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07화
시몬과 아론은 바로 본 드래곤 작업에 착수했다.
남은 시간은 일주일.
본 드래곤의 작업량은 막대하게 많고, 대부분의 과정에서 술사가 관여해야 할 만큼 제작이 까다로웠지만 이곳 펜타모니엄에서 작업량의 90%까지는 소화할 생각으로 임했다.
"57번 경골."
"여기 있습니다, 교수님!"
아론의 연구실에서 미르미즈의 골격 재구성 작업에 들어갔다.
생물의 뼈는 모든 구조가 일정하지 않다. 활동으로 인한 손상, 세월에 의한 마모, 그 밖에도 살아 있을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언데드로 일으키면 문제가 발생하는 부분도 있다.
튀어나온 골격은 깎아내고, 마모된 부분은 드레이크의 뼈로 채워 넣는다. 연골이나 지방체는 흑마법이나 다른 장비로 대체해야 했다.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아론은 작업칼로 뼈를 살살 긁어대고 있었다. 그의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시몬, 속도가 느리다."
아론이 시몬 쪽을 보지도 않고 재촉했다.
"이래선 한세월이 걸려도 완성하지 못할 거다."
"죄송합니다!"
옆 책상에 앉은 시몬이 그렇게 외치며 다시 작업칼을 붙잡았다.
이 유해의 출처를 알게 됐다.
하르히스의 의지를 잇게 됐다.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부담감, 손 한번 잘못 삐끗하면 모든 작업을 망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동작이 저절로 굼떠졌다.
'언데드를 제작하는 건 늘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손바닥에 땀이 흥건할 정도로 긴장했다.
"단순 작업에 지나치게 감정을 넣을 필요는 없다."
제자의 상태를 눈치챘는지, 아론은 손목을 돌리거나 구부리는 등 긴장을 완화하는 스트레칭을 해 보였다. 시몬도 그 동작을 따라 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은 오히려 실수를 부추길 뿐이다. 몸에 힘을 빼고 동작을 부드럽게 하도록."
"네!"
아론은 뼈들을 적절하게 깎아낸 후, 구멍을 내고 장치를 넣은 뒤 시몬에게 흑마법을 사용하도록 시켰다.
몇 개의 뼈들을 그렇게 작업해낼 즘, 연구실에 똑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아론이 수건으로 얼굴에 묻은 땀을 닦으며 말했다.
"들어오십시오."
시몬이 작업칼을 멈추었다.
"누구 불렀어요?"
"둘이서 이 거대한 언데드를 일주일 만에 작업할 수 있을 리 없지. 실력 좋은 사람을 불렀다."
아론이 마중 나가보라는 듯 턱짓했고, 시몬은 얼른 작업칼을 내려놓고 뛰어갔다.
이내 문이 열리며 흰 머리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두골에, 엉성하게 난 수염과 심술궂어 보이는 외모. 그러나 입가에는 설렁설렁한 웃음기가 맺혀 있었다.
"허허허! 아론 교수, 자네 있남!"
아는 얼굴이었다.
처음 로체스트 항구에 '드레드 하트'가 도착했을 때 구경 왔다가 난리를 쳤던 바로 그 사람.
1학년들을 가르치는 소환학과 교수.
"외디프 교수님?"
"자네도 있었군! 오랜만일세, 시몬 학생회장!"
그가 입을 벌리며 헤벌쭉 웃으니 머리의 한쪽이 움푹 들어갔다. 그는 손에 든 각종 언데드 재료 따위를 마구 시몬의 손에 들려 주었다.
"재료 쇼핑이나 하려고 펜타모니엄에 왔다가, 아론 교수가 자네 본 드래곤 제작에 끼워준다길래 냉큼 달려왔네!"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의 조력.
사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현역 키젠 교수가 또 한 명 도와준다는 건 너무나 큰 힘이었으니까.
시몬이 활짝 웃었다.
"정말 영광입니다, 교수님!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고럼 고럼! 편하게 시몬 군이라고 불러도 되겠남?"
"네! 편하신 대로요."
그는 짐이 무척 많았는데, 시몬에게 건네주고도 남은 짐들을 근처의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가방 안에는 보존마법이 걸린 온갖 언데드 재료들이 들어 있었다.
"자네의 그 아름다운 최고급 '드레드 하트'가 본 드래곤 연동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네! 내가 잠이 안 오더군!"
뒤에 있던 아론이 '실패한 게 아닙니다'하고 정정했다.
"그런데 드레드 하트가 실패했으면 뭔가 다른 대안이 있어야 하질 않남?"
외디프는 바로 작업에 끼어들 생각인지 정장을 휙 휙 벗기 시작했다. 시몬은 가방 안에서 튀어나오려는 좀비의 팔을 억지로 집어넣은 뒤 말했다.
"네, 대안도 있어요."
"그 순환 룬어와 숨결로 만든 모조품? 도와주긴 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힘들지 않을까 싶네. 시몬 군, 자네도 마음의 준비를 하어어어어억?"
연구실 내부를 들여다본 70대 노인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뱉었다.
눈앞에서 빛을 발하며 뛰고 있는 거대한 덩어리.
다리에 힘이 풀린 외디프가 털썩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어, 어, 어찌 이런 물건이......!"
그것은 진짜 드래곤 하트였다.
노인의 동공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렸다. 모험 끝에 낙원의 존재를 목격한 모험가의 감격도 이보다는 못할 듯싶었다.
"아름다우이."
급기야 눈에 눈물까지 맺혀 있었다.
"내 헛것을 보는 겐가? 어쩌면 이렇게 완벽한 재료가 실존한단 말인가! 이걸로 무엇을 만들 수 있지? 아니, 뭘 만들어도 이 드래곤 하트의 존재 자체를 뛰어넘을 수는 있을까? 모조품인 드레드 하트 따위는 결단코 따라갈 수 없는 아름다움이......."
홀린 듯한 얼굴의 외디프 교수의 손이 드래곤 하트에 닿으려는 순간, 아론이 기다렸다는 듯 팔을 휘둘렀다.
<엑사니미스>
기습적으로 저주에 얻어맞은 외디프 교수의 몸이 우당탕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본 프리즌>
이내 연결동작처럼 천장에 있던 뼈들이 내려와 외디프의 몸을 속박했다. 두 팔과 다리가 봉쇄당한 그가 버둥거렸다.
"이, 이게 무슨 짓인감! 아론 교수! 나는 이런 쪽 취향은 없다네!"
외디프가 새우처럼 펄떡펄떡 뛰었다. 아론이 싸늘하게 말했다.
"함부로 건드리지 마십시오. 이건 부탁이 아닙니다."
"허어! 자네 대체 옛날의 귀염성이 어디로 갔는감? 키젠 학생 때 똘망똘망 눈을 빛내던 게 엊그제 같은데, 교수가 되더니 악바리만 남았으이!"
아론이 그 말을 무시하며 시몬을 보았다.
"보다시피, 외디프 교수는 실력은 확실하지만 리스크가 있다. 바로 전형적인 '네크로맨서'라는 점이지."
"......하하."
골방에 틀어박혀 있던 외디프가 키젠 교수직을 수용한 것도, 사실은 감당이 안 되는 본인의 연구비를 충당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언데드 제작과 재료 수집에 진심이었다.
"드래곤 하트의 보존 마법은 새로 걸었으니 아공간에 넣어두도록."
"그래야겠네요."
시몬이 드래곤 하트를 아공간에 넣자, 본 아머에 묶인 외디프가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너무들 하는구만! 우리는 이제 파트너가 아닌감!"
"아직은 아닙니다."
아론이 시가를 입에 물고 외디프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내 품에서 몇 가지 서류들을 꺼내 그의 앞에 내밀었다.
"저주가 걸려 있는 계약서입니다. 서명해 주시면 함께 본 드래곤 작업에 착수하는 걸로 하죠."
"......."
외디프는 말이 없었다. 시몬은 도와주겠다고 온 사람한테 저주 계약서까지 들이민 아론이 서운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전혀 달랐다.
"방금 본 드래곤 하트가 눈앞에 아른거리네."
외디프의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너무 완벽했으이. 그 자체로도 완벽해. 이걸 갈아 넣어 만든 언데드 완성품이, 저 재료 본연의 완벽함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마저 들 정도네."
"......."
"우리 네크로맨서는 시체만 있다면, 생전의 강함보다 더 강한 언데드를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기술력이 높아졌네! 하지만 진짜 드래곤 하트를 보니 자신감을 잃었으이. 드래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완전한 존재였네! 그냥 내버려 둬야 하네! 드래곤 하트로 뭔가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재료에 대한 모욕이......!"
아론은 말없이 손을 움직여, 용의 뼈 하나를 외디프의 얼굴 앞에 내려놓았다.
"이게 드래곤 하트를 감싸고 있던 뼈입니다."
"......오오!"
기가 죽던 게 언제냐는 듯, 외디프의 눈에 금방 화색이 돌아왔다.
"너무나 훌륭한 고품질의 드래곤의 뼈야! 함유된 대량의 용의 인자에 내 관절이 움찔움찔 떨리는 것 같구만! 이건 정말......!"
"우리가 할 건 이 재료들의 조합입니다."
아론이 그렇게 말하며 외디프를 묶은 본 아머들을 풀어주었다.
"드래곤 하트에 빠져 있을 틈이 없습니다. 최고들을 조합해, 최고의 수식과 흑마법을 더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크, 크흠."
외디프가 잠시 헛기침을 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자네는 너무 날 잘 알아서 문제야."
70줄 노인의 눈에 열정의 불꽃이 일렁였다.
"좋네! 걸작에 관여하는 건 네크로맨서로서의 최대의 영광이지!"
* * *
시몬이 펜타모니엄에 들어온 지 이틀째.
덜컹덜컹.
작업복을 입은 직원 두 명이 음식이 든 카트를 끌면서 늘어지게 하품했다.
첨단 지식의 보고이자 연구자들의 요람인 펜타모니엄에서는, 끼니를 거르는 연구자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실제로 아사하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
그래서 펜타모니엄은 연구실 대여자들에게 식사 운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여기가 마지막 연구실이야."
한 직원이 손에 든 쪽지를 바스락거리며 말했다.
"1080호 연구실......."
"자네 소문 들었나?"
카트를 밀던 파트너가 불쑥 물었다.
"1080호 말일세, 주방에서도 각별히 주의하라고 신신당부하더군. 위험한 사람들이 있다고."
직원이 픽 웃었다.
"아, 위험? 우리가 펜타모니엄 짬밥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미친 네크로맨서들 한두 명 보나."
어느새 1080호 연구실에 도착했다.
직원이 똑똑 문을 두들겼다.
"식사 왔습니다."
그런데 내부가 잠잠했다. 그가 다시 문을 두들겼다.
"식사 왔......"
화르르르르르륵!
그 순간 문이 열리더니 난데없이 뜨거운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허억!"
갑자기 일어난 불세례에 직원이 대경실색하며 자리에 엎어지고, 그 너머로 불길이 계속 일어나 벽면까지 까맣게 그을리고 말았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왜 이렇게 늦었남!"
머리 한쪽이 검게 탄 노인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자네들의 식사가 10분 늦는 바람에 내 루틴이 틀어졌지 않나! 집중력이 흐려져서 사고가 일어나면 자네들이 책임질 겐가?"
이 괴짜영감은 또 뭐지? 그렇게 생각한 직원이 동공을 움직였다.
그의 옷 한쪽에는 <키젠 소환학 교수 외디프>라는 명찰이 달려 있었다.
'저 미친 영감이 키젠 교수라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카트를 밀던 동료가 얼른 사과하며 음식을 준비했다. 외디프가 에잉 쯧쯧 혀를 찼다.
"자네들의 식사가 늦는 바람에 네크로맨서 세계 역대 최고의 걸작이 실패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책임질 것이냔 말이야! 조금 더 의무감을 갖게!"
'뭔 미친 소리야.'
저벅. 저벅.
이번에는 연구실에서 또 한 명의 퀭한 얼굴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직원들은 순간, 그가 외디프 교수가 조종하는 좀비라고 생각했다.
<키젠 소환학 교수, 아론 데이아>
그런 명찰을 단 남자가 천천히 시가를 입에 물었다.
"실례지만 펜타모니엄 실내에서 흡연은......."
"늦다."
남자의 싸늘한 한마디에 직원들은 깨갱 하며 얼른 음식을 준비했다. 뒤이어 이들보다 눈에 띄게 어려 보이는 소년이 뛰어와 음식 나르는 걸 도와주었다.
"죄송해요, 저희 교수님들이 지금 많이 예민하셔서...... 불에 탄 벽도 변상하겠습니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한 직원이 툴툴거렸다.
"조교분이시죠? 저희만 괜히 야단맞았다니까요. 컨트롤 좀 잘 부탁드립......."
라고 말하던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의 명찰이 눈에 띄었다.
<키젠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
갑작스러운 거물들의 향연에 직원의 입에서 딸꾹질이 나왔다. 시몬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다음부턴 제가 먼저 나올 테니 안심하세요."
시몬이 연구실 문을 닫고 들어갔다.
잠시 여운에 잠겨 멍해 있던 직원 두 명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키젠 교수 두 명에, 키젠 학생회장이 한 연구 공간에 있다니.
"이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카트를 밀던 직원이 쓰게 웃었다.
"뭐, 갑자기 드래곤이 튀어나와도 이상할 게 없겠군."
* * *
펜타모니엄 최상층 연구실.
치이이이이-
연기가 흘러나오며 실험관이 열렸다.
헤이즐넛 빛깔의 단발머리의 소녀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하얀 연구복 차림의 중년 여성이 다가와 상냥하게 물었다.
"몸 상태는 괜찮니? 사샤."
"네, 박사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나왔다.
연구복 차림의 그녀가 차트표를 살펴보며 말했다.
"이제 잔존한 신성반응도 잠잠하구나. 상태가 아주 좋아. 그래도 약은 잊지 말고 먹으렴."
강제로 성녀가 된 부작용도 사라져가는 중이었다.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더니 근처에 놓여 있는 흰 셔츠와 검은 교복을 붙잡고 걸어갔다.
"어머, 벌써 나갈 생각이니?"
"네."
그녀가 연구실의 창문을 열고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내 그녀가 활짝 웃었다.
"나무들이 기분 좋게 흔들리는 걸 보니까, 제가 찾는 사람이 여기 온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