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34화
하얀 대검이 빛을 뿌렸다.
촤아아아악!
촤아아아아아아악!
5군단의 언데드 무리가 뭉텅이로 썰려 나가고, 그 사이로 시몬이 섬광처럼 돌파했다. 머리에 젖은 땀방울이 허공으로 튀어 올라 붉은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후욱!"
공중에서 날뛰던 시몬이 아래를 응시했다. 개미 떼처럼 바글거리는 언데드 무리가 보인다.
'전부 쓰러트리고 갈 필요는 없어. 매그너스를 잡는 게 우선이야.'
이곳은 적의 본진이고, 결사의 연구소와 연결된 공간이다.
시간을 길게 끌어서 좋을 게 없다.
해답은 무조건 속전속결. 최대한 빠르게 매그너스를 잡고 5군단을 손에 넣은 뒤, 키젠 측에서 준비해 둔 포탈을 타고 로크섬으로 돌아가야 했다.
바닥에 내려온 시몬이 언데드들을 베어나가며 매그너스를 찾고 있는 그때.
[대담하네. 혼자서 너무 깊게 들어온 것 같지 않아?]
'!'
위험을 감지한 시몬이 즉시 돌진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하늘에서 날벼락이 연달아 떨어졌다.
'물?'
전격계가 아니었다. 형상은 벼락이었지만 지면에 부딪히는 순간 터져 나오는 건 틀림없는 물방울.
시몬은 진득한 살기가 느껴지는 방향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스스스 바닥이 끌리는 소리와 함께 반인반사의 에이션트 언데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5군단의 라미아!'
[반가워 7군단장.]
그녀가 손을 모았다.
[직접 맞서 싸워보는 건 처음이지, 아마.]
콰르르르르릉!
콰르르르르르르르릉!
별다른 마법진 같은 것도 없이, 허공에서 즉각 검은 물벼락이 수십 갈래로 쏟아졌다.
시몬은 벼락을 베면서 앞으로 나가려 했지만, 역으로 벼락의 화력에 뒤로 밀려났다.
'미친 듯이 강해!'
간신히 벼락을 베어낸 시몬의 팔이 파르르 떨렸다.
'이게 5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인가?'
에이션트 언데드의 숫자는 이쪽이 더 많다. 아버지인 리처드의 7군단을 온전히 비교적 물려받은 덕분이다.
하지만 긴 시간 홀로 자수성가하며 세력을 쌓아 올린 매그너스 쪽이, 당장은 에이션트 언데드의 격이 더 높은 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까? 제7군단장.]
라미아가 쏟아붓는 벼락의 양을 두 배로 늘렸다. 내리꽂히고 솟구치는 물벼락을 막느라 시몬의 대검이 헛돌고, 바로 그 빈틈을 노린 라미아가 직접 돌진했다.
-삐유웅!
바로 그 순간, 시몬의 앞으로 작은 몸집의 언데드가 폴짝 뛰어올랐다.
"라미아!"
어린 라미아였다.
그녀가 즉각 물벼락을 정면에 쏟아부었고 원본인 뱀공주 라미아도 돌진을 멈추고 물벼락을 보내 그 공격을 상쇄해야만 했다.
라미아가 격분한 얼굴로 외쳤다.
[감히 클론 따위가!]
결사는 매그너스의 호문쿨루스에 더해, 언데드 클론을 개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라미아의 호문쿨루스도 연구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 모든 실험체가 폐기되었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건 어린 라미아 하나뿐이었다.
결사에서는 라미아가 원래 태어났던 장소인 섬으로 보내 다른 데드나가들을 다스리게 하면서 훈련시키려 했지만, 마침 매그너스의 뒤를 쫓고 있던 시몬의 7군단이 나타나 그녀를 데려가 버리는 바람에 모든 계획이 어그러진 것이다.
그리고.
[너는 인간의 욕망이 아니었으면 태어나지도 않았을 클론이다!]
라미아 본인은 이 계획에 누구보다 반대하던 자였다.
[데드나가의 여왕, 매그너스님 곁에 있을 라미아는 나는 나 하나뿐이다!]
라미아가 두 팔을 들며 칠흑을 일으켰고, 어린 라미아도 공중으로 폴짝 뛰어들며 칠흑을 끌어모았다.
[내 손으로 마지막 잔재까지 없애겠다!]
-삐유웅!
콰르르르릉!
두 에이션트 언데드가 뿜어낸 물벼락들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사방으로 물방울이 튀어오르며 귀가 먹먹한 굉음이 터져 나온다.
그러니 힘의 차이는 명백했다. 뱀공주 라미아의 검은 물벼락이 어린 라미아의 물벼락을 찢어발기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른스럽지 못하네요.]
그때 하늘에서 거미줄이 내려왔다. 전진하던 검은 물벼락들이 검에 베인 것처럼 형태가 무너졌다.
시몬이 즉시 고개를 돌려보니, 긴 머리를 휘날리며 두 손을 교차하고 있는 분홍색 머리카락의 여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에르제!"
[여긴 소녀가 상대하겠사와요, 군단장님!]
-삐융!
어린 라미아도 맡겨달라는 듯 에르제베트의 어깨 위로 폴짝 올라갔다.
시몬은 속으로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1:1이라면 게하임을 숙달한 뱀공주를 상대로 고전하겠지만, 저 둘이 함께 싸운다면 믿을 만했다.
"부탁할게!"
시몬이 다시금 매그너스를 찾으러 달렸다. 뱀공주 라미아가 시몬을 막으려 했지만, 즉각 에르제베트와 어린 라미아의 합공이 쏟아졌다.
[이것들이 감히!]
방해받은 뱀공주 라미아가 격분하며 검은 물벼락을 폭발적으로 쏘아보냈다. 어린 라미아가 푸른 물벼락으로 그것을 막는 사이, 에르제베트는 허공에 펼쳐둔 거미줄을 잡아당겨 뱀공주 라미라의 등 뒤를 노렸다.
2:1의 우위를 적극 이용하는 전술. 그러나.
뚜두둑.
뱀공주의 등에 거미줄이 닿기 직전, 갑자기 거미줄이 돌처럼 굳어지며 멈췄다. 이내 후두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라미아를 중심으로 일정 반경 안의 바닥이 벽까지 모조리 다 돌처럼 변해 있었다.
[게하임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반쪽짜리들이!]
뱀공주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사라져라!]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하늘에서 내려온 스무 갈래의 물벼락이 에르제베트에게 떨어졌다. 벼락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그녀가 바닥에 처박히며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올랐다.
-삐융!
어린 라미아가 다급한 울음소리를 냈다.
방해꾼들을 무력화한 뱀공주가 다시금 멀어져 가는 시몬을 조준하고 오른팔을 뻗는 순간.
서겅!
바로 그 오른팔이 날카로운 단면을 보이며 공중으로 치솟았다.
'?!'
뱀공주가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물벼락이 직격한 자리에서, 인간의 모습이 아닌 거미의 하반신을 드러낸 에르제베트가 검은피를 철철 흘리며 웃고 있었다.
'어째서 석화가 걸리지 않았지?'
그녀가 자신의 팔을 벤 거미줄을 보았다. 보통의 거미줄과는 달리 크기와 빛깔 모든 게 달랐다.
보통의 거미줄이 아니었다.
이건 게하임으로 강화된 거미줄이었다.
[7군단에 들어온 뒤로는 한순간도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는데.]
거대한 거미의 형상을 이루며 눈동자가 여러 개로 늘어난 에르제베트가 대량의 칠흑을 뿜어냈다.
[대가를 치르게 해드리겠사와요!]
-삐유웅!
뱀공주가 굳은 얼굴로 자세를 고쳐잡았다.
7군단장을 쫓을 때가 아니었다.
눈앞의 상대에 집중하지 않으면, 당하는 건 이쪽이리라.
* * *
그늘성의 공터에서는 7군단과 5군단의 언데드들이 부딪히며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5군단의 병력을 통솔하는 지휘관은 바로 백귀 부대의 대장인 '좀비집사'였다.
[제3부대 우익은 측면으로 이동. 그대로 전진합니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이!
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우아한 집사복에 외눈 안경을 착용한 그는, 지휘를 내리는 동시에 최전방에서 적을 상대하기까지 했다.
그가 손끝을 휘두를 때마다 7군단의 언데드들이 찢겨 나가고 있었지만, 끼고 있는 흰 장갑만 붉게 변할 뿐. 집사복에는 한 점의 피나 오물도 닿지 않았다.
[여기는 알라제.]
그때 좀비집사의 귀에 새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제7군단장. 후면으로 강행 돌파 시도.]
알라제의 보고를 들은 좀비집사가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서 뱀공주 라미아가 지키고 있던 라인이 뚫리고, 7군단장으로 추정되는 인간이 무서운 속도로 진형을 돌파하고 있었다.
[내가 가서 막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좀비집사의 몸이 일순 거인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좀비집사의 게하임. 순식간에 10m가 넘어가는 거구로 변한 좀비집사가 몸을 돌려 시몬을 쫓았다.
보폭이 컸기에 시몬을 쫓아가는 건 순식간일 것 같았으나.
[이봐!]
거대해진 좀비집사의 얼굴 앞으로 작은 점 하나가 나타났다. 그 점 하나가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어딜 가려고!]
쩌어어어어어어엉!
그대로 히트.
작은 주먹에 부딪힌 좀비집사가, 휘청하며 균형을 잃더니 바닥에 나자빠졌다. 흙먼지가 폭발하듯 피어오르며 주변에 있던 5군단 언데드들이 그대로 짓눌려 압사했다.
[하하하하하하! 7군단의 히든 카드 등장이요!]
머리에 쓴 왕관을 한 손으로 붙잡은 채 웃고 있는 건 좀비 부대의 대장, 프린스였다.
그가 팔을 척 뻗었다.
[같은 좀비 베이스 에이션트 언데드끼리 붙어보자고!]
그러나 별 충격이 없는 듯, 좀비집사가 다시금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입니다. 7군단의 프린스.]
[오, 날 기억하고 있어?]
쐐액!
좀비집사의 오른팔이 잔상을 일으키며 뻗어 나가더니, 프린스가 반응할 틈도 없이 몸통을 관통했다. 뿌직! 하는 소리와 함께 프린스의 몸이 축 늘어져 일반 좀비로 돌아왔다.
[물론입니다. 펜타모니엄에서 한번 뵀었지요.]
쿠르르릉!
뒤이어 조금 멀리서 검은 번개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내 7군단의 좀비 무리들 중에서 멀쩡한 모습의 프린스가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그리고 아홉 개의 목숨을 가지셨다고 했지요.]
[잘 기억하네!]
프린스가 왕관을 붙잡고 칠흑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냐!]
끼에에에에에에에에!
케게게게게게게게!
왕관의 힘에 좀비들이 반응했다.
주위에 있는 좀비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프린스를 머리 위에 태우고는, 점점 탑처럼 솟구치기 시작했다. 벌떼처럼 새까만 좀비들 위에 올라탄 프린스가 두 팔을 벌리며 하하하! 웃어댔다.
[자 어떠냐! 이제 키가 비슷한 것 같지?]
좀비집사는 한심하단 표정으로 좀비들의 탑에 주먹을 휘둘렀다. 굉음과 함께 도미노 무너지듯 좀비들의 탑이 무너졌다.
그러나.
-키이이이이이이!
좀비들이 무너진 잔해처럼 흩어져 좀비집사의 몸에 들러붙었다. 그들이 모기처럼 들러붙어 할퀴고 물어뜯으며 옷을 찢고 상처를 내자 좀비집사가 인상을 확 구겼다.
[7군단의 전투에는 품격이라곤 없는 겁니까!]
쿠르릉!
그리고 좀비집사를 공격하는 수많은 좀비들 중 하나에 번개가 떨어졌다.
[전투에 품격이 어딨어? 이기면 그만이야!]
프린스가 다시 공중으로 뛰어올라 좀비집사의 뒤통수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고개가 옆으로 꺾일 정도로 제대로 얻어맞은 좀비집사가 다시금 바닥에 쓰러졌다.
[역겨운......!]
좀비집사가 주위를 빠르게 둘러보았다. 프린스를 찾아 죽이기 위해 재빨리 움직이려 했으나, 어느 순간 그의 얼굴에 검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꽈드드드드드득!
[나이스! 아케뮤스!]
아케뮤스가 좀비집사의 안면을 붙잡은 채 순간적으로 저 무거운 거구를 들어 올리더니 5군단 쪽으로 던져 버렸다.
좀비집사가 바닥을 구를 때마다 무수한 5군단의 언데드들이 짓눌려 압사당했다.
[주군을 방해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아케뮤스가 선언하듯 말했다. 가까스로 움직임을 멈춘 좀비집사가 고개를 들었다.
[결국 당신까지 왔군요, 아케뮤스. 어쩔 수 없죠.]
쿠구구구구구구구!
좀비집사의 몸에 방대한 양의 칠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살점 일부가 촛농처럼 하얗게 녹아내리더니 바닥에 떨어졌다.
이내 하얗게 물든 바닥에서 강력한 정예 좀비 언데드, '백귀'들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들 모두 날개가 있었으며, 그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는 매그너스님의 야망에 감명하여 그를 섬기기로 했습니다. 그분이 가까운 곳에 계신 이상, 내 힘은 무한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가 외눈 안경을 고쳐 쓰며 아케뮤스를 보았다.
[아케뮤스. 당신도 강력한 우리 군단에 들어왔으면 좋았을 텐데, 왜 7군단장을 섬기는 데 집착하는 겁니까? 심지어 옛 주인도 아닌 자를.]
[집착이 아니다.]
펄럭!
그의 날개가 펼쳐졌다.
[충정은 꺾이지 않고 내려오는 지고한 마음 그 자체. 이유와 의문은 필요없다! 이유를 묻는 순간 충정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그의 몸이 비틀어지더니 여섯 쌍이 아닌, 열두 쌍의 날개가 펼쳐졌다. 이내 그의 몸을 중심으로 칠흑이 퍼져 나갔다.
일종의 광범위 파장형 저주였다. 좀비집사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게하임이라고?'
사라라락!
사라락!
공중으로 날아오르던 '백귀'들의 몸뚱이에 아케뮤스와 같은 검은 깃털이 퍽! 퍽! 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그들이 일제히 힘이 빠진 듯 지상으로 고꾸라졌다.
대규모 억제 저주.
물론 범위에 들어온 7군단에는 효과가 없었다. 오로지 5군단에게만 저주가 걸리고 있었다.
[나는 그 무엇도 필요없다! 진정으로 충정을 바칠 주군의 존재만으로 나의 존재는 성립된다!]
[그렇군요. 더 이상 이야기는 통하지 않겠죠.]
터벅. 터벅.
프린스가 씩 웃으며 주먹을 빙빙 돌리고 있었다.
[아케뮤스! 저거 없애지 말고 코어 멀쩡히 생포해서 시몬한테 갖다줘야 하는 건 알지? 아케뮤스!]
[물론!]
두 에이션트 언데드가 동시에 칠흑을 일으키며 좀비집사를 향해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