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54화
시몬은 어느 때보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금지된 숲을 달리며 조깅.
기숙사에 돌아와 씻은 뒤 바로 오전 전공수업에 나갔다. 오늘도 진 아르스칼트 앞에서 고리 모양의 소환 마법진을 펼쳐놓고 칠흑 길들이기 2,000회, 이어지는 데드아머 착용 연습과 데스나이트 교전까지.
-삐융! 삐유웅!
-알았어. 알았어.
오후에 잠깐 짬을 내어 또 라미아가 가출하지 않도록 열심히 놀아준 뒤, 점심은 대충 빵으로 때우고 교내 복귀.
오후 수업은 비전공 일반과목수업이다. 하필이면 별야의 맹독학 수업이라 기껏 먹은 걸 죄다 게워내야 했다.
-더 강한 독! 더 강한 저항계! 꺄하하하하하!
힘든 시간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수업이 끝나자마자 군단의 일까지 추가됐다. 북부의 언데드군을 이끄는 대장인 자이로스가 연락을 해왔는데, 최근에 칼로스 북부에서 에이션트 언데드 '뮤르'의 흔적이 발견됐다는 것.
바로 진 대공의 도움을 받아 텔레포트 마법진을 연달아 타고 대륙의 반대편인 '프로스트 필드'까지 넘어왔다.
-다들 가자!
[하하하하하! 오랜만에 같이 싸워서 기쁘다! 군단장!]
무슨 상황인지 확인해 보니, 마정석을 기반으로 흑마법을 제단을 세워서 북부의 몬스터를 현혹하려고 했던 정황을 발견했다.
뮤르라는 증거는 없었지만, 뮤르가 자이로스가 지키고 있는 본인의 '전함'을 호시탐탐 노리는 건 너무나 잘 아는 사실.
오랜만에 군단장답게 북신군을 이끌고, 새하얀 설원을 내달리며 몬스터들을 싹 쓸어버리고 돌아왔다. 자이로스는 시몬이 더 강해진 것 같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북부에서 로크섬에 헐레벌떡 들어오자마자 2차 오후 수업 참여. 지각해서 제인한테 혼나고 말았다.
중간고사가 코앞인 만큼 제인의 수업은 빡빡했다. 시몬은 피곤한 와중에도 이를 악물고 필기하며 수업을 따라갔다.
모든 일과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로 신성방어학 교수 파라한의 집에 찾아가 신수 하양이 까망이와 놀아주며 타락형 데스나이트의 사용법에 관한 연구.
그다음, 데스나이트와 금지된 숲을 돌아다니며 몬스터와 싸우면서 훈련을 거듭했다.
'주, 죽겠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 밤부터 새벽까지 중간고사 대비 겸 스터디가 예정되어 있었다.
소환학과의 이번 중간고사는 실기로 진행되기 때문에 여유가 있지만, 다른 일반과목들은 전처럼 필기시험이다.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세라즈가 자퇴하고 이제는 자타공인 필기 전교 1등이 된 메이린이 직접 공부를 도와주었다.
-바보야! 명색이 수석인데 이것도 못 풀어?
시험기간의 메이린은 상당히 무섭다. 그녀는 시몬의 석차 1위 유지를 위해 쥐잡듯이 잡으며 공부시켰다. 시몬도 그녀가 자신의 시간까지 빼서 도와주는 마음을 알기에 온 힘을 다해 공부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 되었고.
"............."
시몬이 사라졌다.
* * *
시몬이 사라진 걸 제일 먼저 알게 된 사람은 룸메이트인 토토였다.
-시몬이 기숙사에 안 왔어. 혹시 너희들이랑 같이 공부하고 있나 해서.
그는 시몬이 시험공부 한다고 이야기했던 동아리 건물까지 찾아왔다.
기숙사에 돌아간 줄 알았던 시몬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에, 메이린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몬은 오늘 피곤하다고 해서 먼저 돌아간다고 했는데?
-설마!
딕 또한 사색이 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타 프쉬케가 또 뭔가 간악한 수를 쓴 거 아냐? 중간고사 다음이 교류전이니까!
-말이 되는 소릴 해! 밥팅아!
메이린이 딕의 등을 찰싹 때리며 부정했지만, 표정에는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찾아보자.
그렇게 메이린, 딕, 카미바레즈, 토토는 흩어져서 주변을 찾아보기로 했다.
"시몬! 시몬! 어디 있어요?"
카미바레즈는 기숙사 건물을 쭉 돌고 있었다.
시험기간이 되면 이곳의 빈 강의실에서 밤샘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았으니까. 기숙사에 돌아가지 않았다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열심히 달리던 카미바레즈는 한쪽에 불이 켜져 있는 방을 발견했다.
"아."
걸음을 멈춘 그녀는 방 가까이 다가와 까치발을 들어서 방 내부를 살폈다.
이내 작게 안도의 한숨을 흘린 뒤,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드르륵.
나무문이 열리고, 시몬이 의자에 앉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책상에는 오답노트와 교과서가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방은 무척이나 냉랭했다. 그녀가 손을 쓱쓱 비비며 다가왔다.
"시몬. 이런 곳에서 자면...... 아."
그녀가 멈칫했다. 고개를 기울고 목덜미를 훤히 드러낸 채 자고 있는 시몬의 모습.
카미바레즈의 두 뺨이 발갛게 물들며 갑자기 마른 침이 꼴딱 넘어갔다. 그녀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어마어마한 자극이었다.
도리도리-
고개를 붕붕 휘저은 그녀가 '흡!'하고 양손을 제 뺨에 찰싹 붙인 채 시몬에게 다가왔다.
처음엔 시몬을 깨워서 나가려고 했지만 그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이마에 살짝 손을 대보니 미열이 있었다.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감기? 오늘 낮엔 따뜻했는데, 시몬은 어디서 감기에 걸린 거지?'
잠깐 고민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바쁘게 움직였다.
* * *
꿈을 꾸었다.
-죽여라. 모든 인간들을 죽여라.
최근 계속 시달렸던 벨제불이 나오는 꿈이었다. 꿈에서의 벨제불은 살점 따위가 아니라, 진짜 전성기 시절의 벨제불이었고 타락한 언데드 군대를 이끌었다.
-나와 함께, 모든 인간을 죽여라!
그런 벨제불의 앞을 가로막고 선 건 흰 갑주의 기사.
그자가 검을 들고 벨제불을 향해 겨누었다.
-여신의 이름을 걸고 그대를 심판하겠다.
-건방지구나. 네 모든 부하들이 타락했고, 이제는 너 혼자뿐이다!
벨제불의 병사들이 밀려들었고, 성기사는 단숨에 공중으로 날아올라 거대한 벨제불의 머리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그리고 벨제불의 시야에서 모든 것을 응시하던 시몬은 머리가 쪼개지는 것을 느꼈다.
"허억!"
시몬이 번쩍 눈을 뜨며 숨을 헐떡였다.
'여, 여기는......?'
주위를 둘러보니 빈 강의실.
깜빡 잠들었던 모양이다.
이 방에서 내내 추웠는데, 잠에서 깨어나니 주위가 아득하고 따뜻해졌다.
앞에는 마정석으로 돌아가는 작은 간이 난로가 놓여 있었다. 눈동자를 굴려보니 몸에 하트표 패턴이 가득한 분홍색 담요가 덮여 있었다.
"아."
옆에서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연보라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생긋 웃고 있었다.
"일어났어요? 시몬."
"카미."
그녀는 어쩐지 얼굴을 발갛게 붉힌 채 '아하하' 머쓱하게 웃고 있었다. 시몬도 뒤따라 웃었다.
"잠깐 졸았나 봐.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변명하듯 말하려는 시몬의 이마 위에 갑자기 하얀 수건이 휙 떨어졌다. 카미바레즈가 얼른 그것을 붙잡았다.
"앗. 잠깐만요. 고개를 움직이지 말아주세요."
"으, 응."
시몬이 자세를 바르게 했고, 카미바레즈가 차가운 수건을 다시금 이마에 올려주었다.
이내 그녀는 마정석 난로 위에 올려놓은 주전자의 뚜껑을 열고 스푼으로 휘휘 젓고 있었다.
"시몬, 감기에 걸린 것 같아요. 열이 있어요."
찔끔한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오늘 오후에 프로스트 필드에서 날뛰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원인인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집중해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계피에 약초와 벌꿀 등을 넣고 끓이고 있었다.
주전자 주둥이로 모락모락 연기가 흘러나왔다. 달콤 쌉싸름한 냄새가 주위에 가득 맴돌았다.
이내 그녀가 완성된 주전자의 내용물을 조심스레 컵에 따랐다.
쪼르륵-
옅은 갈색을 띠는 액체가 컵에 떨어졌다. 펄펄 끓였는지 연기가 모락모락 났다. 그녀가 옷소매를 이용해 컵을 붙잡아 후후 불어서 차를 식히고는, 조심스레 시몬에게 건넸다.
"뜨거우니 조심해 주세요."
"고마워."
창밖으로는 어두운 야간의 캠퍼스가 보인다. 시몬은 그녀가 끓여준 차를 받아들며 따뜻한 기운을 느꼈다.
"이게 뭐야?"
"감기에 좋은 계피차예요."
시몬은 호로록 차를 마셔보았다. 열기가 몸으로 쭉 퍼져 나가는 느낌과 함께, 달고 쓴 건강한 맛이 감돌았다.
"맛있어. 뜨거우니 너무 좋은데?"
시몬이 홀짝홀짝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다 뭔가 파닥거리는 소리가 나서 살짝 옆을 보니, 카미바레즈가 눈을 빛내며 지켜보고 있었다. 등 뒤의 앙증맞은 박쥐 날개가 연신 파닥파닥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시몬이 살짝 차에서 입을 떼자 날갯짓이 멈췄다.
다시 눈을 감고 한 모금 하니 날개가 파닥파닥 위아래로 흔들리길 반복한다.
'흠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이겨낸 시몬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열이 좀 떨어진 것 같은데? 땀도 계속 나."
어느새 코 훌쩍거림도 멈추고 땀도 흐르고 있었다. 시몬의 목덜미에 살짝 맺힌 땀방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홱홱 흔들더니, 얼른 무릎 위에 두 손을 포개어 놓았다.
"다, 다행이에요!"
"이런 건 어떻게 만든 거야?"
"제가 어릴 때 몸이 안 좋아서 감기에 자주 걸렸거든요."
예전 일을 떠올리는 듯, 그녀가 눈을 살짝 감았다.
"뱀파이어들은 감기에 안 걸리지만, 저는 반은 인간이라서 자주 걸렸어요. 뱀파이어들의 세계라서 대처법이 전무한 바람에, 제가 열이 펄펄 오르면 성 전체가 비상이었어요. 아빠는 인간들의 마을에 내려가서 방법을 찾았죠."
그녀가 쓱쓱 제 손을 문질렀다.
"그렇게 감기에 걸릴 때마다 아빠가 만들어주신 게 이 차였어요. 원래는 더 많은 재료가 들어가지만, 기숙사 비품만으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어요! 메이린이 칠흑빙결계를 쓰고 감기에 걸려 앓아누우면 자주 만들어주기도 했거든요!"
"그랬구나."
시몬은 웃으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재잘재잘 참새처럼 이야기하던 그녀가 '앗'하고 입을 살짝 가리며 수줍게 웃었다.
"너무 제 이야기만 했죠?"
"아냐."
그때 카미바레즈가 시몬의 손에 살짝 제 손을 포갰다. 시몬이 움찔하며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카, 카미?"
"시몬, 시몬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무 무리하지 말아주세요."
...확실히 요즘 좀 무리한 건 사실이었다.
데스나이트 제작, 본 드래곤 제작, 맹독계 수업, 시험공부, 군단의 업무, 발락과의 승부까지.
그 어느 것도 포기하기 싫었다. 욕심을 많이 내긴 했다.
"가끔은 이렇게 휴식도, 쉬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휴식이라.
시몬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흘렸다.
"네 말이 맞아, 카미."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며 배시시 웃고 있는데, 복도에서 다다다다 우렁찬 발소리가 들렸다.
이내 문이 소리를 내며 거칠게 열리더니 메이린과 딕, 토토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시몬! 이 멍충아!"
"카미가 남긴 쪽지를 보고 바로 왔어."
"걱정했어. 시몬!"
다들 시몬의 멀쩡한 모습을 보고는 비로소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메이린이 눈을 흘겼다.
"너 기숙사에 돌아간다며? 왜 여기 있었어?"
시몬이 쓰게 웃었다.
"원래는 돌아가려고 했는데, 현관문 밖으로 나갈 즈음에 갑자기 후회가 돼서. 이대로 기숙사에 돌아가도 공부 안 할 것 같아서 조금만 더 하고 가려고 했지."
"바보야!"
비로소 안심한 친구들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딕이 어두워진 창밖을 보았다.
"근데 지금 소환학과 기숙사에 돌아가긴 너무 멀긴 하겠다."
시몬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대로 등을 기대고 누웠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려고. 오전수업도 이 근처고."
"그럼 같이 자고 가요!"
카미바레즈가 날개를 파닥거렸다.
"저희 사담 동아리실이 지금 비었거든요! 침대도 많아서 허락해 줄 거예요."
"진짜?"
"바로 가자!"
그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몬도 웃차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적어도 오늘 밤만큼은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기로 했다.
* * *
다음 날 아침, 카미바레즈의 간호 덕분인지 감기는 나았다.
시몬은 오전수업을 들은 뒤, 시간을 내서 데스나이트와 함께 금지된 숲에 들어와 있었다.
-크르르르!
-컹! 컹!
인간의 냄새를 맡은 웨어울프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좋아, 데스나이트. 준비됐지?"
데스나이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팔을 뻗었다.
시몬은 요즘 데스나이트의 새로운 기술을 발견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그중에서 한 가지.
"배리어."
터어어어어어어엉!
데스나이트가 칠흑으로 일으킨 배리어를 펼쳤다. 대부분의 웨어울프들이 배리어에 튕겨 나겼고, 안에 들어온 적은 시든 꽃처럼 시름시름 쓰러지기 시작했다.
"스트렝스."
이번에는 데스나이트가 몬스터들에게 축복을 걸었다.
물론 축복이 아닌 저주였다. 강화마법에 걸린 몬스터들이 허우적거리다가 픽픽 나가떨어졌다.
마지막으로.
"엑소시즘."
콰르르르르릉!
칠흑으로 이루어진 검은 번개가 내려와 웨어울프들을 마무리했다. 시몬은 헛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진짜 이런 게 가능하구나.'
갈수록 그 정체가 궁금해지는 데스나이트였다.
하지만 아직 진정한 기술은 사용하지도 않았다. 시몬은 데스나이트의 뒤에 매달린 깃발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쭉 생각만 하던 거, 지금 한번 시험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