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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922화 (922/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22화

"후훗."

"......."

세르네와 화이트가 멀리서 마주 보고 있었다. 세르네는 생글생글 웃고만 있었지만, 화이트는 슬쩍 눈동자를 돌려 결계의 범위를 확인했다.

"나를 상대로 한눈팔 틈이 있어요?"

그렇게 중얼거린 세르네가 눈을 찡긋하고는, 제자리에서 콩콩 뛰기 시작했다.

머리카락과 교복이 팔랑거리며 흔들리고, 피부와 머리카락에서 피어난 깃털들이 꽃잎처럼 떨어졌다.

통.

깃털들을 충분히 바닥에 떨어뜨린 그녀가 구두 끝으로 지면을 짓밟았다.

신병들이 힘주어 경례하듯, 허공으로 각지게 솟구친 깃털들이 빙글빙글 선회하다가, 그녀가 펼친 손바닥 위로 모여들었다.

이내 그녀가 손바닥을 화이트 쪽으로 향하게 한 뒤 입김을 불었다.

사라라라락-

깃털들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화이트는 덤덤히 방어 자세를 취했다. 날아가던 깃털들은 중간에 몸체가 깎여나가 마법진으로 바뀌더니, 단번에 거대한 화염구로 둔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정면의 시야가 후끈한 불덩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타악.

화이트는 침착하게 손바닥을 펼쳐 첫 번째 화염구를 받아냈다.

터업.

반대쪽 손으로 그 뒤의 화염구를 만졌다.

그러자 마치 흰 도화지 위의 그림을 지우개로 지우듯 화염구가 사라졌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하얀 이능을 휘감고 있는 그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흡수의 이능이라."

화이트가 움찔하며 멈췄다.

등 뒤에서 들린 음성이 그의 목덜미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지척까지 다가온 세르네의 입술이 사근거리는 목소리를 냈다.

"정말이네요?"

쩌억!

화이트가 팔꿈치를 휘둘러 세르네의 머리를 박살 냈다.

꺄하하하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목만 남은 그녀의 몸이 뒤로 넘어가며 허물어지는 동시에, 그녀의 손끝이 아래에서 위로 움직였다.

쿠콰콰콰콰콰콰!

발아래에서 진동이 느껴지자 화이트는 망설임 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 즉시 지면이 온통 쩍쩍 갈라지며 아래에서 송곳 같은 암벽들이 솟구쳐 올랐다.

꾸드득!

꽈드드득!

허연 냉기를 뿌리는 빙산이 솟구치고, 용암이 이글거리는 화염 지형이 일어났다.

화이트는 빠르게 세르네의 대지마법을 손으로 툭툭 만지며 대처했다. 빙산지형도 화염지형도 그의 손에 닿는 순간 힘을 잃으며 사그라들었다.

"흐음~"

위에서 들린 목소리에 화이트가 고개를 들었다.

<상아탑 고유 계승 - 엘리멘탈 마스터>

세르네가 빗자루를 탄 마녀처럼 허공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수십 빛깔의 오로라로 엮어 만든 모자챙을 붙잡아 눌러쓴 그녀가, 다른 한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르륵!

허공에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는 거대한 용암 뭉치 50여 개가 그녀의 머리 위에서 준비되고 있었다.

"편입 평가전에서 우리 메이린을 잡은 적이 있다더니, 요행은 아니었나 봐요?"

세르네가 손바닥을 내리는 것을 신호로, 용암 뭉치들이 역한 연기를 뿌리며 떨어져 내렸다.

살아남을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상대의 의지를 정면으로 꺾어버리는 방대한 양의 화력.

하지만 그것을 본 화이트가 전신에 힘을 일으켰다. 그의 몸을 중심으로 하얀 기운이 피어올랐다.

스스스스스스스-

세상을 무너뜨릴 기세로 떨어지던 용암들이 화이트에 닿는 순간 차곡차곡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화염이든 용암이든 어떤 경우에도 폭발하지 않았고, 그때마다 화이트의 힘은 역으로 더 커졌다.

이내 그가 오른손을 뻗었다.

우웅-!

그의 이능으로 이루어진 하얀 구체가 만들어졌다. 제자리에서 빙글 회전한 화이트가 구심력과 탄력을 이용해, 그것을 공중에 떠 있는 세르네를 향해 던졌다.

"까다롭네요."

다른 누구도 아니고 자신의 힘을 이용한 공격.

세르네가 혀를 달싹이며 손바닥을 펼쳤다. 즉시 하늘을 뚜껑으로 덮을 만한 방대한 규모의 방어 마법진이 펼쳐지고 화이트의 구체가 부딪혔다.

콰콰콰콰콰콰콰콰!

방어마법과 공격마법이 허공에서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금방 균형은 깨졌다. 방어마법이 빠르게 금이 가기 시작했고, 늘 태연했던 세르네가 인상을 구기더니, 이내 다른 한 손까지 앞으로 보내 양손으로 방어 마법진의 유지에 전념했다.

우웅!

그사이 화이트는 왼손으로 또 하나의 구체를 일으켰다. 그것을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가볍게 공중으로 띄웠다.

풍선처럼 올라가는 구체.

화이트가 그것을 바라보며 양손을 고리 모양으로 만든 채 자신의 눈앞에서 맞닿게 했다.

"멸."

이내 맞닿은 손을 떼어내며 크게 휘두르자.

구체가 빛의 형태로 퍼져 나가며 세상이 화이트가 일으킨 순백으로 가득 찼다.

무음의 폭발.

세상이 온통 하얗게 일변했다.

"............."

하얀 물감으로 세상을 덧칠한 것처럼, 주위는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

화이트가 순백의 세계에서 사라진 세르네의 잔해를 찾으러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데.

"결사가 기어이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드네요."

갑자기 잘 보고 있던 그의 시야가 검으로 싹뚝 절단되었다.

이어지는 세르네의 목소리까지.

화이트가 재빨리 뒤를 돌아보니, 세르네가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오로라의 모자도 없고, 지팡이도 없다. 즐거운 이야기를 봤다는 듯 자연히 서 있는 모습.

"메이린을 잡은 당신도, 에이젤을 쓰러트린 발락도, 제인 교수를 궁지에 몰아넣었다는 구원자 킬로바니안이란 자도, 전부 결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죠. 그들은 이 정도의 힘을 손에 넣고 대륙을 어쩔 속셈일까요?"

"!"

화이트가 즉각 오른손에 이능을 일으켜 세르네를 공격하려 했지만.

우뚝.

팔과 다리가 마비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뒤늦게 느꼈다.

목덜미에 꽂혀 있는 깃털 한 장의 존재감을.

"사실 그거, 당신이 결계에 들어온 직후부터 꽂혀 있었어요."

이 깃털의 효과는 하나. 목에 깃털이 꽂혀 있다는 감각을 차단하는 것.

하지만 전투 중에 세르네가 조금씩 간섭하여 일반적인 정신지배 깃털로 효과를 바꾸었고, 화이트는 전투에 전념하느라 자신의 몸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로지 깃털이 제 몸에 꽂히는 것만 강박적으로 신경 쓰던 화이트의 패배였다. 가볍게 승리를 설계한 세르네가 사뿐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당신, 시몬을 이상한 일에 휘말리게 하려고 했죠?"

화이트의 팔에 일순 혈관이 돋아났다. 그가 어떻게든 이능을 사용하려 했지만.

"그럼 못써요."

투투두두두둑.

뒤에서 날아온 깃털들이 연달아 꽂혔다.

이 모두가 정신장악의 효과를 일으켜서 화이트를 멈추려 하고 있었고, 화이트는 어떻게든 저항하려 하고 있었다.

화이트를 멈추는 것으로도 한계. 깃털에 실려 있는 칠흑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었다. 세르네가 미소 지으며 그의 등 뒤로 다가왔다.

"단순한 원숭이는 아니었나 보네. 그럼 늦기 전에 한번 볼까요?"

그녀가 눈을 감고 가슴에 두 손을 올렸다. 이내 그녀의 가슴에서 그 어떤 깃털보다도 찬란한 금빛 깃털 하나가 살랑거리며 나타났다.

그녀가 그것을 손에 붙잡자 깃털의 형태가 '열쇠'의 형태로 바뀌었다.

그리고는 그 열쇠의 화이트의 뒤통수에 꽂아 넣고는 돌렸다.

절컥- 하는 소리와 함께.

'!'

그녀의 시야가 어둠으로 뒤덮였다.

'그럼 가장 최근부터.'

정말로 화이트가 실험실에 다녀왔는지 기억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녀가 눈을 뜨자 주위가 온통 하얀 건물이 보인다.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W-1.

화이트의 시야로 보이는 광경.

화이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결사의 연구자들로 보이는 자들이 화이트의 몸에 바늘이 달린 긴 관을 꽂고 있었다.

-타깃인 시몬 폴렌티아는 어떻게 됐죠?

화이트가 고개를 가로젓는 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알겠어요. 키젠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절대 섣불리 움직이지 말도록 하세요. 당신은 소중한 왕자 후보니까.

이내 꾸르륵하고 어떤 액체가 주사로 주입되는 소리와 함께 화이트의 기억이 끊겼다.

'결사와 짜고 치는 건 아니었네.'

세르네가 기억을 더 돌렸다.

하지만 정보가 될 만한 흥미로운 기억은 없었다. 화이트는 대부분의 시간을 하늘을 바라보며 멍하니 보냈으니까.

화이트라는 자의 근본에 대해 궁금해진 세르네는 조금 더 깊은 과거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

세상이 어둡다.

아무래도 실험관 같은 것에 갇혀 있는 것 같다. 그나마 실험관의 중간에 보이는 작은 틈으로는, 가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 외에는 크게 볼 게 없다.

이 실험관 안의 작은 틈이 화이트에게 허용된 유일한 세상.

화이트는 작은 틈으로 투명한 천장 너머 새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조금 더 과거로 가보았다.

작은 틈이 보인다. 천장의 새들이 보인다.

더더욱 과거로 가 보았다.

여전히 실험관 안에 갇혀 있고, 작은 틈으로 새들이 날아다니는 모습만 보인다.

과거를 넘겼다.

넘기고 또 넘겼다.

하지만 아무리 깊은 과거로 가보아도 화이트는 실험관 안에 갇혀 있었다.

화이트는 삶이랄 게 없었다.

그가 본 광경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 몸 상태를 물으러 온 관리자들의 눈동자뿐이다.

정신 지배에 특화된 세르네조차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과거를 한번에 확 뒤로 돌려보았다.

'?'

갑자기 새로운 광경이 보인다.

벽돌 같은 게 보인다. 오래된 성 같았다. 주위에는 물이 있고, 뜨거운 연기가 흐른다.

유리창 너머에는 산맥과 성벽, 그리고 까마득한 절벽이 보인다.

여기는 어디지? 하는 물음을 가지기도 잠시.

후웅!

갑자기 강제로 시야가 일그러지며 그녀가 눈을 떴다.

기억을 읽던 마법이 풀린 것이다.

"어머나."

속박에서 벗어난 화이트가 휘두른 팔이 그녀의 바로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털썩 자리에 주저앉은 그녀가 이내 훗 하고 미소 지었다.

"뭐야, 멋대로 기억을 훔쳐봤으니 한 대 맞을 각오는 했는데. 왜 안 때렸어요?"

"......."

화이트가 서서히 팔을 내렸다.

"시몬이, 조력자라고 했으니까."

그가 저벅저벅 걸어갔다.

"하지만 다시는 이러지 마."

세르네는 눈을 깜빡였다가, 이내 슬쩍 웃었다.

'......충분히 결사를 배신할 만하네요.'

검증할 만한 보람은 있었다.

* * *

세르네는 돌아와서 시몬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황을 설명했다.

시몬은 그렇게 강압적인 수를 쓸 필요가 있었냐며 조금 화를 냈지만, 결국 모두의 안위를 위해 한 행동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 이상 뭐라 하진 않았다.

확실한 건 화이트는 결사에 시몬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가 이야기해 준 삶도 사실이었다.

마지막에 본 광경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게 없었지만, 화이트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건 확실했다. 시몬은 더더욱 이번 사태에 공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 더 시간이 지나, 다음 주 아침.

아론이 복귀했다.

"교수님 들어오십니다!"

오랜만에 보는 소환학 조교의 외침과 함께 학생들이 우르르 자리에 앉았다. 이내 아론이 성큼성큼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평소보다는 초췌했지만 많이 나아진 모습이다. 그는 교탁에 학생들이 빨리 나으라는 의미로 올려놓고 간 꽃다발을 보고는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마음은 고맙다만, 꽃다발 사러 로체스트에 내려갈 시간에 공식 하나라도 더 외우도록. 그게 더 내게 힘이 된다."

곳곳에서 학생들의 못 말린다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시몬의 옆자리에 앉은 로레인도 살풋 웃었다.

"다행히 아론 교수님, 컨디션이 돌아오신 것 같아."

"그러네."

시몬도 크게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소환학과 출석부를 읽은 아론이 학생들을 쭉 둘러보았다.

"올해 우리 소환학과는 다른 학과 이상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다. 학과 순위가 크게 오른 만큼, 앞으로의 처우도 좋아질 거다."

오오-!

학생들이 웃는 얼굴로 손뼉을 치거나 환호했다.

"2학년 과정이 얼마 남지 않았다. 네크로맨서로서 가장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기간이다. 유종의 미를 거두고 최고학년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준비하도록."

"네!"

이제 목표하던 3학년이 눈앞에 있다. 세삼 그 사실을 되새긴 학과생들의 눈에 화색이 돌았다.

아론이 제 어깨를 가볍게 매만진 뒤 말을 이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진 아르스칼트 교수님이 준비하고 있는 대형 수행평가가 있다. 묘소에 관한 수행평가고, 나 또한 심사관으로 합류한다. 그리고."

그가 서류를 읽은 뒤 말했다.

"그 수행평가는 바로 내일이다."

"네?"

학생들 사이에서 놀란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어련히 준비할 시간은 주겠지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빨랐다. 정말 쉴 틈이 없었다.

그가 손짓하자 조교들이 마력 촬영기를 켰다.

"이제 너희들의 키젠 경력도 기니 말하는 것도 우습지만, 준비할 시간이 없다는 조건은 동일하다. 지금부터 수행평가에 대해 설명하겠다."

"네!"

그렇게.

수행평가 당일 아침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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