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50화
"바로 그렇다네! 이야기는 들어봤겠지? 우리 그랜드포지의 황금창고에 대해!"
안 들어본 사람이 이 대륙에 있기나 할까.
대륙의 재보(財寶).
황금이 산처럼 쌓여 있고, 진귀한 보물과 보석들이 돌멩이처럼 널려 있다는 그곳.
대륙을 떠돌아다니는 음유시인의 노랫말에는 '드워프들의 황금창고 속 산더미처럼 쌓인 보물'이라는 구절이 빠지지 않을 만큼 흔했다.
물론 이야기가 그렇다는 거고, 산처럼 쌓인 보물은 과장된 이야기겠지만, 값비싼 보구와 아티팩트들이 무수히 보관되어 있다는 건 사실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가보길 소망하는 장소.
사실 처음 입국심사 때 드워프들이 황금을 내려놓고 입국자들의 욕망을 시험한 것도, 이 황금창고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크다.
어지간한 드워프들도 평생 들어갈 일이 없는 그런 곳에서, 그랜드포지의 시장이 직접 아티팩트를 하나 가져가는 걸 허락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자! 자! 사양하지 마시게! 그랜드포지를 구한 영웅에게 이 정도의 대접은 당연한 것이지!"
"어, 음. 그러시다면......."
시장이 정식으로 제안하는 보답을 거절하는 것도 실례였다. 시몬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황금창고까지는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호오?"
그 말을 들은 윌카르트 시장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이 그랜드포지에서 원하는 물건이 가까운 곳에 있었던 모양이군! 무엇이든 말해보게!"
이게 진짜 될까.
살짝 고민도 됐지만 일단 던지고 보기로 했다. 시몬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벨제불의 살점."
"!"
"그걸 가지고 싶습니다. 물론 다른 학생들의 데스나이트 작업이 모두 끝난 뒤에요."
윌카르트와 라울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이내 윌카르트는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수염을 쓸었고, 라울은 헛웃음을 흘렸다.
"세상의 온갖 금은보화를 내버려 두고 굳이 그런 징그러운 살덩어리는 왜? 하여간 네크로맨서들은 이해가 안 된다니까."
윌카르트의 고민이 상당히 길어지고 있다.
혹시나 그를 곤란하게 한 게 아닐까 생각한 시몬이 손을 휘저었다.
"어, 어려우시다면 괜찮습니다. 다른 네크로맨서들도 타락형 데스나이트 제작의 권리를 누려야 하고......."
"가능할 것 같네."
윌카르트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벨제불의 살점을 직접 이용한 언데드 다이브에는 다소 부작용이 있다네. 단기간이긴 해도 사람들의 성격이 변하거나 정신이 오염되는 등, 간접적인 타락 증상 효과가 있었지."
"아."
틀림없다.
그건 벨제불의 '타락의 언어'였다.
"그래서 우리는 펜타모니엄에 의뢰하여, 이 살점의 기능과 같은 복제품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네."
윌카르트가 합친 두 손을 떼어놓는 시늉을 했다.
"복제 살점을 이용한 언데드 다이브에는 그 의문의 정신타락 효과가 생기지 않으이. 자네가 원본을 가져가도 다른 네크로맨서들이 앞으로 다이브 장비를 쓰는 건 문제가 없을 걸세."
"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본'은 마왕과 1대 교황의 전설이 엮인 물건이니 고고학적 가치가 있어서 아깝긴 하네만."
몇 차례 수염을 쓰다듬던 그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랜드포지를 구한 자네가 원한다면 내어주겠네."
* * *
윌카르트 시장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시몬은 홀로 연구실을 향해 걸어갔다.
[의외의 선택을 했군, 소년!]
교복에 배지처럼 매달려 있는 피어의 분신이 말을 걸어왔다.
[어째서 황금창고의 아티팩트를 마다했나?]
"사실 황금창고 아티팩트 선택에는 함정이 있거든요."
황금창고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오로지 들어가기로 결정된 한 명뿐이다.
그 안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티팩트를 하나만 골라서 나와야 한다. 몇백 년 동안 차곡차곡 쌓여 있는 수 백만 가지 잡동사니 중에서 안목을 갖고 제대로 써먹을 수 있을 물건 하나를 가지고 나올 리 만무하다.
"거기에 무구들도 모두 오래돼서, 지금은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래요. 물론 고고학적, 학술적 가치는 높아서 펜타모니엄에 경매로 팔아 현금화하는 정도가 최선이라네요."
[크흐흐! 잘 아는군!]
"라울이 귀띔해 줬거든요."
라울은 자신의 아버지가 시몬을 위해 황금창고를 열어줄 거라는 걸 짐작하고 시몬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다.
그게 바로 그랜드포지가 내릴 수 있는 최대의 포상이었으니까.
[황금창고에 가지 않은 건 이해했다만, 어째서 벨제불의 살점을 선택했나? 저건 더 이상 벨제불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잔류사념인데.]
"그래도 에이션트 언데드의 힘이 조금은 남아 있단 사실을 알았으니까-"
시몬이 씩 웃으며 말했다.
"파멸의 대검으로 흡수해 보려고요."
피어가 가진 파멸의 대검에는 여러 기능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특별한 건, 에이션트 언데드를 흡수해 힘을 빨아들이는 기능이다.
본래는 제7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였던 '전염병의 마수 칼'도 이런 식으로 대검에 흡수시켰다. 시몬은 현재 칼의 독을 쓸 수 있게 됐고, 던전주를 없앤 뒤 던전을 마음대로 바꾸는 권능도 손에 넣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시몬이 기대하는 건 이쪽이었다.
[크흐흐흐흐! 군단을 생각하는 마음은 기특하군!]
피어가 흡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잔재에 불과하다. 칼 녀석을 흡수한 것만큼의 힘은 나오지 않을 테니 너무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네. 타락계 마법을 쓸 수 있는 정도면 좋아요."
시몬이 손바닥을 펼쳐보았다.
"데스나이트 하나 만들고 이렇게 끝내기에는, 너무 흥미로운 힘이었거든요."
* * *
그렇게 시몬은 피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연구소 앞에 도착했다.
'과연 몇 명이나 데스나이트를 만들었을까?'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한 명도 못 만들었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살짝 들었다.
아론의 교수 생명과 동기들의 커리어가 걸린 문제.
시몬은 손등의 표식으로 보안장치를 해제한 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다들 무겁고 진중한 분위기 속에서 시험이 진행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우와아아아아아아-!
아니었다.
문을 열자마자 쏟아지는 함성, 밀려드는 에너지와 후끈한 열기.
정적인 분위기의 연구실이 아니라 마치 행사장을 방불케 했다. 곳곳에서 학생들이 주먹을 움켜쥐며 함성을 지르거나 하고 있었다.
'데스나이트에 실패한 다른 애들도 왔구나!'
시몬은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쪽을 보았다. 마침 실험관 덮개가 열리며 산만 한 덩치의 헥토르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스으.
헥토르가 팔을 뻗었다. 실험대에 누워 있던 스켈레톤이 비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방이 쥐죽은 듯한 정적에 휩싸였다. 주위에 다이브가 끝난 학생들을 관리하던 조교들도, 아론마저도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이내 헥토르가 눈을 감고 사념으로 명령을 내렸다.
처억!
헥토르의 스켈레톤이 허공에 팔을 뻗었다.
그러고는.
촤아아아아아아악-!
천천히 팔을 잡아당기며 주황색 검을 허공에서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오러블레이드다!"
"헥토르가 해냈어!"
"다섯 번째 데스나이트야!"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방에서 거대한 함성이 쏟아졌다.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알고 있다. 질투하거나 아쉬워하는 기색 없이 모두가 기꺼이 손뼉을 쳐주고 있었다.
헥토르 본인도 대흥분 상태였다. 주먹을 으스러질 듯이 쥐고 휘두르다가, 실험대 위에서 야수처럼 울부짖었다. 헥토르 파벌도 함성으로 응답했다. 입을 틀어막고 우는 애들도 있었다.
시몬이 땀을 삐질 흘렸다.
'헤, 헥토르가 저렇게 기뻐하는 모습은 처음 보네.'
인간은 누구나 호르몬의 노예라던가. 학과대표가 된 뒤 점잖게 굴던 헥토르도 젊은 혈기를 어쩌지 못했다.
시뻘게진 얼굴로 포효하던 헥토르가 갑자기 시몬 쪽을 가리켰다.
"나도 해냈다 시몬 폴렌티아! 먼저 데스나이트를 만들었다고 앞서 있단 생각은 마라!"
하하하하하하!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부담감을 갖고 있었구나. 어쩐지 미안하네.'
시몬은 기꺼운 마음으로 손뼉을 치며 헥토르를 축하해 주었다.
-오오오오!
-됐나? 됐나?
이번엔 옆자리에서 여러 소리가 쏟아졌다. 헥토르 쪽에 몰려 있던 학생들이 우르르 그쪽으로 향했다. 헥토르도 수건을 내팽개치고 바닥에 내려와 다른 동기의 성공을 지켜보러 걸어갔다.
이번에 실험관에서 일어난 건 로레인이었다.
파르르르-
막 다이브를 끝낸 것으로 보이는 그녀가 스켈레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스켈레톤은 양손을 칼자루 쥐듯 모아쥔 채 낑낑대며 허공을 밀었다 당겼다 반복하고 있었다. 스켈레톤의 손끝에서 주황색 불똥이 마구 튀기는 했지만 좀처럼 검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실패야?"
"......오러가 제대로 형성되질 않네."
학생들이 수군거리고 있는데, 시몬이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로레인, 조금 쉬었다가 침착하게 다시 한번 도전해 봐."
"아, 시몬."
시몬을 바라보던 로레인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에 두 손을 얹고 후우우 하고 숨을 토해낸 그녀가 눈을 감았다.
"침착하게."
그녀가 중얼거리며 한껏 들어 올린 팔을 긴 날숨과 서서히 내리는 자세를 취했다. 스켈레톤도 자세를 바꾸었다. 옆으로 기울였던 두 팔을 머리 위로 들더니 뭔가에 매달리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촤아아아아아아-!
팔을 내리는 순간 엄청난 양의 주황색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학생들이 놀란 소리를 내며 물러나고 이내 그 스파크 속에서 검의 형상이 일어났다.
부웅!
스켈레톤이 다크오러를 휘두르며 자세를 잡았다.
성공이었다.
"여섯 번째 데스나이트다!"
"여섯 번째 주인공은 로레인이야!"
다소 거칠게 튀던 다크오러 또한, 서서히 모양이 잡히며 날렵한 검의 형태로 바뀌었다. 완전한 성공이었다.
"로레인 니임!"
감격한 에슈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달려들어 로레인의 품에 안겼다. 로레인이 눈썹을 모으며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미안해, 나만 성공해서."
"아니에요 로레인 님! 로레인 님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옆에서 계속 봐왔는걸요! 축하해요!"
다들 손뼉을 치며 환호하는 가운데, 시몬은 심장이 철렁하는 걸 느꼈다.
에슈는 데스나이트를 만드는 데 실패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토토는?'
환호성이 맴도는 공간에서, 시몬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또 다른 성공자인 기네비어 벤네스의 모습이 보인다. 여러 학생들에게 둘러싸인 그녀가 완성된 데스나이트에 데드아머를 입히고 있었다.
그 뒤로 실험관에 주저앉은 남학생이 울먹이는 모습이 보인다. 아쉬움에 다이브 장치에서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다시 다이브를 하겠다며 조교에게 떼를 쓰는 학생도 있었다. 조교가 진정하라며 말리는 모습이다.
쓰러져 있거나 멍한 얼굴로 하늘만 보는 학생들도 보인다. 열받아서 데스나이트에 실패한 제 스켈레톤을 걷어차다가, 데몬나이트라도 만들 거라면 손상시키지 말리며 뜯어말리는 친구들이 보인다.
그다음 차례였던 피츠제럴드가 실험관에서 나오고 있었다.
실패였다. 그가 아쉬움에 물에 젖은 안경을 추켜올렸고, 주위의 학생들이 다가와 잘했다며 위로해 주었다.
'토토는.......'
"시몬."
갑자기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시몬은 깜짝 놀라며 몸을 홱 돌렸다. 퀭한 얼굴의 토토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다가오고 있었다.
"토토......!"
덥석.
토토가 다가와 시몬을 가볍게 끌어안았다.
도대체 무슨 위로를 해줘야 하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와 함께 기숙사 방에서 데스나이트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던 나날들, 밤까지 세어 가며 고생하던 날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토토! 그......."
"고마워."
토토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였다.
"국경 밖에 나갔을 때, 재료도 구하지 못한 날 위해 애써줘서."
-시몬의 메시지야! 없는 사람 한 명씩 나눠 가지래!
"다시 생각해 달라고 말해줘서."
-네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그 결정에 따라.
"내게 용기를 북돋아 줘서."
-세르네에게 부탁해서 어렵게 가져왔어. 이것만 있으면 무적이야.
토토의 목소리에 점점 더 떨림이 커진다.
시몬은 거기에 담긴 감정이 슬픔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로."
그 감정은 감격이었다.
"네가 내 친구라는 사실이, 내 생에 가장 큰 행운이야."
쿠우우우웅-!
토토의 등 뒤로, 멋들어진 갑옷을 입은 스켈레톤 하나가 내려왔다.
아직 입은 장비는 조잡했지만, 틀림없는 오러블레이드가 손안에 잡혀 있었다.
"나!"
토토가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소리 질렀다.
"성공했어!"
토토는 놀랍게도.
학과 내 여섯 명의 데스나이트 서머너 중 하나가 되었다.
"......하하."
시몬은 작게 웃음을 흘렸다가 이내 토토를 꽉 끌어안아 주었다.
"진심으로 축하해, 토토."
"응!"
밖으로 나와 지켜보던 에슈가 눈가를 훔쳤다. 다른 학생들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토토를 지켜보고 있었다.
"기적이네."
"이건 집념의 승리지."
토토의 전성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 * *
그렇게 시몬은 키젠으로 돌아왔다.
약속했던 벨제불의 살점은, 복제품의 대체가 완전한 걸 재확인한 뒤 보내주기로 윌카르트 시장이 약속했다.
그동안 친해진 라울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라울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모험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랜드포지를 지키는 시장이 되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건 그다음이야!
시몬과 로레인도 그의 선택과 꿈을 응원했다. 가끔 편지도 주고받기로 했다.
그리고.
저벅. 저벅.
로크섬에 돌아온 시몬은 이제 본부직원들이 있는 행정관 건물에 들어와 있었다.
"아, 시몬 학생. 저를 보자고 했다고요?"
정장 차림의 키젠본부 직원이 넥타이를 고쳐매며 자리를 권했다. 시몬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사용하겠습니다."
"무, 무엇을......."
시몬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발락에 대한 도전권이요. 이제 학생회장직을 돌려받을 때가 온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