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이 되었으니 팔려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물로 쓰일 줄은 몰랐다. “버림받은 겁니까?” 텅 빈 접견실에 홀로 들어선 비앙카를 기다린 건 절망이 아니라, 질리언 발로크. 테르미나의 드래곤이라 불리는 젊고 아름다운 공작이었다. 무력, 재력, 그리고 권력까지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게도 눌리지 않는다는. 한없이 아득해 인간 같지 않은 남자. “발로크 공작.” 저를 찢어 죽일 남자이자, 제 아비인 황제의 손에 선대 공작을 잃은 가여운 공작. 비앙카가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자 그가 웃었다. 원수의 딸인 제게 향한 미소 같지 않게 달콤하게. 그리고 천천히 비앙카를 불렀다.“부인.” “부인?” 난 제물인데. 분노한 테르미나의 드래곤에게 바쳐진, 황실의 제물. “발로크 공작?” “공작이라는 말은 너무 거리감이 느껴지네요. 질리언이라고 불러주세요, 부인.” “그…….” “남편이나 여보도 좋아요.” 빙긋 웃는 남자의 미소가 미치게 달았다. 주제도 모르고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