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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892화 (892/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92화

눈앞에 있는 건 시몬의 앞선 세대의 역대 학생회장들.

판타서스 휴 이켈과 에이젤 브링어였다.

왜 이 두 사람이 같이 리버론에 있단 말인가. 눈이 동그래진 시몬이 그들을 휙휙 번갈아 보고 있는데, 판타서스가 하하하하!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잘 있었나 시몬 후임! 이렇게 또 보게 되다니, 음!"

그가 솥뚜껑만 한 손바닥으로 시몬의 어깨를 철썩철썩 때렸다. 어찌나 강한 힘인지 시몬의 몸이 위아래로 왔다 갔다 했다.

그 모습을 안쓰럽게 보던 에이젤이 넌지시 말했다.

"선배."

"아, 그렇지! 지금 이럴 때가 아니군."

후욱.

판타서스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입가에서 흘러나온 입김이 뿌옇게 흩어지고, 그 너머로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더 이상 아까의 화염은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태는 일단락된 것 같구만."

쏴아아아아아아-!

판타서스가 흑마법을 사용하자, 발밑에서 물보라가 일어나 그의 몸을 띄웠다.

"자네도 리버론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도우러 온 거겠지? 회포는 조금 있다가 풀도록 하지!"

"아, 넵! 이제 저는 뭘 하면 좋을까요?"

"눈에 닿는 사람들을 구조하게! 아까 본 아머를 움직여 사람들을 빼내는 모습이 기가 막히더군."

보고 있었구나.

어쩐지 민망해진 시몬이 뺨을 긁적이고 있는데, 판타서스가 팔을 뻗었다.

척!

그러고는 저 멀리 돔 형태의 높고 거대한 극장 건물을 가리켰다.

거리가 꽤 됐지만, 워낙 커서 그런지 주위의 건물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었다.

"일이 마무리되면 저 건물에서 만나세! 자, 그럼 가세나 에이젤 후임!"

덥석!

판타서스가 대뜸 에이젤의 멱살을 붙잡고, 파도를 움직여 바람처럼 나아갔다. 에이젤의 비명이 들렸다.

-나아주우웅에 봐아아-!

에이젤의 외침이 점점 흐려져 갔다. 시몬은 쓰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폭풍이 한차례 지나간 기분이었다.

* * *

몬스터 소탕은 그 두 사람에게 맡기고, 시몬은 판타서스가 말한 대로 구조활동에 전념했다.

건물에 붙은 불길은 수로의 물을 퍼와서 끄거나, 까맣게 그을려 위태로운 목재 건물은 무너지기 전에 해체했다.

잔해에 깔린 사람들을 구조했으며, 그들의 피난을 유도했다.

주민들의 표정은 당연히 좋을 리가 없었다. 다치고 지친 사람들이 많았다. 시몬도 수업시간에 만든 회복포션을 꺼내 화상 부위에 붓는 등 응급조치를 했다.

어느 정도 구조작업이 마무리되자, 시몬은 판타서스가 가리켰던 건물로 걸어갔다.

거대한 돔 형태의 건물,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리버론의 대극장이라는 것 같았다.

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아."

시몬은 눈 앞에 펼쳐진 참담한 광경에 말을 잊고 말았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이곳은 명배우들이 노래를 부르고, 수많은 관중들이 환호하며 손뼉을 치던 장소였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집을 잃은 이재민 수천 명이 이 안에서 바글거리고 있었다. 다들 하나같이 그을림이나 재가 잔뜩 묻은 옷을 입었고, 거적때기나 담요를 붙잡고 웅크린 채 바닥에 천 하나만 깔고 새우잠을 청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어머니들은 급히 수유를 했고, 조금 큰 아이들은 돌빵 같은 걸 싸구려 음식을 깨작거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좁은 곳에 사람이 너무 많다. 사방에서 분뇨 냄새가 풍기고, 서로 잔뜩 예민해져 있는 탓인지 고성방가가 울려 퍼진다.

"저기."

그때 이곳의 관리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시몬을 보고 다가왔다.

"실례지만 혹시......."

그는 시몬이 어깨에 두른 학생회장 코트를 보고 있었다. 시몬이 입을 열었다.

"키젠에서 온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아, 역시 그렇군요! 판타서스 님의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시몬은 그를 따라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꾸만 이곳의 상황이 눈에 밟혔다.

앞에는 배식을 하고 있었는데, 그 줄이 대극장 전체를 빙 돌아서 끝없이 늘어져 있었다.

-이봐, 어딜 끼어들어!

-두 번째로 줄 선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예민해진 사람들 사이에서 온갖 주먹다짐이 일어나고, 심지어는 저 끝에서는 칼부림마저 벌어졌다. 경비병들이 셔츠에 피 묻은 남자를 끌어내고 있었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퀭한 표정으로 바닥만 바라볼 뿐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절망과 무력감만이 가득했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죠?"

시몬이 물었다. 관리원은 한숨을 푹 쉬었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게......."

"주룡(主龍)께서 노하셨습니다!"

시몬의 고개가 소리가 난 방향으로 움직였다.

나무 잔해 따위를 쌓아서 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올라간 노파가 두 팔을 들어 올리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 노여움을 풀어드리지 않는 이상, 도시에 닥친 재난과 불행은 계속될 겁니다! 우리 인간은 전부 불타 죽고, 영지에 들어온 몬스터들이 그 잔해를 먹게 될 겁니다!"

오오-!

이제 보니 노파의 연설에 호응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정신적으로 벼랑 끝에 몰릴수록 저런 걸 믿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수백 년 전부터, 우리 미약한 인간들이 리버론을 세우기도 전에, 주룡께서는 산맥의 주군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주룡께서 무엇 때문에 노하셨겠습니까!"

노파가 목소리를 높였다.

"인간들은 욕망에 눈이 돌아가 끊임없이 자신의 세력을 넓히려 했습니다! 주룡의 땅을 허락 없이 개간하고, 약초와 나무를 채취했습니다! 그뿐만이겠습니까! 트레저 헌터들은 주룡의 보물을 탐하여 산맥으로 들어갔고, 네크로맨서들은 주룡의 자식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손에 넣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시몬은 움찔했다.

역시 여기서는 절대 본 드래곤 비슷한 이야기도 꺼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년 전의 제물의식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노파가 팔을 뻗어, 아이들을 가리켰다.

이야기를 듣던 아이 엄마가 화들짝 놀라며 제 아이를 품으로 숨겼지만, 살벌한 시선들이 그쪽으로 꽂혔다.

"우선 아이 스무 명을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그리고 용의 시체를 노리는 네크로맨서와 트레저 헌터들을 이 도시에서 추방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룡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 말에 눈이 벌겋게 변한 몇몇 남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를 노리고 있었다.

듣다 못한 관리원이 시몬을 보며 말했다.

"제가 제지할 테니 학생회장님 먼저 가시죠. 여기서 앞으로 쭉 가시면 휴게실이 나올 겁니다."

"아,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내 관리원이 경비병들과 함께 들이닥쳐 아이들을 보호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은 작게 한숨을 쉬며 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한 일들은 아니었지만, 본 드래곤을 보유하고 있는 네크로맨서로서 뭔가 기분이 뒤숭숭했다.

"......끙, 정말로 드래곤이 도시를 공격한 건가?"

"맞아."

맞장구치는 한 마디에 시몬의 고개가 돌아갔다.

극장 홀을 빠져나와 여러 방들이 있는 장소, 그곳에 벽에 기대어 선 말총머리의 남자가 시가를 입에 물고 있었다.

치이이이-

손끝에서 불꽃을 일으켜 불을 붙인 그가 그게 한숨을 빨아들인 뒤 옆으로 연기를 뿌옇게 뿜어냈다.

방금 큰 전투를 벌인 건지 곳곳에 작은 자상과 마른 땀냄새, 찢어진 옷, 그리고 얼굴에 튄 핏자국이 보였다.

"산맥에 미친용이 있어. 그 녀석이 원인이야."

'미친용.'

시몬의 눈이 게슴츠레 떠졌다.

"그 녀석이 용언으로 근처의 몬스터들까지 조종하는 바람에, 일반인들은 영지에서 빠져나가기도 어렵지. 암튼-"

말총머리의 남자가 다가와 반대쪽 손을 내밀었다.

"기길, 떠돌이 네크로맨서다."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옷 때깔 좋네. 키젠 학생이지?"

"네."

그가 끌끌 웃으며 다시 시가를 입에 물더니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어서 와."

끼이이익.

이내 에스코트하듯 문을 열고 들어가라는 듯 윙크했다. 시몬은 조금 경계하듯 멈춰 있다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대극장의 배우 대기실이나 휴게실 정도로 보이는 장소.

곳곳에서 위험한 냄새를 잔뜩 풍기는 네크로맨서나 용병들이 개성대로 자리를 잡고 쉬고 있었다.

깔깔깔-!

벽에 기댄 채 제 스켈레톤의 재롱을 보고 있는 장년의 여자.

꿀떡 꿀떡 꿀떡.

방금 잡은 몬스터의 시체를 놓고, 빨대 같은 것을 안에 꽂아서 피를 빨아먹고 있는 괴팍한 남자.

쿵! 쿵! 쿵!

그리고 뒤에서는 덩치가 거대한 전사가 도끼를 짊어진 채 안으로 들어왔다. 몸에 몬스터들의 내장 따위가 주렁주렁 엮여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우리 친구도 리버론에 한몫 잡으러 온 거야?"

시가 연기를 빨아들이며 기길이 말했다. 시몬이 고개를 내저었다.

"한 몫이 아니라, 리버론을 도우러 왔습니다."

"그래? 의외네. 엘리트들이나 몸값이 비싼 네크로맨서들은 이런 미친 현장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그가 클클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

"보통은 우리 같은 막장들이 이런 곳까지 기어들어 와. 신분이나 과거 같은 건 안 따지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써주거든."

"그렇군요."

복도 쪽을 보니, 이 방 말고도 네크로맨서들이 꽤나 많이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늘 학교에만 있다가, 이런 날것의 현장 같은 느낌은 꽤 색달랐다.

"그런데 기길."

"음?"

<캔슬 스파크>

파직 파직!

시몬의 몸에 검푸른 전류가 연달아 튀었다. 그러자 그의 옷깃에 묻어 있던 검은 연기가 깨끗이 사라졌다.

"다짜고짜 저주부터 거는 건, 원래 이쪽 네크로맨서들의 환영 인사예요?"

<아마니타(Amanita)>

시몬도 손끝에서 흑색 저주를 날려 보냈다. 기길이 빙긋 웃으며 손바닥을 펼쳤다.

"에이, 들켰네. 어떻게 알았어?"

<캔슬레이션>

시몬의 저주와 기길의 캔슬레이션이 서로 부딪혀 파훼되었다.

"장난이야, 장난. 흥분하지...... 어?"

파지직!

그런데 캔슬레이션에 파훼되어 사라져야 했을 저주가, 불똥처럼 튀면서 기길의 몸에 끼얹어졌다. 기길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파훼기를 맞으면 퍼지도록 설계한 건가. 하여간 요즘 애들은 신기한 저주를 쓰는...... 응?"

그의 뺨 한가운데에 떡 하니 버섯 하나가 '퐁' 소리와 함께 튀어나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몸 곳곳에 버섯들이 계속해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에이 씨, 윽! 이거 뭐야!"

깔깔깔깔깔!

다른 네크로맨서들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기길! 역으로 당했네!

-계속 까불더니 저럴 줄 알았지!

버섯이 이제는 몸을 덮을 기세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기길이 다급하게 말했다.

"어, 어이! 이 저주 좀 풀어봐! 그냥 네크로맨서들끼리 하는 장난이었다고! 다짜고짜 진짜를 쏘는 게 어딨어!"

"제게 그 저주를 가르쳐 준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말씀하셨어요."

시몬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몰래 저주를 건 자는 목에 칼을 겨눈 것이나 다름없으니 배로 되갚아라. 죽여도 좋다. 라고."

하하하하하하하!

흥미롭게 지켜보던 네크로맨서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시몬을 바라보았다.

"거 교수님 말씀 잘 듣는 학생이네!"

"누가 그랬다고?"

그 물음에 시몬이 태연히 대답했다.

"바힐 아마가르요."

뚝.

그 순간.

이 공간에 완벽한 정적이 휩싸였다.

세상 두려울 거 없어 보이던 용병들이 하나같이 슬슬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와.'

유명하다 유명하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네크로맨서들의 세계에서 바힐의 이름이 가지는 파급력은 역시 대단한 것 같았다.

몸에 점점 버섯이 늘어가며 이제는 숨도 쉬기 어려워진 기길이 애원하듯 말했다.

"바힐의 저주니까 내가 지는 게 당연하지! 아으윽! 이, 이봐! 내가 잘못했다! 어? 이것 좀! 크으윽!"

시몬이 눈을 감았다.

아까 기길이 자신에게 건 저주도 단순한 재채기 저주 정도였으니, 시몬은 이쯤에서 해주 마법을 걸어주었다.

그의 몸에서 버섯들이 멈추고 바닥에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여기 있었군!"

벌컥!

그때 마침 문이 열리며 판타서스가 들어왔다. 그가 히죽 웃으며 바닥에 쓰러진 기길과, 시몬을 바라보았다.

"벌써 한바탕했나, 시몬 후임!"

"네, 그렇게 됐네요."

"아주 잘했네! 당했으면 되갚아 줘야지!"

판타서스가 시몬의 어깨를 감싸며 웃었다.

스으.

그때 후드를 쓴 채 옆으로 들어온 에이젤이 손끝을 세우며 다가왔다.

"기길."

"자, 잠깐만! 에이젤! 나는......!"

에이젤의 검지 끝이 번쩍하자, 기길의 몸이 저만치 날아갔다. 그의 몸이 바람에 휘말려 공처럼 퉁퉁 대기실 바닥을 튀기며 멀어져 갔다.

에이젤의 음침해 보이던 눈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불만이 있으면 내게 말해. 후배를 건드리지 말고."

시원한 복수였다.

네크로맨서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키젠 저 어린 것들이 벌써 기강 잡네!"

"키젠이잖아. 얌전히 깔려드려야지."

쿵. 쿵.

이제 판타서스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가 손짓으로 뭐라고 지시했고, 에이젤이 그의 앞에 마법진을 깔았다.

칠흑 바람계 마법을 이용한 확성 마법이었다.

-잘 들어주시게! 제군들!

판타서스가 양 주먹을 맞부딪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 이름은 판타서스 휴 이켈! 그대들의 분투에 고마움을 느끼네! 오늘도 많은 주민들이 덕분에 살아남았네.

네크로맨서들이 팔짱을 끼며 판타서스를 주목했다. 벽을 혼령화 상태로 넘어와 이야기를 듣는 자들도 있었다. 판타서스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참극이 끝나지 않을 걸세! 나는 리버론 북쪽 산맥에서 영지를 공격하는 드래곤을 만나러 갈 '원정대'를 모집할 생각이네!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판타서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목숨을 걸고 함께 드래곤을 만나러 갈 자가 있다면, 누구든 지원해 주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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