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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920화 (920/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20화

"제5군단장, 매그너스 알지? 그 사람과 너는 무슨 관계야?"

가장 화이트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었다.

그와 매그너스는 똑 닮았다.

도플갱어가 연상될 만큼.

반드시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차마 관계가 없다고 둘러대진 못하리라.

"매그너스."

드디어.

화이트의 입이 열렸다.

"그게 누구지?"

잠시 긴 정적이 내려앉았다. 시몬이 손으로 이마를 쓸어내렸다.

"......설마 모르는 척하는 거야?"

"아니, 정말로 몰라. 하지만 짐작 가는 게 있다면-"

화이트가 눈을 감았다.

"그가 나와 닮았다면 내 창조에 관여했을지도 몰라."

생명과 키메라 분야에 관해서만큼은, 결사의 흑마법 기술은 이미 대륙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그리고 화이트는 그 실험체로서 태어난 일종의 '호문쿨루스'.

누구의 세포를 이용해 배양됐는지 알 방도는 없다. 하지만 비상식적으로 닮았다면 매그너스가 화이트의 '원본'일 가능성은 농후하다.

시몬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그럼 두 번째 질문, 왜 하필 내게 비밀을 말한 거야?"

"너는 내 타깃이니까."

차분한 화이트의 음성이 낮게 깔렸다.

"결사가 죽이길 원하는 자라면, 결사에게 가장 위협이 될 수 있는 자라고 판단했어."

"......아."

"그리고."

그가 눈을 감았다.

"너를 죽여야 하는 만큼, 너에 대해 많이 조사했어."

시몬 폴렌티아라는 인간에 대해.

화이트는 줄곧 연구소의 실험관 안에서 살았다.

그곳에 갇혀 있으면 많은 소리가 들려온다.

분노, 불만, 역정, 혐오, 증오.

목소리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화이트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나올 때, 누군가에 대한 좋은 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다.

하지만 시몬 폴렌티아에 대해서 조사할 때만큼은 분위기가 달랐다.

다들 그의 이름을 발음할 때는 좋은 소리가 나왔다.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자들은 있었어도, 그것은 나쁜 소리가 아니었다. 그의 행적은 늘 올바르고 강직했다.

그것에 더해 지금까지 그가 구원한 무수한 영지들과 사람들까지.

감성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너는 분명."

화이트의 동공이 가만히 시몬을 응시했다.

"결사가 싫어하는 사람일 거야."

* * *

이어서 화이트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계획을 들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한 달에도 수차례, 포탈을 타고 결사의 기지에 돌아가 점검을 받는다고 했다.

화이트의 설명을 들어보니, 놀랍게도 결사가 가진 중앙 연구소의 크기는 도시 하나에 필적할 규모라고 한다.

이곳을 파괴시키면 지금까지 결사가 대륙을 뒤흔들었던 근간인 키메라, 이상증상 약물, 암서 등 결사의 생물학적 흑마법 기술 기반에 크게 타격을 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찬스. 하지만 화이트가 진짜 결사의 '중앙 연구소'에 들어가는 경우는 적었다.

기껏해야 1년에 3~4회 정도.

대부분은 중앙 연구소가 아니라, '임시 실험실' 중 한 곳으로 간다고 한다. 그곳은 화이트의 신체 상태 체크 정도를 위한 설비만 있을 뿐, 파괴해도 의미가 없다.

또한 화이트가 걱정하고 있는 다른 화이트들도 임시 실험실이 아니라 중앙 연구소에 있다.

-중앙 연구소에서 나를 부르러 포탈을 열면, 그때 네가 같이 따라 들어와. 그 안에서 뭘 하든 상관없지만 '우리'를 데리고 나가는 것만 약속해 줘.

-중앙 연구소인지, 임시 실험실인지는 어떻게 구분하지?

-나는 바로 알 수 있어.

소환 명령은 화이트의 머릿속에 일종의 '전파' 같은 게 들어온다고 한다.

이 명령을 받고 포탈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되는데, 동시에 중앙 연구소인지 임시 실험실인지 바로 구분할 수 있다는 모양.

임시 실험실일 경우, 시몬이 근처에 있으면 알리고 근처에 없다면 그냥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평소처럼 들어갔다 온 후 보고한다.

중앙 연구소인 경우, 시몬에게 알리고 동시 진입한다. 이 경우 화이트가 들어가는 즉시 포탈이 닫히기 때문에 옆에 바짝 붙어야 했다.

이야기를 듣던 시몬은 점점 커지는 스케일에 목구멍이 꿀렁거리는 걸 느꼈다. 자신이 감당하기에 이번 건수는 너무나 거대했다.

-키젠 본부에 이야기하자. 그편이 결사에게 더 확실한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거야.

시몬의 제안에 화이트는 고개를 내저었다.

-키젠은 안 돼.

-응?

-키젠의 행적도 계속 지켜봐 왔지만, 그들도 결사와 다를 바가 없어. 정보를 뽑아낸 뒤 '우리'를 도구처럼 쓰고 버릴 거야.

화이트가 결사에 피해를 입히려는 건 복수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결국 자신과 자신들의 탈출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키젠은 실험체인 화이트들의 안위 따윈 중요시하지 않을 테고, 좋은 건수를 잡았으니 이걸 이용해 최대한의 이득을 보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화이트는 말했다.

-키젠은 세상의 질서와 유지를 위해 작은 희생은 눈감고 넘어가. 그리고.

그가 눈을 감았다.

-틀림없이 나는 작은 희생 쪽일 거야.

시몬은 반박하려 입을 달싹였지만, 참 묘하게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게 네크로맨서들의 사고방식인 건 사실이었으니까.

-꼭 또 다른 조력자가 있어야 한다면, 키젠 소속이 아니었으면 해.

시몬의 고민이 조금 더 깊어졌다.

* * *

시몬은 바로 피어의 유적으로 돌아와 긴급회의를 열었다.

칼로스 북부를 지키고 있을 북신, 자이로스를 제외한 모든 7군단 대장들이 유적에 모였다.

"화이트 구출 작전에서는 군단의 전 병력을 동원할 생각이야."

시몬은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화이트를 구출한 뒤 제7 군단의 전력을 총동원해서 연구시설을 쓸어버리고, 마지막으로 프린스의 시체폭발까지 한 방 터뜨려 주면 결사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다 좋은데 꼬맹아, 제3자 입장에서 들어보니 너무 형편 좋은 이야기 같은데?]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지팡이 위로 모래가 모여들더니 여성의 형상을 이루었다.

미라 부대의 대장, 헤르세바였다.

[결국 자기를 믿고 적의 입안에 쑥 들어가 달란 소리잖아. 게다가 키젠을 끌어들여선 안 된다고? 너무 명백한 함정이야.]

"으, 물론 말로만 하면 그런 반응인 거 나도 이해는 하는데."

시몬이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내가 그 자리에서 느낀 설명하기 힘든 뭔가가 있어. 화이트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그거.]

바람 빠진 공을 가지고 놀던 프린스가 이내 공을 붙잡으며 시몬을 바라보았다.

[전형적인 사기 잘 당하는 사람들의 대사 아냐?]

"윽."

시몬이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소녀의 예감도, 이번만큼은 의심스럽사와요.]

에르제베트도 거들었다.

[길을 가는데 떡하니 먹음직스러운 당근 케이크가 떨어져 있다고 해요. 바로 먹지 말고 의심부터 해야겠죠? 이번 일도 마찬가지예요. 갑자기 결사의 핵심 연구소를 파괴할 기회가 생기는 건 부자연스럽사와요. 평소 하던 대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올라가며 결사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야 해요.]

"맞아, 그게 정론인 건 맞는데."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시몬이 '끙'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멀찍이 앉아 지켜보던 피어가 크흐흐! 웃었다.

[머리로는 이상하단 건 잘 알지만 가슴은 가고 싶어 하는군! 리처드도 자주 그랬지!]

그 말을 들은 시몬이 눈을 빛내며 피어를 보았다.

"이럴 때 아버지의 선택은 어땠는데요?"

[리처드가 누구와 결혼했는지 잊었나?]

"아."

그때 키릭키릭 소리를 내며 송장거미 한 마리가 뽈뽈뽈 다가왔다. 그가 에르제베트에게 뒤뚱거리며 뭔가 신호를 보냈다.

"무슨 일이야? 에르제."

[별거 아니와요.]

에르제베트가 송장거미의 이야기를 듣고는 말했다.

[학과 기숙사에서 점호를 했는데, 사감이라는 자가 군단장님이 안 보인다며 기숙사를 뒤집어엎고 있나 봐요.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자리니 무시하.......]

"그걸 지금 말하면 어떡해!"

사색이 된 시몬이 벌떡 일어나 교복 재킷과 넥타이를 챙겼다.

"나 점호하고 올게! 내일 새벽에 다시 이야기해!"

시몬이 헐레벌떡 유적의 계단을 올라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헤르세바가 어깨를 으쓱했다.

[저 꼬맹이는 엄청난 경험을 많이 했으면서 여전히 애 같다니까.]

[크흐흐흐!]

피어가 웃었다.

[소년을 어른으로 만드는 건 승리의 경험이 아닌 슬픔과 일상의 좌절이다! 소년은 지금까지 승승장구만 해왔으니 말이다!]

[오, 역시 육아 전문가는 다르네. 그럼 이번엔 교육상 좌절을 겪게 해줄 차례?]

[당연히 아니다!]

피어의 눈구덩이에서 안광이 횃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군단이 가는 길은 오로지 승리뿐이다! 군단은 군단장의 의지고, 소년이 함정을 선택한다면 전부 부수고 가는 수밖에! 지금의 군단에는 그럴 힘이 있다!]

그 말에 다른 에이션트 언데드들도 조용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하아아."

기숙사 방으로 돌아온 시몬이 침대에 털썩 누웠다. 이미 점호는 다 끝난 뒤였고, 하필이면 시몬만 자리에 없었다.

노발대발한 기숙사 사감은 학생회장이라고 봐주는 게 없었다. 바로 벌점까지 받아야 했다.

"하필 오늘 점호라니."

툴툴거린 시몬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기숙사 방은 늘 조용했다. 옆 침대에서 세상모르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토토의 숨소리만 들렸다.

이내 시몬은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아공간에서 메모리얼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머릿속에 화이트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러면 임시 실험실에 갔을 때, 네가 아니라 다른 화이트가 올 가능성은 없는 거야?

-성능이 가장 뛰어난 내가 로크섬에 계속 있을 확률이 높지만, 다른 화이트가 이리로 올 수도 있어.

-그럼 어떻게.......

그때 화이트가 준 게 이 메모리얼 수정구였다.

시몬은 토토가 제대로 자고 있는지 꼼꼼히 확인한 다음, 다시 책상에 앉아 그것을 작동시켰다.

치직.

칙.

<나는 화이트, W-1이다. 우리를 대표해서, 우리 모두의 앞날을 위해 할 말이 있다.>

시몬은 가만히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몇 번이고 반복하고 보았다.

* * *

같은 시각.

"흐으음-"

의자에 앉아 있던 파자마 차림의 세르네가 기지개를 쭉 켰다.

아무도 없는 그녀만의 기숙사 방.

룸메이트의 사정, 전산 사고, 그리고 기숙사 하수인의 착각 등이 교묘하게 섞여 벌어진 사건으로 그녀는 3학년들처럼 혼자 방을 쓰고 있었다.

물론 항의하거나 따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늘어지게 하품을 한 그녀가 창가를 바라보았다. 창가에 비친 본인의 모습을 보며 머리카락을 다듬고 있는데.

퉁.

커다란 거미 하나가 창가에 들러붙었다.

"뭐야."

그녀가 바로 머리를 털어서 깃털 하나를 단검처럼 꺼내 들었다. 그러자 거미가 끼릭끼릭 소리를 내며 살려달라는 듯 두 팔을 휘저어댔다.

그제야 그녀가 동작을 멈췄다. 다시 보니 거미치곤 외형이 특이했다.

"어머, 시몬의 7군단 언데드였구나?"

그녀가 그제야 깃털을 엉덩이 뒤로 숨기며 미소 지었다.

이내 창문을 열어주었지만, 겁에 질린 송장거미는 물고 있던 편지 하나를 툭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황급히 도망쳤다.

이내 그녀가 편지를 뜯고 내용을 보았다.

"흐음. 시몬이 나를?"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단 예감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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