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80화
로크섬.
교수 회의실.
시몬과 함께 출장을 나간 아론과, 최근에 어떤 연구에 몰두하여 개인 사정으로 참여가 힘들다고 밝힌 바힐을 제외한 2학년 담당교수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모두 손에 든 서류를 굳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만요, 제인 교수님! 이 평가 기획은 무모합니다!"
2학년 사령학 담당교수, 스테이시 세잔이 바로 따지고 들었다.
"중요한 2학년 과정에 2주간의 장기 임무평가라니! 그리고 이 얼토당토않은 성과 조건은 뭡니까?"
"읽으신 대로입니다, 스테이시 교수님."
상석에 앉은 제인이 점잖게 말을 이었다.
"학생들을 결사가 있는 현장으로 보낼 생각입니다."
현재 시점에서, 결사는 대륙 전역에 동시다발적인 혼란을 야기하고 있었다.
몬스터, 언데드들이 마을을 습격하거나 도적 떼가 활개 치는 것처럼 비교적 일반적인 사태들은 물론, 도저히 원인을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현상들이 대륙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사람 간의 갈등도 커졌다. 영지 간 전쟁이 빈번해지고 혁명이란 이름의 반란, 테러 등이 속출했다.
키젠에서는 누군가 이들을 부추겼거나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증거들을 속속 발견하고 있는 중이었다.
선량한 피해자들만 기하급수적으로 속출하는 상황.
로크섬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도, 자신의 영지나 부모님들이 사태에 휘말리고 있으니 걱정이 앞섰다. 가만히 공부나 하고 있을 수 없다며 외부 출장을 요청하는 건 물론, 그게 어렵다면 휴학까지 불사하겠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는 사이 마침 학사일정에 다가오는 '임무평가' 시즌.
제인은 고심 끝에 임무평가 기간을 2주로 늘리고, 결사가 활동하는 현장에 학생들을 보낼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단순히 자신의 영지나 고향이 공격받는 학생들에 대한 문제를 떠나, 2학년 전교생을 결사와의 전장에 투입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제인 교수, 다시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떻겠소?"
혈류학과 담당교수 프레스턴 패튼이 입을 열었다.
"2학년 2학기는 키젠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기간이오. 많은 것을 배워야 할 때지. 그 기간을 희생하고서라도 학생들을 사지로 몰아넣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소."
"저도 자람들마다 역할이 있다고 쟁각해요."
이번에는 홍펭조차도 제인의 의견에 반대했다.
"제인 교주님이 말씀한 '결자의 저지'는 각 왕국과 지방영지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에요. 아직 어린 학쟁들을 그리로 보내는 건 너무 위험해요."
"아, 답답하네. 답답해!"
물론 야성적인 성향의 별야는 당연히 불만을 표출했다.
"그럼 뭐 이대로 결사인가 뭔가 하는 나부랭이들한테 얻어맞는 걸 보고만 있으라고? 고향이 박살 나고 부모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인데 애들이 공부가 머리에 들어올까?"
"자."
스테이시 교수가 진정하라는 듯 손바닥을 펼쳤다.
"별야 교수님의 말씀도 옳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교수고 무엇보다 학생들의 안전을 중요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을 결사와 싸우라고 외부에 내보내는 건 지나치게 위험해요."
"네, 위험한 건 사실입니다."
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 학생들을 통제하고 막을 생각만 했습니다."
"잘했소! 그게 교수의 본분이자 도리요! 계속 그렇게 해주시......."
"하지만."
맞장구치는 프레스턴의 말을 일축한 그녀가 눈을 감았다.
이번 그리모와르 사건.
-조교들의 통제에 따르지 않고 여기 남아서 뭐 하는 겁니까? 여러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제인은 시몬을 찾겠다고 쫓아온 학생들을 야단치고 돌려보내기 바빴다. 너희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단호하게 단정 지었다.
하지만 그들은 기어이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그리모와르의 도서관 안으로 들어왔고, 마지막에 시몬을 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들이 오지 않았다면 키젠은 다시 한번 중요한 학생회장 후보를 잃었을지도 몰랐다.
최근에 있었던 그랜드 포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제인은 제대로 안정성이 확립되지 않은 데스나이트 커리큘럼과 '언데드 다이브'에 불안감을 갖고 있었고, 소환학과 학생들을 어떻게든 보호하고 조기귀환시킬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만년 꼴찌인 토토를 포함한 학생들은 실력을 증명해 냈고, 데스나이트 서머너가 여섯 명이나 탄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결국 제인은 고찰 끝에, 그동안의 결정에 사적인 감정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329기는 그녀의 자랑이었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각별했고, 아끼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사건사고도 많이 일으켜서 속도 썩였지만, 그만큼 이들은 빠르게 성장했다. 제인은 앞으로의 긴 교수 커리어에도 평생 기억에 남을 기수라고 생각했다. 벌써 그들이 졸업할 때를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허해졌다.
그래서 더 아꼈고 3학년이 되기 전까지 지키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수록 학생들은 갑갑해하고 아쉬워했다. 오히려 힘든 시련을 받아들이고 싸울수록 더 성장했으며, 그들은 자신이 우려하는 것보다 더 잘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무모하기 그지없던 네프티스의 화산성 단체시험도 그랬고.
그 이상으로 위험했던 국경진입이 포함된 아론의 데스나이트 커리큘럼이 그랬다.
학생들이 그녀를 통해 배우는 만큼, 그녀 또한 학생들로부터 배웠다.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젠은 언젠가 암흑연합을 다스릴 최고의 인재들이 실력을 쌓는 요람입니다. 그런데 정작 대륙이 위기에 빠져 있는 지금, 힘을 가진 이들이 주민들의 고난에서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키젠 학생은 연합의 권한으로 수사권과 지휘권을 보유하고 있는 실질적인 장교입니다."
"제인 교수!"
"우리가 가르친 학생들의 실력을 믿지 못하십니까?"
그 말에 프레스턴이 끙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어떤 난관도 극복했습니다. 이제 곧 3학년이 되면 해야 할 일들을, 조금 앞당기는 정도일 뿐입니다. 대륙이 위기일수록 구심점이 필요하며, 학생들에게는 더 강한 동기가 필요하죠. 위기인 때에만 배울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2학년 2학기의 시작, 데스나이트 커리큘럼을 가져오며 자신에게 당당히 말했던 아론의 말을 떠올리며 그녀도 입을 열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 * *
시몬은 실버드래곤, 일명 '진실의 하르히스'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
마치 시험받는 이야기였기에 시몬은 잔뜩 긴장한 채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하지만 하르히스는 대단한 업적이나 경험담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가 궁금해하는 건 그저 사람 사는 이야기였다. 어렸을 때의 행복한 기억이나, 학교에서의 즐거운 일들, 키젠 학생으로서 대륙을 돌아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
하르히스는 좋은 이야기 상대였다.
그는 시몬의 모든 생각을 존중하고 이해했다. 잘못을 지적하거나 멋대로 판단하려 하지 않았다.
이야기하던 시몬도 서서히 경계심이 누그러졌고, 어느새 정신없이 살아왔던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최근에 이렇게 말을 많이 해본 적이 얼마 만이던가. 여러 이야기가 막힌 댐 뚫리듯 튀어나왔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내가 밤을 새워서 이야기하다니.'
시몬은 스스로에 대해 놀랐다.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본인의 모습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하르히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까지 할까요."
시몬은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자책했다.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쏟아냈을 뿐이지 않은가, 그에게 조금 더 신뢰를 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충분히 알게 되었습니다."
하르히스는 웃고 있었다.
"아론이 깨기 전에, 당신들이 필요한 제 숨결을 담아야 하니 먼저 섬으로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시몬의 눈이 커졌다.
"그, 그럼 저 합격인가요?"
"하하하. 합격이라, 저는 다른 이의 자격을 시험할 정도로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저 당신이 올바르고 곧은 사람인지, 듣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한마디 말만 들어도 그가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진 사람인지 알 수 있죠."
시몬이 얼굴을 붉혔다.
대뜸 '합격'이라는 말을 내뱉다니, 학생이 직업이라면 이것도 직업병이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하르히스가 돌아갔다.
잠시 후 날이 완전히 날이 밝으며 아론도 부스스 일어났다. 그는 어느새 길어진 턱수염을 벅벅 긁으며 다크서클 가득한 눈매로 주위를 쭉 훑어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르히스는 왔었나?"
다 꿰뚫어 보고 있다는 투의 목소리였다. 시몬도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두 사람은 다시 배를 타고 하르히스의 섬으로 들어갔다.
아직 얼음이 다 제거되지는 않아서 빙판길이었기에 조심스럽게 그의 집으로 향했다. 마침 하르히스가 테이블 위에 끝이 길쭉한 유리병의 입구를 뚜껑으로 막고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이게 바로 드레드 하트를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핵심재료.
드래곤의 힘과 정수를 담은 에너지 덩어리, '숨결'이었다.
이론이 그것을 바라보다가 하르히스를 바라보았다.
"미안하군."
"아닙니다, 아론. 어제 일에 대한 사과의 의미이자-"
그가 선한 눈매로 시몬 쪽을 응시했다.
"새로운 친우에 대한 신뢰의 선물입니다. 스승의 유해를 일으키는 문제에 대해, 내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기꺼이 돕겠습니다."
시몬이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르히스!"
"별말씀을. 저야말로 당신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그렇게 말한 하르히스가 살짝 굳은 표정이 되었다.
"다만 스승의 유해가 완성된다면, 다른 드래곤에게 들키는 일이 없도록 신경 쓰는 게 좋을 겁니다. 가급적이면 드래곤의 영역 외에서 사용하도록 하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쓰지 않는 게 현명하겠죠. 폴리모프한 드래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시몬과 아론은 큰 성과를 낸 채 로크섬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론은 바로 확보한 '숨결'의 연구를 위해 펜타모니엄으로 향했고, 시몬은 얼마 안 남은 주말 동안 용의 마법 연습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기숙사에 돌아오자마자 한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조?"
"학생회장님."
직속 학생회 하수인 리더인 모조였다. 그녀가 재빨리 인사하고는 말했다.
"메이린 부회장이 급히 회장님을 찾으십니다."
* * *
같은 시각.
학생회실에는 각 동아리 부장들이 호출을 받고 학생회에 몰려 들어와 있었다.
"주기로 한 자금을 왜 못 준다는 건데?"
"대책이 있어야 할 거 아냐! 일 벌여놨는데 이제 와서 이러면 어쩌라고!"
동아리 부장들이 앞다투어 열렬한 항의를 퍼부어댔다.
부회장 메이린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으으, 짜증 나! 전 학생회가 싼 똥을 왜 우리가 치워야 하는 건데!'
발단은 이렇다.
현재 학생회의 운영 자금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당장 몇 가지 굵직굵직한 행사들이 남아 있는데 이대로는 앞으로의 학생회 운영이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전부 살림을 맡은 소타 프쉬케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학생들의 여론을 돌리고 지지도를 높이기 위해 워낙 쓸데없는 것들로 자금을 펑펑 써댄 것이다.
특히 가장 문제는 동아리 자금. 신문부처럼 신 학생회에 충성하는 동아리에 대량의 자금을 풀었고 그 외의 동아리에는 자금을 줄이거나 동결했다.
총원인 10명인 교내 신문부가, 30명이 넘는 던전 연구 동아리에 비해 동아리 자금이 11배가 넘었다.
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 기존의 많은 자금을 받는 동아리 부장들을 불러들였는데, 그들이 격렬하게 항의하고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잠깐만! 좀 진정하고 한 명씩 말해."
딕과 카미바레즈가 부장들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부장들은 막무가내였다. 목소리 높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아, 시끄러워 이것들아!"
메이린도 목소리를 높였다.
"교류전에서 힘을 합쳐 3학년들이랑 싸울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왜 이러는 건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돈줄을 왜 건드리는데? 선 넘게."
"우린 받기로 한 돈을 요구할 뿐이야. 솔직히 학생회 운영비가 떨어지든 말든 그건 우리 알 바 아니지."
표정이 험악해진 메이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뭐라고 말하려는 그때.
드르르륵-
학생회실의 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렸다.
깜짝 놀란 동아리 부장들이 인상을 찡그리며 뒤를 돌아보았다가 이내 움찔한 반응을 보였다.
'......시, 시몬 폴렌티아다.'
주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커다란 학생회장 코트를 휘날리며, 푸른 머리카락의 소년이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뿜어내며 들어오고 있었다.
동아리 부장들이 진땀을 흘렸다.
'위, 위압감 뭔데?'
'......코트 때문인가?'
딕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카미바레즈는 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시몬!'
메이린도 수많은 감정이 담긴 눈으로 시몬을 바라보았다. 시몬은 수고했다는 듯 메이린에게 눈짓을 보낸 뒤 학생회장 코트를 휘날리며 동아리 부장들을 돌아보았다.
"안녕."
그가 웃는 얼굴로 인사하자, 동아리 부장들도 떨떠름한 얼굴로 '아, 안녕.'하고 말을 흐렸다.
등장만으로 분위기를 장악한 시몬이 의자를 빼고는 자리에 턱 하고 걸터앉았다.
"뭐가 문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