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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898화 (898/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98화

"......."

시몬이 눈을 떴다.

순간적으로 기억이 끊겼다. 폭주한 커록커즈의 눈동자에 그 흉측한 삼각형이 보였고, 거기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정신을 차리니 이 공간 안이었다.

"여긴......."

축축한 바닥을 딛고 일어났다. 코가 마비됐는지 이제는 악취가 제대로 나지도 않았다.

[크흐흐! 정신을 차렸나? 소년.]

피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피어! 갑자기 어떻게 된 거예요?"

[여긴 그 커록커즈라는 드래곤의 몸속이다! 네가 멍하니 있는 사이 꼼짝없이 집어삼켜진 거지.]

"......몸속."

생물의 체내라고 하기에는 상태가 이상했다. 속 내부부터 온통 새까맣게 오염되어 있었는데, 이쯤 되면 오염에 동화된 것처럼 보였다.

손바닥을 펼쳐서 벽면을 쓸어보니 새까만 구정물 같은 게 묻어나왔다.

"칠흑이 베이스인 것 같기는 한데, 완전히 성질이 다르네요."

[그렇군. 생명을 집어삼키고 끊임없이 죽음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생물의 최고봉이라고 불리는 드래곤의 생명력마저 죽음으로 오염시키는 힘.

[비견될 만한 거라면-]

"네."

시몬과 피어가 동시에 그 단어를 떠올렸다.

[암서.]

"암서."

후욱.

시몬이 숨을 내뱉었다.

거의 모든 단서들이 결사를 가리키고 있다.

이번 발락 사태 때 알게 된 점이지만 암서는 살해욕을 비롯한 인간의 '충동'을 부추긴다고 했다.

결사 쪽에서 모종의 방식으로 암서에 해당하는 뭔가를 이 드래곤에게 삽입했다면? 정신과 육체가 오염됐을 테고, 결국 지금처럼 미쳐 버리게 됐을 것이다.

드래곤을 오염시킨 이유야 뻔하다.

규율상 드래곤은 같은 드래곤을 죽이지 못한다. 오염된 드래곤이 주위에 피해를 입히기 시작하면 결국 인간이 나서서 죽일 수밖에 없을 테고, 바로 인간과 드래곤 간의 종족전쟁으로 발전할 것이다.

'절대 결사의 의도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둘 순 없어.'

시몬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피어가 입을 열었다.

[그보다 소년! 전면에 불길한 힘의 파장이 느껴진다.]

"네, 저도 느끼고 있어요."

집어삼켜지긴 했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시몬은 피부가 아릿할 만큼 불길한 파장이 느껴지는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오염된 체내라서 신체의 어디쯤이라고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었다. 갑자기 길이 확 좁아지는 곳도 있었고, 날붙이로 찢어서 내부를 벌리고 가야 하는 곳도 있었다.

그런데 내부의 살을 찢어도 드래곤은 고통스러워하는 기색도 없었다. 이미 생물이라 하기에도 뭣한 수준이다.

그렇게 드래곤의 신체를 마구 헤집으며 걸은 끝에.

'찾았다.'

살덩이에 파묻힌 '드래곤 하트'가 두근거리며 맥동하는 모습이 보인다.

드래곤은 마나의 생물이라고 불리는 존재다. 고위 마법은 물론, 드래곤 피어나 브레스, 용언 등 절대적인 힘을 휘두를 수 있게 하는 원천이 바로 드래곤 하트였다.

'그런데.......'

그 드래곤 하트가 오염되어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마나를 온몸으로 보내는 게 아니라, 이 오염된 기운을 전신으로 실어나르고 있었다.

이게 드래곤이 미쳐 버린 직접적인 원인이리라.

[크흐흐! 이 정도로 오염됐다면 언데드 재료로 써먹기는 글러 먹었군!]

'......피어, 이 와중에도.'

시몬이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뒤 다시 검게 물든 드래곤 하트를 바라보았다.

'원래대로 되돌릴 수는 없을까?'

[이런.]

그때 머릿속에서 피어의 탄식이 일어났다.

[소년! 네 몸을 봐라!]

"아."

어느새 시몬의 피부가 커록커즈처럼 새까맣게 물들고 있었다.

'이런 곳에 있으니 오염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몸에 감각이 무뎌지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태연했다.

사실은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최근 에크레시 해적단과 싸우면서 배운 게 있었다. 시몬은 숨을 길게 들이마시며 눈을 감았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화아아아아악!

드래곤의 몸 안에서는 들킬 염려도 없다.

어두운 공간에 눈부신 신성이 몰아치며 옷자락이 솟구쳤다. 프리스트가 된 시몬의 머리카락이 펄럭이며 이마를 드러냈다.

'좋아.'

신성을 받아들인 시몬이 제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피부가 새까맣게 물들어가던 오염 증상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크흐흐! 이거 흥미롭군, 신성이라면 이 죽음의 힘도 정화할 수 있는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신성 본연의 정화력은 아니다.

아마도 자신이 가진 3개의 '성녀의 정수' 잔재 중 하나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발락과의 전투에서 면역력이 조금 생겼다거나. 사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그럼.'

시몬이 오염된 드래곤 하트에 손을 올렸다. 이대로 정화를 시도해 볼 생각이었으나.

쿠쿠쿠쿠쿵!

"흐억!"

시몬의 몸이 그대로 날아가 생체벽면에 부딪혔다. 드래곤이 울부짖는 고통스러운 소리가 이 안에서도 들렸다.

'아까 칼로 벨 때는 아파하지도 않더니!'

아무래도 암서의 힘이 칠흑 베이스라서 신성에 강력한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시몬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금 드래곤 하트에 신성을 일으킨 부분을 바라보았다. 죽음의 힘이 신성마저 집어삼키고 있었다.

[크흐흐! 적절한 조치는 아니었던 것 같군.]

"네."

신성을 더 쏟아부으면 뭔가 반응이 있겠지만, 그건 정화가 아니라 파괴다. 드래곤 하트가 터져 버릴 거고, 커록커즈는 인간인 시몬이 죽인 게 되므로 드래곤들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시몬에겐 아직 한 가지가 수가 더 있었다.

"잘됐네요. 이번에 새로 얻은 기술을 써보죠!"

그 말을 들은 피어가 웃음 지었다.

[아직 완전한 힘은 아니다만!]

"그래도 될 만한 건 전부 다 동원해 봐야죠."

결정이 내려지자 행동은 빨랐다. 시몬이 네크로맨서로 돌아왔고, 피어가 아공간에서 튀어나왔다. 이내 순식간에 피어의 본 아머로 무장한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세워 들고 눈을 감았다.

'나와라, 벨제불.'

파멸의 대검이 일순 붉게 물들었다.

드워프들의 '그랜드포지' 사태를 해결하고 보상으로 받은 벨제불의 살점. 바로 최근에 이 살점을 무사히 인수받았고, 파멸의 대검에 흡수시키는 데 성공했다.

물론 온전한 벨제불이 아니라 살점 한쪽만 흡수한 만큼, 대검은 붉은색이 아닌 분홍색에 가까웠다.

-시몬 폴렌티아! 나를 위해 신성연방에 복수해라!

이 힘을 사용하는 중에는 벨제불의 살점이 헛소리를 내뱉는 걸 얌전히 들어줘야 한다는 게 유일한 단점이었다.

시몬이 대검을 치켜들고 드래곤 하트를 향해 겨누었다.

'타락은 섭리를 비틀고 조롱하는 힘.'

시몬이 숨을 들이마시며 다리를 앞으로 천천히 뻗었다.

'죽음의 기운이 흘러나가지 못하도록, 변형한다.'

이내 붉어진 검이 드래곤 하트를 향해 내려왔다.

* * *

같은 시각, 판타서스 일행은 폭주한 커록커즈의 공세를 마주하고 있었다.

캬아아아아아아악!

전신에서 오염된 액체를 뚝뚝 떨어뜨리며, 커록커즈가 하늘로 날아올라 브레스를 쏴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결계를 부수고 빠져나갈 기세였다.

"크읍, 시몬......!"

그리고 브레스를 피해 하늘에 떠 있던 에이젤이 굳은 얼굴로 입술을 짓씹었다.

"더는 참을 수 없어요 선배! 전쟁이고 뭐고 저 괴물을 없애 버려야겠어요."

"조금만 더 기다리게나, 에이젤 후임!"

판타서스가 말했다.

"시몬 후임은 아직 살아 있을 걸세!"

"무슨 소리예요! 저 오염된 괴물에 닿기만 해도 드래곤들도 죽어나는데요! 저기 집어삼켜졌다면......!"

콰아아앙!

굉음이 울려 퍼지며 두 사람의 대화가 끊겼다.

유르이스가 본 모습인 블루드래곤 상태로 날아올라 커록커즈를 상대하고 있었다.

브레스와 브레스가 부딪히며 결계 안에 흉악한 자연재해를 일으켰고, 이내 두 드래곤이 서로 뒤엉키며 육탄전까지 벌였다.

[제발 정신 차리세요! 커록커즈!]

유르이스가 두 팔로 커록커즈를 붙든 뒤 결계에 얼굴을 갈아붙이며 비행했다.

드드드드득!

커록커즈의 얼굴이 결계에 갈리고 있었지만, 유르이스는 자신의 얼굴이 닳는 것처럼 괴로워했다.

[미르미즈 님의 정신이 아직 남아 있을 때 약속했어요! 당신만큼은 지키겠다고! 하지만 당신마저 우리 곁을 떠난다면 나는 더 이상......!]

그때 유르이스가 커록커즈를 놓치고 말았다. 커록커즈에 접촉한 그녀의 두 팔이 오염되어 시꺼멓게 물들어 버린 탓이었다.

그 즉시 커록커즈가 반격하여 두 다리로 유르이스의 어깨를 붙든 뒤, 오른팔을 망치처럼 휘둘렀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앙-!

대기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유르이스가 날아가 지면에 충돌했다. 흙먼지가 수십 층의 높이로 솟구치며 드높은 결계의 천장에 닿았다.

흥분한 커록커즈가 거칠게 포효했다.

"이대론 다 죽어요, 선배."

지켜보던 에이젤이 두 손에 마법진을 펼쳤다.

"드래곤의 규율이고 뭐고 이젠 상관없습니다. 어떻게든 미친용을 없애야......!"

"잠깐!"

판타서스가 앞을 가리켰다.

"저길 보게!"

꾸드득!

꾸득!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커록커즈의 배 한 쪽에서 살점이 소용돌이치듯 꼬이고 있었다. 이내 뭔가가 그 안에서 퉁! 소리와 함께 빠져나왔다.

푸른색의 뭔가가 휘날리는 모습을 본 에이젤은 뒤도 볼 것도 없이 전신에 바람을 일으켰다.

"시몬!"

쐐애애애애액!

에이젤이 바람처럼 날아와 떨어지는 시몬의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와 동시에 격노한 커록커즈가 입을 쩍 벌리며 시몬을 향해 브레스를 날리려 했다.

"어림없네!"

브레스를 쏘려던 커록커즈의 동공이 뒤쪽으로 향했다.

우락부락한 몸집의 사내가 하하하! 웃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슬리이이이입 펀치!"

쩌어어어어엉!

커록커즈의 거대한 몸뚱이가, 일개 인간의 주먹에 얻어맞아 날아가 버렸다. 이내 드래곤이 호수에 떨어지며 커다란 검은 분수가 솟아올랐다.

"시몬! 괜찮아?"

에이젤이 다급히 물으며 낙하속도를 낮추었다. 시몬이 웃었다.

"네, 괜찮아요."

시몬은 속으로 안도했다.

드래곤 하트에 파멸의 대검을 살짝 찔러넣고 타락의 힘을 불어넣자, 커록커즈의 체내에서 극도의 거부반응이 일어났다. 그 거부 반응은 '배출'의 현상을 선택했고, 온몸이 움직여 시몬을 밖으로 밀어냈다.

다행히 타이밍은 맞았다. 타락은 제대로 먹혔고, 빠져나오기 직전 아공간에 피어를 집어넣는 것도 늦지 않았다.

"저 드래곤의 체내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시몬 후임!"

판타서스도 내려오며 말했다.

"아, 설명하자면 긴데요."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외과수술을 좀 했어요."

"?"

판타서스와 에이젤이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며 물음표를 띄웠다.

쏴아아아아아!

그사이 다시 커록커즈가 검은 호수에서 튀어나와 하늘로 비상했다. 에이젤이 이마 위에 손을 올린 채 커록커즈를 노려보았다.

"으음, 진짜로? 그런데 수술한 것치고는 별 변화가 없어 보여."

"효과는 확실할 거예요."

헝클어진 교복 넥타이를 풀어서 주머니에 쑤셔 넣은 시몬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오염된 힘을 내뿜는 드래곤 하트에 손을 좀 봤어요. 이번에 쓰러트려서 힘을 소진시키면, 두 번 다시 폭주하지 못할 거예요."

"하하하하!"

판타서스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사실대로라면 훌륭하군!"

쩍!

판타서스가 손뼉을 치자, 세 사람의 발밑으로 동시에 파도가 일어났다.

"역시 내가 차기 학생회장으로 선택한 후임이야!"

"마음 든든하겠네요. 실력 좋은 후배가 있어서."

에이젤이 툴툴거리자 판타서스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자네도 물론 든든하네 에이젤 후임!"

"그런 셈 치죠."

슬쩍 미소 지은 세 사람이 이내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자세를 낮췄다. 커록커즈가 입을 벌리며 거대한 브레스를 모으고 있었다.

"계획은요?"

시몬이 물었다.

"이번에도 당연히 없다네! 에이젤 후임! 자네는 있나?"

"그런 게 왜 필요합니까."

에이젤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계획은 아마추어에게나 필요하고, 천재는 그냥 싸울 뿐입니다."

"퍼펙트! 내가 들은 말 중 가장 거만하군!"

인간관계에 취약할 뿐, 에이젤에게 있어 승리는 당연한 것이고 자신감이 필요한 영역이 아니었다.

시몬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좌우를 바라보았다.

오른쪽에는 판타서스 휴 이켈, 왼쪽에는 에이젤 브링어.

이 사람들과 같은 팀으로 싸우게 될 날이 올 줄이야.

콰아아아아아아아!

커록커즈가 입을 벌리며 브레스를 쐈다.

판타서스가 외쳤다.

"뒤처지지들 마시게나!"

세 남자가 동시에 하늘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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