 시선을 분산시키고, 유폐된 시장을 구해내려는 수작이란 말이오!"
왼쪽 시의원이 얼른 말을 받았다.
"하, 하지만 어느 드워프가 그런 강력한 언데드를 부린단 말입니까. 그런 자가 있다 한들 시장의 세력은 모두......!"
"방금 텔레포트 마법진 측으로부터 보고가 들어왔소. 키젠 학생 한 명이 여기 있다더군."
그 말을 들은 모든 의원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가증스러운 인간놈이 제 살길을 찾는 것이겠지. 나가는 모든 출구는 봉쇄했소?"
"예!"
"가십시다. 가장 중요한 통로는 게오르그 근위대장이 막고 있을 터이니."
의장 하미론이 두 문을 붙잡고 힘차게 열어젖혔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크고 화려한 문이 열리고, 곳곳에 핏자국이 낭자한 전투의 흔적이 보였다.
하미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찾았구려."
등을 돌리고 있던 시몬과 라울이 흠칫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하미론과 의원들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고, 그 뒤로 빠져나온 드워프 병사들이 창과 석궁을 겨누었다.
"끝났다! 인간!"
의기양양해진 하미론이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이제 포기하고 투항하......!"
"포기는 이쪽이 할 말이외다."
그 한마디에 좌중이 얼어붙었다. 특히 하미론의 눈에는 핏발이 섰다.
'이 목소리는 설마.'
터벅. 터벅.
뒤편의 어두운 그늘로부터 걸어 나오는 인물의 모습에 모두가 입을 벌렸다.
이마에 피 한 줄기를 흘리면서 걸어 나오는 그는 다름 아닌.
"위, 윌카르트 시장!"
시장의 등장에 병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하미론의 눈이 잽싸게 돌아갔다.
'그, 그럼 게오르그는?'
하미론은 동공을 움직여 저 멀리 기둥 끝에 묶인 채 기절해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게오르그가 당했다고? 대체 누가?'
다시 그의 동공이 움직여 라울 옆에 서 있는 인간 소년에게로 향했다.
'저자인가! 일개 학생 따위가 어떻게......!'
"체념하시오, 하미론 의장."
윌카르트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쿠데타는 여기서 끝이오."
쿠데타라는 말에 병사들이 동요했다.
현재 시의회에서는 끔찍한 '종족 반역 행위'가 발각되어 계엄을 선언했고, 그와 연관된 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였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둔 뒤였다.
하지만 정작 시장은 쿠데타라고 말하고 있었다.
"닥쳐라!"
하미론이 버럭 소리 지르며 팔을 휘둘렀다.
"인간 놈들의 돈 몇 푼에 드워프의 영혼을 팔아넘기려는 쓰레기가! 네놈이야말로 반역자다! 뭣들 하나! 반역자를 붙잡아라!"
뒷짐을 진 시장이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반역자 하미론과 그의 일당을 체포하시게나."
병사들이 고개를 왔다 갔다 하며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누, 누굴 따라야 하지?'
'역시 상관의 명령에 따라야.......'
'그, 그래도 시장인데.'
바로 그 순간.
"네놈들 따위가 감히 판단을 하려는 게냐!"
쿵! 쿵! 쿵!
그 옆으로 갑옷 차림의 건장한 전사가 해머를 든 채 다가왔다. 하미론의 입이 벌어졌다.
'헨드락 장군까지! 분명 시장의 목숨으로 협박해서 감옥에 가둬놨을 텐데!'
"누가!"
헨드락이 주먹을 움켜쥐며 외쳤다.
"그랜드포지의 왕인가!"
그 한마디에.
망치라도 얻어맞은 것처럼 병사들의 눈빛이 일제히 바뀌더니 날붙이와 석궁의 방향을 돌렸다.
그 방향은 하미론과 시의원들 쪽이었다. 시의원들이 화들짝 놀라며 두 손을 들었다.
"반역자들을 체포하라!"
우르르르르르!
이내 병사들이 시의원들을 붙잡아, 방금 시장이 갇혔던 곳으로 데려갔다. 비로소 시장이 길게 숨을 토해냈다.
"아버지!"
라울이 울먹울먹한 얼굴로 뛰어와 윌카르트 시장을 끌어안았다. 윌카르트가 껄껄 웃으며 제 아들의 등을 쓸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다친 곳은......!"
"오냐! 오냐! 이 아비는 멀쩡하다! 허허허!"
호탕하게 소리친 윌카르트가 시몬을 훑어보았다.
"라울! 네가 저 친구를 의회 본관까지 데려왔느냐."
"예."
"큰 용기를 냈구나!"
역시 내 아들이다! 윌카르트가 호탕하게 웃으며 라울의 머리를 슥슥 쓸어준 뒤, 시몬을 보았다.
"그랜드포지를 구해줘서 어떤 감사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소!"
시몬이 무안한 듯 웃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그의 이마에 땀이 삐질 흘렸다.
'가장 중요한 일은 다른 사람이 해결한 것 같지만.'
시몬이 중앙에서 게오르그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때, 상황은 이미 술술 풀려가고 있었다. 각 방을 삼엄하게 지키고 있던 수많은 드워프 경비병력이 모조리 쓰러져 있었고, 윌카르트 시장과 헨드락 장군이 풀려난 것이다.
윌카르트의 말에 따르면 자물쇠가 알아서 박살 나 풀렸다고.
누군가 이번 일에 간섭한 것이다. 물론 시몬이 게오르그를 상대해 준 덕분에 일어난 시너지이기도 했지만.
'......누구인지야 뻔하지.'
시몬은 아까 바닥에서 떨어져 있던 까마귀 깃털을 주머니에서 꺼냈다가 다시 품에 넣었다. 그리고 한 병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서둘러! 시의원 놈들과 손을 잡은 무쇠 용병단을 붙잡아 처넣어라!"
헨드락 장군은 버럭버럭 소리 지르며 병사들을 통솔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시몬이 보고 있는 바로 그 병사 쪽을 보며 소리쳤다.
"자네는 뭐 하나! 도망치는 용병들을 잡으라니까!"
"아."
병사가 그를 돌아보았다.
"아까 유폐된 시장님의 가족들을 본 것 같아서요. 구해드리러 가겠습니다."
"뭐야? 그렇다면 서둘러라!"
"예!"
그가 후다닥 자리에서 벗어났다.
이내 한참을 먼 곳까지 간 뒤에야 주위에 누가 있는지 은밀하게 둘러본 다음, 품에서 통신수정구를 작동시켰다.
아주 특별한 통신수정구인지, 작동하자마자 붉게 빛나며 무수한 마법진들이 펼쳐졌다.
"여기는 알파원, 시장은 무사하고 쿠데타는 좌절됐습니다. 시몬 학생도 무사합니다."
* * *
로크섬.
텔레포트 마법진 지대.
늦은 새벽에도 이곳에는 랜턴이나 손전등을 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특히 소환학 교수 아론과 조교진들, 키젠 본부 직원들, 그리고 학생들까지 잠옷 차림으로 추위에 떨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알겠다."
깃털 달린 새까만 코트를 입은 남자, 키젠의 까마귀 요원 알레이스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붉은 통신 수정구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아론은 물론 로레인, 에슈, 토토까지 뛰어왔다.
"어떻게 됐습니까?"
아론이 물었다.
"시몬! 시몬은요?"
"괜찮은 거예요?"
학생들도 앞다투어 물었다. 알레이스터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의회의 쿠데타는 실패로 돌아갔고, 시장이 다시 권력을 잡았소."
그리곤 학생들을 보며 대답했다.
"시몬 학생도 무사하다더군."
하아아아-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로레인은 풀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소란을 듣고 따라온 몇몇 소환학과 학생들이 말했다.
"저, 저희 데스나이트는 무사한 거겠죠?"
"그게 뭔가 문제가 생기면 저는 정말......."
에슈가 지금 그런 게 문제냐는 듯 동기들을 째릿 노려보았지만, 알레이스터는 덤덤히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시설 상황은 지금 파악할 수 없네. 윌카르트 시장에게 최대한 빠르게 텔레포트 마법진을 복구해 달라고 요청했으니 기다리게."
"네."
"다들 이만 기숙사로 돌아가라."
아론이 팔짱을 꼈다.
"수업과 시험 일정이 변동될 수 있으니 일단 돌아가 휴식을 취하도록."
* * *
사태는 말끔하게 수습됐다.
쿠데타를 일으킨 시의회 의원들과 그들에게 고용된 용병들은 모두 붙잡혀서 감옥에 갇혔고, 그랜드포지의 주민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평소와 같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텔레포트 마법진은 두 시간 만에 복구되었고, 데스나이트 재료가 있는 연구실도 소규모 교전이 일어나긴 했지만 재료나 장비에 손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랜드포지 측에서는 아론 측에게 원래 일정대로 진행해도 좋다고 알려왔다.
그렇게 학생들이 마지막 데스나이트 제작을 위해 다시금 그랜드포지로 넘어간 사이, 시몬은 로크섬에 불려가 있었다.
장소는 부총장실이었다.
"기숙사 점호시간이 끝난 밤에, 홀로 그랜드포지에 들어갈 생각을 하다니."
제인이 한숨을 푸욱 쉬며 말을 이었다.
"제정신인지 궁금하군요, 시몬 학생."
시몬은 허리를 바짝 세운 채 무릎에 올려둔 주먹 쥔 손을 떨고 있었다.
'마, 망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보통 징계로 넘어갈 것 같지는 않았다.
제인은 테이블에 펼쳐둔 여러 서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감고 말했다.
"시몬 학생이 아직 학생회장이었다면, 이렇게 쉬이 넘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예?"
"그랜드포지 쪽에서 공식문서를 보내왔습니다. 시몬 학생의 활약을 고려하여 온당한 처분을 바란다고."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그랜드포지 시장의 인장이 찍힌 서류를 보였다.
"그랜드포지에서 직접 그런 의사를 밝혔고, 실보다는 공이 더 큰 건 사실이니, 징계는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시몬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학칙은 학칙. 봉사활동 20시간 명령입니다. 1분도 빠짐없이 모두 채워야 할 겁니다."
제인이 손끝으로 서류를 내밀었다.
이걸로 끝난 게 어딘가 싶었던 시몬은 사인을 마쳤다.
"그럼 그랜드포지로 돌아가세요."
제인이 깍지 낀 손을 무릎에 내리며 등을 기울였다.
"소환학과는 아직 수업 중일 테니까요."
"네, 제인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시몬은 다시 그랜드포지로 이동했다.
오늘이 마지막 날.
어젯밤의 일이 환상처럼 느껴질 만큼, 그랜드포지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시몬!"
온다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라울이 마중 나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시몬도 웃으며 인사하고는 그 뒤를 보았다.
흰 수염을 쓸어내리며 인지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는 시장 윌카르트였다.
"그랜드포지의 영웅께서 오셨군!"
"시장님!"
두 사람은 가볍게 악수하며 미소를 지었다.
"학교에서는 별말 없었나?"
"네, 그냥 간단히 봉사활동 정도만 하기로 했어요."
"미안허이. 우리를 위해 싸웠는데 벌을 받아야 한다니."
시몬이 얼른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이 정도는 벌도 아닌데요 뭘."
시장이 미소 지었다.
"내 무엇이라도 보상하고 싶네. 그랜드포지의 황금창고를 개방할 테니 원하는 아티팩트를 하나 가져가게나. 무엇이든 좋다네."
시몬의 눈이 커졌다.
"무엇이든...... 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