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들여보내 줘,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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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들여보내 줘, 누나
2023.03.22.
“레이디 라일리와 결혼을 진행했으면 합니다.”
충격적인 발언에 모두가 귀를 의심했다.
클레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했고, 클레어를 데리고 온 남작 부인은 사색이 되었으며, 라이언은 목석처럼 굳었다. 당사자인 라일리 역시도 놀라서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고개를 들자마자 눈이 마주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고요한 눈동자가 맞닿았다. 청혼을 하는 자의 눈빛이라기에는 조금의 애정도 깃들어 있지 않은 담담한 눈빛이었다.
그래서 더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이곳까지 찾아와 ‘결혼’을 언급하는 건지.
'설마 어젯밤 같이 잠자리를 가진 것 때문에 이러는 거야?'
각자 여러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한 그때, 라이언이 답지 않게 말을 더듬었다.
“대, 대체 왜……?”
라이언의 물음에는 당혹스러움이 역력했다. 그는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미래가 창창한 젊은 마탑주께서!
제국의 황녀를 포함 수많은 상류층의 내로라하는 여식들과 스캔들에 휩싸이는 그가 대체, 왜?
“결혼에 이유가 필요합니까?”
그럼 이유가 필요하지 안 필요한가? 결혼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그냥, 하고 싶습니다.”
단순명료한 대답에 라이언은 절로 일그러지는 안면근육을 간신히 다스렸다.
“저, 죄송합니다만, 라일리는 이미 정혼자가…….”
“에르메인츠 백작과 혼사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제가 보기에는 본인이 원하는 결혼이 아닌 것 같아서 말입니다. 게다가 파혼 얘기도 도는 것 같던데.”
“아, 아닙니다! 무슨 그런…….”
“본인 생각은 어떻습니까?”
기브넨은 발언권을 라일리에게로 넘겼다.
라일리는 그의 심중을 파악하고자 하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고민에 빠졌다.
기브넨 리안스터와 에르메인츠 백작. 둘 중 한 명과 결혼해야 한다면 사실 이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아니, 고민하는 것 자체가 눈앞의 이 남자에게 실례인 일이다.
결혼이라는 게 정해진 사람과 해야 하는 숙명 같은 거라면…… 제아무리 발버둥 쳐도 라이언 에아달린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라면…….
“저는 에르메인츠 백작과 결혼을 원하지 않아요. 숙부님께서 일방적으로 진행한 혼사일 뿐입니다.”
“라일리!”
“본인 말론 그렇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그렇지만 이미 결정된 일입니다…… 게다가 혼사를 무르고 싶다 한들 저따위가 무슨 힘이 있다고 감히 에르메인츠 백작에게…….”
“그럼 제안하겠습니다.”
“……?”
“레이디 라일리를 제게 주신다면 에르메인츠 백작이 제시한 결혼지참금의 두 배, 거기에 더해 일가 모두 제 영지에서 거주할 수 있게 거주지를 내어드리겠습니다.”
파격적인 제안에 라이언이 눈을 휘둥그레 물었다.
“그 말씀은, 저희 일가를 리안스터 공작령의 영지민으로…… 받아주시겠단 말씀이십니까?”
“앞으로 진행하는 사업에 있어서 호라이즌의 지원도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라이언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리안스터 일가의 사돈이 된다는 것은 그토록 갈망하던 명예가 알아서 굴러들어온다는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공작령에 거주지를 내어준다는 것은 공작령의 영지민으로 받아주겠다는 의미도 되며, 이는 곧 수도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는 말도 된다.
게다가 에르메인츠 백작이 제시한 사업지참금의 두 배! 거기다 지속적인 지원까지?
“에르메인츠 백작의 보복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리안스터 가의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을 겁니다.”
라이언은 구미가 당긴다는 듯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다 이내 미심쩍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해서 제 여식과 결혼하고 싶은 것인지…… 게다가 저희는 받은 만큼 돌려줄 처지가 되지 못합니다.”
“남녀가 결혼하는 데 무슨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 겁니까? 좋으니까, 하는 거지.”
“그, 그것이, 아무리 그래도 제안하신 부분이 너무 과분한 터라…….”
“그래서 싫으십니까?”
“크흠, 싫다기보다는…… 일단 당사자의 의견도 들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이언의 말에 라일리는 실소가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의견을 들어봐야겠다고? 어이가 없었다. 여태 어떤 식으로든 입을 틀어막고 뭉개버리지 않았는가?
“레이디 라일리.”
“……예, 리안스터 공.”
“저와 결혼해주시겠습니까?”
라일리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의 이목이 쏠린 것이 느껴졌다. 대답을 바라는 다양한 사람들의 표정. 신기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애써 가다듬으며 초조해하는 클레어와 남작 부인, 난감하다는 듯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애써 딴청을 피우는 라이언. 그리고 불구경이라도 하는 듯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하인들까지.
항상 멸시 어린 시선으로 무시하기만 하던 이들의 얼굴에 피어오른 다양한 감정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이 상황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실감이 났다.
라일리는 기브넨에게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에요, 리안스터 공의 청혼을 받아들일게요.”
“영광입니다, 레이디.”
기브넨이 라일리의 손등에 조심스레 입을 맞췄다.
클레어는 주먹을 쥔 채 부들부들 떨었고, 남작 부인은 그런 딸을 진정시키려 어깨를 감쌌다. 하인들도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이 황당한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는 것 같았다.
“흠, 좋습니다. 라일리도 좋다고 하니…… 그럼 이 건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좋습니다.”
“모두 나가도록, 라일리 너도.”
모두 부리나케 호텔 방을 나갔다.
라일리가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나오자마자 뭔가에 가로막혔다. 라일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클레어였다.
“너 잠깐 나 좀 봐.”
“싫어.”
“미쳤어? 여기서 소란 피워봤자 좋을 게 없으니 따라오란 말이야.”
“나는 여기서 소란을 피울 생각이 없어. 소란 피우고 싶은 건 너겠지. 그러니 난 손해 볼 게 없어. 그리고 내가 왜 널 따라가? 따라가봤자 내게 좋을 게 없는 게 뻔한데 굳이?”
“……너 원래 이렇게 말 잘하는 아이였니? 내가 여태 본 모습은 진짜 네 모습이 아니구나? 여우 같은 것.”
“난 피곤해서 올라가 볼게.”
“기다리라니까!”
무시하고 지나치는 라일리를 클레어가 따라나서며 할 말을 쏟아냈다.
“너 아주 대단하더라. 앙큼한 계집. 그런 몹쓸 짓은 어디서 배웠어?”
“…….”
“어제 마탑주께서 데리고 사라진 여자가 너잖아. 나 다 봤어. 내가 모를 줄 알아? 그래서, 잤어? 너 따위가? 그래, 그렇게 가서 뭔 짓을 한 거야. 대체 뭔 짓을 했길래 마탑주께서 여기 직접 찾아와서 너랑 결혼하겠다고 소란을 피우냐고.”
“소란이라니? 여기서 소란 피우는 건 너밖에 없잖아.”
“야!”
클레어는 라일리가 머무는 방 앞까지 따라왔다. 게다가 무시하고 들어가려는 라일리를 가로막기까지 했다.
씩씩 숨을 헐떡이며 노려보는 클레어는 너무나 투명했다. 라일리는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난 왜 그렇게…… 발버둥 친 걸까.”
“뭐?”
이렇게 한심한 작자들이라니.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뭐가 그렇게 간절해서 클레어와 숙부님과 큰어머님과…… 진짜 가족이 되기를 그렇게 간절하게 원한 걸까.
“하! 야, 너 왜 그렇게 한심하단 듯 쳐다봐?”
“너한테 해줄 말 없으니 돌아가.”
“당장 가서 결혼하지 않겠다고 해.”
“내가 왜?”
“그걸 말이라고 해? 네 주제를 알라는 거야. 너에게 리안스터 가의 안주인 자리가 가당키나 해? 교양과 품격이라곤 쥐뿔도 없는 네가? 게다가 넌 양딸이잖아? 리안스터 가문의 어르신들이 널 마음에 들어 하겠어? 쫓겨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내가 쫓겨나더라도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게.”
“야!”
“말도 안 되는 억지 그만 좀 부려. 내가 언제까지고 네 말을 고분고분 따를 거로 생각해? 제발 당연하다는 듯 말도 안 되는 요구하지 마. 짜증 나니까.”
라일리는 클레어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잠가버렸다.
“가증스러운 것! 그래! 그게 진짜 네 모습이지! 여태 내 앞에서 착한 척 위세 떨던 모습은 다 거짓이고! 가식적인 X!”
밖에서 고함치는 클레어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잠시뿐이었다. 반응해주지 않자 클레어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문에 기대어 서 있던 라일리는 이마를 어루만지며 힘없이 주저앉았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눈치껏 장단을 맞췄지만 이게 맞는 건지, 이게 잘한 건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많은 게 혼란스러웠다.
“그렇지만…… 오히려 잘된 일 아니야? 공께서 뭘 원하는지, 뭘 요구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에르메인츠 백작과 결혼하는 것보다야.”
훨씬 나은 선택지라는데 이견이 없다.
긴장이 풀린 라일리는 몸을 축 늘어트린 채 눈을 감았다. 그러곤 생각했다.
눈을 떴을 때, 부디 이 모든 상황이 꿈이 아니었으면 하고.
***
결혼에 관한 논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기브넨의 옆을 지키고 있던 삭은 끊임없이 떠오르는 의문을 누르고, 누르고, 또 누르는데 신경이 곤두섰다. 아무 상관없는 타인이 보더라도 이번 거래는 기브넨의 손해였다.
게다가 그는 이번 결혼에 관련해 집안 어르신들과 상의도 하지 않았다. 아직 버젓이 살아 있는 아버지를 놔두고 멋대로 저런 결단을 내린 것이 과연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는 일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전혀 손해 볼 것이 없는 결혼을 남작 측에서 질질 끌고 있다는 게 우스웠다.
‘곧 죽을 에르메인츠 백과 달리…… 이놈은 너무 새파랗게 젊어.’
라이언은 고민에 빠졌다.
에르메인츠 백작과 기브넨 리안스터. 단순히 조건만 놓고 비교해본다면 후자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으나, 그 완벽하다는 점…… 새파랗게 젊고 어리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에르메인츠 백작은 어차피 살날이 멀지 않았다. 게다가 그가 라일리와 결혼하려는 이유는 단순히 성적 욕구 충족을 위한 단순명료한 이유였지만, 기브넨 리안스터는?
이 결혼을 하려는 의도를 예측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 더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에르메인츠 백작에게 라일리는 그저 갈아치울 소모품에 불과하지만, 이 남자에게는?
만약 서로 진심으로 마음이 통했다면? 그런 거라면 이 남자에게 라일리는 갈아치울 소모품이 아니라…… 인생을 함께할 동반자가 되는 것.
그렇게 되면 라일리는 엄청난 권력을 쥐게 된다. 그리고 칼을 쥐게 된 라일리가 그 칼을 어디로 겨눌지 너무나 뻔했다.
‘너무 위험한 도박이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리안스터 가문의 안주인이 되기에 라일리는 자질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당사자도 받아들인 내 청혼을 남작께서 반대하겠다는 겁니까?”
“그, 그것이 아니오라…… 심사숙고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결혼이라는 게 하면 말고, 말면 말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지 않습니까.”
“충분히 심사숙고하고 결정한 부분입니다. 제가 왜 당신 일가를 리셉션에 초대했겠습니까?”
기브넨의 의지가 굳건하자, 라이언은 난감하다는 듯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그런 그를 향해 기브넨은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
“에르메인츠 가문보다 리안스터 가문의 위상이 훨씬 더 뛰어난 데다, 다 늙어 죽을 날만 앞둔 노인보다야 내가 나을 것 같은데. 늙은 남자에게 딸을 시집보내는 건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면서 나에게 보내는 건 싫다는 겁니까?”
“그, 그런 뜻이 아닙니다!”
기브넨은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내며 말했다.
“아니면 그녀가 양딸이라 그런가?”
“…….”
“그것도 아니면, 천덕꾸러기 취급받던 그녀가 남작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순간 무엇을 할지 몰라 두려운가?”
라이언이 사색이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브넨은 표정 변화 없이 말을 이어갔다.
“애초에 그대가 혼처를 가릴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기브넨은 라이언의 앞으로 신문을 던졌다. 라일리와 함께 호텔로 들어가는 입체사진이 실려 있는 따끈따끈한 오늘 자 신문을.
“레이디 라일리를 데리고 야반도주했던 망나니 같은 자식이 나라고는 말 안 했나 보네, 그 노인네가.”
라이언이 당황하며 신문을 펼쳤다. 호텔로 들어가는 두 남녀의 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눈앞에 있는 이 남자. 그리고…… 여자는 뒷모습만 찍혔지만 분명 알 수 있었다. 라일리라는 것을.
‘그렇다면 갑자기 파혼하겠다고 노발대발한 게…….’
에르메인츠 백작이 파혼을 결심한 이유는 라일리가 그에게 무례하게 굴고 도망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화가 날대로 잔뜩 난 그는 와서 전후 사정에 대한 아무런 언급 없이 파혼을 통보 후 발길질을 하고 돌아갔다. 무슨 이유인지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라일리로 인해 그녀가 문제였다는 걸 대강 예상을 했다.
라일리가 한 남자와 야반도주를 했고, 그 대상이 호라이즌의 마탑주였으며, 둘의 스캔들이 가십지 1면을 화려하게 장식했다는 속사정 따위 알 리가 있나.
‘그렇다면…… 고작 하룻밤 함께 보낸 걸로 결혼까지 결심했다는 건가?’
“어차피 레이디 라일리의 신상도 밝혀질 거고.”
“…….”
“에르메인츠 백작이 이미 나와 밤을 보낸 그녀를 받아줄지 의문인데.”
라이언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어루만졌다.
‘야단났군.’
“일단 하루만 시간을 주십시오. 딸아이와…… 가족과 상의해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기브넨은 기분 좋게 웃으며 일어섰다.
“그럼 내일 답 주십시오.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
“넌 먼저 돌아가 삭, 난 만날 사람이 있으니.”
기브넨의 말에 삭은 멈칫하다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괜찮은 것입니까?”
“뭐가?”
“……결혼 말입니다. 심사숙고하지 않고 서둘러 결정해서 진행해도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어르신과 상의도 없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진행해버리면…… 어르신께서 크게 노하실지도 모릅니다.”
“글쎄, 아버지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 같은데.”
“……예?”
“누가 손해 보는 거래인가 생각하면, 적어도 나는 아니야.”
“누가 봐도 마스터께서 손해 보시는 결혼 같은데요.”
“그렇게 보인다면 오히려 좋네.”
“레이디 라일리께 가시는 겁니까?”
“맞아, 결혼할 상대인데 결혼 전에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지 않겠나?”
그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거슬리니 얼른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꺼지란 뜻이다.
‘청혼서만 보면 진저리를 치시던 분께서 뭐가 그렇게 즐겁다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인지…… 아무리 봐도 평범한 집안에 평범한 여자일 뿐이던데. 으, 이상해. 제정신이 아니야. 얼른 돈 바짝 벌고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저 변덕을 받아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저 정신 나간 머릿속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나. 이해하기를 포기해야 마음이 편하지.
삭은 한숨을 퍽, 퍽 내쉬며 돌아섰다. 저 상식을 벗어난 남자를 상식선에서 이해하지 않으려 애쓰고 또 애쓰면서.
***
똑똑-
꽤 점잖은 노크 소리에 깜빡 잠이 들었던 라일리가 몸을 일으켰다. 너무 피곤했던 건지, 긴장이 풀리자 나른함이 쏟아진 건지, 문에 기대어 주저앉은 채로 잠이 든 모양이었다.
늦은 시간, 난데없이 찾아온 손님이 숙부나 숙모 혹은 클레어일 거라 생각한 라일리는 잠깐 망설이다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고 뜻밖의 인물에 라일리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 자리에 굳었다.
“안녕.”
태연하게 인사를 건네오는 기브넨에 당황한 라일리가 문을 열 생각을 못 하고 멍하게 있자, 그가 손을 뻗어 문을 살며시 잡았다.
“잠시 이야기 좀 하자.”
조금 전 보았던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에 동일 인물이 맞나 싶던 찰나, 그가 천천히 문을 열고 불쑥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곤 라일리를 향해 씩 웃으며 말했다.
“들여보내 줘, 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