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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887화 (887/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87화

커다란 보름달이 뜬 밤하늘, 어떻게 공중에 떠 있는지 의문스러운 대형 언데드 함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구름에 둘러싸여 있는 그것은 이미 선체의 몇몇 부분이 생체화되어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함선.

바로 그 하단부에서.

절그렁! 절그렁!

칠흑과 생체 혈관으로 이루어진 사슬들이 튀어나왔다.

촤르르르르륵!

촤르르르륵!

그것들은 무서운 속도로 뻗어 나가 승객들이 있는 비공정에 연결됐다.

언데드 함선에서 비공정으로 오갈 수 있는 길이 생겼고, 이내 함선에 있던 언데드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사슬을 타고 우르르 쏟아졌다.

거의 대부분이 인간형의 좀비들, 입고 있는 옷은 영락없이 해적들의 옷차림이었다. 해적 무리가 언데드가 된 형태가 틀림없어 보였다.

"어, 언데드! 언데드가 나타났다!"

"달려! 함 내로 들어가!"

갑판에 나와 있던 귀족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서로 부딪히고 얽히고 넘어졌다. 드레스는 찢어졌으며 모자는 하늘을 날아다니고 굽 높은 구두들은 사방에 내팽개쳐졌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네크로맨서! 뭐 하는 거야!"

"어서 저들을 없애게!"

귀족들이 쩌렁쩌렁 소리 지르며 명령했다. 비공정 측에 고용된 경호 네크로맨서들이 다급히 갑판으로 뛰쳐나왔다가, 이 상황을 목격하고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건 승산이...... 없지 않나?"

하늘에 뜬 거대한 언데드 함선.

그리고 그 안에 탄 셀 수도 없이 많은 언데드들.

가히 천재지변과도 같은 광경이었다.

"움직여! 망설일 시간에 흑마법 한 발이라도 더 쏴!"

몇 명 되지도 않는 경비 네크로맨서들이 퍼뜩 정신을 다잡고 흑마법을 시전했다.

그들의 손끝에서 연달아 저주가 쏘아져 나가 사슬 위의 언데드들을 격추했으나 머릿수가 줄어드는 티도 나지 않았다. 적의 숫자는 그만큼 많았다.

"비켜요."

또각 또각.

그때 어깨를 드러낸 아름다운 와인색 드레스 차림의 소녀가 경비 네크로맨서들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워낙 정신이 없어서 그냥 귀족 영애라고 생각한 네크로맨서 한 명이 외쳤다.

"아가씨! 여긴 위험하니 안으로......!"

그렇게 외치던 그의 입이 놀라움으로 벌어졌다.

곳곳에서 허공이 열리더니 창백한 스피릿으로 휩싸인 유령 포문들이 그녀의 뒤로 몇 대나 모습을 드러냈다.

소녀가 함장처럼 팔을 뻗으며 외쳤다.

"포격 개시!"

벽력과도 같은 포음에 주위의 사람들이 귀를 틀어막았다. 스피릿이 실린 포탄이 쐐애액! 파공음을 일으키며 날아가 사슬에 연달아 적중했다.

포격 범위에 들어온 언데드들은 그 즉시 폭사했고, 사슬이 포격에 끊어지며 그 위에 올라타 있던 언데드들이 개미 떼처럼 우르르 까마득한 아래로 떨어졌다.

갑판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우, 진짜.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엘리사는 아공간에서 새하얀 제독 코트를 꺼내 들었다. 그것을 어깨에 가볍게 걸치고, 정신없이 휘날리는 생머리도 평소에 학교 다닐 때처럼 양 갈래로 묶었다.

"저 해적단 놈들 전체가 언데드화 되다니."

주로 대륙의 북쪽 바다에서 활동하는 에크레시 해적단은 한 달 전만 해도 여러 사건들로 신문에 실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불과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 만에 언데드 무리가 되어 비공정을 습격하고 있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런 일이 가능한 건 군단장 정도밖에 없지 않나? 그게 아니면 고위 언데드......."

중얼거리던 그녀가 이내 뒤를 돌아보았다. 저주를 쏘아대던 네크로맨서들이 움찔하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엘리사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딱 봐도 정규 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어중이떠중이 용병들, 돈 아끼려고 경호비를 최소화했네.'

그래도 전력은 전력이니 아예 없는 것보단 나았다.

엘리사가 말했다.

"지금부터 키젠 2학년 엘리사 셀린이 이 전장의 지휘권을 확보하겠습니다. 불만 있으신 분?"

네크로맨서들이 벙찐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불만이 있을 리 없었다.

* * *

같은 시각.

언데드 함선 위.

끄르르르르르!

케게게게겍!

비공정이 공격당하는 가운데, 언데드 함선의 갑판 위는 더더욱 끔찍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갑판으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언데드 해적들이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머리가 꺾이고 다리는 흐느적거렸으며 온몸에서 피나 타액을 줄줄 흘렸다. 그리고 저마다 생전의 차림으로 무기를 손에 쥔 채 비공정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들어라, 나의 형제들이여.]

그리고 이런 언데드들 사이로, 한 남자가 유유히 걸어가고 있었다.

다른 해적 언데들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온전한 모습이었으며, 긴 코트에 해적선장을 상징하는 모자를 쓰고 허리에는 검을 찼다. 턱에는 수염 대신 출렁거리는 촉수가 매달려 있었다.

[우리 에크레시 해적단은 위대한 플레이그 님의 은총을 받은 뒤 첫 번째 출항을 재개했다!]

그가 두 팔을 펼쳐 들었다.

[굶주리고 쫓기던 생활도 이제는 끝이다! 우리는 필멸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힘과 자유를 손에 넣었다. 플레이그 님의 힘으로 이 세상을 무너뜨릴 것이다!]

게게게게게게게게게겍!

끼기기기기!

곳곳에서 언데드들이 호응하듯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간부들도 가라! 선두에서 움직여 방해하는 인간들을 제거해라!]

그의 옆에 서 있던 덩치가 큰 좀비 하나와, 활을 매고 있던 좀비 하나가 빠른 몸놀림으로 움직였다.

[나머지는 나를 따라와라! 전원 하선하......!]

"그렇게는 안 돼."

차분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언데드들의 함성이 멎으며 시선이 움직였다.

어느새 갑판보다 더 높은 창고 건물 위로, 학생회장 코트를 펄럭거리며 서 있는 푸른 머리카락의 소년이 보였다.

그는 해적 좀비를 하나를 한 손으로 붙들고 있었다.

'군단화가 잘 안 되네.'

소년이 손에서 힘을 놓자 해적 좀비가 갑판에 떨어졌다. 그러고는 턱에 손을 올린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일반적인 자연형 언데드는 아니고. 북신과 같은 하이브 체계의 고위 언데드가 조종하는 개체인가?"

[어리석은 자여,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해적선의 선장, 에크레시가 말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살아 돌아갈 수 없으리라.]

"......지성이 있는 언데드, 아니."

시몬이 찌뿌둥한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말을 이었다.

"당신, 네크로맨서지?"

[.......]

"이 언데드들 전부 최근까지는 인간이었던 것 같은데. 힘을 얻기 위해 네 부하들을 함선째로 어떤 언데드에게 종속시킨 거네. 아냐?"

에크레시의 눈이 번뜩였다.

[죽여라.]

갸갸갸갸갸갸갸갹!

기기기기기!

해적 좀비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어 와 시몬이 있는 창고 위로 올라오려고 했다. 순식간에 주위가 바글거리고 새까만 것들로 꽉 채워졌다.

시몬은 등을 올곧게 펴며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홀로 내 배에 들어온 걸 후회하게 해주마!]

"미안하지만."

시몬이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려 에메랄드빛 관을 머리 위에 썼다.

"혼자는 아니야."

<시몬 오리지널 - 친위대>

시몬의 뒤에서 폭죽 터지듯 24기의 에메랄드빛 섬광이 고공으로 치솟았다. 놀란 언데드들이 기긱! 소리를 내며 물러났고, 시몬이 손바닥을 내리긋는 것으로 친위대들이 별똥별처럼 갑판에 내려왔다.

촤아아아악!

촤아아악!

어두운 밤, 사방에 청록빛 검광이 연달아 그어지며 해적 좀비들의 육편이 공중을 날아다녔다.

압도적인 힘과 속도.

같은 언데드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격차였다. 현란하게 망토를 휘날리는 24기의 스켈레톤들이 수백의 언데드들을 압도하며 썰어버리고 있었다.

[.......]

철퍽!

굳은 표정의 에크레시의 옆으로, 검에 베인 좀비 하나의 목이 굴러떨어졌다.

사방이 붉고 어두운 피로 점철되고 있는 가운데, 시몬이 안전하게 갑판 위로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타고 있던 배를 습격한 건 실수야, 해적 선장."

시몬이 검은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 주위로 친위대들이 호위하듯 뒤따르며 해적 언데드들을 모조리 베어 넘기고 있었다.

바닥에서는 거대한 촉수칼날이 솟구쳐 주위의 언데드들을 꿰뚫어 버렸고, 하늘에서는 아공간이 열리더니 스켈레톤 메이지의 검은 불덩이들이 연달아 쏘아졌다.

압도적인 광경을 등진 채 시몬이 말했다.

"당신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아내야겠어."

[건방 떨지 마라!]

에크레시가 마법진을 펼치고 사용했다.

시몬은 에크레시의 몸을 중심으로 파장 같은 게 퍼져 나가는 걸 느꼈다.

'이 기술은.......'

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

주위의 해적 언데드들의 안광이 번뜩이더니 갑자기 상황이 달라졌다. 일방적으로 친위대에게 쓰러져 가던 해적들이 이내 친위대에게 들러붙으며 반격하기 시작했다.

'배 전체에 적용되는 광범위 장송마법?'

신기한 원리였다.

틀림없이 단일 개체에게 사용하는 장송마법인데, 특이하게도 배 전체에 장송마법의 효과가 일어나고 있다.

아무래도 저 능력이 에크레시라는 네크로맨서가 가진 오리지널인 것 같았다.

[그 옷차림을 보니 키젠의 학생회장이로군! 하지만 여기는 진짜 전장이고 내 영역이다! 실전의 격차를 느끼게 해주마!]

기기기기기기기!

반격의 공세가 거세졌다. 친위대들이 몇 번 공격을 허용했는지 피해 공유를 받고 있는 시몬도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척!

그리고 에크레시가 아래를 가리켰다.

[무엇보다 네가 저 배의 최고 전력이라면,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

[전탄, 퍼부어라.]

퍼어어어엉!

퍼어어엉!

에크레시의 손짓과 함께, 언데드 함선에서 연달아 포탄이 발사되었다. 비공정에 연달아 포격이 적중하며 아래에서 불길과 비명이 쏟아졌다.

[이곳에서 네가 내 부하들에 붙들려 있는 사이, 비공정은 하늘에서 떨어질 거다!]

함선에서 포격이 연달아 발사되고 있었지만, 시몬은 태연한 반응으로 통신 수정구를 들어 올렸다.

"지금이야, 엘리사."

쿠우우우우웅!

갑자기 거대한 충격이 일어나더니 선체가 아래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해적 언데드들이 아래로 쏠려 내려갔다.

까가가가가가각!

하늘을 나는 유령선 한 척이 아래에서 위로 언데드 함선을 들이박은 것이다. 선체의 균형이 쏠리며, 비공정을 쏘던 포문의 각도가 일그러졌다.

"아래엔 엘리사가 있어."

시몬이 말했다.

미리 본 아머를 내려서 발목을 바닥에 고정해 두고 있던 시몬과 친위대들은 쓸려 내려가지 않았다.

휘오오오오!

갑판으로 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에크레시와 언데드들의 고개가 하늘로 향했다.

커다란 보름달을 배경 삼아, 그들이 있는 언데드 함선보다 더 높은 고공에 귀신들린 범선 한 척이 더 모습을 드러냈다.

철컥.

철컥.

유령선의 모든 포대들이 스스로 움직여, 언데드들이 우글거리는 갑판을 조준했다.

지금 함선의 균형이 한쪽으로 쓸려 있었기에 언데드들이 온통 한쪽으로 뭉쳐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각도였다.

시몬은 잠깐의 기분 좋은 정적을 만끽한 뒤, 입을 열었다.

"쏴도 좋아."

퍼어어어어어엉!

콰아아아앙!

스피릿이 담긴 포격이 쏟아져 내렸다. 해적 언데드들이 대량으로 폭사해 나갔다. 시몬과 친위대들은 포격의 방향에서 살짝 우회하여 갑판을 올라오는 언데드들을 가뿐히 베어나갔다.

정밀 포격이었기에 시몬과 소환수들은 포격의 피해를 일절 받지 않았다.

[움직여라! 어서 방향을 틀고 저 배부터 쏴서 맞춰라!]

에크레시가 지시를 바꾸었다. 비공정을 향해 포격을 쏟아붓던 언데드 함선의 포대들의 방향이 엘리사의 유령선 쪽으로 향했다.

보름달이 뜬 달밤.

하늘에 떠 있는 언데드 함선들이 본격적인 함대전을 시작했다.

"그럼 이제 나도 가볼까."

시몬이 가볍게 팔을 쭉쭉 뻗으며 스트레칭을 한 뒤, 바닥을 딛고 날아올랐다.

그의 손에 검이 들리고, 망토가 펼쳐졌다.

[나를 따르라.]

언데드들에게 향하는 절대명령과 함께, 무수한 에메랄드빛 섬광들이 에크레시 무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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