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56화
"그, 그럼 첫 번째 경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사회자 콘라드가 땀을 뻘뻘 흘리며 손에 든 자료를 읽었다.
"교류전은 규정대로 4경기가 진행됩니다! 이때 '경기종목'은 심판이 현장에서 무작위로 선정합니다! 학생들이 다른 시험으로 자주 접했을 만한, '익숙한 종목' 위주로 본부에서 준비했다고 하는군요!"
콘라드가 입맛을 다시며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그럼 첫 번째 경기종목부터 발표하겠습니다!"
경기장 중간에 정장을 차려입은 무뚝뚝한 인상의 본부 직원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앞에는 교류전을 위해 준비된 항아리가 있었고, 그 옆에 언데드 뱀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똬리를 틀고 있었다.
본부 직원은 경기종목이 적힌 쪽지들을 모두 접어서 항아리 속에 넣었고, 그 즉시 뱀의 입이 우악스럽게 벌어지더니 항아리를 한입에 집어삼켰다.
본부 직원은 익숙한 듯 사념으로 뱀의 아가리를 벌리게 하고는 그 안에 손을 넣어 종이 한 장을 붙잡아 공중으로 띄웠다.
화르르륵!
쪽지는 불타 사라졌고, 칠흑으로 이루어진 잔해가 남아 글자를 이루었다. 그 내용을 읽은 콘라드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정해졌군요! 첫 번째 경기종목은 '대장전'입니다!"
대장전은 각 팀에서 한 명씩 나와 1:1로 결투하게 되는 방식이다. 이기기만 한다면 한 명이 여러 명을 상대할 수 있으며, 그렇게 상대팀 전원을 쓰러트리는 쪽이 승리하는 심플한 룰이다.
"이 대장전에 참가할 학생은 10명입니다! 그럼 잠시 후에 첫 번째 경기에 참가할 학생들을 선정하겠습니다!"
관중석 곳곳에서 숨 삼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들 긴장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시몬은 전 학생회 멤버들과 함께 관중석 가장자리 쪽에 앉아 있었다.
"으음."
딕이 빈 노트 위에 깃펜을 굴렸다.
"첫 번째 경기가 전체 10명에 대장전이라. 빡세겠네."
그 말을 들은 카미바레즈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딕. 참가인원이 10명이라는 건 어떻게 미리 알았어요?"
"아, 그거? 교류전의 참가인원은 매 경기마다 정해져 있어."
경기 종목과 참가 학생은 현장에서 무작위로 선정하지만, 참가 인원은 규정대로 정해져 있었다.
첫 번째 경기는 전체 10명 팀전.
두 번째 경기는 정예 10명 팀전.
세 번째 경기는 무작위 1:1 개인전.
네 번째 경기는 추천 1:1 개인전이다.
이때 단체경기의 경우, 학년 간의 격차를 고려하여 2학년 6명, 3학년 4명으로 진행된다.
"2학년은 6명이니까 유리해 보이지?"
딕이 슬쩍 웃었다.
"전혀 아냐. 사례를 찾아보니까 거의 대부분 3학년들의 완승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더라. 실력 차도 그렇고, 2학년들도 선배들의 마지막 경기니 예우하는 느낌으로 가기도 하고."
"아......."
카미바레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시몬을 보았다. 메이린도 팔짱을 끼며 툴툴거렸다.
"그러니까 그런 바보 같은 내기 같은 거 하지 말았어야지, 멍충아!"
멤버들 모두 시몬이 소타와 했던 내기에 대해 알고 있었다. 딕이 낄낄거리며 팔로 뒷머리를 받쳤다.
"괜찮아, 괜찮아. 아무 구속력 없이 메모리얼 수정구로 녹화했을 뿐인 구두 내기라며? 지면 그냥 입 싹 닦지 뭐."
"밥팅아! 소타 프쉬케가 어떻게 나올 줄 알고! 그냥 그 인간과는 엮이지 않는 게 최선이거든!"
시몬은 잠자코 반대편 관중석 쪽을 바라보았다.
3학년 관중석 가장 위쪽에 발락을 비롯한 신 학생회 학생들이 자리 잡은 모습이 보인다. 그중에 소타 프쉬케가 실실대며 발락에게 뭐라 농담을 건네고 있었다.
시몬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 방법이 오히려 승률이 더 높아."
"네? 무슨 말 했어요 시몬?"
"아니, 아무것도 아냐, 카미."
시몬이 슬쩍 미소 지으며 다시 고개를 되돌렸다.
"일단 이번 첫 경기에 집중하자."
마침 앞으로 걸어 나온 본부 직원이 또 다른 언데드 뱀 안에 손을 넣고 있었다. 이번에는 학생들의 명단을 삼킨 뱀이었다.
이내 한 장을 뽑아서 공중으로 던지자, 글자가 칠흑의 형태로 배열되어 공중에 그려졌다.
-2학년 팀에 라헤임 노스폴드!
와아아아아아아!
처음으로 뽑힌 참가자는 설원성주이자, 전 특례입학생이었던 라헤임 노스폴드였다.
라헤임은 주위로 가볍게 손을 한번 흔들어 보이더니, 주특기인 '금설' 마법을 이용해 만든 눈구름에 올라타 단번에 경기장에 내려왔다.
괜찮은 쇼맨십에 다시 한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시작이 좋은데!"
딕이 입술을 훑으며 말했다.
"첫 순서부터 네임드네! Top10에는 못 들었지만 라헤임 정도면 괜찮지. 아주 좋아!"
"흥. 난 쟤 못 미더워."
메이린이 콧방귀를 뀌었다.
바로 그때 본부직원이 반대쪽 뱀의 입에서 새로운 명단을 뽑아 하늘로 날렸다.
-3학년 팀의 대니얼 켄드릭!
이에 질세라 3학년들의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이마에 주름살이 깊게 팬 3학년 남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고 있었다.
"누구?"
"저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에요!"
시몬을 비롯한 멤버들의 시선이 딕에게로 향했다. 빠르게 명단을 훑어보던 딕이 입꼬리를 올렸다.
"야! 할 만해, 할 만해. 3학년 전체 103위라네. 사령학과."
이어서 학생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호출되었다.
-2학년 팀의 비엔드 클랙!
-3학년 팀의 조엘 멀레이니!
-2학년 팀의 엘섬 펜지!
-3학년 팀의.......
한 명 한 명 불러나갈수록 학생들의 분위기는 고조되고 긴장감이 올라갔다.
명단을 확인하던 딕은 결국 손에 든 명부를 내팽개치고 제 심장을 붙잡았다.
"와이씨, 피 말린다. 제발! 제발 나만 걸리지 마라. 제발......!"
이제 2학년 마지막 선수를 호명할 차례.
곳곳에 긴장감이 감돌었다.
-에이, 나는 아니겠지? 2학년이 360명이 넘는데 설마.......
-난 내가 나갔으면 좋겠어. 3학년을 합법적으로 손봐줄 기회가 쉽게 오는 줄 알아?
반응은 반반이었다. 자기도 나가고 싶어서 펄쩍 뛰며 기다리는 학생들과, 안절부절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보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벌떡!
그리고 덩치가 커서 눈에 띄는 헥토르는 전자였다. 자리에 일어나 이글거리는 눈으로 명단을 뽑는 본부 직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를 내보내라!' 그런 눈빛이 가득했다.
그리고 조금 옆에 떨어진 곳에는 토토가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중얼중얼 혼잣말을 내뱉는 중이었다. 나가기 싫어하는 마음이 여기서도 느껴진다.
이내 본부 직원이 입 벌린 뱀으로부터 2학년 마지막 멤버의 이름을 빼내어 공중으로 던졌다.
-2학년 팀의 엘리사 셀린!
지금까지의 환호성 중 가장 거대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와중에 Top10이 나왔어! 대박!"
"이건 이겼네!"
엘리사! 엘리사! 엘리사!
요란한 함성이 쏟아지는 가운데, 관중석 뒷자리에 제독 코트를 어깨에 걸친 양갈래 머리 소녀가 제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왜 하필 나냐고오......."
그녀가 고개를 들자, 헥토르가 '지면 죽는다.'하는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 옆의 혈묘족 엘리시아가 양팔을 흔들며 응원하고 있었다.
'망할 것들, 자기 일 아니라고 속 편하지 진짜.'
하지만 이런 환호 속에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마음을 다잡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2학년이고 3학년이고 다들 등장할 때 뭔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분위기다.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에라 모르겠다!"
그녀가 난간을 밟고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동시에 아래쪽에서 아공간이 열리더니, 커다란 전함이 튀어나와 전진했다. 난데없이 관중석에서 전함이 튀어나오자 학생들이 기겁하며 몸을 웅크렸다.
타악!
그녀가 유령선에 올라탄 채 팔짱을 꼈다. 이내 유령선의 포문이 공중으로 향하더니 쿠웅-! 콰앙-! 하고 요란한 포성을 토해냈다. 화려하게 등장한 유령선이 낮게 비행했고, 사뿐히 착지한 그녀가 다른 2학년들과 합류했다.
Top10의 힘은 두말하기 입 아프다. 2학년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첫 경기는 할 만하겠네."
벌벌 떨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다시 장난스러운 얼굴로 돌아온 딕이 입꼬리를 올렸다.
"3학년들은 대부분 중하위권이고, 우리 쪽은 Top10 엘리사에 특례 출신 라헤임이야. 충분히 승산은 있......."
그때 본부 직원이 새롭게 뽑은 하늘로 던졌다.
-3학년 팀의 에이베스 퀸타나르!
순식간에 2학년 관중석에 싸늘한 정적이 휘몰아쳤다.
모두의 시선이 3학년 관중석 꼭대기로 향했다.
두 팔을 등받이에 붙인 채 거만하게 앉아 있는 학생회장 발락의 왼쪽에서, 빨간색 뿔테안경을 쓴 여학생이 다소곳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 학생회의 홍일점이자, 전체 7위 에이베스 퀸타나르였다.
"가라! 에이베스!"
"재능만 믿는 풋내기들에게 실력이 뭔지 보여주고 와!"
에이베스가 뿔테안경을 치켜올린 채 발락을 바라보았다. 발락이 고개를 까닥했고, 에이베스가 걸음을 옮겼다.
이제 학생들 모두가 그녀가 어떻게 경기장에 등장할지 기대하고 있었으나.
"......."
그냥 등을 돌려 반대쪽 문으로 걸어갔다.
"......계단으로 내려오는 거냐."
"뭔가 수수하네."
반면 3학년들은 에이베스답다는 듯 싱글벙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내 경기장에 모든 학생들이 모였다.
2학년들은 마지막까지 작전회의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내가 마지막에 갈게."
엘리사가 피곤한 눈으로 중얼거리며, 에이베스 쪽을 힐긋 살폈다.
"에이베스 선배도 마지막에 나올 거야. 저쪽도 에이스의 체력을 빨리 소모시키긴 싫겠지."
대장전의 룰은 양측 진형에서 한 명씩 나와 싸우는 방식. 전략과 인원 배치가 상당히 중요했다.
특히 네크로맨서들은 모두 상성이란 게 있으니, 상대의 전공과 특기가 뭔지 파악한 뒤에 상대 멤버들의 등장순서를 예측해서 적절한 순서를 정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3학년 팀의 구성은 에이베스 외에 중위권에서 하위권이 포진되어 있는 전형적인 원맨팀.
반면 2학년들은 엘리사를 필두로 라헤임과 엘섬 펜지 등 밸런스가 좋았다. 라헤임이 엄지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이 몸이 처음 나서서 휩쓸어 버릴까?"
"안 돼! 넌 내 앞에 와서 에이베스 선배의 체력을 조금이라도 더 깎아. 그래야 내가 억지로라도 이길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한 그녀가 옆을 돌아보았다.
"네가 처음으로 가. 잘할 수 있지? 펜지 가문."
칠흑역학과 전체 30위에 빛나는 엘섬 펜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흠. 맡겨줘!"
잠시 3학년들 쪽을 가만히 훑어보던 2학년 남학생이 말했다.
"에이베스 선배가 제일 먼저 나오면?"
"오히려 좋지."
엘리사가 즉답했다.
"그 사람만 꺾으면 나머진 내 유령선을 잡을 방법이 없는걸?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
* * *
경기 시작을 앞두고, 시몬 일행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 진짜! 미치겠네."
그때 잠시 자리를 비웠던 딕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관중석으로 돌아왔다.
시몬이 뒤를 돌아보았다.
"딕, 어디 갔었어?"
"엘리사 애들한테 힌트 좀 주려다가 경비한테 저지당하고 오는 길이야."
딕이 한숨을 푹 쉬며 옆자리에 풀썩 앉았다. 메이린이 픽 웃었다.
"그냥 맘 놓고 봐. 엘리사랑 애들이 바보도 아니고. 알아서 잘하겠지."
"바보가 아니라고?"
딕이 헛웃음을 쳤다.
"엘리사 저거 정치가 집안이라고 머리 잘 쓰는 척하는데, 실은 정치 빼고는 그냥 맹탕이야! 자기가 제일 마지막에 나오려고 할 거 아냐."
카미바레즈가 눈을 깜빡였다.
"보통은 가장 강한 사람이 제일 뒤에 나오지 않아요?"
"맞아, 카미. 보통은 그렇지."
그때 본부 직원이 팔을 들어 올렸다.
"2학년 3학년 팀 첫 번째 선수 앞으로."
관중석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2학년 첫 선수는 30위의 엘섬 펜지.
그리고 3학년 첫 선수는.
"에이베스다!"
"역시 에이베스가 처음으로 나왔어!"
빨간 뿔테안경을 치켜올리며, 그녀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어깨가 벌어지고 몸도 근육질인 엘섬 펜지의 앞에 서니 그녀의 체구는 상대적으로 더더욱 가녀리게만 보였다.
"레이디께 무례를 저지르게 되어 죄송하지만-"
명망 높은 펜지 가문의 엘섬이 자세를 낮췄다.
"최선을 다해서 겨루겠습니다."
"신사네? 잘 부탁해 후배님."
에이베스도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이내 심판이 팔을 내리며 호각을 불었다.
"경기 시작!"
그리고.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모두가 입을 벌리고 말았다.
?!
경기 시작 수 초 만에.
엘섬 펜지의 얼굴이 에이베스의 발밑에 깔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