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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883화 (883/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83화

"아!"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넘어온 직후, 눈 앞에 펼쳐진 그림 같은 경관에 시몬의 입이 벌어졌다.

이곳은 깎아지른 듯한 드높은 절벽 위. 아래를 내려다보면 구름이 보였고, 기암괴석과 삐뚤빼뚤한 나무들의 조합은 뭐라 형용하기 힘든 오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마치 신선이라도 기거할 듯한 장소였다.

하늘도 푸르고 공기도 신선하다. 울려 퍼지는 새소리를 들으며 시몬은 기분 좋게 걸음을 옮겼다.

-삐융!

그때 시몬의 머리 위로, 작은 언데드 나가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시몬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라미아도 좋아?"

-삐융! 삐유웅!

최근에 라미아 탈출시도 사태가 두어 번 정도 더 벌어졌다.

계속 피어의 유적에 갇혀 있다 보니 스트레스가 상당히 쌓였던 모양.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시몬이 바닐라의 아티팩트 장인에게 이야기해서, 칠흑을 저장할 수 있는 목걸이를 제작 의뢰했다.

목적은 흘러나오는 라미아의 칠흑을 담는 것.

라미아도 에이션트 언데드라 그런지 군단의 칠흑을 계속해서 뿜어냈다. 에르제베트나 피어처럼 칠흑을 숨기는 능력은 떨어졌고, 이대로는 도저히 어디에 같이 데리고 다닐 수가 없었기에, 칠흑을 저장하는 아티팩트로 흘러나오는 힘을 담으려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계획은 성공이었다.

워낙 라미아의 칠흑이 방대해서 아티팩트를 목에 걸어도 며칠 정도밖에 데리고 다닐 수 없었지만, 일단은 칠흑을 잘 갈무리한 모습이다.

스윽.

그때 시몬의 머리 위로 햇빛을 가리는 양산이 드리워졌다.

"호호호! 오랜만에 군단장님과의 외출! 소녀도 기분이 설레옵니다."

에르제베트가 살랑거리는 웃음을 흘리며 시몬의 옆으로 걸어왔다.

이번에는 고위귀족 부인 같은 모습으로 변신했었는데, 손에는 양산을 들고 롱스커트에 굽 높은 구두를 신었다.

시몬이 쓰게 웃었다.

"......에르제, 왜 당연하다는 듯이 밖에 나와 있어?"

"이런 기회에 소녀가 동반하지 않으면 언제 군단장님과 데이트를 즐기겠사옵니까?"

그와 동시에 반대쪽에서 갑옷이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가끔은 이런 시간도 필요한 법이다 소년!]

피어는 오랜만에 텅 빈 갑옷 안에 들어간 모습이다.

전신을 덮는 형태의 풀플레이트 아머라서 모습이 완벽하게 가려져 있었다.

"피어까지......."

[결사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른다! 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게 좋겠지!]

예상치 못한 군단 파티가 되어버렸다.

-삐융! 삐유웅!

그때 라미아가 공중으로 두둥실 날아가고 있었다. 간만의 외출이라 그런지 꺄륵거리며 즐거워하는 모습.

시몬이 훌쩍 뛰어올라 라미아를 양손으로 붙잡아 안았다.

"조심해, 라미아. 여긴 전부 절벽이라 위험해."

"흐음-"

옆으로 다가온 에르제베트가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라미아를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군단의 칠흑을 통제하고는 있지만, 겉모습이 너무 시선이 끌리와요."

"그럼 어쩌지?"

"훗! 소녀가 조금 더 익숙한 모습으로 바꾸겠사옵니다!"

에르제베트가 손끝에 거미줄을 뽑아내 즉석으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후.

-삐융!

라미아는 머리까지 뒤집어쓰는 강아지 옷에 들어가 있었다. 전신을 모두 따뜻하게 덮는 형태였고, 팔과 얼굴만 빼꼼 튀어나와 있었다.

착용감이 신기한지 짜리몽땅한 두 팔로 바닥을 짚으며 꼬물꼬물 움직이다가, 시몬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삐융?'하고 울었다.

'귀, 귀여워.'

시몬이 가슴을 부여잡았다. 피어도 한마디 했다.

[크흐흐! 하지만 개라고 하기엔 뒤에 다리가 없다만!]

"그것도 만들 수 있사와요."

에르제베트의 거미줄 조작에는 불가능이 없었다. 그녀가 손을 써서 거미줄로 뒷다리를 만들어주었지만, 라미아는 뒷다리를 쓸 생각이 없는 듯 물개처럼 앞다리로만 기어 다녔다.

강아지로 보이기에는 갈 길이 멀었다.

"자, 라미아. 이번 임무기간 동안은 강아지 흉내를 내야 해."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시몬이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자, 따라 해봐. 멍멍!"

잠시 가만히 있던 라미아가 그 말을 따라 했다.

-뺭! 뺭!

'......강아지인 척하는 건 힘들겠네.'

누가 물어보면 적당히 다른 몬스터의 피가 섞인 종이라고 둘러대기로 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뒤, 시몬과 피어, 에르제베트, 라미아는 함께 걸음을 옮겼다.

오래 걷지 않아 하수인이 말해준 목적지가 보였다.

'저기구나!'

드높고 가파른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커다란 선착장. 아래는 구름이 강처럼 흐르고 있다.

바다 없이 산에 위치한 항구라니, 낯선 감성에 몸이 떨렸다.

가까이 다가가니 선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곧 배가 도착하려는 것 같았다.

'드디어 타보는구나!'

비공정(飛空艇).

오늘 시몬이 타고 갈 '배'였다.

원래 타고 가야 했을 중간 경유지의 텔레포트 마법진이 마비되는 바람에, 여기서 비공정을 타고 다른 텔레포트 마법진까지 이동한 뒤 그곳에서 최종 목적지인 '리버론'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니 하나같이 부티 나는 옷을 입은 귀족이나 거부들이 가득했다. 인력거와 시종까지 대동하고 있는 모습.

비공정은 그 탑승비용이 상당하기에, 보통의 사람들은 탈 방법이 없었다. 특히나 시몬이 이제 곧 타게 될 비공정은 탑승객 신분 제한이 있을 만큼 값비싼 초호화 비공정이었다.

'너무 산골사람 티 내지 말자.'

그렇게 생각한 시몬이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데.

[크하하하하!]

-삐융! 삐유웅!

애초에 일행들이 너무 눈에 띄었다. 학생과 귀부인, 기사, 그리고 애완견의 조합이다.

갑옷 안에 들어간 피어는 몸이 근질거리는 듯 대검을 휘두르는 시늉을 했고, 라미아는 입에서 물방울을 뿌려댔다. 에르제베트는 연약한 척 시몬의 어깨에 기대며 치근덕거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마구 끌리긴 했지만, 시몬은 애써 모른 척하기로 했다.

"곧 비공정이 도착합니다!"

협곡으로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이내 뿌연 안개와 구름을 뚫고, 하늘을 나는 커다란 비행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부티 나는 귀족들도 지금 이 순간에는 탄성을 참지 못하고 '와'하는 소리를 토해냈다. 시몬도 마찬가지였다.

끼기기기기기-

비공정이 서서히 속도를 낮추며 선착장에 안전히 정박했다. 밧줄이 이어지고, 커다란 목재 계단이 비공정과 선착장을 연결한다.

사람들은 설렘 가득한 얼굴로 하나둘 비공정에 오르기 시작했다. 시몬도 첫 비공정 체험에 가슴이 쿵쾅거리는 걸 느끼며 줄을 섰다.

"손님, 입장권을 보여주시겠어요?"

승무원이 말했다.

시몬은 입장권 대신 키젠 학생증을 내밀었고, 승무원은 깜짝 놀라며 지시사항을 확인한 뒤 통과시켜 주었다. 에르제베트와 피어도 일행이라고 하니 가볍게 프리패스다.

이내 비공정에 올라탄 뒤에도 감탄의 연속이었다.

초호화 비공정답게 시설이 대단했는데, 갑판 위에는 고정된 야외 테이블과 그늘막이 있었고 잘 차려입은 웨이터들이 커피와 차를 나르고 있었다.

바드들이 잔잔한 음악을 연주했고, 귀족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웃고 떠들고 있었다.

로크섬 밖에는 결사들이 대륙 전역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데, 그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와도 같은 모습. 호화로움의 끝이었다.

"그럼, 소녀는 비공정 안에 문제가 없는지 조사하고 오겠사와요."

[크흐흐! 나도 나름대로 확인해 보러 가겠다!]

"잘 부탁해요."

결사들이 지금 판치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시몬의 안위. 에르제베트는 라미아를 안고 비공정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러 떠났고, 피어도 따로 움직였다.

시몬도 앞으로 1박 2일 동안 머물게 될 비공정을 둘러보기로 했다.

달칵.

유리로 된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와 보았다.

배 내부에는 커다란 파티홀이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찬란한 조명에 눈이 부셨다.

높은 정사각형 천장과, 흰 대리석 바닥이 돋보이는 호화로운 장소에서 귀족들이 클래식에 맞춰 춤을 추거나, 이런저런 사업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진열된 음식들도 하나같이 고급이었고, 심지어 중앙에는 수영장도 있었다.

'별세계에 온 것 같네.'

시몬이 천천히 파티홀을 둘러보고 있는데, 저 앞에서 귀부인들이 부채로 입을 가린 채 시몬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시몬은 그러려니 하며 주변 탐색에 집중하는 사이, 귀부인들의 재촉을 받은 두 명의 앳된 소녀들이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를 내며 시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들은 뭔가 피곤한 표정이었으나, 시몬의 얼굴을 보고는 살짝 상기된 얼굴로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안녕하세요. 안필라 가문의 영애, 로애니 안필라입니다."

땋은 머리의 소녀가 드레스 자락을 붙잡고 인사했다.

그 옆의 소녀도 비슷하게 인사했다.

"오르베티 가문의 영애, 리워나 오르베티입니다."

이내 시몬도 귀족의 예법에 맞게 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그럴 틈도 없이 그녀들이 뛰어 들어왔다.

"그 교복, 키젠 학생이시죠? 그렇죠?"

"정말 대단하세요!"

그녀들이 두 손을 모으며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시몬은 부담감에 뒷걸음질 쳤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들은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입학시험이 무척 어렵다고 들었어요!"

"혹시 죽음의 마녀 님은 직접 보셨나요?"

"몇 학년이신가요?"

"어디 가문이신가요?"

질문이 너무 많았다. 시몬은 쓰게 웃으며 마지막 질문 두 가지만 대답했다.

"저는 폴렌티아 가문의 시몬 폴렌티아라고 합니다. 2학년이에요."

폴렌티아?

시몬이라는 이름은 신경도 쓰지 않고 가문의 이름에만 집중한 그녀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조금은 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흑마법 실력이 대단히 출중하신가 봐요."

시몬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사이 땋은 머리의 영애가 고개를 홱 돌려 어머니들 쪽으로 손을 휘젓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 곳이구나.'

시몬도 대충 이곳에 대한 분위기 파악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내 영애들은 일상적인 질문을 몇 마디 던지고 빠져나갈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저벅 저벅 저벅 저벅!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 비공정의 승무원들, 그리고 중간에는 검정 제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보인다.

딱 봐도 이 비공정의 높은 위치의 인물 같았다.

"비공정의 함장 헨리크라고 합니다."

숨을 헐떡이며 다가온 그가 깍듯이 허리를 꺾어 인사했다. 그러곤 옆에 주춤거리는 영애들은 번거롭다는 듯 손짓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숙녀 여러분."

승무원들이 다가가 잠시 영애들을 물러나도록 했다. 이내 거리가 떨어지자 함장이 다가와 숨죽인 목소리로 말했다.

"키젠의 시몬 폴렌티아 학생회장님 맞으십니까?"

"아, 네."

그가 경외감 반, 두려움 반의 눈빛으로 시몬을 보았다.

"키, 키젠의 학생회장님께서 이런 곳엔 어쩐 일로....... 혹시 저희 비공정에 이상한 인물이 타고 있는 겁니까? 아니면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시몬이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다음 텔레포트 마법진 경유지로 향하려는 길이었어요."

그의 대답을 들은 함장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군요. 아무튼, 저희 비공정에서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덥석!

그가 시몬의 손을 붙잡았다.

"하루 전에 연락을 해주셨다면 어떻게든 준비했을 겁니다! 지금 저희 VVIP방이 가득 차 있는데 금방 쫓아낼 테니 기다려 주시면...... 아니! 제 방이라도!"

"괜찮아요. 목적지까지 조용히 가고 싶습니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다. 함장이 직접 와서 승객을 접대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홀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불편한 점이 있다면 꼭 말해주십시오!"

"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함장이 승무원들에게 손짓하자, 승무원들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말했다.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시몬이 승무원을 따라가고 있는데, 뒤늦게 분위기 파악이 끝난 두 영애가 뒤에서 달려오며 소리쳤다.

"저, 저기 잠깐만요!"

"실례지만 제가 방 밖으로 나온 게 처음이거든요! 비공정을 안내해 해주시겠어요?"

"저기!"

시몬이 슬쩍 대꾸했다.

"저도 방금 타서 잘 모르겠네요."

시몬의 의중을 파악한 의무원들이 영애들을 가로막았다.

시몬은 그사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 * *

알고 보니 비공정의 파티홀은 원래 그런 분위기였다고 한다.

연인, 사교, 혼인, 각종 만남 등을 위한 장소.

암흑연합의 VIP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기에 그런 '주선'이 상당히 많이 일어나는 곳이었다고.

그나마 갑판 밖에는 조금 더 자유로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시간을 만끽하거나 바깥 경치를 구경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키젠 교복을 입은 시몬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드물었기에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어?'

그러다 시몬의 걸음이 한쪽에서 멈췄다.

키젠 교복을 입은 사람이 또 하나 있었다.

바람결에 휘날리는 회색 스커트, 단정한 검정 재킷과 그 사이로 살짝 모습을 드러낸 빨간 넥타이는 너무나 눈에 익었다.

'누구지? 나 말고 다른 학생이 비공정에 탈 이유가 없는데.'

조사해 봐야겠다고 생각한 시몬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난간에 몸을 기대 노을을 구경하던 여학생이 짜증스럽게 툭 대꾸했다.

"아! 비공정 구경 안 해요. 춤 안 춰요. 술 안 마셔요."

"잠깐, 너......."

시몬의 말에 여학생의 고개가 돌아갔다. 이내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시, 시몬 폴렌티아?"

경쟁이 무척 치열한 2학년 Top10중의 한 명.

엘리사 셀린이 이 비공정에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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