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925화 (925/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25화

<드래곤 폼>

뚜두둑, 뚜둑.

헥토르의 몸 곳곳에 비늘과 날개가 들러붙으며 덩치도 커지더니 순식간에 '시룡'의 형태로 변모했다.

[다시 한번 말한다.]

파충류를 연상케하는 섬뜩한 세로 동공이 분노로 번들거렸다.

[본 드래곤을 꺼내라.]

딱 봐도 평소 이상으로 너무 흥분한 게 보인다. 시몬이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타이르듯 말했다.

"미안한데, 내가 지금은 꺼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방금 전 시험에서 A+를 타내고 말이냐?]

그의 입김에서 뜨거운 열기가 후욱 하고 흘러나왔다. 전혀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유를 대라.]

"그게, 지금 꺼내기엔 돈이 부족하......."

쿠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

시룡이 머리를 치켜들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거대한 드래곤 피어가 쩌렁쩌렁 마당에 울려 퍼지며 기숙사에 펼쳐진 결계가 위태롭게 출렁댄다.

이게 헥토르의 드래곤 피어라니.

시몬은 리버론에서 봤던 다른 드래곤들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위협을 느꼈다.

'설마 또 강해진 거야?'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헥토르를 진정시켜야 했다.

"아니, 아니! 내가 너무 두서없이 말했어. 제대로 설명할게!"

[닥쳐라!]

헥토르가 몸을 굽혔다. 그러자 그의 몸이 들썩이더니 한 차례 더 커져 나갔다.

<비대화>

헥토르의 몸이 1.5배 가까이 부풀어 올랐다. 비어 있는 틈으로 비늘들이 빠르게 채워지고 이빨은 더더욱 길고 날카로워졌다.

이제는 드래곤 폼 정도가 아니라, 진짜 드래곤으로 보일 정도였다.

[거절하겠다면 힘으로라도 꺼내게 만들어주마!]

'미치겠네.'

이제 일반 학생도 아니고 학생회장 신분이었다. 이런 장소에서 말썽에 휘말리면 곤란했다.

시몬이 곤란해하고 있는 그때, 머릿속에 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재미있구나. 이 몸이 저 필멸자와 이야기해 보겠다.]

미르미즈의 목소리였다.

피어처럼 사념으로 직접 연결되고 있는 것 같았다. 시몬이 깜짝 놀라며 대꾸했다.

'어, 어떻게 했어? 미르미즈.'

[사념으로 내 이름을 떠올리지 않았느냐. 그 순간을 포착한 것뿐이다.]

사념은 네크로맨서가 일방적으로 언데드에게 명령을 내리는 통로이자 창구.

그런데 에이션트 언데드처럼 사념에 직접적으로 간섭하다니. 역시 보통은 아니었다.

'...좋아. 하지만 지금 남은 마정석으로는 1분이 한계야.'

헥토르의 분노를 가라앉히려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시몬이 허공에 비석을 세웠다. 묘소를 제대로 발동하기도 전에 스스로 공간을 찢어내며 뼈만 남은 거대한 드래곤의 아가리가 튀어나왔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흥미롭구나!]

등장하자마자 드래곤 피어를 흩뿌리며 나타난 그녀의 모습에 헥토르의 안색이 살짝 굳었다.

헥토르도 덩치는 상당히 커졌지만, 이렇게 보니 진짜 드래곤과 비교하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미르미즈가 지나치게 거대한 것도 있었다.

스으으으으-

은하수의 커튼을 두른 듯한 드래곤의 머리가 헥토르를 주시했다. 미르미즈는 허공에서 팔을 일으킨 뒤, 검지를 턱에 대는 시늉을 했다.

[네가 이 몸을 상대하고자 하는 게냐? 드래곤을 흉내 내는 인간이라니. 우습구나.]

'오히려 도발하면 어떡해!'

시몬이 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그때.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일텐데.]

헥토르가 입을 열었다.

[뭐라?]

[죽은 망자가 드래곤을 흉내 내고 있지 않나.]

우뚝.

헥토르의 그 한마디에 미르미즈의 이성의 끈이 끊기는 것을 느꼈다. 사념으로부터 그녀의 감정을 느낀 시몬은 기겁하며 외쳤다.

"안 돼! 미르미......!"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모든 건.

너무 순식간에 일어나 버렸다.

* * *

같은 시각.

소환학과 3학년의 레오나드, 그리고 학과대표가 된 벤야 바닐라는 휴게실에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졸업 후의 진로는 정했어? 레오나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홍차를 휘저으며 벤야가 물었다. 레오나드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 내키는 곳이 없네."

"천천히 생각해. 키젠 수석 출신이라면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할 수 있잖아."

"바로 그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어."

레오나드가 쓱쓱 이마를 문지르다가, 동기인 벤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네가 부러워 벤야."

"나?"

"확고한 목표가 있고, 좋아하는 일과 하려는 일이 일치하잖아."

벤야가 풋 웃었다.

"옛날에 자기소개할 때 장래희망이 세계정복이라니까 그렇게 비웃더니."

"그땐 내가 철이 없었지. 졸업할 때가 다 돼가니까 차라리 그런 목적이 있는 게 멋지단 생각이 드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레오나드도 곧 하고 싶은 걸 찾을 수 있을......."

쿠쿠쿠쿠쿠쿵-!

진로 이야기를 하는 진지한 티타임이 갑작스러운 굉음에 깨지고 말았다. 레오나드는 앉은 자세 그대로 뒤로 넘어지고 벤야는 홍차를 테이블에 쏟고 말았다.

"뭐, 뭐야?"

레오나드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창밖이 온통 푸른빛이었다.

레오나드와 벤야가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헐레벌떡 밖으로 뛰쳐나갔다.

"무슨 일이야!"

"다들 괜찮니?"

문밖으로 나간 두 사람이 외쳤다.

그리고.

"아."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할 말을 잊고 말았다.

바닥에 일직선으로 그어진 거대한 구덩이가 파여 있었고, 그 구덩이는 기숙사 앞 공터를 가로질러 숲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구덩이의 바로 옆.

드래곤 폼이 풀려 버린 헥토르가 멍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시몬이 숨을 헐떡이며 엎드려 있었다.

"허억, 헉."

미르미즈의 브레스에 휘말리기 직전, 시몬이 몸을 던져 그를 구해낸 것이다. 시몬이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중얼거렸다.

"왜 본 드래곤을 안 꺼냈는지, 이제 알 거라고 믿어."

헥토르는 말을 잇지 못하고 석상처럼 굳어져 있었다.

그때 레오나드와 벤야가 다가왔다. 시몬이 뜨끔한 표정을 지으며 얼른 말했다.

"서, 선배님들. 이게 무슨 일이냐면......!"

"둘 다 다친 곳은 없지?"

레오나드가 그렇게 묻고는 고개를 들었다.

"원래 이 기숙사 앞 공터에서 온갖 사건 사고가 다 일어나는데, 이건 진짜 역대급이네."

아직도 저 멀리 숲에서 나무들이 하나둘 쓰러지고 있었다. 시몬은 눈을 한 차례 질끈 감았다. 사고를 쳐도 제대로 쳐버렸다.

"제군아."

벤야가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완성한 거야?"

"네."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였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요."

벌떡.

그때 헥토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오나드가 뭐라 말을 걸었지만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뚜벅 뚜벅 걸어가 기숙사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시몬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쾅!

기숙사 계단으로 올라가던 길.

헥토르가 주먹으로 크게 벽을 후려쳤다.

'강해지고 싶다.'

후두두둑.

주먹에 깨져 나온 파편에 손에 피가 철철 흘렀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벌겋게 충혈된 얼굴의 그가 이를 빠득 빠득 갈았다.

'어떤 더러운 수단과 방법이라도 좋다. 지금보다 더 강한 힘이 필요하다.'

* * *

미르미즈가 브레스를 쐈지만 기적적으로 다친 사람은 없었다.

키젠에서 언데드 사고는 흔한 일이었기에 즉각 키젠의 하수인들이 사태를 수습하러 왔다. 일직선으로 무너진 숲과 나무는 복구에 시간이 걸릴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1학년의 사샤가 도와주기로 했다.

이런 와중에 무엇보다 가슴 아픈 사실은.

'또 돈 나가겠네!'

브레스 한 방만큼의 칠흑을 채우기 위해 미르미즈에게 마정석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때라면 모르겠는데 하필 지금은 화이트 이슈가 있는 상황. 결사의 중앙 연구소에 언제 들어갈지 모르니 만전의 상태를 다져야 했다.

시몬은 마정석 광산이 있는 프로스트 필드의 자이로스 측에 연락해서 물량을 조금 더 빨리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이번 일은 당연히 화제가 됐다.

시험에서 등장해 500마리의 몬스터를 찍어 누른 본 드래곤.

그 뒤에는 숲을 홀라당 태워 먹기까지.

시몬이 본 드래곤을 보유했다는 건 이제 소환학과의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반 과목인 저주학을 들으러 강의실에 들어왔는데, 아무래도 다른 학과에까지 소문이 퍼진 것 같았다.

"안녕 시몬! 혹시 말이야!"

"본 드래곤 소문 진짜야?"

"아, 그게......."

순식간에 동기들에게 빙 둘러싸인 시몬이 곤란해하고 있는데, 옆에서 불쑥 구원의 손길이 나타났다.

"시몬? 학생회 업무 건으로 논의할 일이 있어."

메이린이었다.

똑 부러진 성격의 그녀가 시몬의 손목을 잡고 끌고 가니, 다른 학생들도 입맛을 다실 뿐 더 다가가진 못했다.

"멍충아."

성큼성큼 앞서 걸어가던 메이린이 툴툴댔다.

"사람만 좋아서는. 키젠에서 네크로맨서의 전력에 대해 묻는 건 실례야. 그런 질문은 그냥 무시해도 돼."

"응. 고마워 메이린."

시몬이 감사 인사를 하자 메이린이 쑥스러운 듯 콧방귀를 뀌었다. 이내 그녀는 딕과 카미바레즈가 기다리고 있는 테이블로 그를 데려왔다.

"헤이, 본 드래곤 서머너!"

딕이 손을 들어 올리며 인사했다.

"축하드려요 시몬! 아, 여기 앉으세요!"

카미바레즈가 날개를 파닥이며 앞을 가리켰다. 오늘은 학생들이 평소 자주 앉는 자리에 이름이 붙어 있었다. 오늘은 좌석제로 수업을 하는 것 같았다.

시몬은 미소로 답한 다음 자신의 이름이 붙은 자리에 앉았다. 딕이 고개를 쭉 기울였다.

"시몬! 우리한테도 본 드래곤 보여줄 거지? 수업 끝나고 점심시간에 나 등에 태워줘!"

시몬은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2,000골드."

"오우! 누가 내 친구 아니랄까 봐. 너도 내 수전노 기질에 오염됐구나!"

"......진짜로 그 정도 비용이 드니까 하는 말이야."

시몬은 본 드래곤을 하이스펙으로 제작하는 바람에 유지비가 어마어마하다는 이야기를 멤버들에게 털어놓았다.

"오히려 멋진데?"

딕이 그의 등을 철썩철썩 때렸다.

"한 번 등장할 때마다 중소형 저택 한두 채가 날아가는 본 드래곤이라니! 이거 이슈가 되긴 하겠어. 펜타모니엄에서 귀족들 태워다 주고 후원비 받자!"

"......놀리지 마."

농담을 받아칠 기운이 없던 시몬이 책상에 폭 기대어 말했다. 카미바레즈가 무안한 웃음을 흘리며 얼른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엔 뭔가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글쎄. 소환학 권위자인 아론 교수님도 개선하지 못했으니 쉽지 않을걸."

그렇게 중얼거린 메이린이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인상을 굳혔다.

"아니면 소환학이 아니라 다른 방향에서 개선점을 찾아야 하나?"

그때 강의실 밖에서 문지기를 자처하던 남학생이 외쳤다.

"교수님 오신다!"

우르르르르!

학생들이 서둘러 자리를 잡고 앉았다. 메이린이 교과서를 펼치며 말했다.

"이번에도 체헤클 조교 선생님 수업이겠지?"

"그렇겠지."

최근의 저주학 교수 바힐은 어딘가 이상했다. 학사일정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수업조차 수석조교인 체헤클에게 맡겼다.

이유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는데, 그가 어떤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는 소문만 돌았다.

물론 바힐이 쌓아온 명성과 영향력이 워낙 대단했기에, 동료 교수들이나 학부모들은 무슨 생각이 있겠거니 넘어갔고, 수석조교인 체헤클의 수업 자체도 유익했기에 학생들의 불만도 적은 편이었다.

"저기 오셨다."

그런데 오늘은 체헤클이 연단에 올라오지 않았다.

다른 조교들처럼 뒤에서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설마?'

모두의 시선이 복도 쪽으로 향했다. 뚜벅뚜벅 느긋한 발소리가 울리더니, 특유의 때가 묻지 않은 하얀 백정장을 입은 사내가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바힐 교수님이다!'

'와!'

거의 두 달여만의 등장이다.

키젠 최고의 슈퍼스타의 출현에 학생들은 환호성을 참으며 눈을 빛냈다. 이내 바힐이 걸어와 머리에 쓰고 있던 하얀 중절모를 벗어서 연단에 둔 채 빙긋 웃어 보였다.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그제야 얼음 깨져 나가듯 학생들이 떠나갈 듯한 환호성을 쏟아냈다. 바힐은 진정하라는 듯 성악가처럼 유쾌한 제스처를 취했고, 여학생들의 활기찬 웃음소리가 주위를 뒤덮었다.

"자, 이제 기말고사도 앞두고 있으니 다시 내가 교단에 서야겠죠."

부드럽게 미소 지은 그의 시선이 힐긋 한곳에 머물렀다.

그 특유의 강렬한 눈빛을 받은 시몬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했다.

"그럼 들어가 볼까요."

정장 소매를 걷고, 시계를 풀어서 내려놓고, 머리를 모아서 뒤로 묶는 모습까지 그림 같았다.

그가 분필을 집으며 말했다.

"체헤클 조교,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죠?"

그 순간 메이린이 손을 번쩍 들었다.

"메이린 빌렌느입니다! 523페이지 입니다!"

"고마워요, 메이린."

자리에 앉은 메이린이 조용히 '아잣!' 하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말 한번 붙여봤을 뿐인데 곳곳에서 동기들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들이 꽂혔다.

"아, 생각보다 진도가 꽤 나갔군요. 좋습니다."

페이지를 확인한 바힐이 미소 지으며 교과서를 툭 덮었다.

"그럼 오늘은 교과과정을 떠나, 재미있는 수업을 하나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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