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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879화 (879/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79화

시몬은 잘생긴 사람을 봐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레스힐에 살 때는 국보급 미남인 리처드 폴렌티아의 얼굴을 지겹도록 봐왔고, 키젠에 들어와서도 저주학 교수 바힐이나 3학년의 레오나드 등 미남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이 사람은.......'

잘생긴 걸 떠나서 인간미가 없는 수준이었다.

이슬이 흘러다닐 듯 윤기 넘치는 은빛 머리카락은 길러서 뒤로 질끈 묶었고, 일말의 티끌도 없이 깨끗한 피부와 짙은 눈썹, 선하고 자연스러운 미소까지.

창조주가 이 사람을 빚은 뒤 그를 자랑하기 위해 세계를 만들었다. 흔히 미남 미녀들에게 쓰는 바드들의 찬사지만, 지금처럼 그 말이 어울리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아, 인간미가 없는 건 당연한 건가.'

눈앞에 있는 건 엄연히 '드래곤'이다.

드래곤은 워낙 덩치가 크고 눈에 띄기 때문에, 영역 밖에선 폴리모프(Polymorph)라는 마법으로 다른 종족처럼 변해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고 들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나의 친우 아론. 오늘 일정이 남아 있어서."

"물론이다. 연락 없이 다짜고짜 찾아온 건 이쪽이니까."

아론이 그렇게 답하자, 드래곤 하르히스는 세상을 녹일 듯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시몬은 새삼 이번 일정에 여성진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잠시 하르히스를 따라다니며 그의 하루를 지켜볼 기회를 얻었다.

그는 무척 수수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짚을 엮어 만든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깨끗하게 쓸었는데, 단순히 빗자루질하는 모습 한순간 한순간마저 명화의 걸작과도 같았다.

섬에서 직접 농사도 지었다. 텃밭에 가서 물을 주고, 길어진 덩굴을 정돈하거나 다 자란 농작물을 수확하기도 했다.

그가 커다란 당근을 뽑아 들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잘 자라주었군요, 안트. 오늘은 최고의 하루입니다."

안트는 그가 붙인 당근의 이름이었다. 이내 청소와 농사일을 마치고 잠시 낡은 나무 창고건물에 기대어 물을 마셨다.

'끙.'

시몬은 이질감에 몸을 떨어야 했다.

낡아서 다 떨어진 옷을 걸치고, 농사용 앞치마 차림에 작업용 장화. 옷에는 비료냄새가 나는 그가 대륙급 미남이다. 그 어떤 수수한 일을 해도 몸에서 흘러나오는 품격을 숨길 수가 없었다.

"오래 기다렸어요."

잠시 후, 하르히스는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 두 사람에게 차를 한 잔씩 내어주었다.

흙으로 빚은 컵, 찻잎은 여기서 재배한 건지 쓰면서도 구수한 맛이 일품이었다.

하르히스가 시몬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론. 이쪽은 누군지 듣지 못했군요."

"시몬 폴렌티아, 내 제자다."

시몬이 다시 인사했다.

원래는 볼드윈 왕국 출신이니, 키젠 학생회장이니, 이런저런 소개를 덧붙여야겠지만 드래곤 앞에서 인간의 그런 배경 따위는 아무래도 좋으리라.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그래, 반가워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눈웃음을 흘린 그가 아론을 보았다.

"이제 슬슬 이렇게 먼 곳까지 무슨 연유로 왔는지 궁금하군요."

"......."

아론은 잠시 눈을 감고 차 한 잔을 쭉 비웠다.

"하르히스. 네 최고의 하루를 망치게 된 건 미안하군."

"네?"

"본론만 말하지. 공교롭게도 드래곤의 유해 하나를 손에 넣게 됐다."

찻잔을 든 하르히스가 멈칫했다.

표정은 웃는 얼굴이었지만, 잔을 든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시몬은 목격했다.

"그렇군요. 그 유해를 손에 넣은 건 아론, 당신인가요?"

"아니, 내가 아니다. 키젠의 네크로맨서들 중에서......."

거기까지 말한 아론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니, 네게 거짓말은 의미 없겠지. 옆에 있는 내 제자가 가졌다."

아론이 말하길, 드래곤 사이에서 불린 그의 이명이 있다고 했다.

진실의 하르히스.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르히스가 힐긋 시몬을 본 뒤에 다시 아론 쪽으로 시선을 되돌렸다.

"그렇군요."

"이 유해가 누군지, 너라면 알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찾아왔다."

아론은 품에서, 마력촬영기로 찍어둔 드래곤의 유해 사진을 뒤집은 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쓰윽 하르히스의 쪽으로 사진을 밀었다.

샤락.

하르히스는 덤덤하게 그 사진을 집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사진을 뒤집어 확인했다.

"......."

"......."

세상에서 가장 긴 5초가 흘렀다.

일 초 일 초가 피가 말렸다. 시몬은 침을 꼴깍 삼키며 하르히스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때 하르히스가 손에서 사진을 놓쳤다.

시몬의 시선이 잠시 하늘하늘 떨어지는 사진에 고정되어 있다가 다시 하르히스로 향하는 순간,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 대신, 은빛 비늘로 뒤덮인 거대한 날개 달린 파충류가 입을 벌린 채 울부짖고 있었다.

[어째서!]

쩌렁쩌렁!

세계가 가루로 부서지는 듯한 외침이 들렸다. 시몬은 등에 소름이 쫘아악 돋으며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주위의 하늘이 순식간에 먹구름으로 어두워지고 저 멀리 바닷물들이 드래곤의 외침에 격렬하게 파도치기 시작했다.

"물러나도록, 시몬."

아론이 굳은 얼굴로 시몬을 뒤로 보낸 뒤,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하르히스, 진정해라."

[나를 능멸하려는 것인가! 아론 데이아!]

드래곤의 찢어질 듯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이게 바로 진짜 '드래곤 피어'. 시몬은 생물로서 유전자에 각인된 원초적인 두려움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나의 스승이다! 100년 전 드래곤 세계에서 홀연히 종적을 감추고 실종되었던 모든 드래곤들의 '조언자' 미르미즈다!]

제기랄, 역시 조언자급이었나.

아론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인상을 썼다.

[네크로맨서여! 내 동생의 유해를 가진 것으로 부족하여, 이제는 내 스승까지 욕보일 생각이냐!]

"나는 과거의 맹세를 단 한 번도 깬 적이 없다. 하르히스."

아론이 몰아치는 폭풍우를 뚫고 말했다.

"네 동생의 유해를 받고 맹세한 일들은 지켜지고 있다. 나는 결코 그를 사적이거나 올바르지 않은 일에 사용한 적이 없고, 네 동생의 힘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살아 있다."

[잔말은 필요 없다!]

하르히스가 거대한 머리를 내려 아론과 시몬을 바라보며 말했다.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차가운 냉기가 흘러나왔다.

[어떻게 내 스승의 유해를 손에 넣었는지 고하라!]

시몬이 아론을 보았고 아론이 시몬을 보며 말하지 말라는 신호를 주었다. 그러나 아론의 입이 갑자기 열리며 흐릿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프티스 님이 시몬에게 맡겼다.

진실이 흘러나온 것이다.

아론이 제기랄 하고 눈을 질끈 감는 모습이 보였다.

[───────!]

하르히스가 고개를 치켜들며 울부짖었다. 그를 중심으로 거대한 빙하와 얼음산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죽음의 마녀! 내 스승을 죽이고 유해를 감추었구나! 수많은 드래곤들이 아직도 그녀의 행방을 찾고 있건만, 어째서 그런 짓을!]

아론이 시몬에게 손짓했다.

"섬을 빠져나가서 배를 타고 처음에 왔던 곳에 가 있어라, 시몬."

"하지만 교수님이 위험해요! 저도 같이 싸우겠습니다."

"하르히스는 싸워 이길 대상이 아니다. 전 세계의 드래곤들을 적으로 돌리고 싶나?"

아론은 단호히 대답하며 아공간을 열었다.

"오해가 있다. 내가 그를 진정시키고 오해를 풀면 해결될 일이다. 내가 그를 진정시킬 테니 이 섬에서 벗어나라."

"하지만......!"

"이건 인솔자로서의 명령이다, 시몬 폴렌티아."

그가 거칠게 팔을 휘두르자 칠흑의 방패가 펼쳐졌다. 이내 하르히스가 일으킨 거대한 얼음들이 부딪혔다. 아론이 아공간에서 리치를 꺼내 맞상대하며 시몬을 보았다.

"나를 믿어라."

시몬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 *

시몬은 아론의 말대로 섬에서 빠져나와, 처음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도착한 곳에 도달했다.

그곳에서 아론을 기다릴 겸 천막을 치고 모닥불을 피웠다. 천막 앞에서 웅크려 앉아 아론을 기다렸다.

드래곤이 폭주했다.

여전히 저 멀리 섬에서는 얼음이 끝도 없이 치솟고 있었다. 거의 섬이 가라앉을 기세였다.

가히 자연재해를 방불케 하는 광경.

[크흐흐! 네 담당교수는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하는군!]

교복에 붙어 있는 피어의 분신이 입을 열었다.

[그냥 그 드래곤을 죽여 버리고 드래곤 하트를 손에 넣으면 되질 않나!]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니까요."

하르히스는 강하다.

드래곤 하트에 손상을 입히지 않은 채 그를 온전히 잡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무엇보다 아론은 하르히스를 진심으로 소중한 친우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 아론을 배신할 수도 없고, 아론의 협력이 없으면 정작 본 드래곤의 완성은 어렵다.

그리고 아론이나 하르히스나 제대로 설명해 주진 않았지만, 드래곤 사회의 상황이 시몬이 생각한 것보다 더 복잡한 것 같았다.

이건 하르히스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시몬이 그 '스승'의 유해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하르히스까지 붙잡아 그의 드래곤 하트를 취한다면, 정말로 전 세계의 드래곤을 적으로 돌릴지도 몰랐다.

결사와의 결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드래곤이라는 종족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건 최하책이었다. 암흑연합은 이들의 협력이 필요했다.

"교수님이 믿으라고 했으니까 기다려 보죠."

그렇게 제법 긴 시간이 흘렀다.

폭풍우와 괴성, 그리고 섬에서 솟구치던 얼음이 멎어 들었고, 잠시 뒤에는 아론이 너덜너덜한 모습으로 시몬에 있는 곳에 돌아왔다.

"교수님! 다친 곳은 없으신......!"

"자야겠다."

아론은 대뜸 갈라진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시몬이 만든 천막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무슨 일이 있으면 깨우도록."

"아, 네! 고생하셨습니다."

아론은 천막 안에 들어가자마자 쓰러지듯 곯아떨어졌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내일 물어보기로 했다.

'...잠이 안 오네.'

불침번도 설 겸, 시몬은 천막 앞에서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냥 머릿속을 비우고 가만히 불꽃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때.

토도도-

다람쥐 한 마리가 불가에 나타났다. 그것은 바닥에 떨어진 나무열매에 관심을 보이는 듯 기웃거리며 다가왔다.

시몬이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 다람쥐가 시몬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휙휙 꼬리질을 했다.

'응? 따라오라는 거야?'

시몬이 몸을 일으키자, 옆으로 후다닥 달려가 재차 꼬리를 흔들었다.

시몬은 다람쥐를 따라 걸어갔고 얼마 안 가 숲에 작은 공터가 드러났다.

타닥 타닥-

여기도 작은 모닥불이 펼쳐져 있었지만, 사람은 없었다.

그때 다람쥐가 바위 위로 올라가더니 이내 은빛 머리카락의 사람으로 겉모습을 바꾸었다. 그럴 거라 생각했던 시몬이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하르히스......!"

"괜찮다면 앉으세요."

그가 미소 지었다.

지친 얼굴이었지만 미소 만큼은 빛이 바래지 않았다.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시몬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하르히스는 잠시 모닥불에 타들어 가는 장작을 가만히 응시했다.

"...아까 일은 미안했습니다. 실종된 스승의 유해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그의 눈동자가 짙은 슬픔에 젖어 들었다.

"하지만 나의 친우가 목숨을 걸고 나를 진정시키려는 모습을 보며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 사건은 내 제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다. 네가 내게 기회를 줬던 것처럼, 그 녀석이 어떤 자인지는 직접 그 눈으로 확인해라.

타닥.

그가 근처에 있던 장작을 붙잡아 모닥불에 던져넣었다.

"우리 드래곤의 입장에서, 죽음의 마녀는 도저히 좋게 볼 수 없는 자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내 스승을 죽여야만 했던 것도 사리사욕은 아니었겠죠. 아론의 말대로, 그 유해가 당시에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인간인 당신에게 주어진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달빛과도 같은 은빛 눈동자가 이채를 발하고 있었다.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 궁금합니다, 시몬 폴렌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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