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18화
암흑연합, 볼드윈 왕국.
알란드 총장실.
"......이것 참."
알란드로 파견된 암흑연합 수사요원이 머리를 긁적였다.
커다랗게 뚫려 있는 벽면, 여전히 현장에 흥건한 피.
피해자는 이곳에서 마치 전신이 폭발한 것 같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바로 이 방에서 알란드의 총장님이 살해당하셨단 거군요."
"네."
총장의 비서인 중년 여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쳤다.
암흑연합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알란드의 총장, 아그리거의 죽음.
키젠의 네프티스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3대 네크로맨서 학교의 총장이었던 그의 이름은 네크로맨서 세계에서 드높았다.
그런 그가 결사에게 살해당했다.
그것이 신호탄이라도 된 것처럼, 도처에서 결사에 대한 피해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했고, 대륙민들은 공포에 떨게 됐다.
"허락받지 않은 자는 결코 들어올 수 없는 포에타 대삼림의 미로를 뚫고, 알란드의 교정에 침입하고, 총장을 살해했다."
요원이 인상을 찡그렸다.
"혹시 총장님이 결사에게 살해당한 건 확실합니까?"
"확실해요. 살해자 본인이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그녀가 울음을 멈추고 말했다.
"나는 결사고, 이제 곧 우리가 주도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 말했어요. 근처에 있던 교직원이나 경비들도 분명히 들었어요."
"음, 일단 알겠습니다."
요원이 빠르게 깃펜을 움직여 수첩에 필기했다.
"그럼. 총장께서 살해당한 이유로 짐작 가는 바가 있습니까?"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아그리거 교수님이 워낙 타협을 모르시고 강직한 성격이지만,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사람은 아니에요."
"하지만 모든 암살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결사가 아그리거 교수를 콕 집어서 살해할 만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생각나는 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
비서인 그녀가 대답을 미루자, 요원은 흑마법을 사용했다. 곳곳에 놓여 있던 서류들이 일제히 공중으로 떠올라 그가 보기 좋도록 공중에 잘 진열되었다.
가만히 서류를 훑어보던 그가 한 장을 뽑아 들었다.
"증언에 따르면 모이란의 총장과 언쟁이 있었던 것 같군요."
그녀가 움찔했다.
"왜 두 분이 다퉜는지 알고 계십니까?"
"자세한 내막은 저도 알 수 없지만...... 올해 키젠 편입생 문제 때문인 걸로 알고 있어요."
"그렇군요."
3대 네크로맨서 학교인 알란드, 시에라, 모이란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는 '키젠 편입'이었다.
어떤 뛰어난 학생을 키워서 키젠으로 편입시키는가. 그리고 그들의 성적이 키젠의 일반학생들에 비해 어느 정도이고, 그 성적을 얼마나 유지하는가가 중요했다.
그리고 내년 신입생 입학식 전에, 학교 교문에 떡하니 붙여놓는다.
이 학교에서 배출한 편입생의 3학년 석차가 몇 위인지. 다른 3대 네크로맨서 학교는 몇 위인지 말이다.
3대 네크로맨서 학교는 그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어떻게 본다면 키젠 입학시험에 떨어진 실패자들을 위한 유일한 구제책이기도 했다.
"모이란 측의 총장님과 연락할 때, 저희 총장님이 통신 수정구를 들고 마구 화를 내시는 걸 들었어요."
그녀가 재차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으며 말했다.
"이건 정말로 아니다. 어떻게 그런 아이를 편입생으로 보낼 수 있는가. 말이 되지 않는 문제다. 연합과 언론에 폭로하겠다. 뭐 그런......."
"그렇습니까. 올해 모이란에서 키젠으로 보낸 편입생에 대해서 알아봐야겠군요."
요원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여러 서류들이 공중에서 빙빙 돌았다. 그중에서 한 장이 그의 손으로 들어왔다.
"어디 보자, 스베라 마티우스, 알리자린 자크......."
그의 입이 멈췄다.
"화이트."
* * *
장송학 시간, '묘소' 수업은 계속되고 있었다.
저주로 묘지기를 붙잡은 학생들은 2인 1조로 활동해서 '계약'을 진행했다.
네크로맨서가 활용하기 위해 붙잡은 '묘지기'를 새로운 비석 안으로 집어넣어야 했는데, 이때 묘지기의 저항이 상당했다. 묘지기는 한번 정한 비석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성질이 있었다.
그래서 한 명이 소환 마법진을 펼치고 묘지기를 비석에 집어넣는 사이, 다른 한 명은 저주를 이용해 묘지기를 묶어 둬야 했다.
그리고 시몬의 파트너는 화이트였다.
"끙."
시몬이 앓는 소리를 내며 소환 마법진에 집중하고 있었다. 비석 안으로 들어가는 묘지기가 거칠게 발버둥 치고 있었지만 시몬의 집중력은 최고조였다.
'거의 다 됐...... 어?'
그때 반쯤 비석에 들어갔던 묘지기의 몸이 쑤욱 빠져나오더니 다른 곳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주가 풀려서 도망친 것이다. 눈앞에 성공을 앞두고 있던 시몬이 맥이 탁 풀려서 고개를 들었다.
"저기, 화이트."
"............."
어느새 화이트는 저주를 멈추고 멍한 눈으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시몬도 따라 고개를 들었다.
까악.
까아악.
까마귀 한 마리가 나무에 앉아 울고 있었다.
화이트는 홀린 것처럼 새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는 늘 날아다니는 새가 나타나면 하던 일을 멈추고 그쪽에 집중해 버리곤 했다.
"화이트."
시몬이 재차 불렀지만 화이트는 들은 기미도 없었다.
이내 까마귀가 푸드덕 날개를 펼치며 다른 곳으로 날아간 뒤에, 화이트의 고개가 천천히 움직였다.
그제서야 시몬을 바라보았다.
시몬이 다시 말했다.
"저주 풀렸어."
그제야 화이트가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까닥했다. 이내 다시 저주를 사용할 마법진을 펼치고 가만히 기다렸다.
다시 해보자는 뜻이었다.
'......이상해.'
시몬은 화이트가 모이란에서 넘어온 뒤부터, 지금까지 계속 신경 쓰고 있었다. 에르제베트에게 뒷조사도 맡긴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에 대한 이상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모이란에서는 저주학과였는데 시몬을 따라 소환학과에 들어왔다는 점, 시몬이 있던 돌연변이 동아리에 들어오려 했다는 점, 칠흑을 흡수하는 백색의 이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
하지만 가장 큰 부분.
시몬의 7군단과 적대하면서도 현재는 실종된 제5 군단장, '매그너스 알반'의 어린 시절을 지나치게 닮았다는 점이다.
과거를 캐도 특별한 기록이 없다.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우리는 절대로 저 정체 모를 부정한 존재를 우리의 왕국에 들일 수 없소!
그랜드포지에서는 드워프들이 화이트의 입국을 금지하기도 했었다.
'대체 정체가 뭘까.'
그때 어깨를 툭툭 건드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소스라치게 놀란 시몬이 옆을 보자, 화이트가 도망쳤던 시몬의 묘지기를 잡아 세운 모습이 보였다.
그 상태에서 그가 빤히 시몬을 바라보았다.
"아, 하하. 고마워. 계속할까?"
* * *
묘지기를 붙잡아 비석에 넣고, 온전히 '소환수'로 부리게 된 뒤부터는 쉬웠다.
묘지기에게 좀비 몇 구를 집어삼키게 한 뒤, 비석에서 대기하도록 한다.
이내 '축적' 룬어를 이용한 마법진으로 비석을 일으킨 뒤, 필요한 순간에 사용하면 된다.
"묘소 생성!"
에슈가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팔을 휘두르자 지면에서 비석이 솟아올랐다. 이내 비석 주위의 지면이 출렁거리더니 그 안에서 좀비들의 팔이 불쑥 불쑥 솟구쳤다.
"성공! 성공이죠?"
"아주 훌륭합니다, 에슈 아르젤 학생."
좀비들이 지면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모습까지 본 수석조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슈가 '예이!'하고 외치며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묘소를 발동한 직후 좀비들의 동작이 살짝 굼뜨네요. 묘소는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실전에서는 좀비가 올라오기 전에 적에게 먼저 비석이 파괴당했겠죠. 묘소를 생성한 즉시 사념으로 명령하는 게 핵심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에슈가 경례하듯 이마에 손을 올리며 발랄하게 외쳤다. 최근 임무평가로 고향 문제가 해결되어서인지 그녀는 눈에 띄게 밝아졌다.
수석조교가 고개를 돌렸다.
"다음은 그 옆에 토토 아모리 학생도 볼까요?"
"예, 예엣!"
토토가 주춤거리며 다가왔다. 처음 표정은 괜찮았지만, 에슈가 파이팅! 하고 등을 찰싹 때리는 순간 급격하게 얼굴이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그가 이내 팔을 휘둘렀다.
"묘, 묘소 생성!"
바닥에 마법진을 펼치고, 묘소를 솟구치게 하는 것까지는 성공이었다.
그러나 나오라는 좀비의 팔은 안 나오고, 지면을 쿵쿵 때리고만 있었다.
"쟤 또 뭐 해."
"두더지 잡기 게임하냐?"
하하하하하하하!
곳곳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토토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벌게졌다.
"묘소에 새겨둔 마법진부터 수식이 틀렸습니다."
수석조교가 말했다.
"그리고 너무 아래에서 좀비들을 올라오게 했어요. 수정해서 다시 해보도록 하세요."
"...네, 네!"
조교들이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묘소를 체크해 주고 있었다.
최고 학년 진급을 앞둔 소환학과 2학년들답게, 이제는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전원이 묘소를 생성하고 좀비를 불러내는 모습이었다.
진 아르스칼트도 팔짱을 낀 채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연습은 충분하겠지. 그럼 지금부터 조별 매치에 들어가겠느니라."
결국 키젠 학생의 승부욕을 가장 크게 끌어올리는 방법은 경쟁과 결투였다.
진은 처음에 한 조로 묶였던 두 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서로를 향한 묘소 간이 전투를 펼치기로 했다.
룰은 간단하다.
두 명이 마주 보고 선 뒤에, 서로 묘소를 생성하고 좀비를 일으켜 먼저 상대를 넘어뜨리거나 혹은 좀비의 팔이 상대의 머리나 얼굴에 닿으면 이기는 경기였다.
"첫 번째 10개 조 먼저 하겠습니다!"
"잘 부탁해."
"절대 안 봐줘!"
학생들이 서로 마주 보고서며 승부욕을 불태웠다. 이내 삑! 하는 수석조교의 호각 소리와 함께 10명의 학생들이 우렁차게 외쳤다.
"묘소 생성!"
곳곳에서 비석들이 솟구치며 좀비들의 팔이 일어났다. "꺄악!", "허억!" 학생들이 비명과 함께 하나둘 쓰러지고 이긴 쪽의 학생은 번쩍 두 팔을 세우며 환호성을 토해냈다.
그리고 가장 학생들의 시선을 끄는 조가 있었다.
어쩌다 하나로 묶였는지 모르겠지만, 바로 로레인과 세르네의 조였다.
어느 때보다 진지한 로레인이 두 팔을 치켜들었고, 세르네는 여우 같은 미소를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학생들은 누가 이길까 서로 동전까지 꺼내며 내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내 조교의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묘소 생성!"
"묘소 생성~"
두 사람의 묘소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이내 좀비들이 나오려는 순간.
"어머."
세르네가 제 발에 걸려 넘어지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로레인이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고, 멀리서 지켜보던 조교가 팔을 들어 로레인의 승리를 선언했다.
"너 그게 무슨......!"
그때 세르네가 등 뒤로 숨겨놓은 손끝을 세웠다.
'얍.'
결투는 끝났지만, 이내 뒤에서 좀비의 팔이 튀어나와 로레인의 머리끝을 붙잡았다. 그녀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고, 세르네가 미안하단 표정으로 제 뺨을 쓸었다.
"아, 미안해요. 반응속도가 느려서 그만."
"너 일부러 그랬지."
"그럴 리가요. 오호호!"
미래의 지도자들의 신경전. 지켜보던 학생들은 대놓고 웃진 못하고 애써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로레인과 세르네가 모든 학생들과 조교진의 시선을 빼앗고 있을 때, 가장 구석 자리에서 시몬과 화이트가 준비하고 있었다.
"세 번째 라인, 시작하겠습니다."
호각 소리가 울려 퍼지고, 시몬은 번개처럼 팔을 휘둘렀다.
'묘소 생성!'
시몬의 묘소가 솟구쳤지만, 거의 동시에 화이트의 묘소도 솟구쳤다.
묘소가 일어나는 속도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비슷했다.
이내 좀비들이 바닥에서 튀어나와 서로의 다리를 붙잡았다.
'생각보다 화이트가 버티는 힘이 좋아! 넘어뜨릴 생각은 하지 말고-'
시몬이 이를 악물었다.
'먼저 머리를 친다!'
거의 동시에 양쪽 좀비가 크게 지면에서 솟구치며 팔을 뻗었다. 간발의 차이로 시몬의 좀비가 먼저 화이트의 머리를 건드렸다.
"시몬 학생이 이겼습니다."
조교가 팔을 들어 올렸다. 시몬은 승리의 짜릿함에 터져 나올 것 같은 함성을 간신히 참으며 미소 지었다.
'이겼다! 성적이랑 상관없는 친선전인데 엄청 긴장했네.'
화이트가 가볍게 고개를 움직여 인사했다. 시몬도 그 인사를 받고는 서로 조용히 좀비들을 다시 묘소 안으로 넣고 있었다.
시몬은 솔직히 감탄했다.
화이트의 흑마법 실력은 훌륭하다. 수업 시간 내내 멍하니 벽만 쳐다보고 있거나, 창밖에 날아다니는 새만 보거나, 따로 훈련이나 연습을 하지 않았는데도 늘 성적이 상위권이었다.
굳이 묘사하자면, 일반 학생들처럼 완전히 새롭게 배우는 게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흑마법을 다시 몸의 감각으로 일깨우는 느낌.
사실 이번에도 간발의 차이로 이긴 거였다. 사실 세 번 하면 한 번은 질 것 같았다.
"네 번째 라인 시작하겠습니다!"
뒷줄 학생들이 할 차례다.
조교가 호각을 불려는 그 순간에.
"시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몬이 자신의 고개를 들었을 때, 어느새 화이트는 앞이 아니라 그의 뒤로 걸어가고 있었다.
'방금 화이트가.......'
시몬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목 뒤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삐이이익- 하는 호각 소리가 묘지에 울려 퍼지지만, 그 목소리에 묻혀 있던 조용한 화이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너를."
전신에서 소름이 마구 돋아났다.
"죽이러 이 학교에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