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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885화 (885/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85화

시몬과 피어, 에르제베트는 부함장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부함장이 고개를 숙였다.

"그냥 그...... 사람의 느낌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것 같다는 그런......."

그때를 회상하고 있는지, 무릎에 올려둔 그의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처음에는 무시하려고 했습니다. 승무원들 사이에서 비공정에서 떨어져 죽은 귀신이니 뭐니 하는 소문은 흔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도저히 넘겨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게 뭐죠?"

시몬도 덩달아 긴장하며 물었다.

"위치를...... 보고하는 것 같았습니다."

부함장이 마른 입가를 달싹였다.

"어둡고 끔찍한 목소리로, 우리 비공정의 위치를 어딘가에 보고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디 상공, 이제는 어디 상공. 아주 상세하게. 심지어 어느 방향으로 갈지도요!"

에르제베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흐음, 그게 그렇게 이상한 건가요? 원래 함장이나 승무원들이 정기적으로 비공정의 위치를 보고하지 않사와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함장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비공정은 항로가 일정해서, 함장님이 선착장에 도착할 때 잠깐 통신수정구로 교신하는 것 외에는 보고 체계가 없습니다!"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자. 계속해 주세요."

"가, 감사합니다. 그래서 함장님께 찾아가 제가 들은 것들을 모두 보고드렸고,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함장님은 제가 너무 예민하다며, 피곤하고 몸이 허해서 그런 소리를 듣는 거라며 크게 귀 기울여 듣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제가 예민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 그런가 싶어서 넘어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함장님과 만난 바로 그 날 밤."

부함장이 손바닥을 쫙 펴서 제 머리카락을 붙들었다.

"이번에도 그 목소리가 비공정의 다음 경유지를 보고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여! 다 죽여! 전부 찢어 죽이라고!"

시몬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무릎 위에 누워 있는 라미아를 샥샥 쓰다듬었다.

"그래서 저는 최대한 빠르게 함장실로 달려가 말했습니다. 승객들 중에서 베텐항에 내리는 사람이 없으니, 경유하지 말고 바로 다음 목적지로 가는 게 어떻겠냐고. 그런 일이 꽤 있었으니 함장님도 동의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항해를 마치고 한참 뒤에 소식을 들었는데-"

터업.

그가 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베텐항이 정체불명의 적의 공격을 받아 파괴됐다고....... 생존자가 없어서 목격자도 없다고 합니다."

[크흐흐흐흐!]

피어가 흥미로운 듯 갑옷이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시몬은 라미아를 침대에 내려놓고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럼 최근에도 그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요?"

"예."

부함장이 절망에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어제도요."

부함장 한 명의 이야기만 들어서는 확신이 서지 않지만, 이 말이 사실이라면 꽤 심각한 사건으로 이어질지도 몰랐다.

시몬이 앞머리를 쓸며 말했다.

"그 후에 함장님의 조치는 따로 없었습니까?"

"믿어주지...... 않으십니다. 이제 저를 그냥 미친놈 취급하시거든요. 호화선이라 귀족 승객들에게 그런 소문이 퍼지면 아무도 비공정을 타지 않을 테니 더더욱 입단속을 시키고 계시고요. 그래도 내심 신경은 쓰고 계셨던 건지, 시몬 학생회장님께서 이 비공정에 오셨을 때 깜짝 놀라서 뛰어가신 겁니다."

-키, 키젠의 학생회장님께서 이런 곳엔 어쩐 일로....... 혹시 저희 비공정에 이상한 인물이 타고 있는 겁니까? 아니면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그래서 그렇게 막 놀란 반응을 보였었던 거였다.

바로 다음에 시몬이 그냥 다음 목적지를 위해 탔을 뿐이라고 말하자 안도한 반응을 보인 것도 이해가 된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시몬이 두 손을 모아 깍지를 꼈다.

"가장 처음에 목소리를 들었던 때가 언제였나요?"

"아마 3주 정도 전이었을 겁니다."

그때라면 정확히 딱 결사가 대륙을 뒤흔들기 시작할 타이밍이었다.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한번 조사해 보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학생회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 * *

시몬은 바로 움직였다.

우선 협력자인 부함장으로부터 승무원과 승객 명단을 받았다.

만약 그 목소리의 정체가 인간일 경우, 승무원이나 장기 승객일 가능성이 컸다. 이 비공정에는 귀족들 간의 인맥 구축과 외부 교류, 혹은 본인의 사치나 파티를 위해 장기적으로 탑승하는 승객들도 있었다. 많지는 않지만 12명 정도가 그런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3주 전부터 지금까지 휴일 없이 비공정에 타고 있는 직원들. 승무원 6명, 청소부와 조리사가 10명.

도합 28명이다.

"명단이 확 줄어들지는 않네."

비공정의 파티홀로 들어온 시몬은 테이블에 앉아 굳은 얼굴로 명단을 확인하고 있었다. 오늘 밤은 파티가 열리는 날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대부분 이리로 와 있었다.

에르제베트의 송장거미들, 그리고 피어와 라미아에게는 다시 한번 함 내를 샅샅이 뒤져보도록 지시했다.

"음."

팔락-

시몬은 서류를 뒤적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나 행동거지가 수상한 사람이 있다면 주시할 생각이었는데, 그냥 다들 파티를 즐기러 나온 귀족들이었다.

부함장의 말을 100% 다 믿는 건 아니지만, 정말로 사람이 아니라 망령 같은 존재가 비공정에 붙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바스락- 펄럭.

시몬이 워낙 진지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서류를 넘기고 있으려니, 근처에 기웃거리던 영애들도 바로 접근하지 못했다.

적당히 그의 일이 끝나가는 시점에 다가가려고 와인만 홀짝거리며 기다리는 그때.

또각 또각.

바닥을 타고 구둣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몬 주위에서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힐끔거리던 영애들은 하나같이 입을 벌리며 좌우로 비켜섰다.

서류를 살피던 시몬도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구두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

이내 구두 소리가 앞에서 딱 멈추자, 시몬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신...... 아."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앞에 보이는 와인색의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소녀.

시몬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다만 평소의 드세 보이는 양 갈래 머리 스타일이 아니라, 탐스럽게 풀어서 생머리처럼 흘러내리도록 했고. 과하지 않은 눈 화장과 립스틱, 무엇보다 둥근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드레스 차림이었다.

"엘리사?"

쭈뼛거리던 엘리사가 빨갛게 잘 익은 얼굴로 미소 지었다.

"......아, 안녕."

그녀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화사하게 웃고는 있었지만 마음속은 그렇지 않았다.

'죽고 싶다. 비공정에서 떨어져 죽고 싶어!'

의상 곳곳에 시몬의 당혹스러운 시선이 닿는 게 느껴진다.

미친 듯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그렇게 얄밉고 짜증 나던 녀석에게 이런 꼴로 나서야 한다니!

그리고 이런 꼴로 그 녀석을 유혹해야 한다니!

셀린 가문의 가주 자리고 뭐고, 당장이라도 도망쳐서 비공정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게 다 아버지 때문이야!'

* * *

-시몬 폴렌티아에게서 네 약혼서에 서명을 받아내라.

왕국의 재상이자 셀린가문의 가주, 그리고 엘리사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그렇게 명령했다.

잠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멍해 있던 엘리사는 이내 고개를 미친 듯이 붕붕 내저었다.

-싫어요! 제, 제가 왜 그런 놈팡이랑 약혼을 해요! 그리고 제가 약혼 서명을 받아내라뇨? 어떻게요!

-그 또한 사내가 아니겠느냐. 당연한 일을 입 아프게 말하게 하지 말거라.

-으아아악! 아아아아악! 아버지!

엘리사의 얼굴이 벌게졌다.

-대체 딸을 어떻게 키우시고 싶은 거예요? 저는 정치가지! 무희가 아닌......!

-어리석은 것!

바로 재상의 호통이 쏟아졌다.

-정치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게 수단이라고 몇 번을 말하지 않았느냐! 네가 가문에서 배운 것을 잊었느냐? 바르게 앉는 법, 좋은 목소리를 내는 법, 춤을 추는 법, 식기를 잡는 법까지!

-아니! 그러니까 그런 게 제가 시몬 폴렌티아 꼬시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요오!

-네가 가진 모든 건 다른 인간과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일련의 수단이다! 이 아비의 가문과 배경! 네 어미의 재력과, 쏙 빼닮게 물려받은 준수한 외모까지! 정치에 남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네가 남자아이였다면 영애들에게 접근시켰을 게다!

-아버지!

-내 이래서 너를 키젠에 입학시키는 것을 망설였건만! 지금 네 남동생은 사교계에서 수많은 영애들과 폭넓은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을 모르느냐! 리스모그 집안의 가주와 이야기할 때 내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알고 있느냔 말이다!

경쟁자인 남동생 이야기가 나오자 엘리사의 입이 쏙 들어가 버렸다.

'걔는 그냥 바람둥이일 뿐이잖아요!'

그런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목구멍으로 삼켰다.

-이제 보니 시몬 폴렌티아를 따라 비공정에 탔다며 아비에게 고한 것도 거짓말이었구나!

-아, 아버지! 그게......!

-이번 일을 해내지 못하면 그 학교생활도 끝이다! 가주직은 네 동생에게 돌아갈 테니 너는 신부수업이나 받아라! 혼처는 내가 알아올 테니까, 알겠느냐?

그렇게 된 일이었다.

엘리사는 크흡 하고 눈물을 삼켰다.

'이럼 어떻게든 시몬 폴렌티아에게 약혼 서명을 받아내는 수밖에 없어!'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엘리사는 평생 권위주의적인 아버지의 밑에서 자라나 그의 관심을 갈구해 왔고, 10명이 넘는 자식들 사이에서 아등바등 경쟁해 왔다.

언니들을 제치고, 남자 형제도 제쳤다. 이게 어떻게 얻은 미래의 가주 후보 자리란 말인가.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셀린가만 내 손에 들어오면 남자 따위는 문제도 아니다.

용기를 낸 그녀가 번쩍 눈을 떴다.

"야, 그......."

"?"

"있잖아......."

그런데 이상하게도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런 놈팡이 하나 꼬시는 것쯤 눈 딱 감고 간단히 해낼 줄 알았는데, 쉽지 않았다.

너무 긴장해서 그런가?

얼굴이 벌게지고 두 손은 어쩔 줄 몰라 하는 마음을 대변하듯 불안하게 움직였다.

-선두를 뺏겼네.

-별꼴이야, 우리가 할 땐 그렇게 뒤에서 째려보더니.

뒤에서 영애들의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으으으, 나도 알아! 안다고!'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자신이 이런 처지가 될 줄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하지만 지금 걸려 있는 매물은 미래의 셀린가 가주 자리다.

마음껏 비웃으라지.

나는 지금 내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을 뿐이다.

"야."

벌써 세 번째 '야'였다.

시몬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편하게 말해, 엘리사."

이게 다 저놈을 남자라고 생각하니 일어나는 일이다.

그냥 평소처럼, 정치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비즈니스 파트너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최면이라도 걸어야 한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던 그녀가 이내 입을 열었다.

"너 있잖아......."

"응."

무슨 말을 해야 하지?

그때 엘리사의 머릿속에는 그렇게 한심해하며 비웃었던, 영애가 시몬에게 걸었던 멘트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호, 호, 혹시 식사 다 끝나면 뭐 해?"

사람은 살다 보면 입 밖으로 다 내뱉기도 전에 '망했다'를 자각하는 순간이 있다.

지금의 엘리사가 그랬다.

곳곳에서 영애들이 '푸흡' 하고 비웃음을 흘리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사는 눈을 질끈 삼켰다. 결과야 뻔할.......

"별일 없어."

그때 시몬이 드드륵 의자를 끌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잘됐네. 나도 네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시몬이 그녀를 에스코트하듯 손 밑에 자신의 손을 살짝 가져다 댔다.

"밖으로 나갈래?"

'세상에.'

저쪽에서 리드해 준다.

오히려 더 베스트였다.

* * *

이내 시몬과 엘리사는 밖으로 나왔다.

엘리사는 그에게 이끌리며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중이었다. 밖으로 나오는 사이 머릿속에 오만가지 망상이 떠올랐다.

'이거 진짜 되는 거 아냐? 나 진짜 해내는 거야?'

'싸가지는 좀 없어도 얼굴 하난...... 잘생기긴 했네.'

'당연히 내가 가주니까 데릴사위인 시몬이 내 성을 따라야겠지.'

그녀는 작게 입술을 움직여 그것을 발음해 보았다.

'시몬 셀린.'

완벽하지 않나? 뭔가 어감도 좋고!

그런 생각을 할수록 심장이 더 더 강하게 뛰었다.

"밖에 나오니 춥지?"

그때 시몬이 교복 재킷을 벗더니 어깨가 훤히 드러나 있는 엘리사의 몸에 덮어주었다. 그녀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고마워'하고 중얼거리며 옷을 붙잡았다.

"참, 그리고 나 할 말이 있는데."

먼저 약혼 이야기까지 해주는 건가!

어둠 속에서도 보이는 전구처럼 그녀의 얼굴이 빨개졌다.

머릿속이 온갖 망상으로 가득 찬 그녀가 소리치듯 답했다.

"응! 특별히 받아줄......!"

"결사가 엮여 있을지도 모르는 사건인데 협력해 줄래?"

그녀가 멍한 얼굴로 눈을 치켜떴다.

"......뭐 이 자식아?"

결사를 이 세상에서 없애 버리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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