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63화
"아아아아아악!"
분노로 눈이 회까닥 돌아간 소타가 사령마법을 연거푸 쏴댔다.
반면, 하늘에 떠 있던 메이린은 태연한 반응으로 커다란 마녀 모자챙을 붙잡아 한쪽 눈을 가렸다.
"연산."
쓰고 있는 모자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마녀 모자의 오로라가 회전하며 마법진의 수식을 대리연산한다. 수천 가지의 경우의 수가 계산되고, 등 뒤에 있던 마법진이 그 과정을 실시간으로 펼쳐나간다.
"포착."
이내 그녀가 두 팔을 펼치는 것으로 전면에 네 장의 대형 마법진이 펼쳐졌다.
"포격개시."
사출된 네 속성의 마법이 합쳤다가 흩어지며 소타 프쉬케에게 쏟아졌다.
화염이 타오르고, 얼음이 쏟아지고, 지면이 솟구치며, 마지막으로 바람이 내리꽂힌다.
거기에 엘리멘탈 마스터 상태인 메이린은 낮은 수준의 마법을 연사하는 게 아니었다. 하나같이 '다크 프로미넌스'급의 고난도 마법들.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린 듯한 대마법사의 현신 같은 모습이다.
소타는 제대로 된 반격도 못하고 회피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다......!'
경기를 지켜보는 시몬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메이린이 새롭게 익힌 바람계 마법이 소타 프쉬케를 상대하는 최적격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몰아붙일 줄은 예상 못 했다.
"놀랐죠?"
옆에서 들리는 살랑거리는 목소리에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언제 왔는지 세르네가 여우 같은 눈웃음을 흘리며 옆자리에 걸터앉아 있었다.
"세르네!"
"메이린이 나한테 뭔가를 부탁한 건 처음이에요."
그녀가 양손으로 턱을 괴고 혓바닥을 달싹였다.
"어떻게든 이겨야 하는 경기가 있고, 그전까지 강해져야 한다면서. 엘리멘탈 마스터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상아탑 오리지널의 대리수식마법. 그 완성을 도와달라고 하더라고요."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메이린이 네게 부탁을 했다고?"
"네! 그래서 도와줬죠. 규정상 같은 상아탑 소속이라도 탑주급의 비기를 알려주는 건 금지되어 있지만-"
그녀가 쿡쿡 웃었다.
"소꿉친구니까요. 물론 대가도 받기로 했지만요?"
대가라니.
간악한 미소를 흘리는 게 상당히 불안했다.
"아무튼 메이린은 뼈를 깎는 노력을 했어요. 중간고사 준비는 일주일 전에 다 끝내놓고, 이것만 쭉 연습했다니까요."
"......."
시몬은 고개를 돌려, 커다란 마녀 모자를 쓰고 3학년 부회장을 압도하는 메이린을 바라보았다.
"환상적이지 않아요?"
세르네의 여운에 젖은 목소리가 들렸다.
"복수심에 지배당해 칠흑화염계만 고집하던 그 고집불통이, 어느새 4속성의 엘리멘탈 마스터가 됐어요."
"......."
"시몬, 당신이 그 아이를 이렇게 바꿔놓은 거예요."
메이린에게는 이 경기를 이겨야 할 누구보다 강력한 동기가 있었다.
2학년 1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그녀는 시몬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들여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판타서스의 추천으로 2학년 학생회장이 된 시몬도 '낙하산'이라며 이런저런 구설수에 올랐는데, 메이린이라고 덜할 리가 없다.
-그냥 친구 잘 둬서 부회장에 오른 거잖아.
-뭐 대단하다고.
키젠에 입학한 뒤 지금까지, 메이린은 무엇이든 늘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하고 이겨내 왔다. 그녀는 재능도 뛰어났지만 지독한 노력파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에게 사람들이 '친구 잘 둔 덕'을 운운하고 있으니, 겉으로는 떳떳한 척했어도 속으로는 속앓이를 해왔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행동으로 증명했다.
임무평가 기간 때, 일부러 취업한 작년 학생회 선배의 임무지에 찾아가서 학생회 업무를 배운 것만 봐도 그랬다. 결국 그녀는 방대한 학생회의 업무량을 소화해 냈고, 실질적으로 시몬 학생회를 떠받친 건 그녀였다.
그렇게 주위 사람들에게 하나둘 인정을 받아 가는가 싶더니, 시몬이 학생회장직에 물러나며 메이린도 물러나게 됐다.
그래서 시몬은 늘 생각했다.
이제는 사람들이 그녀를 인정했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누구보다 부회장직에 적합한 인물이며, 이 키젠의 누구 못지않은 실력자이며 노력가다.
"하아아아아아!"
한번 기세가 오른 메이린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인귀상반' 상태인 소타 프쉬케가 솟아오르는 지면을 유령처럼 통과해서 빠져나왔지만, 그 안에서 마그마처럼 튀어 오른 불꽃에 데는 바람에 괴로운 소리를 냈다.
하나하나 간단히 피할 수 있는 마법이 없다.
흑마법이 극한으로 조형된 건 물론, 다른 속성의 마법이 섞여 있다. 지면 속에서 용암이 흘렀고, 바람 속에 얼음 알갱이들이 모여 있다.
"흐읍!"
정신없이 흑마법을 난발하던 메이린이 이내 두 손을 모았다. 그녀의 두 손을 중심으로 주위의 대류가 모이며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지상에서 칠흑 대지계 마법을 피하던 소타가 홱 고개를 돌렸다.
"너, 그 마법은......!"
이내 그녀가 두 팔을 들어 올리자 바람이 해골의 형상을 이루며 격렬히 휘몰아쳤다.
"에이젤의......!"
<커스 템페스트>
쿠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수천 겹의 회전 칼날로 이루어진 바람의 마법이 소타를 향해 내리꽂혔다. 소타가 내부에서 비명을 질러댔다. 그의 라이프 게이지가 엄청난 속도로 줄어들었다.
"작년 수석인 에이젤 선배님의 결투평가 기록영상을 보고 내 나름대로 리메이크해 본 거예요."
메이린이 웃었다.
"그렇게 친하진 않았지만, 졸업도 못 하고 학교에서 떠난 에이젤 선배의 몫이라고 해둘게요."
이것은 세대교체.
고위 바람계열 흑마법을 사용하는 또 하나의 강자가 키젠에 나타난 것이다.
쿠우웅!
회오리가 끝나고, 소타가 휘청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가 충혈된 눈으로 메이린을 올려다보았다.
"메이린 빌렌느!"
쿠구구구구구구구!
주위의 칠흑이 요동쳤다. 소타가 입안으로 손을 넣더니, 아까 집어삼킨 그 구체를 꺼냈다. '인귀상반' 상태가 풀리고, 그가 그것을 붕괴시키며 새로운 흑마법을 사용했다.
사아아아아아아아!
폭주한 망령들이 소타의 주위를 살벌한 기세로 휘감았다.
폭주한 망령에 깃드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었으나, 소타는 이미 눈이 돌아가 있었다. 그가 단숨에 바닥을 박차고 공중에 있는 메이린을 향해 도약했다.
"죽여주마!"
메이린은 그저 태연히 공중에 떠 있었다. 2학년들이 피하라며 아우성치는 그때.
삐이이이익-!
호각소리가 울려 퍼졌다.
"경기 종료!"
심판이 큰소리로 외쳤다.
<경기 시간 - 15:00:00>
<메이린 빌렌느 : 55%>
<소타 프쉬케 : 8%>
<메이린 빌렌느 : 381마리>
<소타 프쉬케 : 127마리>
"승자는-"
소타는 그 말을 듣지도 않고 메이린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 승패와는 상관없이 그녀를 이 자리에서 끝장낼 생각이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소타뿐만이 아니었다.
"죄송해요. 호각소리를 듣기 전에 이미 방아쇠를 당긴 뒤라."
"?!"
갑자기 소타의 아래에서 바람의 벽이 펼쳐지더니 좌우사방에서 동시에 불과 얼음과 바위가 쏟아져 들어왔다.
<메이린 오리지널 - 엘리멘탈 버스트>
쿠콰콰콰콰콰콰콰콰콰!
다속성의 융합으로 이루어진 현란한 색상의 회오리가 소타 프쉬케를 휘감았다. 그의 비명소리가 폭풍우 속에 묻혔다.
곳곳에서 놀란 소리가 쏟아졌다. 본부 직원이 한숨을 푹 쉬며, 학생 보호장치를 가동시켰다.
그렇게 꽤 긴 시간 뒤에 회오리 속에서 새까맣게 그을린 소타가 바닥에 떨어져 힘없이 흙바닥을 굴러다녔다.
끄그그그그끅!
소타가 눈이 뒤집힌 채로 바닥에 꿈틀꿈틀 댔다. 불에 탄 화상과 얼음에 덮인 동상은 물론 온갖 자상과 타박상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오로라의 마녀 모자를 쓴 메이린이 공중에서 내려왔다.
"너...... 내, 내가 어떻게든 죽여 버리......!"
소타가 일어나려 했지만, 휘청거리며 다시 바닥에 엎어졌다. 헤엄치듯 허우적거리는 꼴이 참으로 볼품없었다. 3학년들은 긴 한숨을 쉬었다.
"너! 너!"
"너너 거리지 마요. 나는 미래의 상아탑주, 드높은 순혈 상아탑 가문의 메이린 빌렌느."
그녀가 긴 모자챙을 붙잡으며 눈을 찡긋했다.
"몇 달 뒤면 눈도 못 마주치게 될 테니까- 굴종하세요, 평민?"
소타가 불의의 일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등을 돌려 걸어갔고 이내 2학년 쪽에서 열화와 같은 뜨거운 함성이 쏟아졌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메이린-!
이 사태의 주모자의 완벽한 몰락.
2학년들이 속이 시원하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함성을 토해냈다.
-역시 전 부회장!
-메이린이라면 귀족 갑질도 얼마든지 환영이야!
-이게 얼마만의 엘리멘탈 마스터지? 처음 봐!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 환호하는 학생들과 뜨거운 열기.
딕은 본래의 싸가지 없는 속성을 되찾았다며 좋아하며 손뼉을 쳤고, 카미바레즈는 조용히 소매로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메이린은 점점 흩어지는 마녀 모자챙을 붙잡은 채 고고하게 걸어갔다. 다색의 오로라를 이끌고 하늘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걷는 그녀의 모습에 주위의 남학생들은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한쪽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자리에 일어난 푸른 머리카락의 소년이 손뼉을 치고 있었다.
"믿은 보람이 있지?"
그녀가 말했다. 시몬도 웃는 얼굴로 답했다.
"최고야, 메이린."
"메이리인!"
경비들을 깃털로 기절시키고 경기장에 난입한 세르네가 메이린을 와락 끌어안았다. 신이 난 딕과 카미바레즈도 바로 뛰어 내려왔다.
"시몬 너도 와야지!"
딕의 재촉에 시몬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합류했다. 멤버들은 힘껏 얼싸안은 뒤, 어깨동무를 하고는 환호하는 2학년 관중석을 향해 팔을 들어 올렸다.
완전한 승자의 분위기였다.
* * *
"......."
반면 3학년들의 분위기는 침체되다 못해 극도로 험악해졌다.
-아니, 상성적으로 불리한 건 아는데.
-키젠 부회장치고는 너무 경기력이 형편없지 않았냐.
소타 프쉬케의 패배 그 이상의 문제가 터지고 있었다. 꾹 눌러왔던 소타에 대한 불만이 한 번에 폭발한 것이다.
-대체 저 실력으로 어떻게 Top10을 단 거지?
-저 새끼 결평 때마다 돈 주고 승리 산 거 모르는 놈 있어?
-경기 끝나고도 상대 치려고 했잖아. 인성이 개차반이야.
곳곳에서 험악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특히 가장 표정이 안 좋은 건 학생회장 발락이었다. 그가 손을 얹고 있는 팔걸이는 이미 반쯤 쪼개져 있었다.
[......에이베스 퀸타나르.]
"응, 발락."
에이베스가 빨간색 뿔테안경을 치켜올리며 답했다. 이내 철제 마스크에서 긴 숨결과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이 순간부터 네가 부회장이다. 총무직을 대신할 녀석을 찾아라.]
"벌써 쳐내도 되겠어? 머리는 잘 돌아가는 녀석이니 뽑아먹을 때까지 뽑아먹겠다며."
발락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쓰레기인 건 참을 수 있다만, 약한 쓰레기는 학생회에 필요 없다.]
* * *
밤하늘에 별이 총총하게 박혀 있는 제3 경기장.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밖에서 맴도는 1학년들의 항의로 교내에서는 결국 1학년들까지 안으로 들이기로 했다. 거의 전교생이 지켜보는 매치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화두는 단 하나.
학생회장은 누가 될 것인가.
모두가 가슴 졸이고 있는 가운데, 마침내 심판이 목소리를 냈다.
"발락 학생회장, 그리고 시몬 학생. 경기장 앞으로 나와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