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77화
체내에 남은 독성이 모두 사라지고, 시몬은 무사히 퇴원했다.
이제 임명장까지 받은 키젠의 정식 학생회장으로서, 시몬의 첫 임무가 시작되었다.
그건 바로.
'.......'
교내 수영장 청소였다.
이른 새벽부터 시몬은 수영복 차림에 밀대 자루 하나를 들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봉사활동 20시간...... 완전히 깜빡하고 있었어.'
그랜드포지에서 친 사고 때문에 징계 대신 받은 20시간 교내 봉사활동 명령.
본격적인 학생회장 업무를 수행하기 전에 이것부터 처리하라는 게 제인의 지시였다.
"조자앙! 이쪽이야!"
수영복 차림의 에슈가 손을 휙휙 흔들고 있었다. 그나마 아는 사람이 한 명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러고 보니 에슈, 근로장학생이었지.'
시몬이 다가오자 그녀가 입을 살짝 가렸다.
"아, 참! 이제 조장이 아니라 회장이라고 불러야지? 호칭이 휙휙 바뀌어서 헷갈리네!"
"난 어떻게 불러도 좋아."
그녀가 음! 하고 고개를 끄덕인 뒤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팔짱을 꼈다.
"회장! 당신이 이 학교의 학생회장일지는 몰라도, 근무지에서만큼은 근로장학생인 나 에슈 아르젤의 후배입니다! 알겠습니까?"
"하하! 알았어."
"좋습니다. 이제부터 에슈 선배라고 부르도록 하세요!"
그녀가 어울리지 않는 근엄한 척을 하며 밀대를 들어 보였다.
그러고는 거품 담긴 양동이에 밀대를 넣고 휘휘 저었다.
"수영장 청소는 물때 제거가 중요해! 이렇게 밀대에 거품을 충분히 적신 뒤! 저기 새까만 물때 보여? 이렇게 힘주어 박박!"
그녀가 능숙하게 시범을 보였다. 거품 적신 밀대가 위아래로 움직이자 표면이 금방 닦였다.
"바로 이렇게! 어떻게 하는지 알았지?"
그녀의 과장된 텐션과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는 듣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진다. 시몬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에슈 선배."
"오오, 역시 습득이 빠른걸? 그럼 실시!"
"다들 나와."
우르르르르르르!
시몬은 대뜸 아공간에서 스켈레톤들을 한 뭉텅이로 꺼냈다. 그 모습을 본 에슈가 흠칫했다.
"이런 약아빠진 후배 같으니! 직접 해보지도 않고 언데드에게 시키려고?"
"물론 나도 같이할 거야."
밀대를 쥐어 보인 시몬이 턱짓했다. 어느새 공중으로 날아오른 본 아머들이 청소 도구함의 밀대들을 통째로 가지고 왔다.
이내 스켈레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착착 밀대를 보급받고 수영장으로 흩어져 밀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효율적인 수단을 강구하는 거지. 이쪽이 더 빨리 끝낼 수 있잖아."
"쯧쯧."
에슈가 검지를 좌우로 휘휘 흔들었다.
"회장도 알다시피, 우리 학교 수영장은 진짜 수영보다는 수중 언데드 훈련으로 주로 쓰여! 어제께 3학년들이 오션스웜을 여기 풀어놔서 물때가 생겼거든? 이 점액으로 생긴 물때는 스켈레톤의 미약한 근력으로는 쉽게 제거하지 못해!"
"거기, 거기. 헤비 아머로 합체."
시몬이 명령했다.
스켈레톤들이 자기들끼리 뭉치더니 덩치가 큰 스켈레톤으로 변했다. 이내 이들이 두꺼워진 팔로 밀대질을 쓱싹쓱싹 힘주어 하자 점액과 물때가 깔끔하게 제거됐다.
"되네?"
에슈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시몬이 다시 명령했다.
"바로 이어서 친위대."
"수영장 청소에 친위대까지 쓰지 마!"
에메랄드빛 망토를 휘날리는 스켈레톤들이 밀대를 붙잡은 채 하늘을 날 듯 수영장 벽면을 스치고 지나가자 깔끔해졌다.
이어서 헹구는 것도 눈 깜짝할 사이에 완료. 수영장 청소는 오래 걸리지 않아 끝났다.
"다음으로 가자. 에슈 선배."
시몬이 스켈레톤들을 회수하며 말했다. 에슈가 헛웃음을 흘렸다.
"너 잘났다. 증말."
두 사람은 수영장 청소에 이어서 곧바로 별관 청소와 낙엽 쓸기, 서류 복사와 도서관에 반납된 책 정리까지 마쳤다.
어느새 날은 완전히 밝아왔고, 두 사람은 이제 청소복을 벗고 키젠 교복으로 갈아입은 뒤 캠퍼스로 나왔다.
"끄으읍! 피곤하다아!"
에슈가 기지개를 쭉 켜며 중얼거렸다.
"평소랑 일 마친 시간은 비슷한데, 일의 양은 다섯 배는 더 해치운 것 같아!"
"그래?"
"하지만 일을 다섯 배 열심히 해도, 받는 근로 장학금은 똑같아. 별꼴이지?"
에슈가 하암 하고 하품을 하며 시몬을 보았다.
"회장도 봉사활동 20시간을 채워야 끝나니까, 적당히 쉬엄쉬엄해도 괜찮은데."
"학교를 위한 일이잖아."
시몬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같은 시간이라면, 더 열심히 하는 게 낫지."
"우와아- 역시 학교의 모범! 나랑은 사고방식이 달라!"
두 사람이 소리 내어 웃었다.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에슈, 넌 매일 새벽부터 이렇게 일찍 나와서 일했던 거지? 고생하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신다며언-"
장난기가 발동한 듯, 에슈가 팔꿈치로 시몬의 몸을 가볍게 콕 찔렀다.
"좀 이따 으리으리한 학생회실에 돌아가면, 우리 불쌍한 근로장학생의 처우를 생각해 주든가? 성과에 따른 근로장학생 장학금 향상 같은!"
"생각해 볼게."
"헉! 농담이야. 농담!"
시몬이 담백하게 답하자, 오히려 당황한 에슈가 손을 휘저었다. 그러고는 작게 한숨을 쉬며 앞을 보았다.
"나야 뭐, 이런 건 힘든 것도 아냐. 키젠 밖은 지금 더 난리라잖아? 내 고향도 그렇고."
"아....... 결사 문제 말하는 거지?"
"응. 사람들이 갑자기 납치당하고, 괴상한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고, 왕국의 높으신 분들이 와서 조사했다는데 고향에 결사의 소행으로 보이는 흑마법이 발견됐대."
병동에 있는 동안, 최근 결사의 움직임이 노골적일 만큼 심해졌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다.
늘 정체를 숨기는 데 급급하던 그들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목적도 불명, 의도도 불명이다.
어린아이들이 악의 없는 장난처럼, 그저 대륙을 혼란과 혼돈 속에 빠트리는 데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아득바득 잘살고 있는 우리한테,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에너지 넘치는 평소와는 달리, 그녀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돼서 공부도 잘 안 되고. 고향 편지만 기다리고 있고."
"너무 걱정하지 마. 결사의 소행이라는 게 알려졌으니 꼭 영지와 왕국에서 손을 써줄 거야."
"헤헤, 그렇겠지?"
흐읍.
에슈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혹시 내가 그 일로 휴학을 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
그 말을 들은 시몬이 펄쩍 뛰었다. 말도 안 된다. 라고 말하려던 시몬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사람마다 누구나 중요한 게 다를 수 있다. 이제 곧 3학년이 다 되어가는데 유급을 각오하고 휴학까지 하는 건 너무 아쉽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도, 에슈 본인이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이 불안하다면 제3자인 시몬은 말릴 수 없었다.
"아하핫! 농담이야!"
분위기가 식은 걸 알았는지 에슈가 환하게 웃었다.
"분명히 별일 없을 거야. 응, 그럴 거야."
"......."
시몬이 주춤거리며 말을 고르는 그때.
"시몬 학생회장님!"
마침 옆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시몬과 에슈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소환학과 조교가 손을 흔들며 외치고 있었다.
"아론 교수님께서 찾으십니다!"
* * *
로체스트 항구.
쏴아아아아아!
커다란 선박 한 척이 로크섬의 결계를 지나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배가 들어온다!"
"준비해!"
항구가 분주해졌다. 선원들은 어느 때보다 바쁘게 움직였다.
이내 선박이 항구 근처에 안전히 정박하고, 끈으로 단단히 선체를 고정했다.
척! 척! 척! 척!
배에서 선원들이 우르르르 내려서 주위에 문제 될 게 없는지 철저히 살핀 뒤, 흑마법 반응을 조사했다.
거의 특급 임무를 방불케 하는 모습. 이내 밧줄로 천천히 배에 실려 있는 내용물을 극도로 조심스럽게 선착장에 안착시켰다.
"바로 저기야, 제군아!"
마침 그 항구로 바닐라 그룹의 차기 후계자인 벤야 바닐라와, 시몬이 유령마를 타고 도착했다. 선원들은 벤야를 보고 깍듯하게 인사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그렇게 말한 시몬이 유령마에서 훌쩍 뛰어내리고는, 뒤이어 내려오려는 그녀를 에스코트했다. 물론 눈은 그녀가 아니라 배에서 내려온 내용물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제군의 학생회장 복귀를 기념해서 서둘렀어."
벤야가 시몬의 손을 잡고 말에서 내리며 말했다.
"아, 명색이 돈을 받고 판매하는 물건인데 이런 표현은 조금 그런가?"
"아뇨! 최고의 선물이에요."
시몬이 웃으며 답했다. 두 사람은 서둘러 내용물에 다가갔다.
"늦었군."
이미 소환학 교수 아론이 그 자리에 와 있었다. 시몬과 벤야도 아론에게 인사하고는 옆을 보았다.
"그런데 옆에 분들은......."
"그냥 구경꾼이다."
아론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조교들은 물론, 이름은 잘 모르는 1학년 소환학 교수와 키젠의 연구 직원들까지 몰려와 있었다.
"1학년들에게 소환학을 가르치는 '외디프'라고 하네, 학생회장."
주름살 가득한 노년의 남자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시몬도 그의 손을 잡고 인사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외디프 교수님."
"희귀한 물건이 로크섬에 온다기에, 네크로맨서로서 호기심이 치솟아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다른 연구원들이나 조교들도 눈을 빛내며 내용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몬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뒤 벤야 쪽을 보았다.
"선배님, 잠깐 보는 건 괜찮겠죠?"
"물론 괜찮지! 물건 상태를 체크하는 건 주인의 몫이니까."
시몬이 앞으로 걸어갔다. 그 옆으로 아론이 따라붙으면서 다른 구경꾼들에게 '물러서십시오.'하고 경고했다. 제자의 물건이라지만 오히려 아론이 더 신경 쓰는 느낌이었다.
이내 시몬이 결계의 마법진에 손바닥을 올려 결계를 해제했다.
두근 두근-
심장이 뛴다. 시몬은 조심스럽게 천을 거두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오오오오오오오!
곳곳에서 구경꾼들의 함성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투명한 상자 아티팩트에 보관되어 있는 이것은 거대한 여의주와도 같았다. 겉은 뼈 같은 것으로 감싸져 있었으며, 진홍색을 띠는 내부는 극도로 단단해 보였지만 사실은 물컹거리는지, 중간 부분이 움푹 들어갔다가 다시 펴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보인다.
'이게 바로.'
앞으로 시몬이 만들게 될 '본 드래곤'의 핵심 재료.
드래곤 하트를 대신할 수 있는 이 세상의 유일한 재료인 '드레드 하트'였다.
"훌륭해!"
극도로 흥분한 외디프가 침을 튀기며 다가왔다. 아론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몸으로 그를 제지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저 진홍빛을 띠는 색감! 박동의 퀄리티! 재질의 마감과 신선도까지! 가히 최상품의 드레드 하트야!"
"외디프 교수님. 물러나 주십시오."
시몬은 물건을 확인한 뒤 다시 천으로 덮었다. 곳곳에서 아쉬운 음성이 들려왔다.
"바로 가죠. 벤야 선배님, 아론 교수님."
벤야가 호호 웃었다.
"지금 써보게?"
"네."
시몬이 어깨를 파르르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저히 써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네요."
* * *
본 드래곤(Bone Dragon).
3대 고위 언데드이자, 네크로맨서의 로망 중에서도 가히 '정점'에 가까운 소환수.
수천 년 동안 대륙의 먹이사슬 최고봉에 올라 있는 드래곤의 유해로 만드는 소환수였으니, 그 강함과 위력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본 드래곤을 소유한 네크로맨서들이 하나같이 역사에 굵직굵직한 발자취를 남겼을 만큼, 그 가치는 대단했다.
다만 현대에 들어서 드래곤들은 더더욱 폐쇄적으로 변했고, 그 드래곤의 시체를 손에 넣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갔다.
하지만 시몬은 2학년이 시작할 때, 네프티스가 신학기 선물로 드래곤의 유해 한 구를 아공간째로 떡 하니 넘겨줬었다.
한동안은 시몬의 실력이 본 드래곤에 손을 대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어서 가끔 꺼내 보는 게 아니면 사용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2학년 2학기의 중간고사까지 지난 지금, 아론으로부터 용의 마법 과외까지 받고 있는 시몬은 드디어 큰 한 발짝을 내디디려 하고 있었다.
"여기예요."
네프티스가 준 아공간은 특수하게 설계되어서 사람도 들어갈 수 있었다.
시몬과 벤야, 그리고 아론은 드래곤의 유해가 보관된 아공간에 들어왔다.
마치 차원 하나를 뚝 떨어뜨려 만든 공간인 느낌이다. 배경은 가을 숲이었고, 곳곳에서 빨갛고 노란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낙엽에 파묻혀 있는 거대한 드래곤의 유해. '드래곤 본'이라고도 불리는 최상급의 무구 재료인 뼈는 작은 실금 하나 없었으며, 곳곳에 살점으로 덮인 구간도 있었고, 날개의 피막 상태도 온전했다.
아론은 감탄성을 흘렸다.
"다시 봐도 상태가 훌륭하군. 근래 이런 대형 드래곤의 유해는 도저히 구할 길이 없어 보였는데."
"기대되네. 제군아!"
시몬이 뒤를 돌아보았다.
수레에 담겨 있는 드레드 하트가 보였다. 이제 이 드레드 하트로, 본 드래곤을 움직여 볼 것이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