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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874화 (874/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74화

시몬은 지금까지 타왔던 텔레포트 마법진이 얼마나 훌륭한 발명품인지 절감했다.

결사가 쓰는 포탈은 날것 그 자체였다. 안정성은 조금도 생각지도 않고, 그냥 끔찍한 공간으로 사람을 던져 버리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렇게 공간의 미로 속에 던져진 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휘이이이잉-

어느 순간 피부로 바람이 느껴졌다.

포탈의 이동이 끝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몬은 천천히 눈을 떴다.

"와......."

평생 본 적 없는 밤하늘이 펼쳐져 있다.

웅장하고 눈부셨다. 대륙에서 보던 것보다 밤하늘이 훨씬 더 가까운 느낌이어서,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았다.

달도 아니고, 빛을 뿜어내는 천체들이 눈앞에서 돌아가는 게 보인다. 별과 별 사이를 큼지막하게 가르는 밤하늘의 흉터는 주변의 별을 끊임없이 빨아들이고 있고, 그 위의 소용돌이에서는 별을 뱉어내고 있다.

가깝고, 빠르게 흐르는 밤하늘.

시몬은 그 모습을 눈에 담으며 맞바람과 함께 자유낙하하고 있다.

"......."

이제는 밤하늘이 보이는 시야 끝에서, 건물의 처마 같은 게 보인다.

용, 혹은 커다란 뱀의 비늘을 연상케 하는 재료를 차곡차곡 포개어 만든 이 건축양식은 대륙에서 본 적이 없는 형식이다.

처마 아래로는 길고 넓적한 벽면이 이어지는데, 이 정체불명의 건축물은 탑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아 있는 이것은 시몬이 봤던 상아탑보다 몇 배는 더 크고 높은 것 같다.

바로 그때.

드르르륵-

탑의 꼭대기 층의 문이 서서히 열리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긴 옷을 입은 그자는 뒷짐을 지고 어둠 속에서 흰 동공만을 보인 채,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사람?'

인간이 사는구나.

이제야 뒤늦게 여기가 결사의 본거지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비로소 정신을 차린 시몬이 퍼뜩 뒤를 돌아보았다.

"아."

전율했다.

소름이 등허리를 타고 퍼져나간다.

아까 봤던 탑과 일종의 통일성을 띠는 양식의 건축물들이 끝도 없이 지면에 펼쳐져 있었다.

이곳은 그냥 아지트가 아니었다.

'여기가 결사의...... 본거지라고?'

단순한 기지나 실험실 같은 곳으로 생각했다.

조금 더 규모가 크다면 지하에 자리 잡은 드워프들의 그랜드포지 같은 장소를 생각했다.

그런데 결사의 본거지가 이 정도 규모였다니. 시몬이 알고 있는 가장 큰 도시인 드레스덴 왕국의 수도, 랭거스틴보다 더 커 보였다.

우리가 전쟁을 해도 이길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만큼 결사의 세력은 거대했다.

이 도시의 끝에는 바다나 강 대신 낭떠러지가 있었다. 그 옆으로는 동물의 지느러미 같은 게 보였는데,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그것이 허공을 헤엄치듯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

평생 처음 보는 그런 경관들에 빠져 있는 것도 잠시.

삐빅-

주머니에서 소리가 들렸다. 시몬은 급히 안주머니로 손을 넣어 좌표 측정 아티팩트를 빼냈다.

마침내 이 공간에 대한 좌표가 담긴 것이다. 카쟌이 말했던 대로 됐다.

'이제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시몬은 고개를 들어 하늘에 뻥 뚫려 있는 붉은 포탈을 바라보았다. 포탈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고, 포탈의 크기도 줄어들고 있다.

워낙 급박한 상황이라 어떻게든 포탈에 들어오긴 했는데, 그 뒤는 어떻게 할지 생각 못 했다.

몸만 성했다면 친위대든 뭐든 어떻게든 했겠지만 손가락 하나 꼼짝하기 힘들었다. 아까 포탈을 넘어올 때 독이 더 빠르게 퍼진 것 같았다.

여기서 바닥에 충돌하면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낙사다.

시몬이 집중력을 발휘하며 칠흑을 일으키려는 순간.

-시몬!

하늘에서 어떤 강렬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금 포탈에서 빠져나온 새빨간 혜성이 보인다.

시몬은 남은 힘을 쥐어짜 내 두 팔을 세우고 힘껏 칠흑을 일으켰다.

화아아악!

검푸른 칠흑이 넓은 부채처럼 일렁였다. 그러자 포탈 주위를 정처 없이 맴돌던 붉은 혜성이 갑자기 방향을 꺾으며 시몬을 향해 날아왔다.

"찾았어, 시몬!"

붉은 혜성 속에서 익숙한 모습이 보인다.

휘날리는 검은 머리카락, 이마에 솟아 있는 작은 뿔, 루비처럼 반짝이는 빨간 눈동자. 시몬이 외쳤다.

"로레인!"

"잡아!"

그녀가 함성을 내지르며 손을 뻗었고, 시몬도 손을 뻗었다.

이내 소년과 소녀의 손이 허공에서 만나 서로의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녀가 시몬을 잡아당기며 제 품에 힘껏 안았다.

"로레인!"

안기는 순간, 시몬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녀의 옆구리에 커다란 상처가 보였다.

"너 상처가......!"

"이 정돈 괜찮아."

하늘을 응시한 그녀의 빨간 동공이 번쩍였다.

"돌아갈게!"

그러고는 반대쪽 손으로 이능을 일으켰다. 붉은 힘이 태양처럼 타오르며 두 사람의 몸이 다시 포탈을 향해 쏘아져 올라가기 시작했다.

'크윽!'

정신을 차리기도 버겁다. 의식이 점점 흐릿해진다.

로레인은 몇 번이나 '힘내!', '지금 기절하면 안 돼!' 하고 외쳤다. 점점 더 포탈이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포탈의 크기는 이제 거의 바늘구멍처럼 좁아져 가고 있었다.

시몬이 눈에 힘을 주고 포탈을 바라보았다.

"제발!"

화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망막을 두들기는 빛과 함께 시몬은 정신을 잃었다.

* * *

한편.

포탈 밖에서 킬로바니안과의 결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이 길을 뚫으며 버티는 사이, 로레인과 카미바레즈, 레오나드가 그리모와르의 실험실에 진입했다.

그중에서 로레인은 시몬이 포탈에 들어갔다는 말에 킬로바니안의 공격에 부상을 입으면서까지 그를 구하러 들어갔으며, 포탈 밖에 남은 두 사람은 제인을 지원하며 킬로바니안을 상대하고 있었다.

<블러드 스톰>

카미바레즈가 일으킨 피의 회오리가 성벽처럼 솟아올랐다.

아무것도 남김없이 갈가리 찢어버리는 혈류의 중심. 그 중심의 틈을 비집고, 고생을 모르는 듯한 한 쌍의 하얀 손이 삐져나왔다.

"그러니까-"

그것은 혈류를 붙잡듯 가볍게 움켜쥐었다.

"소용없다니까!"

후콰아아아아아아악!

회오리가 좌우로 갈라지며, 격노한 킬로바니안이 두 팔을 벌린 채 모습을 드러냈다. 강력한 혈류마법이 단번에 사라져 버리고 그 후폭풍으로 카미바레즈가 '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니들 지금 제정신이야? '본가'에 외부인을 두 명이나 보내다니!"

한창 전투 중이었지만, 킬로바니안은 침을 튀기며 짜증을 냈다.

"나는 구원자 킬로바니안이야! 너희들을 인도해 줄 구원자란 말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구원을 기다리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임무를 이렇게 방해해? 어르신께서 날 어떻게 생각하실지 생각만 해도 끔찍......!"

거기까지 말한 그가 이야기를 멈추고 동공을 옆으로 움직였다. 자신의 관자놀이에 부딪힌 거대한 금속 덩어리가 보인다.

레오나드의 소환수, 언데드 미노타우로스가 공성추를 짊어지고 돌진한 것이다.

"니들, 정말 이럴 거야?"

킬로바니안을 향해 내지른 공성추가 역으로 금이 가고 있었다. 그것을 짊어진 미노타우로스도 타격을 받았는지 전신에 피를 뿜으며 휘청거렸다.

이내 킬로바니안이 산책하듯 다가와 주먹을 대충 휘둘렀다. 수박 머리통 터지는 소리와 함께, 머리 잃은 소의 몸통이 바닥에 엎어졌다.

"크윽!"

소환수를 잃고 사념 연결이 강제로 끊긴 레오나드가 신음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끈질기네, 그만 좀 포기해라."

이미 킬로바니안의 주위에는 여덟 기 정도의 언데드 미노타우로스들이 끔찍한 형태로 널브러져 있었다. 전부 레오나드가 보낸 소환수들이었다.

"역시 너부터 죽여야겠어."

그렇게 결심한 킬로바니안이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두들겼다. 쉬이익 하고 바람이 새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레오나드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이제 하나-"

꽝!

즉각 피어가 나타나 킬로바니안을 걷어차며 레오나드를 구해내고.

촤아아악!

뒤로 밀려나던 킬로바니안을 제인이 낫으로 베며 지나갔다. 킬로바니안의 어깨에서 핏줄기가 솟구쳤다.

"다들 찔끔찔끔! 짜증 나게 하네!"

킬로바니안이 포효했다.

전투에 숙련된 베테랑인 제인과 피어는, 레오나드와 카미바레즈를 지키면서 최대한 그들의 힘을 활용해 킬로바니안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레오나드는 숨을 헐떡이며 동공을 굴렸다.

'역시 제인 교수님. 우리 중 유일하게 저 결사 놈에게 공격을 성공시키고 있어.'

그의 눈동자가 반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저 키가 큰 스켈레톤은 뭐지? 무척 강해. 제인 교수님의 소환수인가?'

카미바레즈도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며 피어를 바라보았다.

'...예전에 데스랜드에서 봤던 제7 군단장님의 소환수. 왜 여기에?'

[크하하하하!]

피어와 제인이 맹렬히 낫과 대검을 휘두르며 밀어붙이고 있었다. 킬로바니안이 훌쩍 뒤로 물러섰다.

"너희들! 이런 식이면 곤란해!"

그가 열을 올렸다.

"내 구원을 받아들이려면 사소한 죽음은 그냥 받아들이라고! 세계를 구해야 하는데 동료 몇 명은 그냥 나한테 줘도 상관없잖아! 하여간 너희 우민들은 구원의 큰 그림을 못 보고......!"

다들 수다스러운 킬로바니안의 이야기를 듣는 척했지만, 사실 모두의 시선은 포탈 쪽으로 향해 있었다.

시몬과 로레인의 귀환이 늦어지고 있다.

"니들! 내 말 듣고 있는-"

촤아아아아아아아아!

그때였다. 손가락 하나 들어갈 만큼 좁던 피의 포털에서, 드디어 로레인과 시몬이 빠져나왔다.

두 사람은 포탈에서 빠져나와 그 주변을 지키고 있던 킬로바니안의 앞에 쓰러졌다. 부상당한 로레인은 굳은 얼굴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시몬은 이미 기절해 있었다.

킬로바니안의 공허한 동공이 움직여 그들을 직시했다. 카미바레즈가 외쳤다.

"시몬! 로레인! 위험해요!"

"오. 그래, 너희들. 그 안에서 '전부' 다 본 거지?"

스으-

킬로바니안이 시몬을 향해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이대로 영원히 침묵해라."

킬로바니안이 그대로 오른팔을 내질렀다. 살점이 뚫리는 퍽!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피가 후두둑 튀었다.

킬로바니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니, 그러니까 대체 몇 마리나 있는 거냐고."

쓰러진 시몬과 로레인의 앞을 가로막은 건 레오나드의 미노타우로스였다. 소환수를 잃은 레오나드가 이마를 짚으며 고통스럽게 비틀거렸다.

"나는 후배에게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다 균형을 잡으며 숨을 헐떡였다.

"녀석에게 그리모와르를 소개한 잘못, 눈앞에서 그리모와르를 막지 못하고 이번 일에 끌어들인 잘못. 더 이상은-"

"어?"

킬로바니안이 뒤를 돌아보았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

하늘에 초대형 아공간이 벌어지며, 그 안에서 지금까지의 미노타우로스와는 비교도 안 되는 크기. 반인반우(半人半牛)의 상반신이 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레오나드 오리지널 - 미노스의 왕>

"후회는 없다!"

성곽만 한 크기의 주먹이 킬로바니안의 얼굴에 내리꽂혔다.

그 충격으로 바닥이 온통 갈라지고 주변의 책들이 날아오르는 사이, 카미바레즈가 쏜살같이 달려와 시몬과 로레인을 안고 뛰었다.

"오-"

킬로바니안이 감탄했다.

그 거대한 주먹에 맞고도 조금도 뒤로 밀려나지 않았다.

"사실 발락이 아니라 네가 키젠 1위인 거 아니야?"

티딕.

틱.

킬로바니안을 때린 소의 팔이 비틀리듯 꺾이며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순식간에 팔 한쪽이 괴사당한 반인반우가 비명을 내질렀다.

킬로바니안이 공허하게 한숨을 쉬며 몸을 돌리고는, 카미바레즈를 뒤쫓으려 구두 앞면을 지면에 툭툭 두들겼다.

그의 몸이 쏜살처럼 정면으로 쏘아지는 순간.

꽈아아아앙!

그 진행 방향 중간에 끼어든 피어가 파멸의 대검으로 그를 후려쳤다.

[크하하하! 소년에게는 못 간다!]

"이 망할 언데드가!"

사라라라라라라-

바닥에 내려온 킬로바니안을 중심으로 이 구역 전체가 보랏빛 나비들로 넘실거렸다. 그 어떤 공격도 받아들이던 킬로바니안이 이번만큼은 움찔하며 걸음을 멈췄다.

<파피용 누아르(Papillon Noir)>

제인의 흑마법이었다. 주위가 그녀의 결계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결계에서 탄생한 나비들은 카미바레즈와 로레인, 시몬, 그리고 레오나드까지 실어서 결계 밖으로 안전히 운반했다.

"저자는 내게 맡기고 이곳을 빠져나가도록 하세요."

"하지만, 교수님!"

"시몬 학생이 걱정입니다. 서두르세요."

차분한 제인의 말에 카미바레즈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달렸다.

"죄송합니다! 부탁드립니다, 교수님!"

레오나드도 절뚝이며 뒤따랐다.

낫을 움켜쥔 제인이 킬로바니안과 대치했고, 그 옆으로 피어가 클클거리며 파멸의 대검을 어깨에 짊어진 채 나왔다.

"묻고 싶은 말은 많지만 생략하죠, 에이션트 언데드. 이번만큼은 힘을 합친다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크하하하하!]

척!

피어가 파멸의 대검을 고쳐 쥐었다.

[네가 소년을 지키기 위해 싸우겠다면 말이다!]

"너희들 진짜-"

킬로바니안이 두 팔을 늘어뜨리며 세상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어? 내가 니들한테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렇게 못살게 구는 건데?"

그가 텁! 소리가 나게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 소름 끼치는 눈동자가 안광을 뿜어냈다.

"봐줘라 좀."

"거절합니다."

제인이 낫을 쥐고 그를 향해 돌진했다.

적어도 시몬만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탈출시킬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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