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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884화 (884/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84화

"엘리사! 오랜만이야."

비공정에서 학교 동기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시몬은 반가움을 숨기지 않고 활짝 웃으며 인사했지만, 엘리사는 '허-' 하고 과장된 목소리를 내뱉더니, 인상을 왈칵 찌푸렸다.

"뭔데? 네가 왜 여기 있냐?"

거의 따지는 듯한 물음이었다. 시몬이 어깨를 으쓱했다.

"리버론에 가려고 했는데, 중간 경유지의 텔레포트 마법진이 마비되는 바람에."

"너도?"

그녀가 한숨을 푹 쉬었다.

"난 갤리번 영지. 결사의 사주를 받고 활동한다는 해적 떼를 소탕하러 가는데, 텔레포트가 막혀 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의 목적지인 리버론과 갤리번은 공통점이 있었다.

로크섬에서는 거리가 너무 멀기에 텔레포트 마법진의 경유지를 이용해 가야 한다는 점. 그리고 하필이면 그 경유지가 이번 임무평가에서 가장 많은 학생들이 이동하는, 중립지대 인원들이 쓰는 중간 경유지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언제 동력이 다 찰지 모르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기다릴 시간에, 비공정을 타고 직접 다른 경유지로 이동하려 한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엘리사는 바로 전 선착장에서 비공정을 탔다는 것 같았다.

"아, 진짜-"

그녀가 꽁한 표정으로 머리를 쓸었다.

"학교 밖이니 이제야 좀 그 상판대기 안 보나 했는데, 어떻게 여기서 딱 만나냐?"

평소와는 다른 반응에 시몬은 작게 웃음 지었다.

셀린 가문의 사업은 학생회의 허가를 넘어서, 이제는 교내 전문가들의 검증을 받고 있다. 이제 학생회의 손을 떠난 일이었기에 엘리사는 더 이상 시몬에게 잘 보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태도가 달라질 줄이야.

"정치란 비정하네."

시몬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그녀가 발끈했다.

"다, 닥쳐! 내가 학교 밖에서도 막 비굴하게 빌빌 기고 그래야 하냐?"

"난 그렇게 시킨 적 없어. 학교 안에서도 그런 짓 안 해도 돼."

"말은!"

그녀가 더 이야기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반면 낯선 곳에서 아는 얼굴을 만난 시몬은 내심 즐거웠기에, 난간 앞으로 와 몸을 기대었다.

비공정에서 내려다보는 대륙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푸른 녹지, 방대한 숲, 중간중간 자리 잡은 마을들까지. 모든 것이 작고 아담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 평화로운 분위기다. 현실은 결사 때문에 혼란에 빠져 있겠지만.

"리버론, 가장 어렵고 힘든 곳을 골랐네."

문득 옆에서 엘리사가 말했다.

"학생회장이니 모범을 보이겠단 거야? 아니면 지금 가장 고통받는 대륙민들을 위해,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너라도 가겠다는 의무감?"

시몬은 고개를 저은 뒤, 솔직히 말했다.

"동기는 그냥 사적인 이유야."

"어휴."

엘리사가 답답하다는 듯 이마를 찌푸렸다.

"정말로 그렇다고 한들! 모든 행동에는 대의를 담아야지! 너 정도 위치라면 이제 정치적 이미지에도 신경 써야 하는 거 모르냐? 똥을 싸러 가도 대의를 실으란 말야! 교내 순찰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하하하하!

시몬이 다시 소리 내어 웃었다. 그녀가 눈썹을 모았다.

"왜 자꾸 웃어? 난 진지하거든!"

"네가 말하는 정치란 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배워야 할 게 많겠네."

시몬이 난간에 등을 기댔다.

"1박 2일 동안 잘 부탁해, 엘리사."

"......."

그녀는 고개를 돌려 버리며 입술을 삐쭉였다.

"...너무 친한 척은 하지 말라고."

* * *

시몬은 함선 순찰을 나갔던 피어와 에르제베트, 라미아와 합류했다.

에르제베트는 이 비공정에 위협이 될만한 부분이나 결사의 흔적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보고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1박 2일 동안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했는데,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식사는 비공정 내 파티홀에서 먹을 수도 있었고, 혹은 바람이 그리 불지 않을 때 야외에서 먹을 수도 있었다.

시몬은 야외를 선택했다. 그늘막이 펼쳐져 있는 호화로운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려니 웨이터들이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점심은 구운 감자와 칠면조 요리, 그리고 당근수프다.

그러나 편안히 앉아서 식사하기에는, 주변 사람들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귀여워어어어!"

시몬의 라미아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강아지 옷을 입은 채 바닥에 발라당 누워서 몸을 굴리자 귀족 영애들이 꺄아아악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러댔다.

그녀들이 문질 문질 배를 긁어주자 삐융 삐융! 거리며 라미아가 좋아했다.

"공자님, 이거 무슨 동물이에요?"

영애가 시몬을 바라보며 한껏 간드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시몬이 으깬 감자를 입에 넣으며 대답했다.

"강아지요."

그러자 라미아가 네 발로 서더니 뺭! 뺭! 하고 짖었다. 그 모습에 영애들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안아봐도 되죠?"

"어쩜- 어떻게 이렇게 예쁘니."

주위의 귀족 영애들은 다 시몬에게 몰린 것 같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한 명이 있었다.

"......."

바로 엘리사였다.

애써 신경을 끄고 칠면조 고기를 입에 넣으며 우물거리고 있는데.

꺄아아아악-!

라미아의 재롱에 또다시 한바탕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엘리사가 든 포크가 움찔 떨렸다.

'어우, 시끄러워.'

밥 먹을 때 듣는 소음이 제일 싫었다. 그녀는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애완동물? 저 녀석 평소엔 데리고 다니는 거 본 적도 없는데 무슨.'

딱 봐도 여자들의 관심을 사려고 비공정 타기 전에 준비했을 것이다.

뻔하다. 뻔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

저 녀석도 결국은 다 똑같은 남자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어, 공자님."

그때 라미아를 쓰다듬던 한 영애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시몬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식사 다 끝나시면 뭐 하세......."

"나와 데이트를 할 예정이와요."

그때 시몬의 반대편에 앉아 있던 분홍색 머리카락의 귀부인이 불같은 분노를 뿜어냈다.

"혹시 뭔가 불만이라도?"

"아, 아닙니다!"

그녀의 발언에 영애들이 순식간에 도망치듯 물러섰다. 영락없는 학부모나 친척이라고 생각했는데 연인이었을 줄이야.

지켜보던 엘리사도 입을 벌렸다.

'동행한 여자는 누구? 그새 여자를 꼬신 거야? 저 녀석 연상 취향?'

엘리사가 어처구니없어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엘리사 쪽으로 멋들어진 옷을 차려입은 도련님이 다가왔다.

"키젠 학생이시군요. 혼자 식사하시는 모습에 이렇게 결례를......."

"꺼져요."

"죄, 죄송합니다."

남자가 기가 죽어 떠났다.

처음에 비공정에 올라탔을 때는 명색이 정치가인 만큼 치덕거리는 인간들을 살갑게 대해줬더니, 아주 밑도 끝도 없이 귀찮게 하고 있다. 심지어 방에 들어가 있을 때 문을 두들기기도 했다.

이제는 다 귀찮으니 일관적으로 차갑게 대꾸하기로 했다.

'나 참.'

시몬이 어색하게 입을 벌리고 있고, 핑크색 머리카락의 여자가 음식을 입안에 넣어주는 모습이 보인다.

아직 포기하지 않은 듯 그 주위로 영애들이 눈을 빛내며 지켜보고 있었다.

이 모든 광경이 유치해 보였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시몬은 식사를 마친 뒤 배정받은 방으로 돌아왔다.

"방이 너무 좋은데?"

무척이나 넓고 깨끗한 방이었다. 커튼이 처진 창가로는 밖에서 볼 수 있는 경관이 그대로 보였고, 테이블에는 물과 와인, 탐스러운 과일과 다과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개인 욕조는 물론 침대까지 최고급이었다.

삐융!

라미아도 기분이 좋은지 창가에 찰싹 달라붙었다.

시몬은 겉옷을 벗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오늘은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전신이 노곤하고 눈이 감겨왔다.

"우후후, 군단장님! 와인 한잔하시겠사와요?"

에르제베트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와인을 흔들었다.

"술은 사양할게. 일단은 임무 중이니까."

"어머나, 아쉬워라."

그녀가 입맛을 다셨다.

피어는 몸이 근질거리는지 붕붕 팔을 휘둘러댔고, 라미아는 입가에서 방울을 만들며 허공에 둥둥 떠다녔다. 보는 사람이 없으니 시몬도 제지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나마 꿀 같은 휴식을 맛보고 있을 때.

똑똑.

문을 두들기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퍼뜩 자리에서 일어나 공중에 뜬 라미아를 붙잡아 품에 안았다.

"네, 들어오세요."

딸칵.

이내 문이 열리고,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얼굴을 한 제복 차림의 남자가 들어왔다.

시몬은 아까 비공정의 함장이 인사하러 왔을 때, 오른쪽에 서 있던 왜소한 체구의 남자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실례하겠습니다, 부함장 질드로입니다."

그가 모자를 벗고 꾸벅 인사했다.

"여행 중에 불편한 점은 없으신가요?"

"네, 깨끗하고 편안하네요."

승객과 승무원으로서 이런저런 평탄한 이야기가 오갔다. 하지만 시몬은 그가 뭔가 할 말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시몬은 재촉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고, 이내 부함장이 서서히 운을 뗐다.

"최근 들어 결사라는 자들 때문에 대륙이 어지러운 때에, 키젠의 네크로맨서들이 직접 나서주신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습니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당연히 저희가 해야 하는 의무인데요."

"사실 키젠의 학생회장님이 이곳에 오셨다는 사실에 정말 놀랐습니다. 제가 아는 문제 때문에 오셨나 해서......."

"문제요?"

부함장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입을 열었다.

"이런 사소한 걸 말씀드려도 되나 싶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 * *

같은 시각, 엘리사의 방.

엘리사에게는 일주일에 한 번 셀린 가문의 현역 가주이자, 왕국의 재상인 아버지와의 면담시간이 있었다.

교내에서는 바쁜 학사 일정 때문에 나흘에 한 번이지만, 학교 밖에 나왔을 때는 이 면담은 하루에 한 번으로 바뀐다.

오늘 하루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정치적인 성과가 있었는지, 전부 아버지에게 보고해야 했다.

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통신 수정구로 흘러나오는 아버지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갤리번에 해적 소탕 임무를 간다고 보고했느냐.

"네, 아버지."

-훌륭하다. 갤리번은 펠턴 가문과 브레킹 가문의 영지가 접해 있는 해역이다. 키젠 교내에서 천명한 '결사의 제거' 명분을 통해 우리는 이 두 가문의 영역에 합법적으로 접촉할 수 있게 됐다. 이에 우리 셀린 가문의 정치적 요인은 어떠하다고 생각하느냐.

"우리는 펠턴 가문의 후원자니까, 그들의 편에 서서 해적들을 제거하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해역에 대한 브레킹 가문의 영향력을 떨어뜨리는 건 물론, 지금까지 그들이 처리하지 못한 문제를 보란 듯이 해결했을 때, 사실은 그들이 결사와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줄 수도 있다. 현재 결사와의 협력 의혹은 정치적으로 가장 강력하고 효과가 큰 카드다. 철도사업을 진행 중인 브레킹의 가주에게는 무언의 압박이 되겠지. 우리는 이를 이용해.......

왕국의 재상인 아버지를 둔 죄로, 엘리사는 길고도 긴 암흑연합의 힘의 관계와 정치적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세상은 정치다.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유 없는 움직임은 없고,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의미가 있다.

이 의미들이 모여 정치를 이룬다.

인간 사회는 정치이며,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설교에 엘리사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래, 내 딸아. 처음 타본 비공정은 어떠하냐?

처음으로 화두가 그녀에게 돌아왔다.

장장 두 시간 만에 드디어 딸내미의 생활이 궁금해지셨군. 그렇게 생각하며 엘리사가 입을 열었다.

"지체 높은 가문의 귀족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많은 면에서 공부가 되네요."

-잘했다. 누구와 만났지?

아버지의 물음에 엘리사의 머리가 냉동된 것처럼 굳었다.

누구와 만났더라?

피곤해서 파티홀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가끔 남자들이 치근덕대기도 했는데 누구였더라. 엘리사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다가 간신히 한 명의 가문 이름을 떠올렸다.

"에이크먼 가문의 도련님과......."

-뭐라?

쿵!

통신 수정구에서 테이블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망했다.

엘리사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에이크먼 가문과 대화를 했다고? 지금 제정신이더냐! 에이크먼 가문은 네 고모부의 외가 가문과 에메랄드 광산을 놓고 갈등 중인 세레타 가문에 조력하는 가문이다! 네 생각 없는 행동에 네 고모가 얼마나 곤란해질지 아느냐!

고모부 외가 가문의 에메랄드 광산을 내가 어떻게 아냐고요!

그렇게 외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엘리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장장 수십 분 동안 살벌하게 야단을 친 뒤 말했다.

-에이크먼 가문 외에는 또 누구와 이야기했지?

아, 안 떠오른다.

그녀의 이마에 삐질삐질 땀이 흘렀다.

"저어, 그......."

-설마.

수정구의 목소리가 차갑게 식었다.

-기껏 여러 귀족들이 모이는 비공정까지 타놓고, 정치 수업을 게을리한 것이냐?

그녀의 머릿속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위험하다.

이건 진짜로 위험하다.

아버지에게 한번 찍히면 차기 가주의 우선권이 호시탐탐 그 자리만 노리고 있을 망할 남동생에게 넘어가 버릴 것이다. 아니면 앞서 찍혔던 첫째 언니가 다시 권력을 잡을지도 모른다.

그런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어떻게 얻은 아버지의 신뢰인데!

그녀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자니, 불현듯 어떤 이름이 하나 떠올랐다.

"시, 시몬 폴렌티아와 만났습니다!"

그 말에 재상의 목소리가 멈칫했다.

"셀린 가문의 사업에 힘을 실어준 새로운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요! 네!"

-호오.

재상의 목소리에 노기가 사라지고 흥미로움이 차올랐다.

-시몬 학생회장의 소문은 나도 익히 들었다. 가문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발락을 쓰러트리고 정당한 2학년 학생회장이 됐다지. 하지만 어떻게 같은 키젠 학생끼리 비공정을 탔느냐?

"아, 그......."

아버지의 목소리에 기대감이 가득하다.

그 기대를 배신할 수는 없다.

눈을 굴리던 엘리사가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워, 원래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임무지역에 가려고 했거든요? 근데 마침 시몬 학생회장이 텔레포트 마법진이 소진돼서 비공정을 타고 다른 텔레포트 마법진 쪽으로 가야 한다는 정보를 입수해서요! 저도 얼른 텔레포트 마법진을 포기하고 비공정을 타서 시몬 학생회장을 만나러 온 거예요! 네!"

-내 딸아.

재상의 목소리에 감격이 느껴졌다.

-벌써 그렇게 깊게 생각하고 판을 깔아두다니, 훌륭하다! 이 아비는 네가 자랑스럽구나.

'해냈다!'

그녀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게 얼마 만에 받는 아버지의 인정이란 말인가! 형제만 10명이 넘는 가문에서 늘 아버지의 인정에 목말라 있던 엘리사는 눈물을 찔끔 흘렸다.

-셀린가의 가주가 될 거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암.

"가, 감사합니다!"

-그럼 비공정에 내리기 전까지, 반드시 네가 수행해야 할 숙제를 하나 주겠다.

"그럼요! 아버지! 뭐든 할게요!"

재상이 목소리를 냈다.

-시몬 폴렌티아에게서 네 약혼서에 서명을 받아내라.

"......네?"

엘리사의 시간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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