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01화
리버론에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의 주체자들은 커록커즈를 '주룡'이라는 이름으로 섬기고, 그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신흥 사이비 종교.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고, 그나마 지금 영지를 지켜주고 있는 네크로맨서들까지 몰아내야 한다며 들고일어났다.
당연히 리버론의 젊은 영주는 눈이 돌아갔다. 아버지를 잃게 한 '미친용'을 어떻게 죽일지만 고민하고 있는데, 다름 아닌 자신의 영지민 중에서 그 용을 추종하는 무리가 생겼으니 격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영주는 즉각 병사를 일으켜 이들을 소탕할 것을 천명했으나, 리버론의 경비 병력 자체가 치안 유지도 박찰 만큼 쇠약해져 있는 반면, 사이비 종교는 절망을 양분 삼아 짧은 시간에 대규모로 세력을 부풀렸으니 소탕이 쉽지 않아 보였다.
이대로 방치했다간 거대한 유혈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보고를 들은 시몬의 표정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에르제베트가 조사하고 있을 텐데. 역시 뭔가 일이 벌어지려는 건가?'
판타서스는 지체 없이 움직였다. 그는 원정대를 반으로 나누기로 했다.
리버론으로 돌아갈 무리의 리더는 에이젤을 꼽았다. 에이젤은 10명의 원정대원을 이끌고 먼저 산맥을 내려간 뒤 사이비 종교를 진압하는 데 도움을 주기로 했다.
다만 대부분의 원정대원들이 리버론에 돌아가는 쪽을 선택하려는 바람에 골치를 썩였는데, 결국 판타서스는 리버론에 가족이나 지인이 있는 대원들 위주로 선정했다.
-혹시 인원이 더 필요한가? 에이젤 후임.
-괜찮아요. 별일 있겠어요? 곧 영주가 부른 군대도 리버론에 올 텐데, 그때까지 내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간 끌어볼게요.
그렇지 않아도 도시에 군대가 도착하면, 군을 이끄는 장군에게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사람이 필요했다.
군대가 이제는 날뛰지 않게 된 커록커즈의 이야기를 듣고 물러가 주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으니까.
지금은 군사령관이 말이 통하는 사람이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에이젤을 포함한 10명의 인원이 먼저 산맥을 내려갔고, 나머지 인원은 야영지에서 대기.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는지 주변을 지키면서 커록커즈의 상태를 살피기로 했다.
그렇게 시몬에게는 약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 * *
바로 이 남는 시간 동안, 잠깐의 시간도 쓸데없이 흘려보낼 수 없다고 생각한 시몬은 판타서스에게 새로운 슬립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판타서스도 흔쾌히 동의했다.
"처음 레스힐에서 자네에게 슬립을 가르쳤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일세! 시간이 참 빠르군!"
함께 인적이 드문 곳까지 걸어온 판타서스가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자, 바로 이걸세!"
판타서스가 손바닥 위로 마법진을 펼쳐 보였다.
솥뚜껑만 한 손바닥 위로 일어난 2차원을 넘어선 3차원 마법진.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그 마법진의 구조예요?"
"그렇다네!"
눈이 빙빙 돌아갈 만큼 수식 구조가 난해했다.
판타서스가 현역으로 구르고 또 구르면서 연마한 기술. 사실상 학술적으로는 크게 가치가 없는, 판타서스만이 쓸 수 있는 진정한 오리지널 흑마법이었다.
그것을 본 시몬은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전보다 더 심해졌어. 칠흑의 기억하는 습관이 만들어낸 괴물이네.'
이 정도야 이미 예상한 바지만, 이상한 부분이 한 가지 있었다. 물끄러미 마법진의 구도를 살피던 시몬이 말했다.
"선배님, 마법진을 취소했다가 다시 보여줄 수 있으실까요?"
"하하하하! 물론이네!"
주먹을 쥐어 마법진을 흩뜨린 판타서스가 다시 한번 그 마법진을 펼쳤다. 빤히 그것을 바라보던 시몬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수식과 회로의 구성이 달라졌잖아!'
아무리 구조가 복잡한 흑마법이라도, 아예 배운 적 없는 룬어나 수식이 아닌 이상 결국 시몬은 통으로 외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칠흑의 기억하는 성질을 무시하듯, 흑마법을 펼칠 때마다 그 형태가 바뀌고 있었다.
시몬이 판타서스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마법진을 취소했다가 펼쳐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나온 세 번째 마법진조차 첫 번째와 두 번째와 달랐다.
'이러면 대체 어떻게 외워야 하지?'
칠흑의 기억하려는 성질은 네크로맨서의 본질과도 같다. 그런데 그것을 보란 듯이 무시하는 수식이라니.
"감상이 어떤가 후임?"
"......."
허리를 편 시몬이 눈을 감고 말했다.
"...어렵네요."
"하하하! 자네의 입에서 '어렵다'는 말을 듣게 되다니 의외로군!"
판타서스가 손짓했다.
"조금 뒤로 물러서서 다시 보겠나?"
"?"
시몬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섰다.
멀리서 봐도 별로 바뀐 게 없어 보였지만, 가만히 지켜보던 시몬의 눈이 한순간 급격히 커졌다.
"아."
"관점을 달리하니 뭔가 눈치챘나?"
이 와중에도 가장 놀라운 점. 1차 2차 3차 마법진의 구성이 달라졌지만 결과적으로 본다면 효과는 비슷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일종의 다른 그림 찾기처럼, 자꾸 국소적인 부분만 집착해서 달라진 점만 찾고 있었는데, 멀리서 전체적인 관점으로 보니 세 가지 모두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첫 번째 레슨일세! 음! 칠흑의 기억하려는 성질에만 의존할 수 없는 이유! 슬립의 효과는 100% 동일하게 적용되어서는 아니 되네."
"하지만 키젠에서는 늘 일정한 수치의 흑마법을 사용하도록 가르치잖아요."
"그편이 능률과 효율 면에서 우수하니까! 하지만 우리가 익히려고 하는 건 조금 특이한 슬립일세!"
그가 손바닥을 펼치고 제 이마에 대는 시늉을 했다.
"자네가 슬립에 걸렸을 때의 기분을 떠올려 보게. 어땠나?"
세상이 흐릿하게 변하고, 주위의 모든 소리가 멎어 들고, 그 가운데 나 자신만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니 살짝 졸음이 느껴지는 듯하면서도 그렇게 피곤하지는 않았다. 기분 좋은 노곤함 정도였다.
"자네가 경험했던 '그 상태'에 돌입하기 위해선 특정 수면 강도를 정확히 맞춰야 하네! 그게 가장 어렵지."
판타서스가 빈 컵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흑마법을 일으켜 물을 부었다.
쪼르르륵-
물이 컵의 반쯤 차올랐다.
"너무 약하게 슬립을 걸면 흑마법이 걸리지 않을뿐더러 컨디션에 방해만 되네! 반면 슬립이 너무 강하게 들어오면?"
쪼르르르륵!
더 붓자 컵에 물이 넘쳐 버렸다.
"자기 슬립으로 전투 중에 자버리는 최악의 사고가 일어나겠지!"
"그렇겠네요."
인간의 몸은 늘 상태가 다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낮에 쓸 때와 밤에 쓸 때의 슬립은 가해야 하는 양이 달라야 한다. 이를 위한 변동이 슬립에 들어가는 것이다.
"우선은 이 술식의 베이스를 통으로 외우게!"
판타서스가 재차 마법진을 펼치며 말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감이 올 걸세.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슬립을 강하게 완성할지 느슨하게 완성할지 고려하게! 회로를 의도적으로 빙빙 돌려서 완성하면 슬립이 약하게 걸리겠지! 반대의 경우는 반대로 조치하면 되네! 어떻게 하는지 알겠나?"
"네, 이제 감을 잡았습니다."
시몬이 자신감을 되찾은 얼굴로 손바닥을 펼쳤다.
"바로 해보죠!"
* * *
남은 시간 동안, 시몬은 특훈에 들어갔다.
마법진을 외우고 자신의 것으로 해석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소모됐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야 슬립의 강도를 조절해서 자신에게 걸 수 있었다.
그러나 판타서스의 말대로였다. 너무 약하게 걸면 집중력만 떨어졌고, 강하게 걸면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열 번 시도하면 한 번 꿈속으로 들어갈까 말까였다.
시몬은 판타서스에게 힌트나 팁을 요청했지만.
-감일세!
그런 대답이 돌아왔다.
역시 천재는 천재. 자신의 능력은 뛰어나더라도, 타인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기에는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도 감은 경험으로 갈고닦을 수 있어. 충분해!'
시몬은 밥 먹는 시간 외에는 계속 손바닥으로 제 이마를 두들겨 꿈에 빠지곤 했다.
모닥불 옆에서 통나무 의자에 앉아, 잔뜩 진지한 표정으로 제 이마를 두들기다가 쓰러져 잠드는 시몬을 보며, 잿빛 머리의 노인이 말했다.
-허허, 젊은 나이에 실성한 것도 아니고, 저 친구는 왜 저러는 겐가?
중절모 신사가 조용히 대꾸했다.
-네크로맨서가 미친 건 하루 이틀도 일도 아니니 그러려니 하시지요.
잠을 잤다가 말았다를 반복하니 시간 감각이 무너지고 컨디션만 나빠졌다.
하지만 새로운 슬립에 꽂혀 버린 시몬은 판타서스와 헤어지기 전까지 어떻게든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집념을 불태웠다.
그렇게 다시 저녁.
"......."
시몬은 천막 안에서 멍하니 제 손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딱 한 번만 더 해보고 자자."
훈련 중독이라도 된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시몬이 마법진을 펼친 손바닥을 이마에 대는 순간.
"!"
주위가 흐릿한 색감으로 물들었다.
고요한 일대. 하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졸립지도 않고, 피곤하지도 않다. 막 솜이불 안으로 들어온 것 같은 노곤노곤한 상태. 시몬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걸렸나? 걸린 거지?'
시몬은 당장 바닥을 박차고 나갔다. 몸의 감각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서 기분은 이상했지만, 집중력이 올라간 게 스스로도 느껴진다.
시몬은 이 상태에서 아공간을 펼치고, 스켈레톤들을 꺼냈다.
'오.'
평소처럼 튀어나오는 스켈레톤들.
시몬이 '본 아머'를 명령하자 소리 없이 몸에 착착 달라붙었다.
'감각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상태를 확인해 보니 본 아머 상태가 엉망이었다. 듬성듬성 구멍이 뚫려 있고 몇 파츠는 떨어져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꿈을 꾸는 중이라서 역시 디테일이 떨어지는 모습.
'이렇게 하면 안 되겠지.'
판타서스에게 들었다. 이 흑마법은 컨트롤과 디테일을 중시해야 하는 기술이 아니라고.
꿈.
그것을 현실로 바꾸는 힘.
이를 위해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건 상상력이다. 시몬은 천천히 오른팔을 뻗었다.
'검을 원해.'
상상한다.
상상력이야말로 이 꿈의 세상에서 통용되는 힘이자 원천.
촤르르르르르!
그러자 본 아머를 이루고 있던 뼈들이 시몬의 손안으로 검의 형태를 이루었다. 슬쩍 붙잡고 휘둘러 보았는데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게 아니야.'
조건이 잘못되었다.
검을 원한다고 상상했지만, 결국 자신도 모르는 사이 검에 디테일을 부여하려 했다.
방향을 달리해야 한다.
시몬은 근처의 나무 앞으로 걸어갔다.
'이 나무를 벤다. 지금 당장!'
그렇게 생각한 시몬이 자세를 낮추고 휘두를 시늉을 하자, 스켈레톤이 분해되더니 알아서 시몬의 빈손에 연결되었다.
시몬은 그것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도 않고 휘둘렀고.
쩡!
나무가 단면을 보이며 쓰러졌다. 시몬이 놀란 눈으로 자신의 손을 보았다.
'이거구나!'
시몬이 생각지도 못했던 형태의 무기가 손에 들려 있었다.
검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길쭉한 '도'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아까의 그 검보다 훨씬 완성도가 높고 예리하다.
이제 이 세계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았다.
수단을 생각하지 말고 그저 상상하는 것.
그렇게 하면 이루어진다.
'윽.'
순간 주위의 시야가 꿀렁거리며 두통이 일었다. 너무 이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는 없었다.
'슬슬 잠에서 깨어나서...... 응?'
그런데 꿈속에서 문득 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엉망으로 찢어진 천막, 그리고 회색빛이라 확실하진 않지만 피로 추정되는 액체가 잔뜩 떨어져 있었다.
이건 정말로 꿈인가?
아니면 다른 생각이 개입한 건가?
시몬이 당황해하고 있는데, 천막에서 피 흘린 손이 튀어나와 바닥을 짚더니 누군가 기어 나왔다.
얼굴이 낯이 익은 원정대원이었다.
'일어나자!'
짝!
시몬이 서둘러 손뼉을 크게 쳤다.
마법적 트리거가 발동되며 회색빛인 주위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역시 꿈이 아니었다. 주위에 벌게진 피들, 그리고 용병대원이 피를 흘린 채 손을 파들파들 떨고 있는 모습 전부 현실이었다.
"괜찮아요?"
시몬이 얼른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가 피를 왈칵 토하며 말했다.
"도, 도망치십시오! 제 동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