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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930화 (930/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30화

매그너스가 사라진 뒤, 화이트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마침 세르네도 근처에서 감시하고 있었던 건지 소란을 듣고 제일 먼저 달려왔다.

그녀는 우선 깃털부터 일으켜 매그너스에게 습격당할 뻔한 여학생들의 기억을 흐릿하게 만들었고, 시몬은 화이트를 부축한 뒤 소란을 듣고 온 하수인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화이트의 이능이 폭주한 것 같아요! 바로 병동으로 옮겨야 해요!

학생회장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직위'라는 마법의 이름 덕분에 어른들에게도 무조건적인 신뢰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하수인들은 학생회장이 하는 말에 큰 의심 없이 화이트를 데리고 갔다.

화이트는 병동에서 치료받았고, 병동 의사는 다행히 몸에는 이상이 없지만 정신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아 쓰러진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소란이 마무리되자, 시몬과 세르네는 병동에서 대책 회의를 열었다. 시몬은 그때의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고, 세르네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반짝였다.

"흐으음- 이제 모든 실마리가 풀리네요."

"맞아."

매그너스는 죽은 게 아니었다.

살아 있는 그가 키젠의 추격을 뿌리치고 완전히 종적을 감출 수 있었던 이유.

키젠이 결사의 본거지를 찾아내지 못한 것처럼, 매그너스 또한 결사와 손을 잡고 그들의 포탈 내부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보다 매그너스가 결사와 손을 잡았을 줄이야.'

어떻게 본다면 당연했다. 현재 결사는 키젠과 에프넬 다음으로 강력한 제3의 세력이다. 키젠과 완전히 등 돌리게 된 매그너스가 결사를 선택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시몬의 교복에 매달려 있던 피어가 목소리를 냈다.

[크흐흐! 화이트도 매그너스와 연관이 있는 게 확실해 보이는군!]

"맞아요, 피어."

매그너스의 몸이 고장 났다는 건, 그가 키젠 학생 시절이던 때부터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평소에는 늘 뜨거운 유황온천 같은 곳에 들어가서 요양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어지간한 일에는 직접 움직이지 않는다. 에이션트 언데드를 뒤에서 부리거나, 알라제를 이용해 자신의 가짜 분신을 만들어 조종하는 정도일 뿐.

바로 이 고장난 육체 문제를 해결하는 게 매그너스가 결사와 손잡은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아무래도 그는 자신의 신체 일부를 제공해서 화이트를 만든 뒤, 그들 중 하나의 몸을 차지하려는 생각일 것 같았다.

그게 바로.

'왕자 후보, 화이트가 만들어진 이유.'

시몬이 병동 침대에 누워 잠이 든 화이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요? 시몬."

세르네가 다리를 바꿔 꼬며 말했다.

"매그너스에게 모든 계획이 들통난 이상, 화이트를 통해 연구소에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 같은데요?"

"아니, 그 문제만큼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시몬이 단정 짓듯 말했다.

"매그너스는 필요에 의해 결사와 손잡았을 뿐이지, 자신의 이익에 반한다면 무엇이든 버릴 인간이니까."

제 손바닥을 가만히 바라보던 시몬이 주먹을 꾹 쥐었다.

"매그너스를 움직이는 행동 원리는 오로지 '힘'이야."

시몬은 매그너스를 만났을 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학생보다 약한 교수는 죽어도 싸.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에이션트 언데드를 손에 넣을 거다.

-일곱 명이서 일곱 군대를 거느리나, 한 명이서 일곱 군대를 거느리나 같다! 모든 군단장이 비로소 하나가 되었을 때. 군단 따위가 아니라 비로소 모든 언데드의 왕! 프리스트들과의 기나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는 거다.

매그너스는 시몬이 군단장이라는 사실을 가장 빨리 알아낸 사람 중 하나였지만, 대륙에 공표하지 않았다. 시몬이 군단을 노리는 다른 네크로맨서들에게 사냥당할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매그너스는 시몬의 계획을 알아냈지만, 결사에 알리기는커녕 일부러 화이트의 몸을 사용해서 시몬에게 위협을 알려주기까지 했다.

-난 이미 결사를 써먹을 만큼 써먹었고, 너희가 그곳을 부수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네가 결사에 붙잡히는 것만큼은 곤란해.

-결사 녀석들은 널 붙잡으면 그 어르신이란 자에게 넘겨 버릴 테니까. 부디 무사히, 내 손에 잡히기를 기다리마.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그간의 매그너스가 벌인 행적들이 말해준다.

매그너스가 노리는 건 오로지 시몬이 가진 군단이다.

"매그너스는 신뢰할 수 없지만, 매그너스가 가진 야망은 신뢰할 수 있어. 계획은 속행할 거야."

시몬이 말했다.

"우선 결사의 중앙연구소를 파괴하고, 살아남은 다른 화이트도 구해내겠어. 동시에 매그너스의 5군단을 해체하고 내 주위에 끼칠 잠재적 위협도 완전히 해소할 생각이야. 그리고."

시몬이 눈을 번들거린 채 주먹을 움켜쥐었다.

"내친김에 5군단까지 내가 손에 넣는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

바로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피어의 분신이 우렁차게 웃어대기 시작했다.

"야망 있는 남자, 싫지는 않네요."

세르네도 입술을 달싹이며 시몬을 바라보았다. 시몬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 물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지 않겠다는 건 아냐."

매그너스까지 저쪽에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기존의 시몬과 세르네, 화이트만으로 연구소에 들어가는 걸 고집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키젠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시몬은 화이트를 설득해 키젠의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만 이 사실을 알리고 대비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들에게도 '화이트들의 생존'을 제1 목적으로 하는 걸 조건으로 둘 생각이었다.

"세르네, 네가 앞으로 화이트의 탈출 계획을 전담해 줘."

"시몬은요?"

"아마 당분간은 군단의 훈련에 바쁠 것 같아."

시몬이 피어의 분신을 내려다보았다.

"피어는 지금 바로 데스랜드, 프로스트 필드, 비명의 정글, 벌레 무덤 등 대륙 각지에 흩어져 있는 군단의 병력을 모아주세요."

[그렇게 하지!]

시몬이 코트를 펄럭이며 어깨에 걸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짜 총력전을 벌이겠습니다."

* * *

화이트는 무사히 학교생활에 복귀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시몬을 만난 것까지는 기억나지만, 매그너스가 자신을 조종하던 기억은 없다고.

시몬은 간곡히 화이트를 설득했다.

-판이 커졌어. 이제 우리 힘만으로 연구소에서 화이트를 빼낸 뒤 도망칠 수 있다고 믿는 건 낙관적인 생각이야. 키젠의 몇몇 사람들에게만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받자.

시몬은 쉽지 않은 설득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매그너스가 비밀을 알게 됐다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말하는 화이트는 세르네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동안은 내 생각만 한 것 같아. 네 말대로 하자.

화이트의 허락을 받아낸 시몬은 바로 카쟌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카쟌은 늦게라도 자신에게 말해줘서 고맙다며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알리고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시몬은 기말고사 공부를 하면서, 매그너스와의 결전 준비에 힘을 썼다.

군단의 병력 운용 훈련을 시작하고, 그동안 미루고 있던 에이션트 언데드들의 '게하임' 발현 훈련도 다시 시작했다.

군단기인 '게하임'은 군단장과 에이션트 언데드들이 합을 맞췄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비장의 기술. 매그너스는 십중팔구 5군단 에이션트 언데드 전원의 게하임을 개방했을 테니, 시몬도 따라잡을 필요가 있었다.

현재 불안정하긴 하지만 게하임이 가능한 건 에르제베트와 헤르세바.

에르제베트는 시몬을 지켜야 하는 순간에 한해 특수한 거미줄을 뽑아낼 수 있게 되었다. 헤르세바의 경우는 모래의 세계를 일정 시간 현실에 구현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프린스의 경우는 게하임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지만, '시체폭발'이라는 강력한 한 수가 있다.

남은 건 스컬윙 부대의 대장 아케뮤스와 북신 자이로스, 그리고 어린 라미아다.

그중에서 그나마 가능성이 보이는 건 아케뮤스였다. 시몬은 아케뮤스를 불러냈다.

[부르셨습니까, 도련님.]

"네."

어두운 달밤, 두 사람은 금지된 숲 절벽 위에 걸터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케뮤스와는 제대로 느긋하게 대화해 본 적이 없었다. 공통된 관심사도 거의 없었지만, 그나마 한 가지 통일된 화제라면 역시 '리처드'에 관해서다.

[전 주군이셨던 리처드 님은 대단한 네크로맨서였습니다. 그분이 저를 귀속시키려 했을 때는 긴 싸움을 벌이기도 했죠.]

"진짜 결투를 벌인 거예요?"

[예, 다른 에이션트 언데드들은 모두 뒤로 무르고, 본인이 직접 나와서 상대해 주셨습니다.]

리처드의 이야기가 나오면 그제야 과묵한 아케뮤스의 입이 열렸다. 시몬도 웃는 얼굴로 맞장구쳤다.

그렇게 밤이 깊어갈 즈음.

"웃차."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뭐가 문제인지는 알고 있었거든요. 아케뮤스의 게하임이 발현되지 않는 이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도련님.]

"네, 바로 그거예요."

시몬이 본인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케뮤스는 나를 아직도 '도련님'이라고 부르잖아요? 제 아버지는 '주군'으로 부르면서요."

[.......]

게하임은 에이션트 언데드들이 군단장을 따르는 감정과 이유에 연관이 있다.

그리고 아케뮤스의 핵심 가치는 충심(忠心).

하지만 그 충심이 너무 강한 나머지, 아케뮤스는 7군단이 한번 해체됐다가 결성된 지금에서도 시몬이 아니라 리처드에게 충심을 품고 있었다.

지금 그가 자신에게 복종하는 이유는 리처드의 아들이기 때문이지, 마음 깊이 자신을 본인의 주인으로 인정한 게 아니라고 시몬은 생각했다.

시몬의 말을 들은 아케뮤스는 즉각 한쪽 무릎을 꿇고 부복했다.

[소신은 그저 도련님을......!]

"아케뮤스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에요. 이건 마음의 문제니까요. 군단장으로서 애매한 모습만 보여준 내 책임도 있고. 그러니까 나도 아버지랑 똑같이 하려고요."

시몬이 뒤를 돌아보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다른 에이션트 언데드들을 쓰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서 내 힘만으로 아케뮤스를 꺾겠습니다."

[.......]

아케뮤스가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하늘에는 에르제베트의 거미줄이 펼쳐져 있었다. 주위의 기척을 차단하는 결계였다.

[처음부터 이러실 심산이셨군요.]

아케뮤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도련님의 생각이 정 그러하시다면 소신 아케뮤스.]

촤아악-!

촤아아아악-!

여섯 쌍의 검은 날개가 펼쳐졌다.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도련님에게 잠시 칼끝을 겨누는 불충을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 * *

전투는 장장 여섯 시간이 걸렸다.

어둠이 서서히 걷어질 무렵.

[허억. 후욱.]

아케뮤스는 검은 칠흑을 피처럼 뚝뚝 떨어뜨리며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날개의 절반은 불탄 상태였다. 그리고.

고고고고고고-!

시몬의 위로는 은하수를 두른 듯한 거대한 본 드래곤이 묘소에서 상반신을 일으킨 채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시몬의 옆에는 깃발을 움켜쥐고 서 있는 데스나이트가 그를 호위하듯 서 있었다.

"이길 기회는 몇 번 있었잖아요, 아케뮤스."

시몬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행동을 중간에 멈춘 거죠? 아직 제가 못 미더운가요?"

[......당치 않습니다. 소신은 최선을 다했고 도련님은 틀림없이 강해지셨습니다. 중간에 멈춘 것은 도련님의 성장에 감격하여 흔들린 것일 뿐.]

아케뮤스가 감복한 듯 말하며 무릎을 꿇고 부복했다.

[소신 아케뮤스.]

이내 이마를 바닥에 댔다.

그의 몸에서 칠흑이 점점 더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영원한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도련님, 아니.]

그의 눈빛이 검푸른색으로 타올랐다.

[나의 하나뿐인 주군이여.]

시몬은 자신의 팔에 찌릿한 뭔가가 느껴졌다.

이내 눈을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

"이번 5군단과의 전쟁, 아케뮤스와 스컬윙 부대가 선두에 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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