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52화
-신 학생회에 '아세라즈 사태'의 진상을 요구한다!
시몬이 그랜드포지에서 데스나이트 제작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을 때, 교내의 상황은 점점 극단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발단은 당연히 자퇴한 아세라즈가 남긴 편지였다. 이로 인해 발락의 신 학생회가 2학년들의 '퇴학'이 걸린 단체시험에 관여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덕분에 관심에서 멀어져가던 클라우디아와 대책회의 여론전이 더더욱 힘이 붙었고, 3학년에 대한 반감도 커졌다.
마침 보복성 체력단련을 지시한 3학년 두 명을 메리다와 샤텔이 역으로 결투를 걸고 '실력'으로 찍어눌러 버리는 것으로서 여론은 더더욱 활활 불타올랐다.
심지어 이에 자극받은 몇몇 2학년들이 3학년 신 학생회 멤버에 결투신청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3학년에 반기를 드는 게 아닙니다. 신 학생회에 해명을 요구할 뿐입니다.
-해명하지 않을 거라면 결투를 신청합니다! 이기면 해답과 소통을 요구하겠습니다!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제법 유명한 네임드 학생들까지 앞장서서 신 학생회 멤버에 결투를 신청하고 있는 상황. 신 학생회는 끝까지 어떠한 입장도 발표하지 않았다.
빗발치는 학생들의 항의로, 결국 키젠 본부에서 이 사건의 조사에 착수했으나 이는 한계가 명확했다.
부회장 소타 프쉬케는 모든 혐의를 부정했고, 딕이 증거자료로 제출한 '아세라즈의 편지' 또한 필체를 숨기기 위해 흑마법으로 작성된 터라 사주한 자가 누군지 명확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참고인인 아세라즈의 종적이 모호하다는 점. 자퇴자인 그녀를 다시 학교로 불러들여 조사할 명분도 없다.
조사는 아무런 진전이 없고, 본부에서는 사실상 조사를 잠정 중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2학년들의 분노는 더더욱 거세졌다.
-2학년 절반이 키젠에서 퇴학당할 뻔했는데, 이걸 이렇게 그냥 끝낸다고?
-3학년들이 자기 교수들한테 말해서 손을 썼겠지. 진짜 선배란 족속들에게 환멸이 나.
그렇게 학년 간 갈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 시몬이 발락에 대한 '도전권'을 사용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된 것이다.
2학년들은 눈이 돌아가서 열광했고, 시몬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우리도 시몬을 돕자!
-시몬이 발락이랑 싸울 때까지 그냥 손 놓고만 있을 거야? 또 학생회에서 무슨 음모를 꾸밀 줄 알고?
결국 호전적인 성향의 2학년들은 신 학생회뿐만 아니라 3학년에 대한 무차별 결투를 신청하기 시작했다.
한편 3학년들도 심기가 상당히 불편한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바로 아래 기수가 '황금세대'라며 칭송받고 자신들과 비교되는 것도 짜증나는데 동기인 고메스와 케빌이 2학년들에게 굴욕적인 패배까지 당했다.
그렇다고 2학년들에게 한마디 하려니, 각 학과대표들이 철저히 입단속을 시키는 바람에 참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2학년들이 신 학생회들을 넘어 자신들에게까지 결투를 걸기 시작한 것이다.
2학년과 3학년의 갈등은 최고조가 되었고, 이대로는 뭔가 큰일이 터져도 제대로 터질 것 같았다.
결국 어른들이 관여하는 수밖에 없었다.
중재는 그들의 몫이었으니까.
긴급 교수회의가 열렸다. 지금 당장 참여할 수 있는 2학년 측 교수 세 명과 3학년 측 교수 세 명이 참여했고, 회의 주최자는 부총장인 제인. 키젠본부 직원도 참가했다.
"다들 알겠지만 교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제인이 손에 쥔 보고서를 테이블에 툭 내려놓으며 말했다.
"최악의 학년 간 갈등, 2학년의 3학년에 대한 무차별 결투신청. 이는 전례가 없던 일이며 현재 교내에 등록된 결투 건만 22건, 등록을 앞두고 있는 결투는 60건에 달합니다."
도합 82건의 결투신청. 교수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굳어졌다.
"외부에서 보기에, 암흑연합의 미래를 이끌어가야 할 학생들의 이런 모습은 부정적으로 비칠 우려가 있습니다. 또한 결투평가 시즌이 아닌 지금, 교내에서 소화할 수 있는 공식결투의 건은 하루에 5~6건 정도. 결국 순서를 기다리지 못한 학생들은 다른 곳에서 비공식 결투를 벌일 테고, 이는 발락과 에이젤의 결투에서 일어난 사태처럼 치명적인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녀가 두 손을 모아 깍지꼈다.
"교수님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좋은 생각이 있다면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아! 이해가 안 되네. 그게 그렇게 고민할 문제야?"
2학년 맹독학 담당 교수, 별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들은 원래 싸우면서 크는 거야! 비공식 결투가 걱정이면 그 뭐야, 결투평가 시즌 때처럼 다른 경기장도 개방하고 심판 배정수 늘려서 하루에 2~30건씩 해치울 수 있게 해. 지들도 실컷 싸우다 보면 제풀에 지치건 질리건 알아서 하겠지!"
"초원 출신 아니랄까 봐 야만스럽군."
가르마를 탄 중년의 남성 교수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3학년 칠흑역학 담당의 아데마이트였다.
"교수 된 입장에서 학생들의 싸움을 말릴지언정 부추길 셈이오? 이 사태는 학교 망신이오! 대망신!"
그가 다른 교수들을 향해서도 손을 펼쳤다.
"무엇보다 이 정도의 교내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학년 간 갈등을 방치하면, 원로들이 우리 교수진의 역량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소!"
"그뿐만이 아니에요."
2학년 사령학과 담당, 중년의 여교수 스테이시 세잔이 끼어들었다.
"학생들의 감정이 앞선 결투가 벌어질 거예요. 신사답게 이루어질 리가 없죠. 중간고사를 앞두고 부상자와 사고자들이 속출할지도 몰라요."
"그럼 뭐, 우리가 말린다고 이 갈등이 해결되냐? 앙?"
별야가 손끝을 세워 3학년 교수진을 가리켰다.
"학기 초부터 시작된 갈등이 곪고 곪다가 터진 일이야. 에이젤이었나? 댁들이 학년 수석 하나 케어 못 해서 2학년인 우리 시몬을 급하게 회장직에 앉히고! 그거 때문에 3학년 애들이 1학기 내내 아득바득 피해의식 갖게 했지?"
3학년 교수들은 심기가 불편해진 듯 이마를 찌푸렸지만, 별야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2학기가 되고, 힘들게 적응해서 일 잘하던 시몬을 강제로 내치고 발락을 앉히니 당연히 이번엔 2학년들이 반발하지! 일 개판으로 처리한 댁들의 자업자득이야! 개학식 때 학생들한테 야유받고 느낀 거 없냐?"
"지금 뭐라고 했소! 천한 뒷골목 출신의 시궁창 쥐 따위가!"
표정이 살벌해진 아데마이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른 3학년 교수들이 양옆에서 아데마이트의 팔을 붙잡아 말렸고, 별야가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 손가락 욕을 하며 도발하자 스테이시 세잔이 뜯어말렸다.
"두 분 다 경고입니다."
제인이 눈을 감고 말했다.
"한 번만 더 경박한 행실을 보이면 퇴정 조치하겠습니다."
크흐흠!
아데마이트가 거드름을 피우며 자리에 앉아 넥타이를 고쳐맸다. 별야도 자리에 털썩 앉아 다리를 꼬았다.
"그럼."
제인이 눈동자를 돌려 옆에 기립해 있는 정장 차림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본부에서도 제안이 있다고 하는데, 들어보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본부 직원이 앞으로 나왔다.
"세 분 교수님의 말씀이 모두 맞습니다. 감정이 앞선 학생들 간의 비공식 결투를 막아야 하지만, 무작정 덮어두기에는 감정의 골이 너무 깊습니다. 어느 정도 해소해야 할 필요성도 있지요. 그래서."
드르르륵-
본부 직원이 바퀴 달린 칠판을 끌고 왔다.
"저희는 학기 말에 있을 '교류전'행사를 끌어올 것을 제안합니다."
교수들이 자세를 고쳐앉았다. 본부 직원이 칠판 위에 교내 일정표를 붙였다.
"현재 시몬 전 학생회장의 '도전권' 발효로 인해, 발락 학생회장은 임무가 끝나는 즉시 이 도전을 받아들일 의무가 있습니다. 발락 학생회장의 임무가 끝날 시점을 고려했을 때, 두 사람의 결투는 중간고사 뒤로 예상됩니다."
그가 일정표 끝을 가리키고는 말을 이었다.
"바로 이 시기에 연말 '교류전'을 진행하는 겁니다. 시몬 학생과 발락 학생의 결투는 교류전이 끝나고 가장 마지막에 두도록 하지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한 별야가 스테이시를 보았다.
"교류전이 뭐야?"
"아, 별야 교수님은 모르시겠네요."
교류전.
본래는 연말에 있는 작은 행사로, 3학년들의 졸업 겸, 2학년들의 최고학년 진급을 축하하는 취지의 행사다.
두 학년간의 친선전이 진행되어 있으며, 마지막에는 현 3학년 학생회장과 2학년 차기 학생회장이 실력을 겨루는 이벤트성 일정도 예정되어 있다.
본래 큰 행사는 아니었고, 기말고사가 끝난 뒤라 성적과 관계가 없는 만큼 학생 참석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키젠본부에서는 이 행사를 앞당길 것을 제안한 것이다.
"현재 학년 간 등록된 결투일정을 전부 보류한 뒤, 이 교류전 시기에 해소하도록 할 것을 제안드립니다. 학생들을 교칙의 틀 안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건 물론, 이 교류전에는 단순 결투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경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외부에서 보기에도 2학년이 3학년에 반기를 드는 무차별 결투가 아닌, 교내일정 수행으로 조금 더 부드러운 시선이 되겠죠."
아데마이트가 쯧 하고 혀를 찼다.
"머리를 굴렸군."
별야도 삐쭉삐쭉한 상어이빨을 드러냈다.
"아, 결국 껍데기는 둘째치고, 학교에서 판 깔아줄 테니 한판 붙으란 거 아냐? 이거 괜찮네!"
다른 교수들도 나쁘지 않다는 반응.
다만 3학년 교수 한 명이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교류전에서는 몇 경기나 치릅니까?"
"4경기입니다."
"현재 미뤄진 결투가 무려 82건인데 고작 4건의 교류전 경기만으로 학생들이 만족할까요?"
본부직원이 음- 하고 침음을 흘리다가 말했다.
"부족할 겁니다. 하지만 더는 교내 일정에 딜레이를 줄 수는 없지요. 그리고 지금까지 교류전 내용을 살펴보면 올해처럼 학년 간 갈등이 있는 경우에도, 하나같이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되었습니다."
교수들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고, 본부 직원은 계속해서 말했다.
"물론 지금처럼 험악한 분위기 속에선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비공식 결투를 방치하는 것보다는 교류전을 당겨오는 쪽이 효과적이리라 생각합니다."
교수들이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회의는 일단락되었고.
"그래서 시몬 학생에게 이렇게 제안드립니다."
본부 직원은 시몬을 행정실로 불러들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물론 회의에서 나온 하나의 의견일 뿐입니다. 시몬 학생이 가진 도전의 권리가 가장 중요하니, 거절한다면 그에 따르겠습니다."
시몬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들어보니 저도 좋은데요."
사실 시몬은 데스나이트에 집중하느라 교내 상황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르고 있었고, 자신의 발락 도전이 얼떨결에 2학년과 3학년의 갈등에 불을 붙여버린 셈이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특히 2학년들이 가만히 있는 다른 3학년들에게까지 결투를 벌이고, 자신이 그것을 주도했다는 느낌으로 여론이 형성되는 것에 상당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시몬은 신 학생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3학년들을 좋아했다. 벤야 바닐라나 에이젤, 레오나드 등 좋은 선배들도 많았으니까.
"발락과의 도전권은 교류전 마지막에 사용하겠습니다."
"아, 이해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본부 직원이 한숨 돌렸다는 듯 넥타이를 붙잡고 흔들었다.
"그럼 정확한 일정과 계획이 구체화되는 대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준비 잘하셔서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고, 시몬은 행정실을 나섰다.
"시몬!"
"여기에요!"
메이린, 딕, 카미바레즈가 건물 복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시몬이 웃는 얼굴로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다들 빨리 왔네."
"안에서 무슨 이야기 했어?"
딕이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시몬은 바로 답했다.
"아무래도 교류전 행사로 한꺼번에 묶어서 진행할 것 같아."
"교류...... 뭐?"
저벅.
갑자기 들리는 발소리에 시몬 일행의 고개가 돌아갔다. 갑자기 기둥을 돌아 모습을 드러낸 건 그들이 잘 아는 하수인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모조!"
직속 하수인 모조였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바쁘신 중에 죄송합니다만, 소타 부회장님께서 여러분을 찾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