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59화
<메리다 오리지널 - 무아몽중>
눈을 감은 메리다가 하늘로 떠올랐다. 그녀가 두 팔을 펼치자 주위의 경관이 일그러지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온다!"
3학년 세 명이 일제히 경계했다.
어느새 관중석의 관중들이 동물 인형으로 변해 손뼉을 치는 모습으로 바뀌었고, 경기장 내부에는 장난감 블록이나 초콜릿으로 만든 건축물이 불쑥불쑥 들어섰다.
보랏빛으로 물든 음울한 하늘에는 소리없이 화려한 폭죽이 가득 터졌다. 낄낄낄! 꺄르르르륵! 으스스한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흘러나온다.
"흐으음- 꿈을 현실화하는 흑마법이라니."
샤리에가 입술을 훑었다.
"무시무시하네."
[방심하지 마라. 샤리에.]
교복 차림의 꿈틀거리는 괴물 속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내 장난감 건물 곳곳에 문이 열리더니 팔 한쪽 없는 태엽 병정, 머리가 찢어져 솜이 삐져나온 동물인형, 눈알 빠진 봉제인형 등이 껙껙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공격해!"
3학년들이 일제히 흑마법을 연사했다. 샤리에는 스피릿의 공간 속에서 망령늑대를 소환해 주위로 풀어버렸고, 낫을 든 3학년은 인형 부대 쪽으로 뛰어 들어가 무차별적으로 검기를 쏟아냈다.
처억.
페르노미아가 커다란 괴물 손을 치켜들자, 사방에서 피폭발이 일어나며 인형들이 터져 나갔다. 그러나 그 뒤로 인형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끝도 없구...... 우아악!"
낫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가던 3학년이 바닥 타일을 밟았다. 갑자기 스프링이 튀어나오며 그의 몸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기다렸다는 듯 하늘에 떠 있던 모빌 인형들이 입을 벌리며 날아왔다.
"제길! 이상한 바닥도 있어! 조심해!"
3학년이 공중에서 낫을 휘둘러 인형들을 베어내고 있는데, 그의 시선이 문득 한 쪽으로 향했다.
"잠깐! 저기 메리다가 보인다!"
이불을 덮은 채 눈을 감고 있는 메리다가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오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가 입을 찢으며 외쳤다.
"내가 잡으러 간다!"
잔챙이들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큰 의미가 없다. 이런 종류의 흑마법은 술사를 잡는 게 핵심.
그가 손에 쥔 낫을 붙잡더니 양쪽으로 떼어냈다. 마치 짧은 수확용 낫처럼 변한 그것을 양손에 붙잡고는 '칠흑 체내 분화'를 켜고 돌진했다.
촤아아악!
촤아아아악!
그의 낫이 휘둘러 질 때마다 반달 모양의 검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 인형들을 도륙했다. 밀려드는 인형의 파도를 몇 차례나 베어낸 그가 비로소 메리다의 앞까지 도달했다.
"다들 보고 있지? 내가 잡았......!"
그러나 그가 낫을 휘두르려는 순간.
꺄르르르륵!
꺄르르르!
요정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기다렸다는 듯 메리다의 몸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어느새 그녀의 몸은 동화책 더미로 이루어진 탑에 올라가 있었다.
촤라락-
촤락-
탑에서 동화책들이 하나둘 빠져나와 공중에서 펼쳐지더니 이름 모를 한 소년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옛날 옛적에 어느 마을에 한 공주님이.......
-배가 고픈 늑대가 어린아이의 냄새를 맡고 숲에서 내려왔어요.
-마발리는 남들은 모르는 자신만의 비밀이 있었습니다.
여러 동화책들이 동시에 자기 자신을 읽어달라는 듯 앞다투어 목소리를 냈다. 낫을 든 3학년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정신공격이라도 하는 거냐! 헙!"
촤아아아악!
갑자기 옆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공주가 커다란 식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뒤로 뒷걸음쳐 피한 3학년의 등을, 난데없이 턱시도 차림의 야수가 덮쳤다.
"제길!"
턱시도 야수인간의 목을 날리며 물러나던 3학년이 갑자기 휘청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딛고 있는 바닥이 섬처럼 떨어져 나간 것이다.
쏴아아아- 쏴아아아!
뒤편은 주위가 온통 바닷물이었다. 이번에는 인어들이 일어나 손을 흔들거나 하프를 연주하는 모습이 보인다.
"상상력 한번 더럽게 풍부하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구만!"
이제 그 인어들이 이빨을 보이며 달려들고 있었다. 3학년이 숨을 헐떡이며 연신 낫을 휘둘러댔다.
"으음, 페르노미아!"
망령 들린 맹수 떼를 이끌던 샤리에가 다급히 옆을 보며 외쳤다. 어느새 자신의 망령들은 모두 장난감에 집어삼켜지거나, 붙잡혀 선물상자 속에 갇히고 있었다.
"뭐라도 좀 해보는 게 어떤지?"
장난감과 인형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페르노미아가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지.]
그 한마디를 남긴 직후, 페르노미아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가 괴물 같은 오른팔로 교복을 붙잡아 찢었다. 징그러운 촉수가 와글거리는 괴물의 몸에 무수한 마법진이 빛을 발했다.
<페르노미아 오리지널 - 블러드 얼터(Blood Altar)>
그가 두 팔을 치켜들자, 바닥에서 피로 범벅이 된 허수아비들이 나무처럼 솟아나더니 그를 찬양하듯 두 팔을 치켜들었다.
마치 뭔가의 의식을 시작하는 모습.
이내 페르노미아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고, 그 안에서 피의 기둥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 상태에서 그의 몸이 빙글빙글 돌았다. 장난감 도시가 절단되고, 타일이 갈라져 절벽으로 변한다. 메리다의 인형들이 솜을 토해내며 사라져 간다.
초광범위 정밀 절단계 혈류마법. 공중에 뜬 그가 메리다의 장난감 세계를 수천 갈래로 갈라 버리고 있었다.
-끽? 끼긱!
그런데 어느 순간 어둠 속에서 침팬지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몸통도 없이 어둠 속에서 얼굴만 둥둥 떠다니는 형태.
그 침팬지가 눈동자를 굴려 페르노미아를 보더니 섬뜩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제길.]
직후 페르노미아는 자신의 최후를 예감했다.
째애애애앵-!
좌우에서 밀려든 한 쌍의 심벌즈가 페르노미아의 몸을 중간에 놓고 맞부딪혔다. 굉음과 함께 피의 허수아비들은 모조리 시들어버리고, 페르노미아의 흑마법도 멈췄다.
-끽! 끼끽!
이내 심벌즈가 벌어지며, 건어물처럼 납작해진 형태의 페르노미아가 힘없이 낙하했다.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든 형태였다.
그것은 바닥을 몇 차례 뒹굴다가 미동도 없이 눌어붙었다.
[.............]
부욱!
그때 그 살덩이 속에서 사람의 팔이 튀어나왔다.
부욱! 부욱!
이내 등이 완전히 갈라지며, 검은색 키젠 교복을 입은 소년이 튀어나왔다. 퀭한 얼굴의 그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이거 꽤 힘들게 만든 신작이었는데."
머리를 긁적이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침팬지가 끽끽거리며 분노했고, 어두운 하늘에서 여러 심벌즈들이 기둥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너, 내 피를 뒤집어썼네."
페르노미아가 두 팔을 가슴 위로 들어 올렸다. 이내 열 손가락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꺾으며 중얼거렸다.
"리벤지(Revenge)."
퍼어어어어어어어어엉!
장난감 세계를 흥건히 적신 피들이 다시 살아 있는 것처럼 솟구쳐 2차 폭발을 일으켰다. 침팬지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고, 내려오던 심벌즈들도 모두 바닥을 힘없이 굴러다녔다.
"음."
페르노미아가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샤리에 테니에가 탈락했습니다.]
바닥에 쓰러진 샤리에가 인형들 사이에 파묻힌 채 사라지고 있었다.
[길로 맥턴이 탈락했습니다.]
낫을 들고 싸우던 3학년은 기절한 채 헤실헤실 웃는 얼굴로 인어들에게 안겨 바닷물에 빠져들고 있었다.
어느새 동료들 모두 당하고 페르노미아 본인만 남은 상황. 그가 고개를 들어 동화책의 탑 위에 잠들어 있는 메리다를 바라보았다.
"이런 정신 나간 흑마법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닐 거야. 그렇지? 슬슬 한계일 거고."
그가 가슴 위에 손을 올려 심장을 붙잡는 시늉을 했다. 시간만 끌어도 이길 것 같지만, 그러면 교류전의 의미가 없다.
터어어업!
그의 발밑에서 열린 아공간에서 개구리의 얼굴이 튀어나와 페르노미아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한 학년 선배로서, 끝까지 승부해 주마."
<서먼 얼터>
이내 불쾌하게 인간을 닮은 개구리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뒷다리를 이용한 가공할 만한 도약력으로 통통 뛰어가며 장난감들의 공격을 피하거나 몸으로 받아내며 메리다에게 나아갔다.
곳곳에 괴물의 파란색 피를 이용한 푸른 피폭발이 연달아 터지는 건 덤이었다.
덥석!
그러나 오래 버티지 못했다. 무수한 장난감들에게 발목이 잡히고, 뒤이어 상자에서 튀어나온 삐에로 인형들이 단검으로 등을 무차별적으로 찔렀다.
괴물이 죽어가고 있는 가운데 입을 열고 페르노미아를 내뱉었다.
타액으로 흥건해진 페르노미아가 공중에서 빙그르르 공중제비를 돌았다.
"다음."
짝!
페르노미아가 손짓하자, 하늘에서 새로운 몸이 나타났다. 날개가 달린 괴수의 가슴이 열리며 페르노미아를 집어삼켰다.
비행괴수는 쏟아지는 공격을 피하면서 동화책 탑에 올라가 있는 메리다를 향해 고공낙하 했다.
'찾았다.'
그때, 잠들어 있는 줄 알았던 메리다가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오른팔을 치켜들었다.
-빨간구두의 공주는 영원히 춤을 추었습니다.
[뭐?]
쩌어억!
괴수의 이마가 뭔가에 꿰뚫렸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구두의 구두굽이 바늘처럼 괴수를 찌른 것이다.
꽈드득!
등 뒤에서도 반대쪽 구두 한쪽이 날아와 괴수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괴수는 꼬리를 움직여 메리다 쪽을 향하게 하고는 '알' 하나를 쏘아 보냈다.
"술사가 가슴이나 머리에 있는 것처럼 연기하는 건-"
퍼억!
이내 알껍데기를 깨고 페르노미아의 팔이 튀어나왔다.
"가장 기본적인 테크닉이야."
검은 교복을 휘날리며 메리다의 뒤에 착지한 페르노미나가 손바닥을 펼쳤다. 손바닥에서 시뻘건 마법진이 일어나더니, 메리다의 몸에 붉은 띠가 생겼다.
그것으로.
"아윽!"
메리다가 거칠게 몸부림치며 피를 토했다.
[메리다 휴 이켈이 탈락했습니다.]
그녀가 쓰러지듯 무너져내리고, 그들이 있는 동화책탑을 포함한 동화 속 세계의 모든 것이 회색빛이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재능은 대단하지만 아직 멀었어."
그가 동화책 탑에서 떨어지려는 메리다의 손을 붙잡아주며 웃었다.
"좋은 교훈이 됐다고 생각......."
따아아아악-!
그리고 머릿속에 울리는 강렬한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동화는 다음 장면으로 바뀌어 있었다.
휘이이잉-
페르노미아는 경기장 모랫바닥에 누워 있었다. 누운 채로 팔다리를 휘적휘적 흔들고 있었다.
"?!"
뭔가 이상하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관중석에 있는 3학년들이 이마를 짚고 있거나, 못 보겠다는 듯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방금 사용했던 키메라의 몸들이 축 늘어져 있었다.
처음에 썼던 괴물, 그리고 개구리와 비행괴수까지.
콕.
뒤이어 그의 뺨에 작은 손가락이 닿았다.
"일어났어요? 선배님."
쪼그려 앉은 메리다가 일어나라는 듯 손가락으로 그의 뺨을 쿡쿡 찌르고 있었다. 그가 멍한 얼굴로 스크린을 응시했다.
<메리다 휴 이켈 : 21%>
<페르노미아 데시우스 : 0%>
<샤리에 테니에 : 0%>
<길로 맥턴 : 0%>
"경기를 종료하겠습니다. 승자!"
본부 직원이 팔을 들어 올렸다.
"메리다 휴 이켈! 그리고 2학년 팀입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메리다가 등을 돌렸고, 페르노미아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는 듯 제 머리를 붙잡았다.
그러다 뒤늦게 자신이 슬립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체 어디서부터 꿈이었지?'
그가 고개를 돌리니, 여전히 샤리에와 길로 맥턴은 흙바닥에 누운 채 몸을 휘적거리고 있었다.
"음- 음- 그 정도론 소용없단다. 2학년!"
"하하하하! 페르노미아가 먼저 당했지만 진짜 에이스는 나였다! 받아라!"
듣기만 해도 얼굴이 다 붉어지는 광경이었다.
두 번째 경기는 메리다의 승리였다.
* * *
메리다의 압승으로 2학년 관중석은 거의 축제 분위기를 방불케 했다.
"이겼다! 이겼어!"
메이린이 깡총거리며 관중석을 뛰어다니다가 카마바레즈를 꼭 껴안았다.
"우리가 3학년들을 이겼어!"
"네, 메이린! 우리도 할 수 있어요!"
다들 신이 나서 기뻐하는 가운데, 딕이 실실 웃으며 팔짱을 꼈다.
"이게 다 전략의 승리지. 다들 1경기와 차이를 느꼈지? 어?"
시몬이 딕을 돌아보았다.
"전략이 있었어?"
"당연하지! 아까 메리다에게 필승전략을 전수해 줬어."
"뻥 치지 마. 또 경비한테 저지당했으면서."
"진짜라니까!"
"아하하, 저는 믿어요. 딕!"
다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본부 직원은 다음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회자 콘라드가 입을 열었다.
"동화와 괴수의 대결! 정말이지 화려하고 두려운 경기였습니다! 그럼 바로 다음 경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세 번째 경기와 네 번째 경기는 1:1 개인전입니다! 호명하는 학생은 경기장으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단체전은 상성과 전략이 들어갈 여지가 컸다면, 이번에는 정말로 1:1. 그저 운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경기의 대상은 각 학년의 전교생.
2위인 샤텔 마에르부터, 꼴등인 딕 헤이워드까지 누구도 나올 수 있었다.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누가 나올까?"
"이번에도 Top10 간의 전투였으면 좋겠는데."
"제발 나만 피해가라......!"
본부 직원은 이번엔 3학년의 이름을 먼저 뽑았다. 사회자가 말했다.
"3학년의 알바데린 휴이오 학생! 경기장으로 나와주시길 바랍니다!"
3학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뭔가 분위기가 묘했다.
"알바데린?"
"알바데린이 누구야?"
2학년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얼른 명단을 훑어보던 딕의 입꼬리가 쭈우욱 올라갔다.
"와, 이번엔 이길 확률 높다."
"왜 그래?"
"알바데린 선배, 전체 115위야."
3학년이 현재 130명 정도 있는 걸 감안하면, 일단은 중하위권인 학생이었다.
딕 외에도 그런 정보가 오가는지 2학년들 중에서 상기된 표정이 보인다.
물론 115위라지만 3학년은 3학년.
방심할 수 없었다.
"다음은 2학년입니다."
복부직원이 뱀에서 새로운 명단을 뽑아 하늘로 흩날렸다.
이어지는 한마디에 2학년 관중석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토토 아모리,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