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99화
후우우우우우웅!
시몬, 판타서스, 에이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전면에 보이는 커록커즈는 도전자들을 맞이하는 마왕처럼 새까만 날개를 펼친 채 살벌한 시선으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다.
"바람길을 열겠습니다."
에이젤이 손을 엄지와 중지를 붙이고 허공에 그었다.
<윈드 워크>
에이젤의 주특기인 장거리 마법진 영창, 그리고 바람계열 특유의 빠른 시전까지.
하늘 곳곳에 바람으로 이루어진 마법진이 일렁이며 만들어졌다.
"다들 탈 수 있겠죠? 혹시 잘 모르겠으면......."
후우우우웅!
후우우웅!
기다렸다는 듯이 판타서스와 시몬이 뛰쳐나갔다. 허공에 떠 있는 '윈드 워크'를 밟고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며 커록커즈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팔을 내린 에이젤이 휘유 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오랜만에 천재들이랑 싸우니 편하네."
후와아아아아아악-!
에이젤의 바람을 타니 순식간에 커록커즈와 가까워졌다. 판타서스가 외쳤다.
"시몬 후임! 조심하게!"
"!"
커록커즈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드래곤 피어>
께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대륙을 찢어발길 듯 맹렬한 외침이 울러 펴졌다.
모든 생물의 정점.
세포에 각인된 복종의 DNA를 이끌어 내고, 상대를 자신에게 굴복시키는 힘.
"크윽!"
시몬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쭉 빠지며 멀미하는 것처럼 속이 꿀렁거렸다.
멘탈 단련은 군단장으로서의 경험으로 충분히 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정면에서 저 기술을 받으니 꼼짝달싹하기 힘들었다.
'판타서스 선배님은...... 어?'
그런데, 시몬보다 더 빠르게 뛰어들던 판타서스는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눈을 감고, 입에서는 드르렁거리는 소리를 토해냈다.
코에는 방울까지 맺혀 있는 모습.
다소 우스꽝스러운 꼴이었지만, 시몬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스로 슬립을 걸어서 저주를 피한 거야?'
판타서스는 자는 상태 그대로 돌진했다. 휘둘러지는 커록커즈의 팔을 보지도 않고 피한 그가 주먹에 슬립을 실어 내리쳤다.
<판타서스 오리지널 - 슬립 펀치>
쩌어어어어어어어엉!
머리를 얻어맞은 드래곤이 수백 미터 아래 지면까지 처박혔다. 이내 코에 방울이 뻥! 터지며 판타서스가 흠? 하는 소리를 내더니 제 주먹을 바라보았다.
"하하하하! 자다 일어나면 적이 쓰러져 있는 건 일상! 역시 이 몸이로군!"
시몬이 난감한 웃음을 흘렸다.
'대체 무슨 싸움법이냐고.'
"거기 놀 틈 있으십니까?"
에이젤이 손가락을 꼬아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허공에서 일어난 수 갈래의 회오리들이 방금 커록커즈가 쏟아진 방향으로 날아갔다.
<거스트 사이클론>
쿠콰콰콰콰콰콰!
회오리들이 주위를 난자했다.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을 듯한 매서운 회오리 속에서, 검은 날개가 삐져나왔다.
이내 그것이 크게 날갯짓하자, 역풍으로 단번에 에이젤의 바람 마법을 깨트렸다.
"내가 맡겠네!"
쿠우우웅!
마침 판타서스도 무식한 속도로 지상에 착륙했다. 그가 주먹 관절을 뿌득뿌득 풀며 다가가는데 커록커즈가 입을 벌렸다.
[인간들을 죽여라.]
생물에 대한 절대명령.
용언(龍言).
산맥의 몬스터들로 하여금 리버론을 공격하게 시킨 기술이었다.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판타서스가 멈칫하며 걸음을 멈췄다.
흐으으으음-
그러나 알고 보니 이번에도 눈을 감고 자고 있었다. 격노한 커록커즈가 손톱을 세워 팔을 휘둘렀지만, 판타서스는 자면서 고개를 꺾어 피했다.
탓!
스슥!
팟!
저주를 피하는 게 다가 아니었다. 눈을 감은 채 허리만 기울여 휘둘러지는 팔을 피하고, 제자리에서 줄넘기 넘듯 뛰어서 꼬리를 피하기도 하는 등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모든 공격을 피해내고 있었다.
으랏차차차차!
그리고 커록커즈가 팔을 휘두르느라 열린 빈틈. 공중으로 도약한 판타서스가 주먹을 세워 들었고.
휘오오오오오!
즉각 에이젤의 바람계 서포트 흑마법이 그의 주먹이 맺힌다. '태풍'을 움켜쥔 채, 판타서스가 주먹을 휘둘렀다.
<인챈티드 템페스트>
<슬립 펀치>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아까보다 몇 배는 강렬한 굉음과 함께, 판타서스가 주먹을 내리친 방향으로 회오리가 일어났다.
"하하하!"
비로소 잠에서 깨어난 판타서스가 눈을 떴다.
"역시 이 몸을 상대로는-"
께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지면에 파묻혔던 드래곤의 아가리가 순간적으로 솟구치며 판타서스를 집어삼키려 했다.
<카오스 스피어>
그 즉시 자줏빛 번개가 떨어져 용의 아가리에 틀어박혔다.
"조심하세요! 선배님!"
마침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던 시몬이 소리쳤다. 판타서스가 뒤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하하! 나이스 서포트일세!"
커록커즈의 동공이 돌아갔다. 뒤쪽으로 착지한 시몬을 보며 이를 드러내더니 시몬을 향해 입을 쩍 벌린다.
드래곤 피어의 자세.
하지만 시몬도 판타서스 못지않은 방어 기술이 존재했다.
"용의 마법."
시몬이 마법진을 펼친다. 즉각 공중에 떠 있던 뼈들이 시몬의 몸에 착착 들러붙는다. 마지막 기다란 해골 투구까지 눌러쓴 시몬이 무릎을 굽혔다.
<시몬 오리지널 - 드래고니안>
께에에에에에에에에!
드래곤 피어가 발현했지만, 즉각 시몬의 주위로 '봉마결계'가 펼쳐지며 안전하게 막아냈다. 판타서스 또한 잠드는 것으로 저주를 피했다.
'이 슈트는 원래-'
드래곤 피어가 끝나자, 시몬이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혼돈의 벼락을 뽑아내 던졌다.
'드래곤을 잡기 위한 장비야!'
콰르르르르르릉!
자줏빛 번개가 커록커즈의 몸통에 꽂혔다. 드래곤이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콰르릉!
콰르르르릉!
콰르르르르르르르릉!
제2격, 제3격, 제4격이 연달아 꽂힌다. 정신없이 얻어맞던 커록커즈가 입을 벌리며 용언을 사용했지만, 다시 한번 봉마결계로 막아낸 시몬이 계속 달려가 커록커즈의 후방으로 돌아왔다.
'혼돈을 강하게 실어서 한 번에!'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큰 카오스 스피어를 움켜쥔 시몬이 지면을 박차며 뛰어올랐고, 커록커즈 또한 몸을 회전시켰다.
시몬의 사각으로 용의 꼬리가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아차!'
직격을 피할 수 없다고 직감한 순간, 갑자기 돌풍이 불어와 그의 몸이 강제로 위쪽으로 이동했다.
"실수했지? 자, 다시 한번-"
에이젤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시몬이 바람에 떠밀리며 다시 커록커즈의 뒤통수 쪽으로 돌아왔다.
"해봐!"
가히 완벽에 가까운 서포트.
시몬이 이를 드러내며 이번에야말로 카오스 스피어를 뒤통수에 꽂아 넣었다. 강렬한 스파크가 튀어 오르며 커록커즈가 바닥에 엎어진다.
"하하하하하하!"
즉각 커록커즈가 일어나려 했지만 섬광처럼 나타난 판타서스가 발차기로 날려 버렸다.
커록커즈가 다시 날아가 바닥을 공처럼 굴러다녔다.
타악.
타닷.
시몬과 판타서스가 지면에 내려왔고, 에이젤이 공중에 둥둥 뜬 채 지켜보았다.
쿠구구구구!
흙먼지 속에서 커록커즈가 멀쩡히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에이젤이 진절머리난다는 듯 어깨를 꾹꾹 눌렀다.
"아픈 척이라도 해주면 의욕이라도 날 텐데 말이에요."
"하하하하! 벌써 포기했나? 에이젤 후임!"
"그럴 리가요."
펄럭!
커록커즈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레드 드래곤의 힘. 용의 비늘이 불타오르며 시커먼 연기를 뿜어냈다.
순식간에 결계의 최대 천장까지 도달한 그가 날개를 크게 펼치며 입을 벌렸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륵!
수백, 수천의 불덩이들이 허공에 열리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아직 불길이 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데도 주위가 뜨거웠다. 벌써 거석이 열기로 달아오르고 수증기 같은 게 지면에 일어나고 있었다.
판타서스가 히죽 웃었다.
"자, 후임! 갑작스럽지만 슬립 수업일세!"
"지, 지금요?"
"이미 내가 가르쳐 준 슬립에 능통한 자네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걸세!"
그가 머리 위로 팔을 들어 올렸다.
여섯 장의 커다란 칠흑수류계 마법진이 펼쳐졌다.
"인간은 깨어 있는 한, 쓸 수 있는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네! 현실에 대한 벽을 경험으로 느꼈기에, 뇌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것이지."
터업.
판타서스가 이내 그 슬립을 자신에게 걸었다.
그의 눈이 감기고 뱃고동 같은 코골이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미리 펼쳐두었던 마법진은 취소되지 않았다.
"하지만 꿈속에서는 다르네! 인간은 스스로 그어둔 모든 한계와 제약을 벗어던진 채 비로소 잠재의식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지!"
'자, 잠꼬대?'
"한계를 개방하게!"
눈을 감은 그가 불끈 쥔 주먹을 당기며 후으으읍 숨을 들이마셨다.
"더."
그러자 아까 여섯 장이었던 마법진이 배로 늘어났다.
"더욱더."
그 배에서 다시 배로 늘어났다.
"꿈속에서는 제약을 벗어던지고, 자네가 가진 모든 힘을 일깨우는 걸세!"
순식간에 주위가 온통 수류계 마법진으로 가득 찼다. 이내 커록커즈가 수천의 화염을 쏟아부었고, 판타서스도 그에 못지않은 물의 마법을 위로 솟구치게 했다.
붉고 푸른 빛을 띠는 두 힘이 허공에 만나.
콰콰콰콰콰콰콰!
쏴아아아아아아아아!
충돌하고 상쇄된다.
시몬은 홀린 듯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하하! 잘 봤나? 지금부터 자네에게 이 특별한 슬립을 걸어줄 걸세. 음!"
판타서스가 성큼성큼 다가와 시몬의 목에 팔을 둘렀다.
"자, 잠깐만요! 저 화염, 물을 뚫고 내려오는데요?"
"아까의 나처럼 꿈속에서 피하면 되네! 집중하게!"
판타서스의 두툼한 손바닥이 시몬의 눈을 가렸다가 떼어진 사이.
모든 게 바뀌었다.
'아.'
일대가 무서울 만큼 고요하다.
마치 시끄러운 바깥에 있다가. 물속으로 뛰어든 듯한 느낌.
고개를 드니 판타서스의 수류마법을 뚫고, 화염의 재해가 내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이게 슬립? 내가 자는 중이라고?'
꿈에서 현실이 보인다.
꿈속과 현실이 겹친 것이다.
옆에는 판타서스와 에이젤이 보인다. 에이젤이 뭐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들리지 않는다.
그저 고요하다.
-집중하게.
그때 판타서스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울려 퍼졌다.
-자네의 내면에 몰두하게.
홀린 듯이 시몬의 발이 움직인다.
-이 세상에서는 무엇도 자네를 방해할 수 없네.
방금 벗어난 자리로 화염의 잔해가 연달아 떨어진다.
보고 피한 게 아니다. 그쪽으로 떨어진 것을 원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세상이 그어놓은 모든 한계에서 초월하게. 자네가 하고 싶은 것, 자네가 해야 하는 것에 집중하게.
손바닥이 몸에 펼쳐둔 마법진을 훑는다.
-자네의 꿈을 실현시키는 걸세.
허리에서 혼돈의 창을 꺼내 든다.
혼돈의 잔량이나 개수 따위는 머릿속에 없다.
그저 저 멀리 보이는 커록커즈를 떨어뜨리겠다. 단지 그 생각뿐이다.
처억!
필요한 혼돈의 창의 양.
200개.
촤촤촤촤촤촤촤!
몸에서 무수히 보랏빛 실선이 쏘아져 나간다.
계속해서 뻗어 나간다.
허리에 있는 마법진으로는 부족해서, 그 수를 늘리고 그 안에서 혼돈의 창을 꺼내 던지기를 반복한다.
화르르륵.
화르륵.
내려오는 화염은 방해된다. 혼돈으로 찢고 올린다.
무엇도 방해할 수 없다.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완벽한 해방감이야!'
꿈속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주위를 꽉 채운 번개의 창들이 하늘로 치솟는다.
꿈속에서 혼돈은 무작위 랜덤성의 궤적이 아니었고, 통제할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자줏빛 창들이 수백 갈래의 길을 그으며 지나가다가 내리꽂힌다.
커록커즈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시몬은 바닥을 박차고 날아간다.
혼돈이 몸을 밀어낸다. 순식간에 공중으로 떠오르고, 혼돈에 맞아 떨어지는 커록커즈와 자신의 몸이 교차된다.
'더 강한 힘.'
시몬의 팔을 내 뻗는다. 몸을 슈트 형태로 덮고 있던 뼈들이 움직여 대검의 형태를 이룬다.
<시몬 오리지널 - 아머 블레이드>
시몬이 그대로 내리찍으려는 순간.
'!'
회색 광경이 사라지며 주위가 원래의 색으로 바뀐다.
'현실?'
자신은 추락하는 용의 위에 있었고, 정말로 드래고니안으로 만든 대검을 치켜들고 있었다.
'꿈이-'
"현실로 이루어졌겠지!"
판타서스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것이 슬립의 비전! 자네는 역시 재능이 있네!"
하아아아아아아아아!
시몬이 대검을 휘둘렀다. 커록커즈가 내지르는 용언마저 갈라 버린 채 드래곤의 몸뚱이를 강하게 내리쳤다.
검은 피가 뿜어져 나오며, 굉음과 함께 커록커즈가 바닥에 떨어졌다. 시몬은 숨을 헐떡이며 손에 든 드래고니안의 검을 바라보았다.
"이 기술은-"
꼭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