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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929화 (929/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29화

수행평가 시즌이 모두 끝나고, 이제는 2학년 과정의 대미를 장식할 기말고사가 다가오고 있었다.

사실상 3학년 석차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에, 학생들은 어느 때보다 이를 악물고 열심히 준비했다. 시몬도 이런저런 스터디 모임에 불려 나가며 시험공부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소환학과 10조 학생들과 함께하는 전공 스터디를 하는 날이었다.

"3대 고위 언데드의 핵심 재료 세 가지!"

에슈가 질문을 던졌다.

필승 머리띠를 이마에 두른 토토가 팔을 들고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리치의 라이프베슬! 데스나이트의 다크홀! 본 드래곤의 드레드하트!"

"맞아. 그 세 가지지? 그럼 그 세 가지 중에서 칠흑을 직접 만들어내지 못하는 건 뭘까?"

토토가 순간적으로 망설이는 사이, 이번엔 로레인이 손을 들었다.

"데스나이트의 다크홀은 체내의 칠흑과 마나를 이용해 다크오러를 만들어내는 기관이야. 칠흑을 직접 일으키는 것과는 달라."

"정답이에요! 역시 로레인 님!"

에슈가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쳤고, 시몬도 씩 웃었다.

벌써 그녀의 세 차례 연속 정답.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하네. 그나마 약점이었던 필기의 약점이 사라졌어.'

로레인은 이능과 재능에만 의존하던 유망주에서, 이제는 일반 흑마법과 이론적 지식도 갖추게 된 팔방미인 같은 네크로맨서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성장은 고무적이었고, 네프티스가 2학년 내내 딸의 이능을 봉인한 선택은 대성공이었다.

이 정도라면 3학년이 됐을 땐 봉인을 풀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자, 이제 기말고사까지 진짜 얼마 안 남았어! 열심히 해서 3학년도 꼭 다 같이 올라가자! 알았지?"

그렇게 말하는 에슈는 어떤 사명감마저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가장 성적이 아슬아슬한 토토가 '응' 하고 소심하게 대답했다.

똑똑똑.

"공부 중에 실례합니다. 학생분들."

강의실 문이 열리며, 조끼 차림의 낯선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혹시 아론 교수님이 어디 계시는지 아는 분 있으십니까?"

하수인은 아니었다. 목에 키젠 출입증을 걸고 있는 걸 보니 외부자인 모양이다.

세 사람이 고개를 내저었고,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론 교수님은 왜 찾으시나요?"

"아, 저는 펜타모니엄에서 왔습니다. 교수님께 이 논문 사본을 전해 드려야 하는데요."

남자가 서류가 든 두툼한 종이봉투를 보이며 말했다. 봉투에는 펜타모니엄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노크해 보니 교수님이 자리에 안 계신 것 같아서요. 교수 연구실은 관계자 외에 출입 금지라서......."

"그럼 제가 전해 드릴게요."

시몬이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저는 아론 교수님의 직속제자거든요. 시몬 폴렌티아라고 합니다."

"아, 그래주시면 감사하죠! 시몬 폴렌티아 님이라면 학생회장 맞으시죠? 일이 바빴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시몬에게 물건을 건네준 남자가 밖으로 나가고, 시몬이 위를 가리켰다.

"이것만 교수님 책상에 내려놓고 금방 올게."

"응! 그럼 우리도 잠깐 쉴까?"

"좋아!"

시몬은 느긋한 걸음걸이로 계단을 올랐다. 이제는 눈에 익은 복도들을 여럿 지나 아론의 연구실에 도착했다.

가볍게 손등으로 문을 노크했다.

"아론 교수님, 시몬입니다."

당연히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마침 문도 열려 있었기에 시몬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론의 연구실은 여전히 온갖 실험 도구와 책들로 어질러져 있는 모습이었다. 눈을 두는 곳마다 생전 처음 보는 언데드 재료들이 굴러다니고 있다.

시몬은 바닥에 놓여 있는 물건들을 밟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걸어가, 아론의 책상 위에 종이봉투를 내려놓았다.

"아."

온통 사무적이거나 연구를 위한 물건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사적인 물건.

낡은 탁상 액자 하나가 보인다.

평소에는 뒤집혀 있거나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었는데, 오늘은 살짝 기울어졌을 뿐 제대로 서 있었다.

'가족 액자 같은 건가?'

시몬은 강렬한 호기심을 느꼈다.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댈 수는 없었으니, 책상 뒤로 돌아가서 그 액자를 살폈다.

'와, 젊다.'

액자에 보이는 건 아론의 모습. 지금의 부스스한 머리카락과 축 처지고 그늘진 눈, 피로에 찌든 나른한 표정과는 달리 의욕과 활력이 넘쳐 보인다.

느낌으로만 보자면 열정이 폭발할 것 같은 화려한 수업을 할 것 같다. 눈썹이 바짝 올라가 있고, 눈동자는 자신감이 넘친다.

입고 있는 정장이 사이즈가 크고 깨끗한 걸 보니 교수 초임 시절로 보인다. 정장이 영 어색하다.

그 옆에는 키젠 교복을 입은 아론의 제자들이 환하게 웃으며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론의 옆에 있는 하얀 머리카락의 학생.

바로 옆에 둔 걸 보니 아론의 총애를 받는 학생임이 틀림없었다. 아론은 그 학생의 어깨를 짚은 채 웃고 있었고, 학생은 뭔가 부끄러운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시몬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매그너스.'

제5군단장 매그너스 알반.

그의 키젠 학생 시절이었다.

갑자기 속이 매스껍고 심장이 꿀렁였다.

'이건 진짜.'

화이트랑 너무할 만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인상은 화이트와 차이가 있었다. 표정이 없는 화이트와는 달리, 생기 있고 미소도 짓고 있다.

이런 사람이 교내 역사상 전무후무한 '키젠 교수 살인 사건'을 일으킨 범죄자라니, 믿기 힘들었다.

'......아론 교수님 입장에서, 매그너스는 다시는 떠올리기도 싫은 사람일 텐데.'

왜 그가 이 액자를 다시 꺼내 보게 된 건지 마음이 복잡했다.

어쨌거나 용무는 마쳤으니 나가야 했다. 시몬은 서류 봉투를 책상에 똑바로 올려놓고 집무실에서 빠져나왔다.

10조 조원들이 있는 1층으로 향하는 중에도 머릿속은 온통 매그너스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계단을 내려가던 중.

'아.'

저 멀리서 방금 액자에서 본 남자와 비슷하게 생긴 소년, 화이트가 느릿느릿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참, 오늘 학과 보충수업이 있는 날이었지.'

보충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인 것 같았다. 시몬은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한 표정으로 걸어가다가 그와 눈을 딱 마주쳤다.

"안녕."

시몬이 인사했다. 화이트는 평소처럼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걸어가려 했지만, 시몬이 착 귀를 만졌다.

확인 신호.

제 어깨를 만지면 이상 무라는 뜻.

반응이 없으면 다른 화이트로 교체된 뒤라는 뜻이다.

그런데.

툭툭툭.

이전 화이트와는 달리, 어깨를 세 번 두들겼다.

그것을 본 시몬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W-1! 첫 번째 화이트!'

제일 처음에 시몬에게 결사를 배신하겠다고 선언한 그 화이트다.

임시 실험실에 가서 다른 화이트로 교체됐었는데, 어느새 다시 뒤바뀐 것 같았다.

시몬은 얼른 휙휙 주위에 다른 누가 있는지 확인하고는 다가가 물었다.

"괜찮아? 별일 없었어?"

끄덕.

화이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이야기 좀 해."

"......."

시몬과 화이트는 인적이 드문 복도 끝으로 걸어가서 은밀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화이트는 임시 실험실에서 회복 시술을 받았다고 이야기했고, 시몬은 저번에 교체된 두 번째 화이트와 만나서 그를 설득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네 예상대로, 두 번째 화이트는 네가 준 메모리얼 수정구를 보고는 설득됐어."

끄덕.

화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몬은 이야기를 하면서 천천히 동공을 움직였다. 열린 창밖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며 새들이 몇 마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자, 그런데 문제는 지금까지 우리 계획이 큰 성과가 없었잖아. 난 우리 계획에 살짝 불안감을 느껴."

끄덕.

"그래서 말인데."

시몬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화이트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화이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잘 듣고 있었다.

"하아."

그러던 시몬이 깊게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숙였다.

화이트가 고개를 갸웃하며 시몬을 바라보았다.

"너."

시몬의 눈빛이 예리해졌다.

"사실 화이트가 아니지?"

"!"

바로 창밖에서 새소리가 들리고 새들이 저렇게 대놓고 날아다니고 있는데, 화이트는 시몬의 이야기에만 집중하고 있다. 진짜 화이트라면 그럴 리가 없다.

시몬의 손끝에 칠흑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만 정체를 드러내시지."

[이런.]

그때 화이트의 입가가 쭉 찢어지며 이질적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안 하던 연기를 하려니 쉽지 않은걸.]

화아아아아아악-!

갑자기 복도에 광풍이 몰아닥쳤다. 시몬이 큭! 소리를 내며 뒤로 멀어졌고, 새까만 칠흑의 풍압 속에서 화이트가 가만히 시몬을 노려보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시몬 폴렌티아.]

그 목소리를 들은 시몬의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전신의 세포가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이 목소리는 틀림없이.

"매그너스......!"

[그래.]

화이트의 몸을 차지한 것으로 보이는 매그너스가, 교복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저벅저벅 다가왔다.

[재미있는 일들을 벌이고 있더군. 시범 가동 중인 라미아의 유일한 복제본을 쏙 가져가질 않나. 이번엔 이 실험체를 이용해 결사를 치려고 하질 않나.]

"......!"

시몬의 이마가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상관없지.]

화이트와는 차원이 다른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흩뿌리며, 다섯 번째 군단장은 턱을 젖힌 채 시몬을 노려보았다.

[네 마음대로 해라.]

"......뭐?"

[이 예비 몸뚱이 중 하나를 써서 결사의 연구소를 무너뜨리는 것 따윈 눈감아주겠다는 거다.]

그가 입꼬리를 찢었다.

[네 뒤에 있는 키젠이나 내 뒤에 있는 결사. 그런 배경 같은 건 아무래도 좋지 않나. 그동안 미뤄왔던 군단장 간의 승부를 내자.]

시몬은 입을 다문 채 매그너스의 생각을 읽으려고 했다.

매그너스가 픽 웃었다.

[단지 그 이야기를 하러 왔다. 다른 이해관계나 사정 따윈 알 바 아니다. 각자의 에이션트 언데드를 걸고 제대로 붙어보자고.]

"내가 승부를 거절한다면?"

[네 주변에 참극이 일어나겠지.]

매그너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널 잡으려 펜타모니엄에 비극을 선사한 건 기억나겠지? 내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는 잘 알고 있을 거다. 계속 그렇게 키젠의 품에 숨어 있을 거라면 말리진 않겠다만.]

그가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영원히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

그의 발밑에서 그림자가 일어났다. 눈동자와 이빨이 달린 그림자 소환수 같은 종류였는데, 그것이 복도를 타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사각! 사각!

그것이 지나갈 때마다 복도에 할퀸 상처 같은 게 일어났다. 시몬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저 멀리 두 명의 여학생이 수다를 떨며 지나가고 있었다. 학교 내라서 그런지 전혀 위협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안 돼!'

시몬이 즉각 바닥을 박차고 쏘아져 나갔다. 검은 그림자가 그녀들을 덮치려는 순간, 시몬이 교복을 휘날리며 그녀들의 앞에서 나타나 그림자를 걷어찼다.

꽝!

굉음과 함께 주위에 거대한 후폭풍이 일어났다. 여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넘어졌고, 시몬은 바닥에 착지하는 동시에 돌진했다.

"무슨 짓이야!"

터어어엉!

시몬이 달리면서 아공간을 열었다. 즉각 스켈레톤들이 튀어나오더니 그의 팔에 연결되었다.

[이 정도면 이야기는 충분하겠지? 근처에 키젠의 눈도 지켜보고 있는 것 같고.]

사각! 사각! 사각! 사각!

매그너스가 손짓하자 그림자들이 공격을 멈추고 다시 그의 발밑으로 모여들었다.

이내 그가 목구멍을 벌리고 입안으로 손을 넣더니, 꿈틀거리는 살점 하나를 꺼내 들었다.

[나도 너희들이 노리는 결사의 중앙 연구소에 머무르고 있다. 난 이미 결사를 써먹을 만큼 써먹었고, 너희가 그곳을 부수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휘익!

매그너스가 살점을 창밖으로 던지고는 미소 지었다. 붉은빛이었던 그의 안광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네가 결사에 붙잡히는 것만큼은 곤란해. 결사 녀석들은 널 붙잡으면 그 어르신이란 자에게 넘겨 버릴 테니까.]

"잠깐! 그게 무슨......!"

[부디 무사히, 내 손에 잡히기를 기다리마.]

이내 붉은빛이 사라지고, 화이트가 바닥에 쓰러졌다. 시몬은 걸음을 멈추고 그의 상태를 살폈다.

'다시 화이트로 돌아왔다.'

화이트가 열이 심하게 난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시몬이 바닥을 강하게 주먹으로 내려친 뒤 이글거리는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살점 하나가 스스로 움직여 도망치고 있었다.

5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인 '알라제'의 능력이다.

'피어! 에르제베트한테 추적을 지시해 주세요!'

[크흐흐! 알겠다!]

시몬이 주먹을 꾸욱 쥐었다.

'매그너스 알반.'

아무래도 편하게 앉아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5군단이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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