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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869화 (869/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69화

시몬과 카쟌은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곳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마법진을 남겼다고요?"

"그래."

카쟌이 교복 재킷 단추를 풀고 열어젖혔다.

셔츠가 아니라 맨몸이었다. 발달한 가슴 근육과 복근에 눈이 가는 것도 잠시, 상처투성이인 옆구리 부분에 아티팩트로 추정되는 나침판이 떡 하니 박혀 있었다.

저걸 왜 저렇게 보관하는지는 조금 의문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건 아공간 제작에 쓰이는, 시공의 절대좌표를 측정하는 아티팩트다. 어떤 공간에 있건 정확한 고유치를 출력하지."

그가 다시 교복 재킷의 단추를 잠그며 말을 이었다.

"나는 그리모와르의 공간에 완전히 빨려들기 직전에, 내 위치에 대한 좌푯값 단서를 외부에 남겼다. 이제 밖에서도 내 위치를 알았을 테고, 곧 지원군이 도착하겠지."

시몬은 머리끝을 다듬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그럼 아까 갇힌 게 아니라 갇혀준 거라는 말씀도......."

"좌표를 캐내기 위해서지. 어지간해선 난 죽지 않는다."

카쟌은 그렇게 대꾸하며 긴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그리모와르 같은 결사의 일원이나 협력자를 잡으려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그런 자들을 몇 번이고 잡아 왔지만, 영양가는 없었지."

"그, 그럼 더 큰 목적이 있다는 건가요?"

"그래. 우리의 목적은 결사의 본거지다."

본거지란 말에 시몬의 눈이 커졌다. 카쟌은 계속 설명을 해나갔다.

"우리는 지금까지 결사를 뿌리 뽑기 위해 갖은 고생을 했다. 하지만 놈들은 어떤 경우에도 결정적인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결사는 현재 이 대륙에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도시 하나가 결사의 손에 들어간 적도 있었고, 수만 명의 대륙민들이 결사에 팔려가 실험당했으며, 누구나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거대 세력들이 결사의 자금으로 움직이고 있기도 했다. 근래에는 '혈천교 사태'급의 사건이 에프넬에서도 터졌다고 한다.

이제는 암흑연합이든 신성연방이든 중립지대든, 대륙의 모두가 결사에 경각심을 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현재 찾아낸 건 결사의 '지부' 정도에 불과했다. 이런 지부들이 점조직처럼 대륙 전역에 흩뿌려져 있을 뿐, 그것들을 파괴해도 결사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결사의 사람들을 붙잡아도 마찬가지, 그들은 모두 붙잡아 놓는 족족 뇌가 터지거나 정신이 망가지는 등 비밀을 지키기 위한 방책이 있었다.

어떻게든 그런 자살저주를 막고 정보를 캐내더라도 결사의 '핵심'에 닿기에는 부족했다. 애초에 그들도 아는 게 적었으니까.

결국 결사 세력을 일소할 만큼 완전히 뿌리 뽑으려면 그들의 본거지를 찾아내야 했다.

"대륙을 쥐잡듯이 뒤져도 본거지에 대한 실마리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내려진 결론."

카쟌이 시몬을 바라보았다.

"결사의 본거지는 이 대륙에 없다."

"!"

시몬의 얼굴이 바싹 굳었다.

"그게 무슨......."

"조금 옛날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만, 예전에 '타라도스'에 임무평가를 하러 갔을 때를 기억하고 있나?"

"기억하죠."

타라도스. 1학년 2학기 때 에이션트 언데드 '역병의 마수, 칼'을 손에 넣었던 지역이었다.

당시 결사는 지방세력과 손을 잡고, 타라도스에 '지부'를 세운 뒤, 그곳의 주민들을 납치해서 잔인한 인체실험을 자행하고 있었다.

그때 시몬은 동료들과 함께 결사의 지부에 진입해 승리했고 타라도스를 해방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고 보니."

시몬이 기억을 더듬었다.

"그때 결사의 '지부'가 던전 안에 있었네요."

"그렇다. 암흑연합의 눈을 피해야 했던 그들은, 급기야 던전 안에 기지와 실험실을 차렸지."

딱.

시몬이 손가락을 튕겼다.

"아! 그럼 이 대륙의 던전 어딘가에 결사에 본거지가 있다는 이야기죠?"

"그리 간단하다면 진작에 찾았을 거다."

카쟌은 눈에 난 흉터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이미 대륙에서는 갈 수 없는 '닫힌 던전'에, 결사는 자신들의 왕국을 세웠을 가능성이 크다."

시몬이 입을 벌렸다.

"그런 게 가능해요?"

"결사는 '포탈'이라는 기술을 사용한다. 던전에서 던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지."

"아."

시몬도 결사의 포탈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1학년 말의 혈천교 사태 때 흑막이었던 대주교 실라지와의 결전. 그때 시몬은 헤르세바의 '모래의 세계'를 써서 실라지를 헤르세바의 던전에 가두었지만, 실라지는 포탈을 열어서 혈천교 신도들을 던전 안으로 불러들였다.

시몬이 그 이야기를 하자 카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포탈이 결사의 본거지로 가는 유일한 열쇠다."

"어렵네요."

이러면 키젠이나 에프넬 같은 대륙 굴지의 세력들이, 지금까지 결사의 본거지를 찾아내지 못한 것도 이해가 된다.

애초에 갈 방법이 없는 곳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쪽도 그동안 놀고 있던 건 아니다."

카쟌이 자신의 몸에 박아넣은 아티팩트를 가볍게 만졌다.

"아직은 결사에 비해 조잡하지만, 우리도 던전에서 공간을 넘을 수 있는 포탈 기술을 어느 정도 개발했다."

"정말이에요? 그 포탈을요?"

"그래. 이제 공간의 좌푯값만 확보한다면, 비로소 결사의 본거지로 넘어가 이 긴 싸움을 끝낼 수 있게 되겠지."

카쟌이 의연한 표정으로 시몬을 보았다.

"네프티스 님의 명령으로 우리는 긴 시간 동안 준비했다. 결사가 움직이기만을 기다렸고, 이렇게 걸려줬군."

그리모와르가 결사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알 방도는 없다.

하지만 그게 누구든 상관은 없었다. 중요한 건 키젠 3학년 2위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틀림없이 결사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고, 포탈을 여닫을 만한 권한을 가졌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결사에서 오고 있을 내 동료들이 널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그 말을 떠올린 시몬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고 보니 그리모와르가 지원군을 부른다고 했어요. 최소 한 번 이상 포탈을 열 게 분명해요!"

"그리고 시몬, 네가 배신의 군단장이라는 사실을 안 이상, 너를 상대할 만한 강자를 불러들이리라는 것도 분명하지."

"즉."

시몬이 맞장구쳤다.

"그 강자는 결사의 본거지에서 올 확률이 높겠네요."

"그렇다."

갑자기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중요한 미션이라니.

카쟌은 아공간에서 자신의 몸에 박아넣은 것과 비슷한 나침반 아티팩트를 시몬에게 건네주었다.

"우리 중 누구라도 포탈을 발견하면, 이 아티팩트를 작동시켜 포탈 내부의 좌표를 측정해야 한다."

시몬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밖에서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을 거다. 곧 믿을 만한 네프티스 님 측의 네크로맨서가 이리로 넘어오겠지. 우리는 좌표만 저장한 뒤 빠져나오고, 나머지는 그들에게 맡기면 된다."

시몬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죠. 우선 그리모와르를 찾아내는 게 급선무겠네요."

"그녀의 냄새를 따라 이동하고 있긴 하다만."

카쟌이 걸음을 멈추며 팔을 들었다. 시몬도 걸음을 멈추었다.

"쉽지는 않을 것 같군."

어느새 그들이 걷고 있는 숲 전체가 커다란 도서관처럼 변해 있었다.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책장에 가려져 반대편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미로였다.

책장이 워낙 거대해서 마치 도서관 안의 벌레가 된 느낌이다. 그리고 책장 곳곳에서 몬스터들이 스멀스멀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모와르가 이 공간에서 키우는 괴물들이었다.

스릉!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꺼내 들었다.

"가죠, 카쟌."

"그래."

카쟌도 자세를 낮추었다. 두 남자가 바닥을 박차며 미로 속으로 몸을 날렸다.

* * *

같은 시각.

"네, 빠르게 준비하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 경기장은 모든 독극물과 가스가 빠져나오며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제인은 주위를 돌아다니며 심각한 얼굴로 어딘가에 통신을 하고 있었다.

"교수님! 보고드립니다!"

하수인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시몬 학생과 발락 학생의 행방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네프티스 님은요?"

"그쪽 현장에 상황은 보고 했습니다만, 네프티스 님께 소식이 닿고 도착하려면 역시 시간이......."

그때 제인이 걸음을 멈추었다.

"네, 수고했어요. 가보세요."

"고생하십시오!"

그녀가 하수인들을 돌려보냈다.

이내 가만히 정면을 응시하고 있던 제인이 넌지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오세요."

.............

그 말에 아무것도 없던 허공이 조심스레 갈라지더니, 메이린과 딕, 카미바레즈가 찔끔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그 뒤에는 환상계를 펼친 장본인인 세르네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교들의 통제에 따르지 않고, 여기 남아서 뭐 하는 겁니까?"

제인의 목소리에 노기가 들렸다.

딕과 카미바레즈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숙였지만, 메이린은 용기를 내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교수님! 시몬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죠? 그렇죠?"

"동기들을 데리고 기숙사로 돌아가세요."

제인이 차갑게 대꾸했다.

"여러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교수님......!"

"메이린 빌렌느!"

그녀가 목소리를 벌컥 높이며 야단을 쳤다. 결국 한풀 꺾인 메이린도, 다른 두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제인의 목소리가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자칫하면 여러분도 위험해집니다. 돌아가세요."

세르네가 태연한 반응으로 일행의 등을 미는 시늉을 했다.

"그럼요 교수님- 애들도 반성하고 있으니 봐주세요. 제가 데려갈게요."

메이린이 째릿 세르네를 노려보았지만 그녀는 웃는 얼굴로 혓바닥을 내밀었다.

제인이 다시 다른 곳으로 향하려는 그때.

"저도 걱정스러운 건 마찬가지입니다, 교수님."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

모두의 눈이 커졌고, 제인도 한숨을 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시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려주세요. 저희들도 돕겠습니다."

바로 로레인이었다.

제인은 긴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그건 차기 총장으로서의 명령입니까?"

"아니요. 그게......."

"애석하게도 나는 '아직' 당신의 부하가 아닙니다, 로레인 아크볼드."

그 말에 로레인마저도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제인은 찬바람 쌩쌩 날리는 모습으로 등을 돌렸다.

"오늘 여러분의 모습에 대단히 실망했습니다. 더는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아줬으면 합니다. 돌아가세요."

축객령이었다.

결국 학생들은 제인이 부른 하수인들에 의해 쫓겨나듯 경기장 밖으로 나가야 했다.

"크으읍, 아쉽다!"

경기장 앞 공원길을 터덜터덜 걷고 있던 딕이 제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하필 거기서 딱 제인 교수님이 지나가서 들키냐."

"그, 그래도 이번 계획은 너무 무모했어요."

카미바레즈가 말했다. 딕이 동기들을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와, 근데 요즘 제인 교수님 진짜 성격 많이 바뀐 것 같지 않냐? 원래는 학생들이 고생하든 뭐든 '그것이 키젠이니까' 하면서 표정 싹 굳히는 스타일이었는데."

"흥."

아직 아까 야단맞은 감정이 남아 있는 듯, 메이린이 불만스럽게 입술을 삐쭉였다.

"요즘은 좀 우릴 과보호하시긴 해."

"그만큼 정이 많이 들었고, 학생들을 사랑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카미바레즈가 얼른 나서서 변호했다. 세르네가 생글생글 웃으며 메이린을 뒤에서 폭 껴안았다.

"맞아요. 세리가 메이린을 그렇게 여기는 것처럼?"

"저리 꺼져어!"

메이린이 질색하며 세르네의 이마를 밀어내는 사이, 로레인은 눈을 감은 채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로레인."

카미바레즈가 걱정스럽게 다가왔지만, 로레인은 괜찮다는 듯 웃어 보였다.

"어, 저기."

딕이 앞을 가리켰다.

"누가 있는데?"

방금 그들이 쫓겨난 것처럼, 경기장 입구 앞에서 키젠 교복을 입은 한 남학생이 뭐라고 소리 높여 말하고 있었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하수인들은 묵묵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국 포기한 건지, 남학생이 긴 한숨을 쉬며 터덜터덜 걸어갔다.

"음?"

그때 그 남학생이 일행들을 보았다.

"너희들은......."

"아, 안녕하세요!"

그는 3학년 3위의 레오나드였다.

선배의 등장에 2학년들은 공손히 인사했다. 세르네만이 헤실거리며 손을 위아래로 휙휙 흔들어 보일 뿐이었다.

'어색해.'

막 고개를 든 메이린의 얼굴은 조금 벌게져 있었다.

어쩐지 방금 교류전에서 3학년들과 죽어라 싸워라 하던 사이라 그런지, 어색하단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레오나드는 대수롭지 않은 반응으로 눈을 깜빡였다.

"너희들이 여긴 어쩐 일이야? 학생들은 대부분 기숙사에 들어가 있을 텐데."

"시몬에게 무슨 일인 생긴 것 같아서 찾으러 왔다가 쫓겨났습니다!"

딕이 당당하게 말했다.

"그래? 음......."

그 말을 들은 레오나드가 예리한 눈빛으로 턱을 쓸다가 말했다.

"혹시 너희들, 시몬을 찾는 거라면 날 도와주지 않을래? 나한테 생각이 있어."

"?"

일행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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