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난 도망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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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난 도망칠 거야
2023.03.04.
공표 전까지 기밀이라던 라일리의 결혼 소식은 에아달린 남작가의 사용인들에게 발 빠르게 번져나갔다.
“들었어? 큰 아가씨께서 에르메인츠 백작과 결혼하신다던데?”
“그 정신병자 늙은이?”
“그래, 그 어린 여자에 미쳐버린 노망난 늙은 놈!”
“한땐 영웅 소리 들으면서 모두의 환호를 받던 자가 말로가 어찌 그 모양인지. 근데 아무리 에르메인츠 백작이 노망나서 제정신이 아니어도, 그래도 가문의 위세가 아직도 대단한데 변방 소영주의 양딸과 결혼이라니. 무슨 생각일까?”
“바보야, 오히려 변방 소영주 양딸이라 가능한 결혼이지. 아무리 에르메인츠 백작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게 문제 많고 흠이 많은 사람한테 어느 귀족가에서 딸을 시집을 보내려 하겠어?”
“그 정도야?”
“변방인 이곳까지 악평이 자자한데, 수도에서는 오죽할까? 아들분이면 몰라, 누가 에르메인츠 백작에게 새파랗게 젊은 여식을 시집보내고 싶어 하겠어?”
“하긴, 그 나이에 핏덩이들만 찾는 것부터가 제정신이 아니지, 으으! 진짜 징그러워.”
사용인들은 일부러 큰 소리로 떠드는 듯했다. 방문을 닫고 있음에도 대화 내용이 다 들렸다. 아마 일부러 저러는 것이 분명했다.
라일리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아예 남의 일이 아니다 보니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 소문이 있던데. 그냥 젊은 여자를 찾는 게 아니라, 경험이 없는 어린 여성들만 찾는다는 거.”
“우웩, 진짜?”
“그렇다니까. 성도착증 환자라고. 그냥 단순 노망이 아니래. 그런 성적 취향은 젊었을 때부터 유명했다던데.”
“그럼 버려졌다던 전처들도 전부…….”
“아무튼 소문이 흉흉해. 멀쩡히 살아서 쫓겨나온 사람들도 전부 정신병자잖아. 나머지 둘은 생사도 묘연하고.”
“그럼 둘째 아가씨는…….”
“전처들이랑 별반 다를 거 없겠지. 근데 모두 예상했잖아? 아가씨께서 남작님의 진짜 가족도 아니고 데리고 있다가 적당한 가문에 팔아치울 거! 여기 사람 중 둘째 아가씨 본인만 몰랐을걸?”
“불쌍해.”
“불쌍하긴 뭘? 부모도 없는 고아 거둬들여서 나름 편하게 살았잖아. 가문을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단 한 번도, 단 한 순간도 편하게 산 적 없다.
가문을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평생 눈치를 받으며 살았다. 식사는 항상 혼자. 겸상은 꿈도 못 꿀 일이었으며 메뉴도 달랐다.
저들이 삼시 세끼 호화롭고 풍족한 식사를 즐겼다면, 라일리에게는 하녀들에게 배식이 끝나고 남은 것들이 배급되었다.
양딸을 내놓기 부끄러워 감금시켜놓고선 밖으론 몸이 약해서 밖에 내놓기 조심스럽다는 허무맹랑한 헛소리나 하고 다니는 게 이곳 사람들이었다.
기본적인 교육도 받지 못했다. 동생인 클레어가 아카데미를 다니며 고등 교육을 받을 때도 집에 갇혀 살았다.
게다가 그들은 끊임없이 폭언을 일삼았다. 숙부님, 큰어머님, 클레어뿐만이 아닌 이곳의 사용인들까지도. 벌레보듯 경멸했고, 당연하다는 듯 조롱했다. 그들에게 라일리를 험담하고 조롱하는 문화는 일종의 스포츠였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숙부님께선 언제든 내가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그래서 가둬두고, 억압하고, 통제했던 걸지도 모른다.
적당히 때가 되면 팔아치울 생각을 하면서 끊임없이 세뇌하고 복종시켰던 걸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경험이 없는 여성에게만 집착한다는 말이 정말 사실인 걸까? 그런 거라면, 도대체 에르메인츠 백작은 얼마나 끔찍하고 역겨운 남자란 말인가.
역겨움에 몸서리치고 있는 그때였다.
쿵, 쿵, 쿵 요란한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벌컥 문이 열렸다.
“라일리!”
호적상으로는 자매이나 실질적으론 사촌 동생인 클레어였다.
“너도 리셉션에 참석한다는 게 사실이야?”
라일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클레어가 기가 막힌다는 듯 라일리를 쏘아보며 삿대질했다.
“네가 뭔 자격으로 리셉션에 가? 진짜 우리 가족도 아닌 네가 뭔데?”
“……숙부님께서 결정하신 부분이야. 내 뜻과는 상관없어.”
“네가 리셉션에 안 간다고 했어야지, 네가 뭔데 우리 가족이랑 같이 참석해? 거기가 어떤 자리인지 알아?”
“…….”
“뭐 하나 제대로 배운 것도 없는 네가 같이 가봤자 우리 가문 망신밖에 더 시키겠어? 다른 사람들한테 널 대체 뭐라 소개해야 하냔 말이야. 생각만 해도 끔찍해. 덜떨어지는 언니를 소개해야 하는 내 난감한 상황이 안쓰럽지도 않아? 당장 리셉션 참석 안 하겠다고 아버지께 말해.”
“호라이즌의 마탑주께서 내 앞으로도 초대장을 보냈어. 숙부님께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야.”
“아! 그걸 누가 몰라? 쓸데없이 고분고분하게 굴지 말고 이럴 때 반항이라도 좀 하란 말이야. 넌 자기 주관도 없니? 하란 대로 다 하게? 네가 그렇게 멍청하게 구니까 아랫것들에게도 무시당하는 거야. 당장 가서 아버지께 리셉션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해. 난동을 피우든 뭐든 이럴 때 고집 좀 부리라고! 내 화려한 사교계 데뷔를 네까짓 게 망칠 셈이야?”
클레어는 이미 데뷔탕트를 치른 몸이다. 그러나 그녀는 수도의 주요 귀족들이 모이는 이번 리셉션이야말로 자기에게 있어 진정한 데뷔탕트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숙부님의 여식이 아니랄까 봐, 출세욕과 명예욕은 제 아버지를 똑 닮았다.
“라일리, 응? 제발. 진짜 이번 자리는 네가 참석할 자리가 아니라는 거 너도 잘 알잖아. 네 주제를 알아야지.”
“……그럼 네가 숙부님께 말해.”
“미쳤니? 아버지께 그런 걸 청했다가 무슨 잔소리를 들으라고?”
“네 부탁도 안 들어줄 게 뻔한데, 내 부탁이라고 들어줄 거라 생각해?”
“나랑 너랑 같아? 네가 아버지께 혼나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이야? 넌 혼나는 거 익숙하잖아.”
라일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대꾸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말도 안 되는 억지와 화풀이에 대응해 봤자, 그보다 더한 억지와 화풀이가 돌아올 뿐이니까.
“네가 그러니까 그 모양 그 꼴인 거야. 멍청하게 착한 척만 하면서 하라면 하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구니까 발전이 없지, 쯧. 그런다고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우리 가족이 될 수 있을 거 같냐고. 넌 아무리 발버둥 쳐도 거기까지야. 쓸데없는 짓이라고.”
클레어의 말에 라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클레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클레어는 당황하며 쏘아붙였다.
“뭐, 뭘 쳐다봐? 내가 틀린 말 했어?”
“……아니, 네 말이 다 맞아.”
“……뭐? 하, 네 멍청함을 이제야 깨달은 거야?”
“그래, 네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여태 얼마나 멍청하게 살았는지 잘 알겠어.”
담담하게 눈을 마주 해오는 라일리의 모습에 클레어는 당황하며 뒤로 물러섰다. 항상 주눅이 든 채 고개를 숙이고 눈을 피하던 라일리가 똑바로 눈을 마주 해오는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흔들림 없는 올곧은 눈. 뭔가 결의를 담은 듯한 눈동자.
언제나 생기 없이 희미하고 탁하던 동태 눈깔이 아니다, 선명하고 불타오르는 눈빛이었다.
갑작스러운 모습에 당황스러웠던 클레어는 이내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더 세게 라일리를 몰아붙였다.
“네가 멍청한 걸 깨달았으면, 네 발로 직접 아버지께 가서 리셉션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말해. 네 주장을 확실히 말하란 말이야.”
“싫어.”
“……뭐?”
“네 말대로 나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거야. 더는 남에게 휘둘리지 않을 거야.”
“…….”
“난 리셉션에 가고 싶어. 너도 알다시피 난 대외적인 활동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잖아? 집에서만 갇혀 지내는 삶은 답답해, 나도 이제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싶어.”
“어머, 얘 말하는 거봐라? 우리 가족이 너를 감금했니? 네가 말하는 것만 보면 오갈 데 없는 불쌍한 고아 거둬준 우리 가족이 천하의 악질이 된 것만 같다?”
“아예 작정하고 감옥에 가둬둔 건 아니지만, 많은 제약을 둔 것도 사실이지. 외출도 허락 없인 못했고, 허락받은 외출마저도 감시가 따라붙었고. 가는 곳마다 보고해야 했고, 외출 시간은 한 시간을 넘기지 못했고. 종일 방에만 가둬뒀으니.”
“웃기는구나, 그게 다 배움이 모자란 네가 가문의 이름에 먹칠하고 다닐까 봐 그런 거잖아?”
“……그렇게 배움이 모자란 내가 걱정됐으면 나를 통제할 시간에, 교육에 전념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이게 어디서 자꾸 말대꾸야? 너 따위에게 쓸 교육비가 어디 있어? 너를 교육시키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야. 산에만 처박혀 살던 산지기 딸에게 교육? 돈 낭비일 뿐이야.”
라일리는 고개를 숙였다.
클레어의 말에 자신 있게 대꾸할 수가 없었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자란 산지기의 딸.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는 줄곧 산속에서 지냈다. 남들 다 하는 기초교육 같은 것도 배운 적이 없다.
반면 클레어는 뭐든 곧잘 했다. 출세에 욕심이 많은 그녀는 배움에도 욕심이 많았고 학구열이 매우 투철했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는 주눅 들고 쪼그라질 수밖에 없었다.
“……나가줘, 더 할 말 없어.”
“야, 리셉션 안 간다고 말하라니까!”
“난 무슨 일이 있어도 갈 거야.”
“너 미쳤어?”
“그래, 미쳤어.”
“야!”
클레어가 씩씩거리는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사용인 중 하나가 들어왔다.
“저, 클레어 아가씨. 맞춤 제작한 드레스가 완성되었다고 해요.”
“그래? 알았어.”
클레어는 화를 누그러트린 후 라일리를 향해 비웃었다.
“너 호라이즌에서 열리는 리셉션은 정·재계의 유명 인사들이 모두 한곳에 모이는 자리야. 입고 갈 옷은 있니? 분수를 몰라도 유분수지. 그런 곳에 네가 가봤자 촌티밖에 더 나겠어? 뭐, 아무튼 잘 생각해봐. 난 언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니까!”
클레어는 키득거리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에 지친 듯 바닥에 주저앉고 실없이 웃었다.
“……그들에게 촌티 나는 사람인 건 너나, 나나 별반 다르지 않을 거야, 클레어.”
제아무리 예쁘게 꾸미고 간다 한들, 생활 수준이나 사회적 권위부터 차이 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빛이 날 수 있을까?
그녀는 자신이 고위 귀족이라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기껏해야 변방의 작은 영지를 대리 운영 중인 소영주의 딸일 뿐인데.
‘……난 도망칠 거야, 그때.’
라일리에게 호라이즌의 리셉션이란 에아달린의 이름에서 도망칠 유일한 기회였다.
숙부님의 통제와 제약이 느슨해지는 순간, 감시가 붙지 않는 그 순간. 유일하게 자유로운 움직임이 허락되는 그 순간.
그때가 아니면 기회가 없었다.
‘난 평생을 노력해도 이 집안의 구성원에 불과할 뿐, 진짜 가족이 될 순 없어. 그렇다면 필사적으로 이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할 이유도 없지. 더는 눈치 보면서, 사랑받으려 애쓰면서 살지 않을 거야.’
새로 시작할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아무것도 없이 홀로 남았던 그때처럼.
***
마탑 ‘호라이즌’은 왕국을 수호하는 주요 4대 마탑 중 하나로, 4대 마탑 중 역사는 가장 짧으나 창설 이래 꾸준히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기어코 업계 1위 자리를 다투는 굵직한 대마탑 중 하나였다.
모든 마법사가 입사 1순위로 꼽을 정도로 전망이 밝고, 기반이 탄탄한 호라이즌은 미래가 가장 기대되는 마탑 1위에 꼽히며, 승승장구로 날아오르던 중 갑작스러운 전 마탑주 ‘융’의 사망으로 제동이 걸렸다.
게다가 자신의 제자 ‘기브넨 리안스터’를 차기 마탑주로 지명한다는 유서가 발견됨에 따라 왕국이 발칵 뒤집혔다. 그의 나이가 마탑주 직을 수행하기에는 너무 어린 탓이었다.
융의 수제자이자 직계 후계자로 이름이 알려진 기브넨 리안스터는 애초에 마법사 가문인 리안스터 가문의 적통이었다.
순수 마법사 혈통 가문 출생에 어렸을 때부터 또래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실력을 보이는 데다 수려한 외모까지 가져 일찍이 유명세를 떨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아직 새파랗게 어린 그가 마탑주라는 중한 직책을 수행하는 것에 우려를 보였다.
그의 나이 고작 스물넷. 마탑이 창설된 이래 ‘가장 젊고 어린 마탑주’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호라이즌의 마탑주가 된 기브넨은 곧바로 자신의 마탑주 취임을 축하하는 리셉션을 여는 것으로 공식 행보를 시작했다.
세간에서는 이 리셉션, 정확히 말하면 이 리셉션에 초대받은 주요 인사들에 관심을 집중했다.
소수의 주요 인사들만을 초대해 벌이는 파티. 초대받은 것만으로도 황실 행사에 초대받은 것 못지않은 영예였다.
그런 자리에 일개 변방 영지의 소영주로 있는 남작 일가가 초대받게 된 건 분명 예외적이었다.
“마스터, 라이언 에아달린 남작께서 참석 확정 의사를 전달하셨습니다.”
“그렇군, 수고했어.”
새로 취임하게 된 젊은 마탑주의 보좌관직을 수행하던 삭 벤돔은 리셉션 초대 명부를 살피던 중 의문을 가졌다.
익숙하지 않고 아주 생소한 이름이 목록에 떡하니 올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라이언 에아달린. 뭔가, 이 생소한 이름, 생소한 가문은?
“그런데 마스터. 에아달린 남작 일가를 초대하시는 연유가 뭡니까? 따로 일면식이 있는 사이는 아닌 것으로 아는데…… 게다가 그 자식들까지 초대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일면식은 없는 사이지만, 그들은 이번 내 리셉션에서 가장 중요한 귀빈이야.”
“뭔가 남모를 뜻이 있겠지만……저는 조금 우려됩니다. 마탑주 취임 기념행사라고는 하나, 대대적으로 호라이즌이 주최하는 행사는 황실의 행사와 그 규모나 의미가 맞먹을 정도이고, 왕국을 이끄는 주요 인사들만 참석하는 것이 관례로 자리 잡은 마당에 한미한 남작 일가를 초대하는 건 겉으로 보기에 그다지 좋은 그림은 아닙니다.”
안 그래도 나이가 어린 이가 마탑주 자리에 올랐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특히 외부인들이 그랬다.
마탑 내에서야 그의 실무적인 능력과 천재적인 재능을 모르는 자가 없기에 크게 반발이 나오지 않았지만, 마탑에 투자하는 재계 쪽 인사들과 마법사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진 보수파 귀족들이 유독 목소리를 크게 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책잡힐 상황은 만들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렇게 치면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가 마탑주 자리에 앉는 건 어디 좋은 그림이던가.”
담담한 기브넨의 말에 삭은 기겁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제 말뜻은 그런 게 아닙니다!”
“알아.”
“…….”
“대외적인 시선은 신경 쓸 필요 없어. 어차피 어디 출신인지도 모를 한미한 남작에게 관심 둘 이는 거의 없을 테니까.”
“혹 저에게도 말 못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까?”
기브넨은 깃펜을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기브넨, 만에 하나 내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면 너는 즉시 라이스턴의 여식을 찾아 호라이즌으로 데리고 와줬으면 한다. 이 일은 극비리에 진행하도록 해, 그 누구도 모르게. 이는 너와 나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니 신중하게 움직이도록 해라.」
“……스승께서 떠넘긴 귀찮은 일이라 해두지.”
전대 마탑주의 유언인가?
삭은 여전히 의문이었지만 일단 말을 아끼기로 했다.
“그나저나 에르메인츠 백작은 어떻게 되었지?”
“아, 에르메인츠 백작께사도 참석 확정 의사를 보내셨습니다.”
“예상대로군. 내 속을 뒤집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늙은이인데 신이 났겠어. 낄 자리 안 낄 자리 정도는 구분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시종일관 무표정하던 기브넨은 에르메인츠 백작의 존재 자체가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짧게 찼다.
그러다 뭔가 떠올랐다는 듯 삭을 향해 명령했다.
“말하는 걸 깜빡했군. 리셉션이 끝나면 곧바로 후견인을 들일 생각이야. 곧바로 절차를 밟을 수 있게 관련 서류들을 제대로 준비해둬.”
“후견인이요? 갑자기 무슨 후견인…….”
“문제 있나?”
“문제랄 것까진 없지만…… 혹 벌써 제자를 두시려는 겁니까?”
마법사들이 후견인을 들이는 건 꽤 흔한 일이다.
사제관계를 후견인과 피후견인 관계로 지정하고는 했으니까. 마법사가 후견인을 들인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자신의 후계를 들인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제자를 두기에는…… 마스터께선 아직 너무 젊습니다.”
“꼭 제자만 피후견인으로 들이라는 법 있나?”
“……하면?”
“궁금한 게 참 많네, 넌.”
대답해 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기브넨의 모습에 삭은 머리를 긁적이며 뒤로 물러났다.
‘에아달린 남작은 뭐고, 후견인은 또 뭐인지…….’
천재들은 별나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이 어린 천재 마탑주의 행보는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