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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900화 (900/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00화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정신을 잃었던 블루드래곤 유르이스가 눈을 떴다.

[..........]

하필이면 머리부터 지면에 떨어지는 바람에 잠시 기절한 모양이었다.

무슨 상황인지 생각하던 그녀의 머릿속에, 기절하기 직전의 광경이 번뜩이며 떠올랐다.

'아, 안 돼!'

인간 세 명을 남겨두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큰일이다.

전부 죽었을 것이다.

그녀가 다급히 고개를 들어 전면을 응시하는 순간.

'?!'

죽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 세 사람이 오염된 커록커즈와 싸우고 있었다.

아니, 밀어붙이고 있다.

"하아아아아아!"

시몬과 판타서스가 무모할 정도로 커록커즈에게 돌진하여 혼란과 칠흑수류계를 퍼부어대고 있었고, 그 뒤에 에이젤이 이를 악물며 서포트하고 있었다. 에이젤이 힘겹게 외쳐댔다.

"아! 두 사람 다 뭐 이리 막무가내예요!"

시몬과 판타서스가 커록커즈를 밀어붙이는 엔진이라면, 에이젤은 이를 통제하는 제어장치였다. 몇 번이고 바람을 일으켜 꿈속에서 싸우는 두 사람을 살려냈고, 그렇게 해주면 그 두 사람은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화력으로 보답했다.

"슬립!"

판타서스는 나란히 달리던 시몬에게 슬립을 걸어주고 자신도 슬립을 걸었다. 꿈과 현실을 오가며 싸우는 괴상한 전투방식에, 뇌까지 오염되어 단순한 전투방식밖에 없는 커록커즈는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쿠우우웅!

판타서스의 주먹이 내리꽂히고.

파지지지직!

시몬의 혼돈이 맹렬하게 쏟아진다.

유르이스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커록커즈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고 해도, 인간들이 조언자급 드래곤을 밀어붙이고 있다니.

'......이게 바로.'

이들에 관해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지낼 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명실상부 대륙 최고의 유망주.

'키젠의 학생회장들.'

쿠쿵-!

그때 결계 쪽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의 전투에 정신이 팔려 있던 유르이스가 뒤를 돌아보니 결계에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안 돼!'

이미 늦었다. 결계를 찢으며 거대한 그린 드래곤의 머리가 독성 입김을 뿜어내며 아가리를 들이밀었다.

[유르이스! 결계를 잠그다니 이게 무슨 짓이냐?]

그렇게 말하던 그의 시선이 커록커즈와 싸우고 있는 세 인간 쪽으로 향했다. 그의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다.

[저 인간들이 커록커즈를! 역시 다른 꿍꿍이가 있었나!]

꽈드드드드드!

그린 드래곤이 더더욱 강한 힘으로 결계를 비집고 빠져나오려 했다. 거기에 다른 네 명의 드래곤들도 합류해서 내부로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순간, 블루 드래곤 유르이스의 행동은 빨랐다.

꽈아아아아앙!

공중에서 혜성처럼 쇄도한 그녀가 단숨에 커록커즈를 바닥에 밀어붙였다.

[제 부탁에 이렇게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그녀의 청명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커록커즈가 다시 폭주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여러분의 조력 덕분에 큰 사고를 면했습니다!]

세 사람이 멈칫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주위에 드래곤들이 튀어나온 모습을 발견하고는 상황 파악이 끝났다.

판타서스가 눈치 빠르게 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현장에 있던 우리가 돕지 않으면 누가 하겠소!"

에이젤도 천연덕스럽게 제 어깨를 만졌다.

"힘들어 죽겠네요."

이렇게 되면 유르이스가 인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인간들이 일방적으로 커록커즈를 공격한 게 아니라 유르이스의 부탁을 들어주었을 뿐이라는 인과가 성립된다.

즉 모든 것은 드래곤의 가호 아래에 일어난 일들이 되는 셈.

그린 드래곤이 인상을 찌푸렸다.

[유르이스! 왜 그렇게까지 저 인간들을 감싸는......!]

-께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그때 커록커즈가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유르이스를 밀어냈다. 입을 벌리며 브레스를 뿜으려 하자, 유르이스도 공중으로 피하며 맞 브레스를 일으켰다.

쏟아지는 불과 물이 허공에 부딪히며 맹렬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여러분!]

유르이스가 소리쳤다.

[염치없지만 마지막까지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세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 뛰어들었다.

휘오오오오오오!

에이젤이 달리면서 팔을 휘젓자, 주위의 수증기와 대류들이 한곳으로 뭉쳤다.

<용오름>

지면에서 휘몰아치던 돌풍이 강한 압력으로 치솟으며 커록커즈의 몸뚱이를 하늘로 올려보냈다.

"하하하하! 기다렸네!"

그리고 하늘 위에는, 먼저 올라가 있던 판타서스가 망토를 휘날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양팔을 펼치자 그의 몸에 거대한 칠흑이 응집되고 있었다.

<슬립 차지>

그가 솟구치는 커록커즈의 몸뚱이를 강한 힘으로 강타했다. 커록커즈가 입에서 검은 피를 뿜어내며 다시 바닥에 처박혔다.

"후욱!"

마지막.

그 중간에 떠올라 있던 시몬이 강력한 혼돈계 흑마법을 완성했다.

광대 형상의 망령, 카오스 리퍼가 팔을 들어 올리자 주위에 꽂혀 있던 모든 혼돈의 창들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이내 카오스 리퍼도 녹아내리며 하늘로 솟구쳤다.

"가라!"

이내 시몬이 팔을 내리그었다.

<시몬 오리지널 - 혼돈난무(混沌亂舞)>

콰르르르르르르르르릉!

쿠르르르릉!

혼돈의 벼락이 바닥에 떨어진 커록커즈에 연달아 내리꽂혔다. 드래곤들이 놀란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제발.'

자리에 내려온 시몬이 숨을 헐떡이며, 내리꽂히는 혼돈에 얻어맞고 있는 커록커즈를 지켜보았다.

'제발 이제는 쓰러져라!'

방금이 마지막 일격.

더는 몸에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쿠구구구구궁!

뿌옇게 피어오른 흙먼지 너머, 액체처럼 출렁거리던 거대한 드래곤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시몬이 비로소 속으로 안도하는 찰나, 다시금 흙먼지 속에서 그 거대한 머리가 고개를 들었다.

'아직도 움직일 수 있다고?'

판타서스도 난감한 듯 웃었다.

"하하하! 이거 곤란하군."

꾸국.

그런데 거구의 커록커즈의 동작이 시간이 멈춘 것처럼 굳어졌다. 긴가민가했던 판타서스가 바로 앞으로 다가가 보았지만 공격의사가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았다.

이내 스스로 몸을 말아서 웅크리더니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 상태로 차분한 정적이 흘렀다.

'멈췄다.'

아까 날뛰던 모습이 믿기 힘들 정도로 평온한 모습.

마치 잠든 것만 같았다.

유르이스가 다가와 커록커즈의 상태를 확인했다.

[네.]

그녀가 안도하며 바닥에 착지했다.

[진정한 것 같습니다.]

그 한마디에 세 사람이 무너지듯 자리에 쓰러졌다.

"시몬, 네가 말한 외과수술이 진짜 효과가 있었네."

에이젤이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시몬도 힘겹게 웃으며 그 손바닥에 하이파이브했다.

"당연하죠."

* * *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커록커즈는 신기할 정도로 잠잠해졌고, 유르이스도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없었다며 놀라워했다.

뒤이어 드래곤들과 원정대원들이 설명을 요구했기에 유르이스가 설명했다.

우선 시몬 일행이 커록커즈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결계에 들어올 것을 원했으며, 유르이스가 독단으로 이를 받아들였다는 점은 솔직하게 인정했다.

하지만 그들이 들어온 직후 커록커즈가 발작했고, 유르이스가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그린 드래곤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우리가 그동안 그렇게 억눌러도 날뛰던 커록커즈가 이렇게까지 잠잠해질 리가 없다. 네놈들이 뭔가 손을 쓴 것 같은데.]

"이제 그 부분을 말씀드리려고 해요."

커록커즈를 이렇게 만든 건 '결사'라는 조직이라고, 시몬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밝혔다.

결사는 현재 대륙을 무차별 혼란에 빠트리고 있는 장본인들이다. 그들은 생물의 공격성과 충동을 증폭시키는 기술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에 중독되면 눈동자의 동공이 삼각형으로 바뀌는 증상이 생긴다.

시몬은 바로 그 커록커즈의 눈동자가 간혹 삼각형으로 바뀌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른 드래곤들도 손을 들고 그것을 봤다고 증언해 주었다.

"저희 키젠과 암흑연합은 결사와 적대관계입니다. 협력해 주신다면......."

[뭐야.]

이야기를 듣던 그린 드래곤이 시큰둥한 반응으로 대꾸했다.

[결국 너희 인간들의 잘못이란 거잖아.]

설명하던 시몬과, 원정대원들 모두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활을 맨 대원이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초록용 양반. 귓구멍 막히셨수? 결사 놈들이 한 짓이고 우리는 그들과 적이라고 했잖수. 댁들이 적대해야 할 건 우리가 아니라 결사 놈들이지."

[그 결사라는 자들은 인간 아닌가?]

그린 드래곤이 커다란 고개를 갸우뚱했다.

[열을 내기 이전에 너희 인간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군! 너희들은 태어난 장소나 언어, 종교, 심지어 말투나 생활양식까지 온갖 쓸데없는 것들로 선을 가르고 서로 죽고 죽이길 반복하지.]

잠시 주위에 정적이 일었고, 그린 드래곤이 콧방귀를 꼈다.

[결국 너희는 착한 인간들이고, 결사라는 자들은 나쁜 인간들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구별하고 나쁜 쪽을 없애달라? 어처구니가 없군. 너희들만큼 동족들을 죽이는 걸 좋아하는 생물은 이 대륙에 없을 거다!]

"...그, 그렇게 치면 우리도 할 말은 있는데요."

에이젤이 눈썹을 내리깔며 대꾸했다.

"동족의 생명은 절대적이라는 규율. 자기 동족을 죽인 자는 동족 전체가 와서 보복하고 불태운다니, 멋지네요. 그런데, 댁들의 규율 때문에 다른 종족이 죽어 나가고, 심지어 당신들까지 죽어 나가고 있어요."

에이젤이 손끝이 오염된 유르이스와, 저 멀리 신체의 절반이 오염된 드래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커록커즈가 다른 드래곤을 죽이고, 심지어 종족을 멸종의 위기에 빠트린다고 해도 댁들은 끝까지 커록커즈를 지키겠죠? 전체가 멸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동족 하나의 목숨에 집착하는 댁들도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드래곤이라는 위대한 종족의 존엄이다!]

그린 드래곤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동족 하나 지키지 못하는 종족은 차라리 다 같이 멸종당하는 게 낫다!]

"그, 그냥."

에이젤은 덜덜 떨면서도 할 말은 했다.

"그 한 명 죽이고 종족 전체를 지킬 결단도 못 내리는 종족은...... 개병신이죠."

[네놈!]

"흐약!"

에이젤이 후배인 시몬의 등 뒤로 샥 숨었다. 시몬이 쓰게 웃으며 둘을 말렸다.

"이런 건 서로의 생각 차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두 종족 모두 상식과 생각이 다르다. 괴리감이 있을 만큼 상이하다.

당장은 어쩔 수가 없는 문제였고, 커록커즈가 잠잠해졌다는 사실을 위안 삼아야 할 것 같았다.

인간과 드래곤들은 그렇게 긴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 * *

"그보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겁니까? 대장."

드래곤들과 헤어져 야영지로 돌아오는 길, 중절모 신사가 판타서스를 보며 말했다.

"아직 모든 일이 해결된 건 아니라고 봅니다. 커록커즈의 공격성이 사라졌다고는 하나, 다시 날뛸 확률도 있지 않습니까."

"맞아요, 난 이해할 수가 없어요. 커록커즈를 죽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요."

스트레스로 머리털이 뭉텅 뭉텅 빠진 여성대원은 여전히 커록커즈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가 히스테릭하게 외치기 시작하고 판타서스가 진정하라며 그녀를 말리는 사이, 에이젤이 시몬의 팔꿈치를 툭툭 쳤다.

"선배님?"

"저 여자, 신경 쓰여."

에이젤이 조용히 말했다.

"눈이 완전히 맛이 갔어. 나중에 뭔가 일을 내도 제대로 낼 것 같아."

"아......."

"그리고 한 명 더, 저 노인."

에이젤이 지팡이 검을 들고 있는 잿빛 머리의 노인을 가리켰다.

"저분은 왜요?"

"그냥. 뭐 하는 사람인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의심해야지."

마침 그 노인이 대원들을 중재하고 있었다.

"알겠네, 판타서스. 자네 말대로 우리는 전쟁을 막으러 왔네만."

그가 판타서스를 보며 말을 이었다.

"왕국 사람들에게 더 이상 커록커즈가 브레스를 쓰지 않을 거라고 100% 확신해서 말할 수 있는 겐가?"

"......."

판타서스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렇다면 여기 남아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겠소. 커록커즈의 공격성이 완전히 상실됐다면, 잘 설명해서 군대를 물릴 수 있을지도 모르오."

"판타서스 님!"

허억!

헉!

야영지 쪽에서 원정대원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크, 큰일 났습니다! 리, 리버론에......!"

어깨에 전서구를 매달고 있는 그가 다급히 말했다.

"리버론에 반란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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