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15화
칼로스 왕국령 황무지.
"전선이 밀린다!"
"옆에 눈치 보지 마! 싸우라고!"
키젠 2학년 남학생 다섯 명이 팔을 세워 들었다. 그들이 부리는 소환수들이 아공간에서 뛰쳐나와 몰려드는 적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적'은 머릿수를 다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은 자연형 언데드들.
이 지역은 과거에 대규모 생매장 사태라도 벌어진 건지 언데드가 상당히 많았다. 그 군세가 끝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끝까지 싸워!"
남은 소환형 언데드의 잔량도 한계에 봉착했다. 이들의 리더격인 피에르 버클러가 숨을 토해내며 외쳤다.
"쟤들 내보내면 이 근방의 마을들은 다 초토화돼! 결사에게 뭘 빼앗아 온 게 아니라, 우리가 결사를 도운 꼴이 된다고!"
"그전에 우리가 먼저 죽겠다!"
퍼걱!
콰르르!
학생들이 보낸 스켈레톤이나 구울 따위가 하나둘 주저앉아 보이지 않게 되고, 그 뒤로 시꺼멓게 그을린 언데드들이 '어어어'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지옥의 입구가 있다면 이런 곳일까.
부상자도 많고 학생들 모두 다리에 힘이 빠졌다. 이대로는 경유지인 텔레포트 마법진에 갈 수조차 없다.
모두의 눈앞에 절망감이 아른거리고 있는 찰나.
"헤이이!"
등 뒤에서 해맑은 외침이 들렸다. 궁지에 몰려 있던 학생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검정 재킷과 흰 셔츠. 그리고 빨간 넥타이.
누가 봐도 키젠의 교복이었다.
"얘들아! 마중 나왔다! 다들 나 기다렸냐!"
2학년 학생회 총무, 딕 헤이워드였다.
환해져 있던 다섯 명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아니, 왜 하필 저 새끼야!"
"같이 죽으러 왔냐?"
하하하하!
딕이 시원시원하게 웃더니 허리를 굽혀 귀족처럼 인사했다.
"성대한 환영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눈물 좀 찔끔하셨나?"
"......미친 새끼! 야, 너 말고 네 친구 시몬 폴렌티아는? 같이 왔지?"
"아니."
"아오!"
당장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도 딕은 실실 웃으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가 직접 개발한 마력 조명탄이었다. 손끝으로 마나를 살짝 불어넣자 파바박!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날아가 펑펑 폭죽처럼 터졌다.
"대신 누굴 데려왔는지 봐."
"뭐?"
우웅.
웅.
발사한 조명탄을 신호로, 어두운 주변이 한순간에 눈부신 발광체로 가득 찼다. 남학생 다섯 명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여기서 뒤쪽으로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20명 가까이 되는 네크로맨서들이 일제히 거대한 화염이나 칠흑 구체 따위를 만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선두에 지휘하는 여성은 이들의 리더인 모조였다.
"저 사람들은......!"
"학생회 직속 하수인들이야!"
딕이 통신 수정구를 붙잡고 말했다.
"다섯 명 다 무사한 거 확인했습니다. 쏴요!"
그의 지시가 떨어지는 즉시, 수많은 화염과 칠흑 구체들이 공중으로 치솟더니 몰려드는 좀비 군세에 떨어졌다. 요란한 폭발 연기가 솟구쳤다. 그 후폭풍에 학생들이 큭!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 쳤다.
수정구를 든 딕이 다음 지시를 내렸다.
"좋아요! 이제 컨트롤 마법!"
화력 공격 이후, 컨트롤 마법을 준비하고 있던 하수인들이 마법진을 작동시켰다. 불길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대더니 성벽처럼 치솟으며 좀비들을 가로막았다.
불의 벽을 넘으려는 좀비들이 모조리 잿더미가 되어 바닥에 깔렸다.
"뒤는 저분들한테 맡기고."
통신 수정구를 주머니에 넣은 딕이 손짓했다.
저 앞에 간이 텔레포트 마법진이 보였다.
"학교로 돌아가자고."
"......살았다."
남학생 다섯 명이 주저앉듯 쓰러졌다.
* * *
볼드윈 왕국, 엘더스빌 영지.
".........."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지하건물.
그곳에는 세 여학생이 멍하니 쪼그려 앉아 있었다.
"하아."
메이린이 뽀얀 입김을 흘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은 온통 그녀의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얼음 기둥이 무너지려는 천장을 억지로 지탱하고 있었다.
가끔 얼음의 내구력이 다해서 갈라지거나 하면, 그녀가 다시 얼음을 일으켜 보강하면서 버티고 있었다.
"......다들 미안해."
메이린의 왼쪽,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은 여학생은 통칭 '반장'이라고 불리는 제이미 빅토리아였다.
"내가 여기 오자고 하는 바람에 너희들까지......."
"그 말 한 번 더 하면 20번도 넘는 거 알지? 반장."
대답한 쪽은 메이린의 오른쪽, 다리를 깔고 앉아 있는 클라우디아였다.
메이린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무 걱정 마. 곧 신디가 사람들을 데려올 거야."
사건의 경과는 다음과 같다.
메이린은 자신의 첫 목적지였던 상아탑 문제를 해결하고, 그 옆 지방의 일들까지 해결하는 것으로 두 가지 임무평가를 깔끔하게 끝냈다.
이제 마감일까지 5일 정도 남은 시점. 일찍 로크섬에 돌아가서 공부나 할까 생각했는데 제이미 빅토리아의 연락이 왔다.
-내가 결사의 비밀기지를 찾아낸 것 같아! 여길 공격해서 범죄자들을 체포하면 이번 임평 최고 공로자는 틀림없이 우리일 거야!
제이미는 평소 친했던 A반 출신의 친구들을 불러모았다.
여러 학생들 중에서도, 자주 같이 붙어 다니던 메이린, 신디, 클라우디아가 응답했고 이 지역에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도착해서 결사의 비밀기지로 추정되는 곳을 습격했다.
원체 친하기도 했고, 2학년이 되어서도 로체스트에 자주 같이 놀러 가던 네 사람이었기에 임무 시작부터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러나 사실, 이 비밀기지는 결사의 일원들이 자료를 싹 비우고 도망친 곳이었다.
애초에 결사의 함정이었던 것. 보안 장치가 작동하고 기지 자폭 장치가 작동하는 동시에, 연구실에는 강력하지만 통제불능인 실패작 언데드들이 일어나 그녀들을 공격했다.
이런 와중에도 메이린은 번뜩이는 재치로 마법진 해킹에 성공했다. '기지 자폭 장치'만큼은 중간에 멈추긴 했지만, 이미 기지의 절반 가까이 무너져 버린 상태였다. 그들 모두 꼼짝없이 지하에 갇히고 만 것이다.
메이린의 칠흑이 다 떨어지는 순간, 천장이 무너져내려 죽을 운명이었다. 심지어 위에는 초대형 실험체 언데드가 도사리고 있다. 키젠 2학년 네 명의 협공을 받고도 잡기 벅찼던 그 언데드.
결국 이 멤버 중에 유일한 사령학과이자, 가장 오래 혼령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신디 비바체가 벽을 넘어 구조요청을 하러 떠났다. 나머지 세 여학생들은 하염없이 구조를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엣츄! 애췽!
메이린이 재채기를 몇 번 하더니 스읍 하고 코를 들이마셨다. 벌써 코 밑이 빨갛고 얼얼했다.
"메이린~ 재채기 내숭 부리네."
클라우디아가 입을 가리며 한마디 했다. 메이린이 재차 스읍 콧물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왜 시비야. 죽을래?"
클라우디아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냥, 재밌어서. 명색이 엘리멘탈 마스터가 자기 마법에 감기에 걸리다니. 웃기잖아?"
"그 엘리멘탈 마스터가 네 머리 위의 천장만 무너지게 할 수 있는 건 알지?"
그 말을 들은 클라우디아가 짐짓 놀란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메이린을 확 끌어안았다.
"이러면? 이러면 어쩔 건데!"
"악! 떨어져! 땀내나!"
꺄하하하!
애써 밝은 분위기를 내려고 하는 두 사람이었지만, 여전히 축 처져 있는 제이미는 웃지 못했다.
"미안해 메이린, 나 때문에......."
메이린과 클라우디아가 동시에 표정을 굳히며 자세를 고쳤다.
이쯤 되면 자존감이 떨어진 걸 넘어서 파괴당한 수준이다.
"반장."
메이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요즘 무슨 일 있어? 최근에 유난히 성적 욕심내고, Top10을 노린다 막 그러고."
이번에 앞뒤 가리지 않고 결사의 비밀기지를 공략하자며 제안한 것도 제이미였다.
사실 진짜 결사의 '비밀기지'를 발견했다면, 학생끼리 어떻게 하는 게 아니라 어른들에게 알리는 게 먼저였다. 그것만으로도 임무평가 최상위권 공로를 받을 수 있었을 터, 메이린도 그쪽을 제안했지만 제이미는 자신들끼리 공략을 강행했다.
"......욕심내는 게 뭐 나빠?"
여전히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은 제이미가 그렇게 반문했다.
"2학년인 지금이 석차를 올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잖아. 3학년 Top10이 한번 정해지면, 거의 바뀌지 않는다고 하니까. 나도 너희들처럼......."
메이린은 키젠 부회장에 현역 Top10, 그리고 엘리멘탈 마스터로 각성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클라우디아 또한 사실상 권력에서 멀어진 메르디아나를 대신해 맹독학과 대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음 학년 Top10이 유력했다.
"......후읍."
클라우디아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제이미를 보았다.
"반장, 혹시 내 흑역사 기억나? 처음 별야 교수님 부임하셨을 때, 맹독학과 애들 안 챙겨준다고 수업 보이콧 하던 거."
"......."
"그때 내 석차가 710위였던가. 나도 밑바닥을 체험해 봤으니까 잘 알아."
그녀가 눈을 한 차례 감았다.
"모두가 올라가고 있는데 나만 정체된 느낌. 그때는 아등바등 어떻게든 올라가려고 애를 쓰고, 남한테 상처 주고, 나한테 안 유리하다고 키젠 교수까지 갈아치우려고 하고, 내가 생각해도 진짜 좀 그랬지.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알 수 있어."
그녀가 제이미를 바라보았다.
"정체가 아니라 성장통이라는 거. 반장도 틀림없이 위로 올라올 수 있을 거야."
그녀가 무릎에 묻고 있던 고개를 살짝 들었다.
"......고마워."
뭔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더니, 잠시 세 사람 간에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클라우디아가 애써 기지개를 켜며 하하 웃었다.
"일단 여기서 살아남는 게 먼저겠지. 아- 이렇게 기다리다 잘생긴 남자애가 딱 나타나서 텔레포트 마법진 펼쳐놓고 '구해주러 왔어' 하고 말해줬음 좋겠다."
"......."
그 말을 들은 메이린은 잠시 생각에 잠긴 건지 말이 없었다. 클라우디아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불쑥 들이밀었다.
"누구 생각해?"
"!"
메이린의 얼굴이 바로 화끈 달아올랐다.
"맞춰도 돼? 맞춰볼까? 내 생각에는 '시'로 시작하고 '몬'으로 끝나는......."
"야!! 아니거든!"
기겁한 메이린이 그녀를 발끝으로 퍽퍽 찼다. 클라우디아가 맞으면서도 오호호 웃었다.
"잠깐, 얘들아."
그때 제이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군가 이리로 오고 있어."
메이린과 클라우디아가 동작을 멈추고 청각에 집중했다. 쿵- 쿵- 하고 뭔가가 뚫리는 소리와 함께 주위가 흔들리고 있었다.
진동과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위층에 있던 그 커다란 언데드인가 봐."
그렇게 말한 메이린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어이 우릴 죽이러 오려나 보네."
"메이린, 넌 칠흑을 아껴."
클라우디아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여긴 반장이랑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제이미도 고개를 끄덕이며 저주를 준비했다.
이내 쿵- 쿵- 하고 바로 옆에서 들릴 정도로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벽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스스스스스-
그 구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 꼬리 같은 게 벽면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내부에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꿀꺽.
정적 속에서 침 삼키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클라우디아가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 그녀의 머리카락 일부가 뱀으로 변하며 공중으로 치솟았고, 제이미는 손바닥 위로 고속 저주 마법진을 연달아 펼쳤다.
모두가 그 구멍을 주시하고 있는 그때.
타악.
생각했던 거대한 괴물이 아닌, 작은 소녀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다행이에요! 다들 여기 계셨군요!"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다. 그녀를 보는 순간 모두의 표정이 일순 안도와 감격으로 일렁였다.
"카미!!"
세 사람이 우다다 달려와 힘껏 카미바레즈를 끌어안았다. 제이미는 펑펑 울었고, 메이린은 카미바레즈의 볼을 매만졌다.
"이거 꿈 아니지? 이 찰떡 같은 감촉은 카미가 맞아! 카미이이!"
"여, 여러부운!"
카미바레즈가 버둥거렸다. 그나마 가장 빠르게 평정을 되찾은 클라우디아가 물었다.
"혹시 우릴 구해주러 온 거니?"
"네! 시몬이랑 같이 왔어요! 위에서 이상한 괴물이 공격해 와서 싸우고 있는......."
쿠쿵-!
카미바레즈의 말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큰 진동과 함께 천장에 잔해들이 후두두둑 떨어져 내렸다. 메이린이 지탱하는 얼음이 금방이라도 깨질 듯 쩌저적 갈라졌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이어지는 정체불명의 소리에 소녀들이 비명을 지르며 귀를 틀어 먹았다. 카미바레즈는 얼른 혈류마법을 넓게 펼쳐, 그들이 잔해에 맞지 않도록 보호했다.
잠시 후, 그 진동과 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메이린이 제 가슴을 붙잡은 채 숨을 헐떡였다.
"시, 심장 멎는 줄 알았어."
"방금 뭐야? 울음소리?"
카미바레즈도 걱정이 됐는지 위를 올려다보았다.
"여긴 위험해요! 얼른 가봐요!"
이내 카미바레즈와 세 사람이 카미바레즈가 뚫어놓은 터널로 빠르게 이동했다. 정신없이 몇 개 층을 더 올라가고 있는데 메이린은 후끈한 열기를 느꼈다.
'......이게 뭐지? 칠흑화염계? 하지만 조금 느낌이 달라.'
이내 구멍을 빠져나온 그들의 입이 벌어졌다.
괴현상이 펼쳐져 있었다.
지하 기지 한쪽이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는데, 광범위한 형태로 넓게 퍼져 있었다. 벽면과 천장까지 온통 그을려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중앙에 한 부분만 그을음이 사라진 채 하얗게 비어 있었고, 그 중간에는 검은 코트를 휘날리고 있는 소년이 서 있었다.
"......아!"
"다들 괜찮아?"
이 광경을 만들어낸 당사자가, 그녀들을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구해주러 왔어."
학생회장의 등장.
이 상황에서 상정할 수 있는 최고의 지원군이었다. 그제야 모두가 쓰러지듯 안도했다.
메이린의 시선이 돌아갔다.
네 명이 덤벼도 잡지 못했던 그 실험체 언데드는 몸통이 잿더미로 변해 있었고, 머리통만 떡하니 남아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