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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873화 (873/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73화

"이게 대체 무슨 개짓거리야."

킬로바니안이 싸늘한 표정으로 발락을 응시했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그리모와르 쪽으로 향했다.

"그리모와르. 실험체 BC1을 회수하려는 거 아니었어? 왜 BC1과 암서가 분리되어 있지?"

"킬로바니안......!"

발락이 빠드득 이를 갈며 그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그리모와르가 팔을 들어 제지했다.

"안 돼요, 발락."

"너는 빠져라. 내가 상대하겠다."

그녀가 토해내듯 한마디 했다.

"제발."

"......."

그제야 발락이 멈춰 섰다. 그리모와르가 대신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내가 설명할게. 설명할 수 있어, 킬로바니안. 연구자로서 내가 이런 판단을 내린 이유는......."

푸욱!

살이 찢어지는 불쾌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말이 끊겼다.

그리모와르의 동공이 천천히 움직여 아래로 향했다.

"아."

자신의 가슴을 뚫고 킬로바니안이 팔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방금 튄 본인의 선혈이 흘러내렸다.

"에이, 무슨. 설명할 필요 없어."

어느새 그녀의 뒤로 돌아온 킬로바니안이 실실거렸다.

"배신자 그리모와르. 네가 실험체 BC1에 집착한단 사실은 알고 있었어. 우리도 신경은 쓰고 있었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퍽!

킬로바니안이 팔을 빼냈다. 다리에 힘이 풀린 그녀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재능 있는 천재 연구자를 이렇게 없애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네."

그 모습을 본 발락의 눈에 귀기가 일렁였다.

"킬로바니안!!"

<리메이크 인퍼널 아머>

그의 몸이 단번에 독의 갑주로 휘감기더니, 그 갑주의 모든 힘이 오른팔로 집중되었다. 비대한 망치처럼 변한 그것으로, 발락은 킬로바니안의 안면을 강타했다.

쩌어어어어어어엉!

그리모와르의 연구실이 격렬하게 뒤흔들렸다. 책장에서 책들이 쏟아지고 커튼들이 거세게 펄럭거렸다.

에이-

폭발처럼 자욱한 독연 속에서 킬로바니안의 태연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농담이지?"

"!"

맞은 자세 그대로, 아무런 방어도 하지 않고 다가온 킬로바니안이 코트 속 오른손을 빼서 발락의 안면을 툭 두들겼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그 파급력은 차원이 달랐다. 흙먼지가 회오리치고, 주변의 테이블이 넘어지다 못해 공중으로 떠올랐다. 거칠게 날아간 발락이 반대쪽 벽면까지 날아가 부딪혔다.

"이게 키젠 최강? 별거 아니네. 암서가 빠져나가서 그런가."

투투툭-

코뼈가 무너져 내리고, 얼굴이 뻘겋게 주먹 모양으로 일그러진 발락이 고장 난 인형처럼 고개를 까닥댔다.

그런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손은 꿈틀거리며 흑마법을 사용하려 하고 있었다.

"공기가 또 오염됐잖아."

킁킁 냄새를 맡은 킬로바니안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나는 쾌적하지 못한 환경은 질색이야."

저벅 저벅 저벅.

그가 느릿한 걸음걸이로 쓰러진 발락에게 다가갔다.

"빨리 해치우고 쉬러 가......."

거기까지 말한 킬로바니안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른팔을 머리 뒤로 보냈다. 창백한 보라색 참격이 해일처럼 부딪히며, 나비 모양의 파편을 사방으로 튀겼다.

"......와우."

킬로바니안이 의외라는 듯, 다소 얼떨떨한 목소리로 뒤를 돌아보았다.

"대체 어떻게 살아 있어? 부총장."

피로 정장의 반이 벌겋게 물든 제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한쪽 팔은 못 쓰게 된 듯 축 늘어져 있었고, 다리도 불편한 듯 절뚝거렸지만 그 기세만큼은 강렬했다.

그녀의 서슬 퍼런 시선이 쓰러진 발락과, 가슴에 구멍이 난 그리모와르에게로 향했다.

"나는 아직 저들의 퇴학증에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타악.

그녀가 움직이는 한 손으로 단추를 풀고 정장셔츠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빨갛게 물든 흰 셔츠가 드러났다.

이내 넥타이를 풀고는 머리카락을 모아 단단히 묶었다.

"그러니, 저들은 '아직' 키젠의 학생입니다. 저들을 처벌할 권한은 당신이 아니라 내게 있습니다."

"멋진데."

킬로바니안이 제 눈을 비비는 시늉을 했다.

"그보다 대단해. 이게 말이야. 내 능력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날 이길 수가 없는 구조라서 자신감이 있었거든. 괜히 키젠 부총장이 아니네."

"당신의 그 능력."

푸슉!

킬로바니안이 '응?' 하는 표정을 지으며 눈을 비비던 자신의 손등을 보았다.

그의 손등에 긴 상흔이 그어진 채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대충 알 것 같아서요."

늘 태연한 얼굴로 툭툭 말을 내뱉던 킬로바니안의 표정이 일순 싸늘하게 식었다.

"그래, 진짜로 너. 어떻게든 여기서 죽여야겠다."

"할 수 있다면."

두 강자가 동시에 서로에게 뛰어들며 격돌했다.

연구실 내부에 연달아 거대한 충격음이 쏟아지는 그때, 벽에 기대어 쓰러져 있던 그리모와르의 동공이 움직였다.

"......."

그녀는 기절한 발락의 모습을 눈에 담더니 최후의 힘을 쥐어짜 내 손끝을 움직였다. 이내 그녀의 손끝이 교복재킷에 닿았고, 주머니에서 빨간색 목걸이를 꺼냈다.

우웅-

그녀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칠흑이 목걸이에 전달되고 있었다.

* * *

"허억! 후욱!"

같은 시각, 시몬과 카쟌은 다소 무식한 방법으로 미로를 돌파해 나가고 있었다.

두 사람이 올라가는 높이에 맞춰 미로의 벽도 높아졌지만, 순간적으로 속력을 확 내어서 미로의 벽의 최고 높이를 웃돈다면 벽을 뛰어넘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벽 하나를 넘을 때마다 너무 많은 칠흑과 체력을 소모했고,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몸 상태가 점점 더 악화되는군."

독에 중독된 시몬의 컨디션이 시간이 지날수록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보다 못한 카쟌이 걸음을 멈추고 시몬을 돌아보았다.

"시몬, 넌 휴식을 취해라. 계속 격렬하게 움직이면 네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

"괜찮아요, 카쟌."

시몬이 숨을 헐떡이며 애써 웃어 보였다.

"다른 것도 아니고 결사의 본거지를 알아낼 기회잖아요? 그리고 이번 일을 끝내지 못하면 밖에서 치료를 받을 수도 없을 테고요."

"하지만......."

"!"

그때 시몬이 뭔가를 느낀 것처럼 동공이 확 커졌다. 이내 교복 주머니에 손을 넣은 그가 그리모와르가 준 목걸이를 꺼냈다.

"그 불길한 걸 아직도 가지고 있었나."

카쟌이 혀를 찼다.

"카쟌, 이것 봐요."

시몬이 목걸이를 카쟌에서 보였다.

"그리모와르의 흑마법이에요. 우리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있어요."

"......확실히 그렇게 보인다만, 그녀가 우리에게 위치를 알려주는 이유가 뭐지? 함정일 수 있다."

"그리모와르가 굳이 이렇게 뻔한 함정을 팔 이유가 없잖아요. 그리고."

시몬은 그녀의 칠흑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칠흑은 무척이나 희미하고 위태로웠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촛불 같았다.

직감.

여기서는 무조건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몬은 순전히 직관에 의존한 판단을 내리고는 자세를 낮췄다.

"먼저 가겠습니다."

"음?"

시몬은 눈을 감고 천천히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피어를 입은 군단장 상태에서만 쓸 수 있는 공간을 뛰어넘는 힘. 이것은 시몬이 원할 때마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종류의 기술은 아니었다.

가장 필요한 건 상대를 찾아내겠다는 의지.

세상의 원리를 비집고, 방해하는 그 모든 것을 꺾어 비틀어야 하는 만큼, 절박하고 절실한 동기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결사의 본거지를 찾아낼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그간 결사가 일으킨 참극을 수도 없이 봐왔다.

많은 사람들의 슬픔과 피를 봐왔다.

결사가 어떤 명목과 목적 아래 움직이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저들이 원하는 대로 활개 치는 걸 내버려 둘 순 없다.

시몬의 시선이 그리모와르의 칠흑을 느낀다.

마치 망원경으로 보는 시야처럼, 좁고 흐릿하게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그걸로 충분하다. 시몬의 몸과 마음이 마치 물살에 휘말리듯 그곳으로 떠밀린다.

<군단기 - 비월(飛越)>

후우우우우우우우우웅!

목표를 제외한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돌파하는 힘. 방해되는 모든 장애물과 난간을 비집고 공간 그 자체를 뚫고 나온다.

찰나에 가까운 아주 짧은 시간 만에.

"?!"

"!!"

시몬의 몸이 그리모와르의 연구실에 도달한다.

아무런 전조도 없는 등장이다. 서로 공격을 맞대고 있던 제인과 킬로바니안이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공중에서 미끄러지듯 회전한 시몬의 시야가, 짧은 순간 모든 상황을 담는다.

가슴에 구멍을 뚫린 채 숨을 거둔 그리모와르.

벽에 기댄 채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발락.

피를 흘리며 악착같이 싸우는 제인.

그녀를 상대하는 정체불명의 남자.

시몬의 판단은 빨랐다.

"하아아아아아아아!"

파멸의 대검이 남자의 등을 강타한다. 뭔가 투명한 벽에 가로막히듯 카가각! 거리는 소리와 함께 허공을 파고들다 이내 남자의 등을 얇게나마 베어낸다.

그가 '큭!' 소리를 내며 비틀거렸고, 무너지는 힘의 균형을 놓치지 않은 제인이 낫을 휘둘러 남자에게 유효타를 가했다.

쩌정!

남자가 핏방울을 흘리며 뒤로 주르륵 물러난다. 제인이 돌진해 계속해서 그를 밀어붙이는 사이, 바닥에 사뿐히 착지한 시몬의 시선이 한 방향으로 향한다.

일그러진 시뻘건 포탈.

결사에서 사용하는 바로 그 포탈이다.

'찾았다. 결사의 본거지로 가는 포탈이 확실해!'

지금이 유일한 찬스다. 옷 속에서 좌표 아티팩트를 작동시킨 시몬이 포탈을 향해 돌진했다.

"농담이지? 어딜 들어가려고."

그런데 제인을 상대하고 있던 킬로바니안이, 난데없이 포탈의 앞에서 튀어나와 시몬을 걷어찼다.

꽝!

굉음과 함께 시몬의 몸이 뒤로 주르륵 물러났다. 파멸의 대검으로 발길질을 막아냈는데도 전신이 덜컹거렸다.

'윽! 일격에 손목이 상했어!'

[조심해라 소년!]

머릿속으로 피어가 경고했다.

[지금까지의 적과는 뭔가 다르다. 전혀 다른 차원의 강적이다!]

에이션트 언데드인 피어가 이렇게까지 적을 높게 표현하는 건 처음이었다.

시몬도 단 일격에 상대의 힘을 가늠했다.

"야단날 뻔했네. 포탈로 바로 들어가려는 걸 보니까, 뭔가 속셈이 있는 거겠지?"

킬로바니안이 손가락을 딱! 튕기자 포탈이 서서히 닫혀가기 시작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는 안 될 거야."

시몬의 이마에 땀이 삐질 흘렸다.

'간파당했다.'

"배신의 군단장."

그때 제인이 뒤에서 다가오며 시몬을 불렀다.

'제인 교수님!'

꽤 상처가 커 보였지만, 제인은 칠흑역학과 교수답게 놀라운 속도로 마법진을 펼치고 있었다.

"카쟌은 만났겠죠?"

"......."

"내가 빈틈을 만들겠습니다. 신호하면 돌파하세요."

돌파.

그녀는 이쪽의 목표가 '아티팩트'로 결사 본거지의 고정좌표를 담는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정체를 아는지 모르는지는 확실하진 않지만, 지금은 그런 문제를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시몬은 고개를 끄덕이며 파멸의 대검을 고쳐 쥐었다.

"에이이, 소용없다니까."

킬로바니안이 줄어드는 포탈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섰다. 그가 딛고 선 바닥에서 파장 같은 것이 펼쳐 나갔다.

'......화이트와 비슷한 힘이 느껴져.'

잘은 모르겠지만 마치 완성형의 화이트 같은 느낌.

저 괴물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인간을 뚫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시몬은 제인을 믿었다.

"지금입니다!"

<트랜스퍼>

그녀가 마법진을 완성한 동시에 시몬이 돌진했다.

킬로바니안이 이를 드러내며 두 팔을 벌렸다. 하지만 그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 아까 제인에게 베인 상처에서 나비가 올라오고 있었다.

나비는 분해되는 동시에 킬로바니안의 혈액으로 마법진을 만들었고, 그것을 스스로 발동시켰다.

"!"

제인과 킬로바니안의 위치가 바뀌었다.

'위치 역전의 저주!'

시몬은 제인에게 뛰어가는 격이 되었다. 그녀가 옆으로 비켜주었고 시몬이 포탈로 뛰어들었다.

"이건 아니지!"

눈앞에서 사기라도 당한 듯한 표정의 킬로바니안이 우악스럽게 돌진했다.

가히 어마어마한 속도. 다가오는 제인의 낫은 그냥 몸으로 받아내며, 팔을 홱 내뻗었다.

쩡!

그때 파멸의 대검이 앞으로 세워져 다가오는 팔을 방어했다. 킬로바니안이 웃음 지었다.

'됐어, 방어하게 만들었다! 이제 잡아당겨서......!'

그러나.

[크흐흐!]

킬로바니안의 공격을 막아낸 건 피어였다. 어느새 피어의 본 아머에서 벗어난 시몬이 포탈 속으로 몸을 던졌다.

"멈춰어어어어어어!"

킬로바니안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과 함께 시몬의 몸이 포탈의 깊은 구렁텅이로 떨어져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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