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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저 결혼합니다 (11/31)


11. 저 결혼합니다
2023.04.05.



“자고 갈래?”

뭘 뜻하는 말일까.

단순히 잠을 자고 내일 떠나라는 말일까? 그것도 아니면 또 관계를 가지고 싶다는 말일까.


“……무슨 뜻이야?”

“해석하기 나름.”

“나랑 하자는 거야?”

“딱히 그런 의미가 아니지만 원한다면 못할 건 없는데.”

해도 좋고, 안 해도 좋고. 뭘 하든 뜻대로 하라는 걸까.

라일리는 발칙한 연하남을 빤히 응시했다. 정작 의미심장한 발언을 내뱉은 그는 별다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 평온한 가면 뒤에 감춰진 속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놀리는 걸까? 아님 정말 별다른 뜻이 없는 발언인 걸까. 그것도 아니면 뭔가 다른 뜻이 있는 걸까.


‘능숙하네.’

사람을 휘두르는데 참 능숙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상황을 휘어잡고, 주도권을 가지고 이끄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고작 질문 한마디로 이렇게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하는 걸 보면.


‘……가기 싫어.’

솔직한 심정으로는 루플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고작 몇 번의 만남이 전부인 사이이지만, 그래도 라일리는 눈앞의 이 남자가 싫지 않았다.

애정은 절대 아니지만 호감은 확실했다. 따지고 보면 싫어할 만한 이유가 없는 남자였다. 이런저런 해프닝이 있긴 했어도, 어찌 되었든 그는 지옥 같은 결혼을 파혼시켜준 장본인이니까.

게다가 그는 보는 이로 하여금 호기심을 자아내는 사람이었다.

그가 궁금했다. 어찌됐든 결혼까지 하게 된 마당에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고 싶기도 했다.


“아니, 이게 누구인가.”

고민에 빠진 그때 누군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라일리도 기브넨도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해 동시에 시선을 옮겼다.


“자네를 여기서 보는군.”

“아.”

기브넨의 얼굴에 아주 살짝 귀찮은 기색이 스쳤다. 그러나 이는 정말 찰나의 순간일 뿐이고, 그는 바로 표정을 갈무리해 화려한 접객의 귀재로 돌변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펠트로 경.”

그가 인사를 건넨 이는 중년의 귀족 남성이었다.

펠트로라는 이름의 남자는 수염을 어루만지며 반가운 기색을 드러냈다.


“기껏 초대해 줬는데 리셉션에 참석하지 못해서 미안하네. 예정보다 귀국이 늦어져서.”

“오늘 귀국하신 겁니까?”

“그렇지, 아 참. 이곳에서 바이어와 미팅이 있네. 자네도 가지 않겠나? 왜 일전에 내게 소개해달라 했던 그 바이어 분이시네.”

“아닙니다, 지금은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요. 다음에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군요.”

“아, 그런가? 아쉽군, 자네도 알다시피 그는 포렌코의 광산 왕이라 불리는 텐카스 경과 연이 닿아있는 분이시네. 최근 마도구의 대량생산으로 철강재의 수요량이 급격하게 늘어났지 않나. 자잿값이 너무 터무니없이 올려버렸어. 때문에 텐카스 경에게 거래를 따내려 하는 사람들이 많아. 지금이 그 기회인데…….”

중년의 사내는 기브넨의 옆에 서 있던 라일리를 흘끔 바라보았다. 아마도 바쁜 사정이란 여자 문제인가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에 라일리는 눈치껏 입을 열었다.


“기브넨 공, 중요한 사업 이야기 같은데 다녀오세요.”

“당신이 더 중요한데.”

“전 어차피 돌아가 봐야 하잖아요. 여기서 하루 더 머물렀다 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돌아가서 편하게 쉬고 싶어요. 낯선 곳보다야 집이 쉬기에는 더 편할 테니까.”

“그래, 그렇게 하세. 정말 다시 없을 기회네.”

기브넨은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었다.

잠깐 고민하던 그가 라일리의 손을 잡았다.


“……알겠습니다, 먼저 올라가 계십시오. 레이디를 데려다주고 오겠습니다, 요즘 밤길이 위험해서요.”

“여전히 로맨틱하군. 잘 다녀오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

펠트로 경이 자리를 떠나고, 기브넨은 미간을 좁혔다.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어차피 결혼하면 보기 싫어도 실컷 볼 텐데.”

“그 전까진 보기 힘드니까.”

라일리는 문득 이 대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연인이나 주고받을 법한 대화가 아닌가.


“이거…… 너무 연인의 대화 같은데.”

“부부가 될 사이에 이상할 건 없는 대화지.”

그런가.


“뭐든 확실히 해. 계약에 의한, 서로 편의를 위한 결혼이라 한들 난 내 결혼생활을 대충 즐길 생각은 없어. 이 부분은 누나도 적당히 맞춰줘야 할 거야. 어찌 됐건 우린 진짜 부부로 살게 되는 거니까. 아주 다정하고, 사랑이 넘치는 부부로.”

그는 뭐든 확실히 하는 부류인 듯했다.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이런 데서도 드러나는 건가? 라일리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다줄게.”

“……그래.”

그가 손을 내밀었다. 라일리는 잠시 망설이다 그 손을 잡았다.


 
느낌이 이상했다.

이곳에 와서 그를 만나고, 도움을 받고, 우연히 하룻밤을 보내고…… 이제는 결혼 약속까지.

이 모든 게 고작 3일 만에 벌어진 일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아무렇지 않게 말을 놓고, 아무렇지 않게 데이트를 하는 이 상황이.

진짜 연인도 아닌데.

아예 엮일 수도, 섞일 수 없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부류라 생각했는데.

손을 잡고 나란히 걷고 있는 이 상황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극이라는 걸 인식하고 있어도 느낌이 이상했다.

대외적으로는 부부가 되겠지만, 따지고 보면 후견인과 피후견인에 더 가까울 관계인데도 마치 정말 연인 대하듯 완벽하게 갈무리된 모습은 너무 진짜 같아서 착각할 정도였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은데 한편으로는 대우받는 기분이 싫지 않았다.

이 모든 상황과 대화가 작위적이라도 이 순간 만큼은 정말 특별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어서 오십시오, 이용 인원은 몇 분이십니까?”

“여기 레이디 한 명입니다.”

“목적지는요?”

텔레포트기 안내인의 물음에 라일리가 대신 대답했다.


“소보스터요.”

“요금은 제 마력으로 지불하죠.”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이제는 진짜 헤어질 시간이다.


“가볼게.”

텔레포트 준비가 끝났다. 텔레포트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기브넨이 손을 흔들었다. 이에 화답하듯 라일리가 손을 드는 순간,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희뿌연 빛이 덮쳤다.

외진 산골, 어둠만이 가득한 작은 마을.

돌아왔다.

벗어나고 싶어서 끝도 없이 발버둥치던 곳으로.

사실 이 모든 게 꿈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현실감 없고 황홀했던 첫 외출은 그렇게 끝이 났다.

***

라일리를 보내고 기브넨 역시 펠트로 경과 그가 소개해 준 바이어와의 미팅이 잘 끝났다.

포렌코의 광산 왕인 텐카스와도 약속도 성사되었다.

리셉션도 끝났고 라일리 에아달린과 접촉하고자 했던 소기 목적도 완전히 달성했다는 사실에 이제야 편안함을 느낀 기브넨은 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침대에 몸을 눕혔다.

정말 정신없는 일정이었다고 자부한다.

눈을 감고 있던 기브넨이 스승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아이를 네가 보호해라.」


「왜 스승님의 일을 제게 떠넘기시는 겁니까.」


「내가 나설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나보다는 네가 적임자야.」


「……이젠 하다 하다 평생 남 뒷바라지나 하면서 살라는 겁니까?」


「간수 잘하거라.」


「간수 잘 못한다면요. 남 뒤치다꺼리는 제 적성에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죽이거라. 네 손으로 직접. 그 아이가 ‘그들’의 손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돼. 절대로.」

 


“재수 없는 노인 같으니.”

제멋대로 죽어버릴 때는 언제고, 죽는 것도 곱게 죽은 것도 아니고 떠넘길 것들만 잔뜩 남겨두고 떠났다.

그 결과 아예 생각도 않고 있던 결혼까지 하게 생겼으니 일찍이 가정을 꾸리게 된 걸 고마워 해야하나, 아님 평생 라일리 에아달린에게 존속 당할 수밖에 없는 삶이 된 걸 비관해야 하나.


‘귀찮아.’

그는 뭔가를 보살피고 돌볼만한 성질머리가 아니었다.

그것이 여자나 아이같이 특히 세심한 손길이 많이 가는 존재라면 더더욱. 스승이 죽고 갑작스럽게 떠넘겨진 것들 때문에 인생이 매우 피곤해졌다.

그러나 스승이 죽기 전 남기고 간 말들을 외면하는 건 제자로서의 도리가 아니니 어쩌겠나.

시키는대로 하는 수밖에.


“아, 깜빡할 뻔했군.”

뭔가 미묘하게 찝찝함이 남아 있다 했더니.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남아 있다는 게 생각났다.

기브넨은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급히 어디론가 향했다.

·

·

·



“저 결혼합니다.”

기브넨의 폭탄 발언에 식사를 즐기던 두 명의 움직임이 멈췄다.

한 명은 그의 아버지이자 리안스터 가문의 가주인 앨튼 리안스터. 다른 한 명은 그의 쌍둥이 동생 리브네 리안스터였다.

특히 그의 쌍둥이 여동생 리브네는 기가 막힌다는 듯 기브넨을 쏘아보았다.


“미친 거야? 아무리 개망나니라지만 집안에 상의도 없이 덥석 결혼을 결정해? 아주 정신이 나갔구나. 막 나가자는 거지, 지금?”

“내 결혼 내가 알아서 하는 거지, 네가 난리 칠 일인가?”

“결혼은 네 개인적인 일이 아닌 집안의 중대사야!”

“그래서 아주 마음에 들어 할 만한 여자로 골라왔지.”

잠자코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앨튼 리안스터가 점잖은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냐.”

“아버지도 좋아하실 겁니다.”

“그러니까 어느 집 여식이냔 말이다.”

“라이스턴 님의 여식입니다.”

여태 시큰둥한 모습으로 일관하던 앨튼이 멈칫했다. 그는 답지 않게 경기를 일으키며 기브넨을 바라보았다.


“……라이스턴에게 여식이 있었어?”

“예, 뭐.”

“어떻게 알게 됐지?”

“스승님이 세상을 떠나기 전 제게 알려주셨습니다.”

앨튼은 심각한 표정으로 수염을 어루만졌다.


“……난감하군.”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아버지께서는 이 결혼을 누구보다 반길 거라 생각했습니다. 스승님께 듣기로는 라이스턴 님과 둘도 없는 각별한 사이였다면서요.”

“……라이스턴에게 여식이 있는 줄은 몰랐네. 그놈이 여태 살아있다는 건 더욱 몰랐지. 물론 그 놈의 여식이라면 마음에야 든다만, 글쎄, 네 그릇으로 감당할 만한 아이일까 싶다.”

“이미 만나봤고, 제 선에서 충분히 감당 가능할 여자였습니다.”

“그건 네가 뭘 모르니 하는 소리고.”

부자지간의 대화에 리브네가 끼어들었다.


“라이스턴이 누군데요?”

“아버지 친구.”

“난 처음 듣는데?”

“나도 처음 들었어.”

“사기 아니야? 제대로 확인해 본 거 맞아?”

“내가 너는 아니라.”

“야!”

“그만.”

앨튼이 둘을 중재하고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기브넨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찌됐건 라이스턴의 여식이라면…… 그래 그만한 며느릿감도 없긴 하군. 우려되는 것들이 있긴 하지만 융이 생각이 있으니 네게 그 아이를 맡긴 거겠지. 그나저나 네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구나, 기브넨.”

그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온갖 여자들의 이름을 달고 다니며 심심하면 신문 1면을 장식하고 다니는 꼴을 더는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특히 망나니 아들놈이 9황녀의 청혼을 거절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정말 끔찍했다.

그를 대신해 황제에게 불려가 아들에 대한 변호 아닌 변호를 해야 했을 때는 정말 당장 호적을 파 버리고 싶은 심정이기까지 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감히 황녀의 청혼을 거절한다는 게 멸문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개국공신 가문이라는 점, 현 제국의 가장 중요한 거점 중 하나인 대마탑 호라이즌의 오너라는 점, 온갖 염문설을 몰고 다니는 그가 사윗감으로 탐탁히 않았던 황제의 속내 덕분에 목숨을 구제했다.

그래도 9황녀는 황비의 출생이 아닌 황후 비아네즈의 출생인지라 황후의 눈 밖에 난 것은 분명했다.

아무튼 앨튼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렸다. 망나니 아들놈 덕분에 그는 아직도 황궁에 입궁할 때마다 황제와 황후의 눈치를 보는 신세였다.


“그래서 언제 데려올 것이냐?”

“일단은 돌려보냈습니다.”

“왜?”

“그녀의 숙부께서 당장 보내는 건 안 된다고 해서 말입니다.”

“라이스턴 그놈에게 혈육이 있었나?”

기브넨이 황당하다는 듯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친한 사이라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으십니다?”

“워낙 별종 같은 놈이라 그렇지. 그놈은 애초에 말도 없이 사라져버리곤 연락 한 통 없는 천하의 개자식이야.”

“그렇군요.”

“그래서 그 집안은 어떠하냐.”

“답이 없는 집안입니다. 작게 자선사업을 하는데 대충 봐도 구린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변방의 소영주직을 맡고 있는 남작가인데, 아버지는 모르실 겁니다.”

“어느 영지 소속이냐.”

“루플라라고 하던데요.”

“처음 듣는 곳이군.”

“변방에 붙은 코딱지만한 영지이긴 합니다. 키예프 후작령 소속일 겁니다.”

둘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리브네가 경악하며 일어섰다.


“남작가? 지금 백작도 아니고 남작? 그것도 변방의 이름 모를 나부랭이 남작가와 사돈지간을 맺겠다고? 9황녀를 거절하고 결혼하겠다는 게 고작 변방 출신의 한미한 집안의 여식이라고? ……장난해 지금?”

“집안이 무슨 상관이지? 어차피 우리에게 1순위는 순수 혈통 마법사를 배출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가 중요한 건데.”

“명망 높은 가문 소속의 뛰어난 마법사들도 널렸어! 그리고 9황녀도 마법사잖아!”

“마법사라고 표현하기 민망할 정도로 쥐꼬리만 한 마력을 가지긴 했지.”

“그게 무슨 상관이야! 리안스터 가문의 혈통이 좀 강력해? 마력이 쥐꼬리만 하든 뭐든, 일단 마법사와 결혼하면 알아서 마법사 후계가 태어날 건데 무슨 문제야?”

“이왕 결혼하는 거 마력을 쥐꼬리만큼 가진 여자보다는 많이 가진 여자가 낫겠지.”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이름도 없는 그런 집안이랑…… 이건 리안스터 가문의 수치에요, 아버지! 아무리 그래도 급이 안 맞잖아요!”

귀족들이 비슷한 급끼리 만나고 교류하고 결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다.

그저 귀족들이 관직에만 진출해 놀고먹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귀족은 그저 관직에 진출하는 것만이 아닌, 스스로 사업체를 만들고 이를 확장해 부를 축적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가문과 가문의 결합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더 나아가 서로 가문의 번영을 위해 협력하는 필수 불가결의 과정이었다.

제국의 3대 공작가 중 하나인 리안스터 가문에서 입지조차 없는 변방의 남작 가문과 사돈을 맺는다는 건 스스로 가문의 격을 깎아내리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리브네는 앨튼도 이번 결혼에 결사반대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찬성이다.”

“아버지! 대체 어째서요?”

“라이스턴의 자식이니까.”

“대체 라이스턴인지 뭔지 그 사람이 누군데 이렇게 호들갑이세요?”

“라이스턴은 융을 뛰어넘는 자질을 가진 마법사였어. 그 핏줄이라는 건 후계를 염두에 두는 모든 마법사가 탐낼 재목이지.”

“……스승님을 뛰어넘는 마법사라고요? 전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앨튼은 리브네의 말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기브넨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이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나?”

“모릅니다.”

“다행이군. 라이스턴의 자식이라는 게 알려지기 전에…… 최대한 결혼을 서둘러 보호 아래 두도록 해라.”

“그럴 생각입니다.”

부자가 단체로 미쳐버렸나.

리브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둘을 쏘아보다 결국 식사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에 앨튼은 혀를 끌끌 찼다.


“저 성질머리를 언제쯤 고쳐먹을 건지. 물론 네놈 성질머리가 더 문제지만.”

기브넨은 대답 대신 웃었다. 그러곤 먹기 좋게 잘린 고깃덩어리를 입에 넣어 잘근잘근 씹었다. 폭탄 발언을 던진 괴팍한 성질머리의 사람치고는 아주 우아한 칼질이었다.


“네 고약한 성질머리 때문에 그 아이가 도망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는구나.”

앨튼은 리브네와는 전혀 다른 쪽으로 걱정했다. 리브네가 리안스터 가문의 이름에 흠집이 나는 걸 염려했다면, 앨튼은 라일리가 기브넨의 고약한 성질머리를 버텨줄지를 염려했다.

그는 기브넨이 자신의 아들이지만 참 답도 없는 개망나니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여자 문제에 있어서는 더더욱.

물론 그가 휩쓸고 다닌 수많은 염문설이 모두 진실은 아니겠지만, 그의 이성 관계가 한없이 가벼운 건 사실이었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다. 그는 타인에게 크게 집착을 하거나, 진심으로 마음을 두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에게 연애란 그저 ‘해볼 수 있는 가벼운 일’이었고, 그렇게 맺어진 관계 또한 진중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인간관계는 항상 이랬다. 특히 사적인 관계는 더더욱.

좋게 표현하면 자유롭다 할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쓰레기라 매도당해도 할 말 없는 부분이었다.

진심으로 대하는 상대에게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건 상대를 향한 기만이니까.

앨튼은 이런 부분이 염려되었다.


“잘해주거라.”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공들이고 있습니다.”

“…….”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도 못하게 정성껏 관리할 겁니다.”

“네 그런 사고방식이 문제란 것이다. 넌 인간관계에 진중함이 없다. 뭐든 계산적이지. 언젠가는 크게 후회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인간관계를 ‘관리’라고 표현하는 것부터가 그의 결여된 부분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앨튼은 이를 염려했고 진심 어린 조언을 했으나 기브넨은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식사를 계속했다.

대답은 없었다.

알아서 하겠다는 무언의 행동이라는 걸 알아차린 앨튼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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