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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881화 (881/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81화

뭐가 문제냐는 시몬의 물음에, 동아리 부장들은 쭈뼛쭈뼛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전 학생회로부터 정식으로 많은 예산을 약속받았는데, 이제 와서 무르겠다는 건 약속을 어기는 일이나 다름없다. 돈을 받을 걸 알고 일을 벌여놓은 게 있는데, 이대로 예산을 삭감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이런저런 사정들을 시몬이 턱을 괸 채 가만히 들어주고 있으려니, 동아리 부장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기세를 타기 시작했다.

"전 학생회, 현 학생회 같은 게 뭐가 중요한데? 결과적으로 우리는 학생회로부터 자금을 받기로 했어!"

비행경주 동아리 부장, 송충이 눈썹의 남학생이 테이블을 탕탕 쳤다.

"인원만 바뀌었을 뿐이지 너희도 학생회잖아? 너희가 약속한 거나 다름없고, 우리는 그 돈을 받을 자격이 있단 거야!"

"음."

시몬이 등을 기울이며 눈을 감았다.

세게 나간 게 먹힌 걸까. 동아리 부장들은 속으로 환호하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때 시몬의 입이 열렸다.

"모조, 들어오세요."

달칵.

학생회실 문이 열리고, 직속 하수인 모조가 안으로 들어왔다. 정중히 학생들에게 고개를 숙인 그녀가 시몬에게 다가와 서류뭉치를 내밀었다.

동아리 부장들이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시몬은 서류를 휙휙 넘기면서 방금 발언했던 송충이 눈썹의 남학생을 응시했다.

"비행 경주 동아리라고 했지?"

"어? 어어......."

"여기 있네."

사락.

원하는 서류를 찾은 시몬이 목소리를 냈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저희 비행 경주 동아리는 발락 학생회에 아무런 유감이 없으며,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발락 학생회를 지원하려고 합니다."

"!"

비행 경주 동아리 부장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시몬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저희 동아리 부원 전원은 신 학생회를 지지하며, 1개월 후 랭거스틴에서 개최되는 '흑마법 비행 대회'에서 발락 학생회장님 이름을 주최자로서 전면에 앞세울 생각입니다. 많은 주민들이 바뀐 키젠의 학생회장을 알게 될......."

"잠깐! 잠까아아아안!"

동아리 부장이 토마토처럼 벌게진 얼굴로 두 팔을 휘저으며 시몬의 말을 막았다.

"이게 무슨 짓이야! 그걸 왜 여기서 읽는데!"

메이린이 한심하단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고, 다른 동아리 부장들도 입을 가리며 웅성대고 있었다.

"다음."

시몬이 페이지를 넘겼다.

"어둠의 식물 연구 동아리."

"!"

"훌륭하고 저명한 발락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터업!

어둠의 식물 연구 동아리 부장으로 예상되는 한 여학생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덮는 모습이 보였다.

"교내의 발전을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시는 점, 늘 존경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저희는 신 학생회를 적극 지지합니다. 혹시 저희 1학년 부원인 베라딘이 신 학생회에 기고문을 작성한 것에 대해 우려하신 점이 있다면 베라딘은 어제부로 저희 부원이 아니니 안심해 주시길 바랍......."

"꺄아아악! 아아악! 그만! 알았으니까 그만!"

동아리 부장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심각해졌다.

시몬이 손에 든 서류가 폭탄 점화 장치라도 되는 듯 두려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이거."

팔락-

시몬이 서류들을 흔들었다.

"발락 학생회가 부장들에게 요구한 2학기 예산 정정서야."

발락 학생회는 권력을 차지한 뒤, 2학기 동아리 예산안에서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동아리는 예산을 올려주고 그 외의 동아리는 대부분 예산을 대폭 삭감시켰다.

이후 항의하는 동아리들에게, 성의껏 예산 정정서를 제출하면 예산을 재논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는 딕의 표현을 빌리자면 '방울 딸랑딸랑 흔들어봐라'라는 의미였다.

이에 바짝 엎드린 동아리들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동아리들도 있었지만, 자금이 비정상적으로 펌핑된 동아리들은 대부분 전자였다.

"아니,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비행 경주 동아리 부장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전 학생회랑 이야기가 된 부분을 니네가 무슨 권리로 꺼내 읽는데!"

"아까 네가 말했잖아?"

시몬이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전 학생회나 지금 학생회나 같은 학생회고, 우리가 약속한 거나 다름없다고. 그럼 우리가 이걸 공개하든 말든 상관없지 않을까."

본인이 했던 말을 이용해 반박하자 부장의 얼굴이 벌게졌다. 다른 부장들도 황급히 시몬을 달랬다.

"야, 알잖아. 어쩔 수 없었다고. 저쪽에서 돈줄을 죄잖아."

"이러지 말자. 부회장 말마따나 같이 교류전에서 3학년이랑 싸운 사이인데."

"우리도 피해자라고!"

그들은 갑자기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논리로 나왔다.

시몬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럼 동아리 예산 원래 기준대로 동결 및 삭감. 받아들이는 걸로 안다?"

"......!"

부장들이 멈칫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건 좀......'하는 반응이자 딕이 악마처럼 실실 웃으며 시몬의 옆으로 다가왔다.

"회장, 아님 이런 건 어때? 방금 읽은 발락 발가락 빨던 내용들을 학생회 교내 기고신문에 싹 실어버리는 거야. 그리고 그 위에 '예산 정정 집행을 거부한 동아리 명단' 이렇게 붙여서 한 번에 공개하는 건?"

부장들의 표정이 흙빛으로 변했다.

329기의 결속력이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그런 배신행위를 용서받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결국 그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새로운 예산 정정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내 서명을 마친 부장들이 터덜터덜 학생회실 밖으로 나갔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부장들도 있었다.

"우린 꿀릴 게 없는데 왜?"

신문부 부장 테이를 비롯한, 강경파 발락 학생회 라인의 동아리 부장들은 배 째라는 식으로 나왔다.

이들은 처음부터 발락 라인이었고 예산을 몇 배나 올려받았기에, 정정서 같은 것도 쓰지 않았다.

"니들 진짜 낯짝 두껍다."

"너무해요!"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한마디씩 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때 시몬은 학생회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올 때가 됐는데."

'또 누구?'

똑똑.

딱 맞춰서 학생회실 문에 노크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들어오세요' 하고 말하자 새로운 인물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 잠깐만......!'

다들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부터 해야 했다.

"다들 안녕. 편하게 있어, 편하게."

발락과 그리모와르가 떠나고, 현재는 3학년 전체 1위이자 키젠 수석을 차지한 인물.

소환학과 총대표의 레오나드였다.

테이를 비롯한 동아리 부장들은 눈만 굴리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이지?'

'이 타이밍에 3학년 선배를 끌어들여?'

레오나드는 천천히 걸어와 시몬과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이내 시몬이 뭔가를 건넸고, 그는 그것을 자신의 왼쪽 팔에 착용했다.

"잠깐 그건......!"

지켜보는 모두의 미간이 떨렸다.

그건 학생회를 상징하는 자주색 견장이었다. 그걸 지금 3학년인 레오나드가 팔에 착용한 것이다.

"최근에 학년 간 갈등이 심화되기도 했고, 학생회가 자기 학년의 이득만 대변한다는 외부의 우려가 있어서 말야."

시몬이 태연히 웃으며 설명했다.

"3학년의 레오나드 선배님을 학생회의 '회계감사'에 임명하기로 했어."

"아!"

"우리 2학년 학생회가 미처 짚고 넘어가지 못하는 문제들을 지적해 주실 거고, 3학년의 이해관계도 대변해 주실 거야. 소환학과는 벤야 선배님이 대신 대표로 이끌기로 했어."

"잘 부탁한다."

레오나드가 특유의 왕자님 같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모두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나도 이제 슬슬 감사업무를 시작해 볼까 하는데."

레오나드의 손이 책상 위의 서류 쪽으로 향했다.

"어떤 일부터 하면 좋을까."

"자, 잠깐만요!"

테이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이내 그가 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저희 신문부, 학생회의 정정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딕이 처음에 제안했던 학생회 신문으로 치욕을 주는 것과는 궤가 다른 문제다.

기존의 유착관계가 발각되면 국물도 없이 징계 위원회가 열릴 거고 교내 중징계다.

신문부의 테이가 무너지자 다른 동아리들도 도미노처럼 우르르 항복했다.

부장들의 대답을 들은 시몬이 레오나드를 보며 말했다.

"선배님, 학생회 첫날부터 감사업무는 좀 그렇지 않나요? 제가 학생회관 시설 이곳저곳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오, 그래? 회장이 그렇게 제안한다면야."

시몬과 레오나드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밖으로 나갔다.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신이 난 듯 폴짝거리는 걸음으로 뒤를 따랐다. 딕이 시몬을 향해 말했다.

"회장! 그럼 난 이번 일 마무리하고 갈게!"

"아, 그렇지 참. 부탁할게."

타악.

문이 닫히고, 잔뜩 긴장한 동아리 부장들이 힘없이 자리에 걸터앉았다. 딕은 실실거리는 웃음으로 돌아왔다.

"자, 그럼 서명을 받아볼까."

그가 서류 몇 장을 꺼내더니 빠르게 몇 가지 부분을 수정했다.

"근데 니들 원래 받아야 할 금액에서 너무 많이 빼간 거 알지? 전체적으로 삭감되는 것도 각오하시고. 그리고......."

"야."

소파에 쓰러지듯 앉은 테이가 퀭한 눈으로 딕을 바라보았다.

"신났네 X발."

킥킥.

뒤에 앉은 부장도 비웃음을 흘렸다. 테이가 이어서 말했다.

"400위로 시작한 상인 나부랭이 꼴찌 새끼가. 시몬 폴렌티아 등에 업고 살판났지?"

"어."

담백한 대답이 돌아오자, 실실거리던 부장들이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아니, 맞는 말인데 뭐."

딕이 서류 몇 장에 빨간 줄을 그은 뒤, 그들에게 내밀었다.

"나 꼴찌고, 상인이고, 친구 덕 봐서 X나 신나고 나대는 거 사실이야. 원래 상인은 인맥관계가 핵심인데? 나한텐 칭찬이지. 근데 그거 아냐?"

딕의 입가가 샐쭉였다.

"니들은 지금 그 꼴찌 상인 나부랭이 새끼 눈치 봐야 하는 처지라고."

그들이 본 서류에는 동아리의 존속이 위험할 만큼 예산이 삭감되어 있었다.

거기에 몇몇 동아리는 키젠본부 측으로부터 감사를 받겠다는 조항까지 들어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데, 니들 전쟁에서 졌어."

딕이 의자를 옆으로 휙 돌리더니, 두 다리를 쭉 벌리고 앉아 등받이에 두 팔을 올렸다.

"승자의 권리로 전리품을 챙겨보려고. 난 태생부터 쫌생이라 시몬처럼 관대하지 않거든."

"너......!"

"신문부 부장 테이."

딕이 휙휙 손짓했다.

"일단 넌 부장 자리에서 물러나."

"뭐 이 새끼야?"

테이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어허, 패장이 구질구질하게 요직에 붙어 있으려고? 나가야지. 미리 말하지만 질버버그도 안 된다? 1학년한테 넘겨. 어차피 우리가 3학년이 되면 부장직은 거의 후배한테 넘겨주잖아. 그거 미리 한다고 생각해."

"니가 뭔데!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지? 이건 권력의......!"

"전쟁에서 졌으면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냐. 활자 몇 줄로 시몬 괴롭힐 땐 좋았지, 어?"

딕이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을 이었다.

"싫으면 신문부는 날아간다."

"이 X밥 새끼가!"

테이가 손끝에 저주를 펼친 채 딕을 겨누었다. 그와 동시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모조와 학생회 직속 하수인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왔다.

고오오오오!

모조의 몸에서 피어나는 적의.

하수인이라고 우습게 볼 게 아니었다. 학생에게 손을 대지 못할 뿐이지, 키젠 소속답게 실력은 하나같이 대단한 네크로맨서들이었다.

테이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며 손을 거두어들였다.

"신문부가 키젠에서 차지하는 역사가 200년쯤 되던데."

그러거나 말거나 딕은 깃펜을 쥔 채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 동아리가 비리 문제로 감사당해서 네 대에서 끝나 버리면, 나중에 학교 선배님들이 가만히 있을까?"

"!"

"관계를 중시해야 하는 귀족들은 불쌍하네. 나 같은 상인 나부랭이는 그냥 본업으로 돌아가 버리면 그만이지만 너흰 명예와 목숨이 걸린 일이기도 하잖아."

탁.

딕이 반대로 다리를 꼬며 비릿하게 웃었다.

"어떻게 할래?"

* * *

다음 날.

주말이 끝내고 새로운 일정이 시작되었다. 2학년 학생들은 오전 수업은 듣지 않고 바로 대강당에 모였다.

중대 발표사항이 있다는 제인의 이야기였다.

대강당 발표 30분 전, 가장 좋은 앞자리에 모여앉은 학생회 멤버들은 함께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야, 평민. 다시 나 불러봐."

메이린이 말했다.

"부회장님."

딕이 대답했다.

"작아서 안 들려. 내가 누구라고?"

"아, 부회장님!"

메이린이 즐거운 얼굴로 오호호 웃었다. 딕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아, 메이린 쟤 소타 프쉬케 이긴 뒤로 너무 콧대가 올라갔어. 미치겠다 진짜."

그 말을 들은 시몬과 카미바레즈가 나란히 마주 보며 웃었다. 메이린이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냥 기분 좀 냈을 뿐이야. 얼마나 진지해야 하는 자리인지는 잘 알고 있거든."

"이번 일 수고했어, 메이린."

시몬이 말했다. 메이린이 새침하게 시몬을 흘겨보았다.

"근데 어젠 왜 이렇게 늦었는데? 원래 하루 만에 끝나는 일정이라며!"

"아, 이야기가 조금 길어져서."

"누구랑 이야기했어요? 시몬."

카미바레즈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드래곤이랑."

"드래곤?!"

시몬은 그 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나갔다. 다들 초롱초롱해진 눈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는 가운데, 그 뒷자리에 앉은 학생들은 놀라서 입을 벌렸다.

"들었냐? 드래곤이래."

"키젠 학생회장쯤 되면 드래곤 쪽이랑 외교도 하는 건가."

그때 칠흑역학과 수석조교가 연단 앞으로 나왔다.

"학생 여러분, 제인 부총장님께서 들어오십니다."

그 말을 들은 학생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내 제인이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

'소문이 사실이었네.'

'괜찮으신가?'

다들 그 강한 제인이 팔을 부목에 고정한 모습에 웅성거렸다. 이내 제인이 다가와 멀쩡한 팔로 확성 수정구를 받고 입을 열었다.

"시간이 없으니 본론만 이야기하죠."

후욱.

그녀가 가볍게 숨을 내뱉고 2학년 329기들을 쭉 둘러 보았다.

"지금부터 새로운 임무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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