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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911화 (911/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11화

렉사나의 연구실.

"사샤, 준비는 다 됐니?"

"네에."

렉사나가 서류판을 들고 걸어왔다. 연구실 중앙에는 가운 차림의 사샤가 다리를 동동거리며 책을 읽고 있었다.

"옷은 바구니에 잘 개어놓으라고 했잖니."

이번에도 '네에' 하고 건성인 대답이 들려왔다. 잔소리를 하던 렉사나가 흐트러진 교복을 잘 개어서 바구니에 넣어둔 뒤, 서류판을 들고 내용을 읽었다.

"오늘 연구는 시간이 조금 걸릴 거란다. 하지만 이 연구로 네 몸에 내재한 잠재력을 더더욱 일깨울 수 있을 거야."

사샤는 별 관심이 없는 표정으로 손톱을 매만졌다.

"길어요? 그럼 오늘은 시몬 오빠 못 만나러 가요?"

"네 하기에 따라 다르겠지. 빨리 끝내면 저녁에 짧게 외출 시간을 내어주마."

"진짜요?"

눈이 초롱초롱해진 사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 약속했어요! 빨리 시작해요 박사님!"

"알았다, 알았어."

사샤가 연구실의 욕조 안에 들어갔다.

욕조는 청색의 액체로 가득 차 있었는데, 가볍게 한쪽 다리를 넣었다 뺐다 하며 온도를 확인한 그녀가 몸을 한 번에 욕조 안에 뉘었다.

"괜찮니?"

"네, 네."

렉사나는 욕조에 빈 그릇을 올려놓고는, 밀봉된 캡슐을 열고 씨앗 몇 개를 떨어뜨렸다.

빨리 연구를 시작하고 싶은지, 사샤는 바로 그 씨앗들을 망설임 없이 입 안으로 넣었다. 그러고는 더더욱 몸을 욕조 안으로 깊게 밀어 넣었다.

"어떠니?"

렉사나가 눈을 빛내며 감상을 물었다.

오도독오도독.

씨앗을 씹어먹고 있던 사샤가 나른한 음성으로 말았다.

"달아요."

* * *

"보안을 푸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

펜타모니엄 건물 내부로 들어온 시몬이 초조한 듯 중얼거렸다.

옆에 사샤로 변신한 에르제베트가 어깨를 으쓱했다.

"우후훗, 여긴 다른 곳도 아니고 지식의 보고 펜타모니엄이라구요? 아무리 소녀라고 해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사와요."

그러고는 눈꼬리를 둥글게 휘며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시. 몬. 오. 빠?"

'......끙.'

껍데기는 분명히 사샤지만, 속에 있는 사람이 1,000살 넘게 먹은 에르제베트라고 생각하니 괴리감이 어마어마했다.

어쨌거나 개인 숙직실의 흑마법 보안을 해제하는 데 성공했다.

두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데, 마침 송장거미 두 마리가 뽈뽈 거리며 다가왔다. 그것들의 몸통 위에는 열쇠, 그리고 목걸이 모양의 아티팩트가 올라가 있었다.

"어머, 역시 나의 유능한 아이들. 수고했어요."

그녀가 아티팩트를 집어 들었다.

"그게 뭐야?"

"방에 걸려 있는 보안을 푸는 아티팩트예요."

그녀는 익숙하게 열쇠를 열쇠 구멍에 넣은 뒤, 렉사나의 방문에 펼쳐져 있는 마법진 중앙에 아티팩트를 대었다.

그러자 마법진의 중앙 도형이 '웅웅'하는 소리와 함께 네 갈래로 분해되고, 에르제베트가 꽂아둔 열쇠를 돌리자 철컥! 소리가 났다.

"된 거지? 잘했어!"

"소녀의 능력으로 잠입하지 못하는 곳은 없사와요."

송장거미들은 물건을 전한 뒤 거미줄을 타고 천장으로 사라졌고, 시몬과 에르제베트는 조심스럽게 렉사나의 방으로 들어왔다.

방 내부는 특별할 건 없었다.

정리정돈이 무척 잘되어 있었는데, 약간의 살림살이와 연구자료들이 보였다. 두 사람은 물 만난 고기처럼 흩어져서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음."

팔락! 팔락!

시몬은 서랍에서 파일들을 한 뭉텅이 꺼낸 뒤 빠르게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웃차-"

그리고 사샤의 모습을 한 에르제베트는 책상 위의 커다란 서랍을 확인했다. 자물쇠가 걸려 있었는데, 거미줄을 자물쇠 구멍 안으로 흘려 넣고는 몇 번 손가락을 까닥댔다.

철컥.

그러자 자물쇠가 풀렸다. 책상 위 서랍을 크게 열어젖힌 그녀가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정체 모를 온갖 용액들이 이쪽에 들어 있었다. 심지어 마법진에서 흘러나오는 냉기가 온도까지 조절하고 있었다.

"군단장님! 소녀가 찾았사와요."

서류를 뒤적거리던 시몬도 입을 열었다.

"나도 반출 물품 리스트 찾았어."

"어머, 그래요?"

"렉사나가 결사의 '이상증세 약물'을 10병 반출했네. 아마 이 방에 있을 거야."

"네, 딱 여기 있네요."

에르제베트가 서랍에서 하얀 약병 여러 개가 꽂혀 있는 받침대를 꺼내 책상에 내려놓았다.

시몬이 즉각 받침대에 꽂혀 있는 약병의 숫자를 셌다.

"일곱, 여덟....... 두 개가 비어."

에르제베트가 슬쩍 웃었다.

"과연 그 두 병은 어디에 썼을까요?"

"몰라.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시몬이 그렇게 말하며 또 다른 서랍을 열었다. 중요 연구자료는 대부분 기록실에 보관되어 있겠지만, 렉사나가 방에 보관하고 있는 자료들은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다.

"......사샤."

렉사나는 사샤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녀가 가진 재능, 그녀가 가진 이능.

새로운 특례 1번 사샤에 대한 신문기사들을 스크랩해 놓은 건 물론이고, 그녀의 이능을 분석한 논문까지 작성했었다. 물론 외부에 발표하진 않은 것 같았다.

시몬은 빠르게 기록들을 확인했다.

"원래 이 사람은 사샤 담당이 아니었던 모양이야. 하지만 사샤가 펜타모니엄에 온 직후부터 그녀의 담당 자리를 원하고 있었고, 갑자기 사샤의 담당 박사가 병으로 몸이 안 좋아지자 그 자리를 차지한 것 같네."

"공교롭네요."

"응."

갈수록 사샤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저기 눈앞에 사샤와 똑같은 외모의 에르제베트가 보이기도 했고.

스으으으윽-

그녀는 손바닥을 벽에 댄 채 빠르게 훑어가고 있었다.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뭐 하는 거야?"

"우후훗, 일종의 직업병 같은 것이와요."

그때 그녀가 벽에서 손바닥을 떼더니 노크하듯 벽을 두들겨 보았다.

콩콩콩.

소리가 먹히는 소리가 났다. 에르제베트가 그 옆의 벽을 두들기니 쿵- 쿵- 하고 살짝 울리는 소리가 났다.

"역시, 찾았사와요!"

그녀가 벽면에 뭔가 장치를 발견했는지 거미줄을 움직여 작동시켰다. 그러자 비밀문처럼 벽면이 스르르 열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벽이 벌어지며 숨겨진 공간이 나왔다.

이런 종류의 장치는 뭔가 숨길 게 있을 때 쓰기 마련, 시몬과 에르제베트는 긴장한 얼굴로 안으로 들어갔다.

"아."

시몬은 자신도 모르게 털이 쭈뼛 솟는 느낌을 받았다.

앞서 본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벽면이 온통 사샤의 사진과 스크랩으로 가득했다. 사샤가 웃으며 브이를 그린 사진, 그녀가 나무를 일으키는 모습들까지.

-중립지대에서 발견된 소녀. 성녀의 힘을 거부하고, 네크로맨서가 되다.

-암흑제 사태에서 광신도가 그녀를 노리다.

-놀라운 잠재력. 죽음의 마녀가 그녀에게 특례 1번을 부여한 이유.

"정상은 아닌 것 같사와요."

에르제베트가 앞을 가리켰다. 이 비밀 공간의 벽지에는 난해한 추상화 같은 붉은 칠이 가득했다.

-너는 최고야.

-신인류.

-너는 최고여야만 해.

이쯤 되면 광기에 가까웠다. 에르제베트가 메모리얼 수정구를 켜고 주위를 촬영하는 사이, 시몬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당장 사샤를 데리러 가야겠어."

"무슨 명목으로요?"

에르제베트가 시몬을 돌아보았다.

"결사의 약품이 두 병 비어 있을 뿐, 아직 렉사나 박사가 결사와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사와요."

"키젠의 학생회장은 학생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어."

시몬이 그렇게 대꾸하며 벽면에 그려진 렉사나의 낙서를 보았다.

-인간을 넘어선 무언가로 발전하여, 신인류의 첫걸음을.

"학생을 저런 시선으로 보는 사람이 정상이라고 생각해?"

* * *

렉사나의 연구실.

"......훌륭해."

렉사나가 감격에 젖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연구실 내부에 나뭇잎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거대한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사샤가 누워 있던 욕조 위로 솟아나 있었다.

이 연구실은 펜타모니엄에 가장 높은 천장을 자랑했지만, 나무는 끝도 없이 자라나고 있었다.

가지에서 붉은 꽃잎이 피어나고, 그것이 하늘하늘 내려오며 연구실 바닥에 떨어졌다.

"......완벽해."

렉사나의 눈동자가 서서히 일그러지며 금빛의 삼각형 형태로 바뀌었다. 욕조는 이제 나무의 뿌리로 뒤덮이는 바람에 사샤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어떻게 너 같은 아이가 내 일터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이 또한 어떤 숙명이 아닐까?"

그녀가 천천히 사샤에게로 다가갔다.

"자, 조금 더 힘을 일으키렴 사샤. 아직 더 할 수 있잖아? 더 크고 높은 나무를 만들렴. 그리하여-"

그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다시 한번 세계수의 재현을......!"

콰아아아아앙!

그 순간 연구실 문이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박살 났다.

중요한 순간을 방해받은 그녀가 싸늘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락모락 피어난 폭연 속에서 푸른 머리카락의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사샤가 누워 있는 욕조를 바라보는 시몬의 표정이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무슨 짓이야."

촤아아아아아악!

시몬이 손을 거칠게 휘두르자, 스켈레톤의 뼈들이 단검처럼 튀어나갔다.

"그건 이쪽이 할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학생회장."

렉사나도 손을 휘두르자, 눈 깜짝할 사이에 칠흑이 방울처럼 펼쳐지며 본 아머들을 튕겨냈다.

'개문!'

시몬이 손끝을 세워서 바닥에서 오버로드들을 보냈으나, 그녀는 마찬가지로 방울을 일으켜 오버로드의 방향을 가볍게 반대쪽으로 흘려보냈다.

'역시 박사이기 전에 네크로맨서인가!'

"여기는 펜타모니엄의 일급 연구시설입니다. 아무리 키젠이라고 해도 더 이상의 무례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방."

시몬이 싸늘하게 읊조렸다.

"방금 다 보고 왔어. 비밀의 공간까지."

그 말에 렉사나의 동공이 찰나의 순간 흔들렸지만, 순식간에 평정을 되찾았다.

"간과할 수 없군요. 키젠의 수사권은 펜타모니엄의 연구시설에서만큼은 통용되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자치구로서의 치외법권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두 팔을 벌렸다.

"이 연구는 사샤 학생도 원한 일입니다! 당신이 지시할 권리는-"

"사샤."

시몬이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만 돌아와."

시몬의 그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갑자기 연구실을 가득 채웠던 나무가 시간이 되감기는 것처럼 줄어들기 시작했다. 렉사나가 '안 돼!', '안 돼!'하며 다급하게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거대한 나무가 거짓말처럼 작은 소녀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내 나무의 모습이 사라지며, 첨벙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샤가 조금은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시몬...... 오빠?"

"응, 나야."

"오빠가 어째서 연구실에...... 아!"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지며 제 몸을 가렸다.

"이쪽 보지 마! 나 지금 수영복......!"

"알았어."

시몬이 학생회장 코트를 벗어서 그녀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그녀가 얼른 코트를 붙잡아 몸을 가렸는데. 몸집이 작은 그녀는 코트 안에 몸이 쏙 들어갔다.

"렉사나 박사. 키젠 학생에게 위해를 가하고 본인의 사리사욕을 행하려 한바. 그리고."

시몬이 몸에서 칠흑을 일으켰다.

"결사의 약물을 먹은 정황까지. 당신을 체포하겠습니다."

"......멋지군요."

그녀의 동공은 이제 대놓고 금빛 삼각형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가 옷에서 버튼이 든 장치를 꺼내 들었다.

"내 인생의 걸작을 빼앗으려 하다니요. 이렇게 되면 나도 원초적인 설득수단을 이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쿠궁!

쿠구구구구구궁!

즉각 그녀의 연구실 전체에 격벽이 내려와 앉았다. 사샤가 깜짝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격벽을 설치.

-연구실 B13을 격리합니다.

"누구도 이 연구를 막을 수는 없어요!"

쿠구구구구구궁!

바닥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안테나 같은 뭔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시몬의 눈이 커졌다.

'사샤를 노리는 건가?'

시몬이 사샤를 지키려 방어마법을 펼쳤지만, 안테나에서 터져 나온 파장이 주위로 퍼져 나갔다.

"?"

겉보기에는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하지만.

파직! 파지지직!

손에 낀 각종 아공간 반지들에서 파직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곳에는 흑마법의 연구를 위한 설비들이 가득합니다. 아티팩트 고유의 파장은 연구 결과에 치명적인 오차를 일으키죠."

시몬이 아공간을 열어 스켈레톤을 보내려고 했지만,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당신의 아공간은 봉쇄했습니다."

위이이이잉!

뒤이어 연구소 안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연구실의 어딘가에서.

철컥! 척컥!

피슉!

뭔가가 벗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쿵쾅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건, 갑주를 입은 거대한 인간형 키메라였다.

'제기랄.'

펜타모니엄의 걸작 키메라 '헤라본'.

이 연구실에도 있었다.

아무래도 렉사가 또한 프로젝트의 관여자였던 것 같다. 시몬은 이능을 사용하느라 완전히 지친 사샤를 자신의 등 뒤로 보냈다.

"키젠 학생회장 시몬 폴렌티아, 당신은 틀림없이 소환술사였죠."

그녀가 손을 휘둘렀다.

"소환수가 없는 당신이 뭘 할 수 있나요?"

-우루루룩! 와룩!

키메라 헤라본이 돌진해 왔다. 시몬이 마법진을 펼친 뒤 손끝을 뻗었다.

<시크니스>

<레그다운>

연달아 빠른 템포의 저주들을 쏘아 보냈지만, 키메라는 거울처럼 저주를 튕겨내며 돌진해 왔다. 시몬이 하는 수 없이 사샤를 안고 몸을 날렸다.

콰아아아앙!

키메라가 휘두른 주먹에 바닥에 거대한 흠집이 생겼다. 테이블 위에 사샤를 내려놓은 시몬이 즉각 벽을 타고 뛰어들어 옆으로 돌아왔다.

"소환만 할 수 있는 건-"

시몬의 주먹에 칠흑이 휘감겼다.

"아니야!"

<홍펭 오리지널 - 취타>

쩌어어어어어엉!

시몬의 주먹이 키메라의 몸에 부딪혔으나, 키메라는 발을 한번 휘청거릴 뿐. 멀쩡한 모습으로 팔을 휘둘렀다.

"커흑!"

시몬이 팔로 들어 막았지만 힘의 차이는 명백했다. 그의 몸이 멀리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시몬 오빠!"

사샤가 다급히 외쳤다.

쿨럭! 큭!

벽에 주저앉은 시몬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냈다. 사샤가 앞으로 뛰어와 두 팔을 벌렸다.

"렉사나 박사님! 이러지 마세요! 왜 그러시는 거예요!"

"우리의 높은 이상을 위해서란다."

그녀가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연구의 양분이 될 몸이란다. 네 힘으로 세상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대체 그게 무슨......!"

"세계수의 부활."

렉사나가 입가를 썩은 치즈처럼 찢었다.

"칠흑도 신성도 받아들였던 네 몸이라면 가능해. 그 힘의 원천을 얻는 순간 인류는......."

"됐어, 듣지 마 사샤."

스윽.

시몬이 입가에 피를 닦으며 일어났다.

"미친 과학자의 헛소리는 거기까지야."

"계속 싸울 생각인가요? 실험체 CHH-584 헤라본은 펜타모니엄 전체가 10년을 걸쳐 만든 걸작."

그녀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어지간한 저주와 물리공격은 통하지 않죠. 당신이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아니."

시몬이 뒤를 힐긋 바라보았다.

유리의 도시 펜타모니엄.

이곳도 유리벽이었고 바깥의 모습이 훤히 보였다. 시몬은 저 멀리 아론 연구실의 방향을 체크하고는 용의 마법을 일으켰다.

[와라.]

쿠쿵-!

갑자기 펜타모니엄이 지진이 난 것처럼 떨렸다.

렉사나가 인상을 굳혔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요!"

그녀의 시선이 시몬 너머의 창밖으로 향했다.

쩌저적.

쩍.

반대편의 유리탑.

연구동의 한쪽 유리 벽면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길가에 가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시몬이 다시 한번 명령했다.

[와라!]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저 멀리 탑의 벽면이 박살 나면서, 뭔가가 쐐애액 하고 이쪽으로 날아왔다.

그리고.

꽈아아앙!

와장창창창!

꿈이 아닌가 생각할 만큼 현실성이 없는 광경. 이쪽의 유리창이 박살 나며,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용의 머리가 연구실에 들이닥쳤다.

굉음과 몰아치는 돌풍에 주위의 모든 것이 날아다녔다. 사샤가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았고 렉사나는 뒤로 휘청거리며 엎어졌다.

"말도 안 돼!"

"아직 완성단계가 아니라 쓸 생각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지."

콰드드드드드득!

용의 뼈가 헤라론 키메라의 팔을 한 짝 물어뜯자, 키메라가 고통스러운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뒤이어 거대한 용의 뼈들이 유리벽을 부수고 연구실 바닥에 쿵-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데뷔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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