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58화
3학년 관중석 상단부.
"내가 말했지! 2학년 새끼들 입만 살았지, 별거 아니라니까!"
시시덕거리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건, 오랜만에 신이 난 부회장 소타 프쉬케였다.
"마지막에 나온 녀석이 자폭공격만 안 했어도 에이베스가 여섯 명 다 잡았을 거라고!"
"알았어, 알았어."
서기 루크레치아가 손을 휘저으며 그를 진정시켰다. 뒤쪽에 앉은 선도부장 윌 더글러스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4:0은 확정인데! 완벽한 분위기 속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겠어, 발락!"
스으.
가만히 앉아 있던 발락의 눈동자가 돌아가 윌을 응시했다. 윌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며 몸을 움츠렸다.
"왜, 왜 그러시...... 아니. 왜 그래?"
[.......]
발락은 다시 괴물 같은 눈동자를 되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기뻐하기엔 이르다.]
마침 본부 직원이 2학년 팀의 첫 학생명단을 뽑아 들었다.
-메리다 휴 이켈입니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
반대편 2학년 관중석에서 터질 듯한 환호가 튀어나왔다. 침체된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관중석에서 끝없이 메리다의 이름이 연호 된다.
-이번에도 부탁해!
-진짜 너만 믿는다!
전체 4위이자 저주학과 대표.
최근에는 오빠인 판타서스와 같은 종류의 힘을 각성하며 교내 강자 반열에 들어선 슬립 저주의 대가, 메리다 휴 이켈.
3학년들도 웃는 기색이 싹 사라졌다. 지금 이 사태를 일으킨 사실상의 장본인이 등장했으니까.
-쟤지? 고메스를 일방적으로 반 죽여놨다는 녀석이.
-절대 질 수 없겠는데.
싱글벙글 웃고 있던 소타가 입매를 비틀었다.
"뭐, 좋아. 복수할 판을 이렇게 깔아주네."
마침 본인의 경기에서 이긴 총무 에이베스가 돌아왔다. 부러진 빨간색 뿔테안경은 테이프로 고정한 모습이다.
"어서 와 에이베스! 하하하하!"
소타가 두 팔을 벌리며 환하게 반겨주었다. 에이베스는 휑하고 외면하듯 그를 지나쳐 원래 앉았던 발락의 왼쪽에 앉았다.
[상대해 보니 2학년들은 어땠나.]
발락이 물었다.
"생각보다 수준이 높았어."
그녀가 뿔테안경을 붙잡으며 앞을 응시했다.
"우리 전술을 알게 됐을 테니, 다음 경기부터는 이렇게 날로 먹기 어려울 거야.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질지도 모르겠네."
"다들 너무 329기를 고평가한다니까."
소타가 혀를 차면서도 웃었다.
"지켜봐. 이번에도 압승일 테니."
* * *
타박 타박 타박.
교복 위로 가벼운 솜이불을 로브처럼 두른 메리다는 늘 그랬듯 반쯤 졸린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하아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경기장 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계단 밑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잠깐 시간 돼? 메리다."
벽에 등을 기대어 있던 딕이 앞으로 나오며 손가락을 튕겼다. 메리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
"딕 헤이워드다!"
딕이 벌게진 얼굴로 외쳤다.
"전에 같이 3학년들을 물 먹일 계획도 짰었잖아!"
"아, 시몬의 친구."
딕이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덮으며 좌절했다가, 이내 얼른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괜찮다면 전체 4위님께 몇 가지 알려주고 싶은 게 있는......."
오오오오오오오!
그때 밖에서 주위가 뒤흔들리는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 거물이 뽑힌 게 틀림없다.
딕이 후다닥 달려와 창밖을 바라보았고, 메리다도 다가와 옆에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엘리시아! 우리 2학년 팀에 혈묘족의 엘리시아가 뽑혔어!"
환희에 찬 딕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러면 승률이 확 올라가지!"
"별로. 누가 뽑히든 상관없어."
메리다가 졸음 섞인 목소리로 대꾸하며 하품했다.
"나 혼자서 다 박살 낼 테니까."
"흐흐흐. 판타서스 선배님의 힘을 각성했으니 그런 자신감은 당연하지만, 3학년들은 악에 받쳐서 초장부터 세게 나올 거거든? 방심하면 아무리 너라도 위험해."
딕이 입맛을 다시며 수첩을 팔랑팔랑 넘겼다.
"기왕 엘리시아도 있겠다. 엘리시아의 강화계 혈류마법을 최대한 써먹는 전략으로......."
"필요 없어."
메리다가 등을 휙 돌렸다. 한껏 떠오른 민트색 머리카락이 나풀거리며 내려왔다.
"나 혼자의 힘만으로 충분해."
"메, 메리다! 잠깐만......!"
딕이 그녀를 붙잡으러 팔을 뻗는 순간.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갑자기 창밖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외침이 들렸다. 딕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이건 엘리시아가 뽑힌 직후의 함성, 그렇다면 3학년이 뽑힌 차례에 저 소리가 나왔단 거다.
후다닥 달려간 그는 창밖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신에 털이 쭈뼛 솟구쳤다.
관중석 한복판에서 커다란 '괴물'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목 위로 튀어나온 두 개의 머리에, 각각 한 쪽씩 눈을 가진 괴상한 외형. 애초에 사람도 아니었다. 마치 괴물에 인위적으로 교복을 입혀놓은 듯한 모습이다.
괴짜로 이름 높은 그 3학년은 딕도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
<페르노미아 데시우스>
"망...... 했다......."
전신에 힘이 빠진 딕이 그대로 축 늘어졌다. 메리다도 다가와 확인했다.
페르노미아는 3학년 전체 4위의 강자.
3위인 레오나드와 비교하면 성적과 임무 완수율은 낮지만, 순수 전투능력은 그를 넘어섰다고 알려진 강자였다.
"딕 헤이워드."
메리다의 부름에 딕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조금 진지해진 얼굴로 창밖의 괴물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말하려고 했던 전략, 알려줘."
* * *
모든 2학년 팀, 3학년 팀의 멤버가 정해졌다.
2학년에는 Top10의 메리다와 엘리시아에 이어 마검사용자 '쥴'까지 합류했지만, 3학년의 전체 4위 페르노미아의 등장으로 완전히 묻혀 버렸다.
이제 경기장 내부에는 선수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3학년 팀은 페르노미아를 중심으로 활발히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모양새였으나 2학년 쪽은 시작부터 팀워크가 삐걱거리고 있었다.
"내 화학공장 위주로 가야 한다니까! 무조건 나만 지켜!"
전체 35위, 맹독학과의 제시카 카나노르가 제 가슴에 손을 올리며 주장했다.
"공장에서 맹독괴수가 나올 때까지만 버티면 돼. 내가 이겨줄게!"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늑대인간의 메타모포시스 사용자로 유명한 전체 21위, 글렉 크로우가 말했다.
"빠른 고지점령이 해답이다. 전 경기에서 봤듯이 3학년들과 정면 승부하기엔 부담이 커. 룰을 최대한 활용해야 해."
"아니지."
전체 47위, 탄탄한 육체를 자랑하는 전통 마투파 여학생인 리강 초프라가 고개를 내저었다.
"상대에 따른 맞춤 공략이 필요해. 4위인 페르노미아 선배가 화력을 남발하기 전에 선제공격으로 찍어누르는 게 최선이야. 내가 선두에서......."
정작 Top10급인 엘리시아와 쥴은 가만히 있는데, 이 세 명이 더더욱 열을 올리고 있었다. 쥴은 조용히 엘리시아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미래는 보였나?"
엘리시아가 고개를 내저었다. 커다란 토끼귀가 좌우로 살랑살랑 움직였다.
"아쉽지만 안 보였답니다."
"아쉽군."
2학년 세 사람의 의견이 점점 격화되는 그때, 리강 초프라가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에이스가 왔네."
몸에 이불을 로브처럼 두른 메리다가 타박타박 걸어오고 있었다. 2학년들은 모두 말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고, 저 멀리 3학년팀 쪽에서도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이내 제일 늦게 도착한 메리다가 콧바람을 뿜으며 말했다.
"입 다물고 이 계획대로 해."
"석차로 찍어누르기니? 아니, 뭐. 싫다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메리다는 최근 유일하게 3학년을 이겨본 인물이었다.
그녀가 교통정리를 마치고 딕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듣던 제시카가 울컥하며 말했다.
"그냥 네 위주로 가겠다는 거잖아!"
메리다는 눈망울을 깜빡거리며 제 가슴을 가리켰다.
"나는 4위."
그리고 제시카를 가리켰다.
"너는......."
"알았어 알았어! 이 망할 키젠 실력 만능주의!"
제시카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쥴은 마검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 계획, 의외로 나쁘지 않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군."
"맞아. 3학년들도 진짜 메리다의 말처럼 움직일 것 같고."
리강 초프라도 맞장구치고는, 조금 의심스러운 눈으로 메리다를 보았다.
"근데 네 머릿속에서 나온 계획은 아니지?"
메리다는 살짝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그 녀석이 출처는 말하지 말라고 했어."
"원래는 그런 말도 꺼내질 않는 게 보통이야, 메리다."
"좋답니다!"
짝!
그때 혈묘족 엘리시아가 손뼉을 쳤다.
"여기서 우리마저 진다면 기세는 최악으로 떨어질 거랍니다! 앞으로는 우리가 키젠의 주인! 우리 손으로 세대교체, 해보자구요!"
다른 2학년들도 한결 진지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교류전 2차전 경기가 준비되었다.
경기장 중앙에 2학년 팀과 3학년 팀이 거리를 벌린 채 대치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인원은 6:4의 경기.
2학년 팀은 메리다를 최후방에 놓은 뒤, 제시카와 엘리시아가 그 앞을 지켰고, 중간에는 늑대인간 글렉과, 정통파 마투사인 리강이 섰다.
그리고 최전선에는 쥴이 마검을 움켜쥔 채 쪼그려 앉아 있다.
3학년들의 포진도 비슷했다. 전체 4위 페르노미아가 가장 뒤에 있고, 나머지 세 학생은 모두 일렬로 쭉 서 있었다.
그리고 경기장의 좌우 사방 끝에 '점령지'인 마법진이 펼쳐져 있다.
"경기 시작!"
본부 직원이 시작을 알리는 호각을 불었다. 즉각 3학년 두 명이 등을 돌려 좌우로 튀어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좌우 끝의 고지 두 개를 점령하려는 것 같았다.
글렉이 입에서 으르렁 소리를 냈다.
"역시 고지를 점령하려 드는군! 막아야 한다!"
"움직이지 마, 글렉."
리강이 팔을 뻗어 그를 제지했다.
"메리다의 계획대로 해. 뛰쳐나갈 시간 있으면 메타모포시스 마법진이나 쌓아."
"......쯧."
이미 뒤쪽의 엘리시아와 제시카는 피를 조합하거나 화학공장을 세우는 등 준비하고 있었다. 메리다도 눈을 감고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결국 글렉도 메타모포시스를 준비하는 데 집중했고, 이를 본 3학년들의 눈에 이채가 발했다.
"음- 음- 역시 걸려들지 않네. 이제 어떻게 할까? 페르."
중간에 서 있는 3학년 9위, 샤리에 테니에가 말했다. 석차가 떨어졌지만 여전히 Top10을 유지하고 있었다.
페르노미아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말했다.
[원래 플랜으로.]
"좋아."
샤리에가 팔을 빙빙 돌리며 신호했다.
좌우로 달려가던 3학년 두 명이 기다렸다는 듯 방향을 꺾더니, 이내 세 사람이 동시에 2학년들이 뭉쳐 있는 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선배들이 온다!"
촤르르르르르르!
가장 뒤에 있던 페르노미아의 등이 뚜껑처럼 열리더니 커다란 날개처럼 펼쳐졌다.
등 전체를 일종의 생체 키메라처럼 개조한 것이다. 이내 키메라의 날개가 번뜩이며 그 효과가 동기들에게 미치기 시작했다.
<블러드 포 블러드(Blood for Blood)>
3학년 세 명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다. 흑마법으로 강화된 그들이 동시에 자신의 기술들을 사용했다.
샤리에는 허공에 스피릿의 폭풍을 일으키더니, 그 폭풍의 눈에서 무수한 망령견들을 소환해 냈고, 오른쪽의 3학년은 거대한 낫을 손에 쥐었으며, 왼쪽의 3학년은 상체가 우악스럽게 부풀어 오르고 입에서는 독성타액을 줄줄 흘렸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강자들의 흑마법 나열에, 경기장의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쉽지 않겠소만."
철컥.
쪼그려 앉아 있던 쥴이 몸을 일으키고 허리춤의 마검을 고쳐잡았다.
"최선을 다해보겠소."
그리고 살벌한 기세로 밀려드는 선배들을 향해 첫 번째 참격을 날렸다.
* * *
전세는 일방적이었다.
페르노미아의 흑마법으로 강화된 3학년 삼인방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왔다. 2학년들은 필사적으로 막으며 버텼지만, 하나둘 쓰러져갔다.
제일 먼저 리강이 쓰러지고, 메타모포시스가 다 되지 않아 반쯤 늑대인간이 된 글렉이 망령견들에게 붙들려 파묻혔다.
제시카가 지금까지 만든 화학공장을 폭발시키며 저항했지만 얼마 가지 못하며 당했고, 제 몸에 주사를 박고 싸우던 Top10의 엘리시아 마저 페르노미아의 원거리 혈류 마법에 연달아 적중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허억! 헉!"
그나마 쥴이 분투했다.
그는 협공을 당하는 와중에도 유일하게 3학년 한 명을 베어버리는 쾌거를 이루었지만, 결국 남은 3학년들의 집중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음- 음. 남은 건?"
샤리에가 고개를 들었다.
제시카의 화학공장이 파괴되며 주위로 흩뿌려졌던 환각안개가 서서히 걷혀 나가며, 저 멀리 눈을 감고 있는 메리다의 모습이 보였다.
"......."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고는 피곤한 눈으로 삼 학년 세 명을 응시했다.
"이봐, 3 대 1이다. 부끄러운 꼴 보기 싫으면 포기해."
낫을 든 3학년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1학년 시절부터 판타서스 선배님을 존경했다. 지금이라도 포기하면......."
"3 대 1."
메리다가 허리를 숙여 바닥에 대굴대굴 굴러다니는 뭔가를 주웠다.
그것은 엘리시아가 남긴 캡슐주사와, 제시카가 화학공장으로 제조한 즉석효력 포션병 하나였다.
"졸리니까 금방 끝낼게요."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사를 제 어깨에 박고, 포션병을 들이켰다.
[위험하다. 빨리 잡아.]
페르노미아가 급히 말했다. 샤리에와 다른 3학년들이 즉각 메리다를 향해 뛰어갔지만, 그녀는 이미 눈을 감은 상태였다.
<메리다 오리지널 - 무아몽중>
세상이 그녀를 중심으로 일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