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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치정극 (12/31)


12. 치정극
2023.04.08.



“이 망할 자식이!”

에르메인츠 백작은 기브넨의 염문설이 실린 타블로이드를 있는 힘껏 찢어버렸다.


 
타블로이드를 찢어버렸음에도 기브넨과 라일리가 나란히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생생하게 재생되고 있다.

이에 화가 치민 에르메인츠 백작은 찢어버린 타블로이드를 발로 짓이겨 밟으며 소리쳤다.


“당장 치워! 내 눈앞에 일간지란 일간지는 전부 치워버리란 말이다. 지금 당장!”

에르메인츠 백작의 불호령에 눈치만 살피고 있던 사용인들이 급히 찢어진 가십지를 수거해갔다.

혼자 있고 싶어진 에르메인츠 백작은 사람을 다 물리고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손에 잡히는 물건이란 물건은 죄다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보는 굴욕감. 그것도 눈엣가시 같은 핏덩이 둘에게 당했다는 사실이 치욕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리셉션 날, 그렇게 라일리를 빼앗기고 지금까지 에르메인츠 백작은 잠을 설쳤다. 너무 억울해서! 너무 화가 나서!

잠을 자려고 누우면 자신을 엿 먹인 연놈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 와중에 다음 날이 되자 둘의 스캔들을 실은 가십지가 거리에 뿌려지기까지 했다.

어딜 가든 기브넨 리안스터의 새로운 연애 상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누구고 어느 집안 소속이고 나이는 몇이고…… 라일리 에아달린에 대해서 알려진 게 없다 보니 관심도는 더 폭발적으로 증가해 끊임없이 그 둘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런 와중에 호텔에 나란히 들어가는 사진이 찍힌 가십지를 받아보자마자 에르메인츠 백작은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감히 풋내기 따위가 내 걸 뺏어?”

둘이 한 침대에서 놀아났다고 생각하니 오장 육부가 뒤틀렸다.


「그 나이 먹고 정신 못 차리고 자식뻘 되는 절 아내로 삼으려는 미친 작자를 대체 어떻게 좋아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제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늙은 남자를 어찌 좋아할 수 있단 말입니까?」


「끔찍합니다, 역겹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과 결혼할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습니다.」

 
게다가 더 열 받는 것은 라일리 에아달린이 준 모욕이었다.

그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대놓고 무시를 당한 적이 없었다. 나이가 들고 그 위세가 예전 같지 않아도 대놓고 그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그에게 라일리 에아달린은 대놓고 모욕했다.


‘늙고, 추하고, 징그럽다, 끔찍하다.’

그녀가 선택한 단어들은 에르메인츠 백작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던 피해의식을 끌어올렸다.

게다가 다른 이도 아닌 ‘기브넨 리안스터’의 앞에서 망신을 줬다는 게 분노를 키웠다.

코흘리개 애송이에게 한 방 먹었다는 게!

하필 그 애송이에게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였다는 게 너무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모든 여자는 다 똑같다는 피해의식이 그의 머리를 지배했다.

어리고, 잘생기고, 돈만 많으면 장땡이라 이건가. 속물적인 것들…… 천박하게 치장이나 해서 남자 꼬시는 데 혈안이 된 것들.

그저 반반한 얼굴 하나만 믿고, 속 편하게 살아가는 것들을 보면 치가 떨렸다. 외모 빼고는 볼 것도 없는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거들먹거리는 거지?

늙고 병들어 예전 같은 전성기를 누리지 못할지언정 돈으로 젊음을, 아름다운 여인을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 확신을 한미한 남작가의 천한 계집 따위가 다 짓뭉개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돈으로도 원하는 걸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급속도로 우울해졌다. 그는 여전히 젊은 시절에 갇혀 있었다.

그땐 그랬지, 그때 나는 대단했었는데.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원하는 여자를 안고, 수십 명의 애첩을 거느리고…… 모든 남자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는 했었는데.

지금은…… 그저 하자 있는 뒷방 늙은이일 뿐이라는 게 그를 한없이 우울하게 만들었다.


“내 이것들을 그냥 놔두면 제 명에 못 살아. 이대로라면 화병으로 단명하겠어.”

그는 비록 노쇠해졌어도 받은 만큼 되돌려준다는 신념은 여전히 굳건했다.


“이봐! 아무나 당장 와봐!”

에르메인츠 백작의 우렁찬 외침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의 집사가 들어왔다.


“하명하십시오.”

에르메인츠 백작은 결심에 찬 듯 굵고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기자 놈들한테 싹 다 연락 돌려. 당장 이곳으로 모이라고.”

 

***

블레스티지에 다녀온 뒤로, 아니 기브넨과의 혼사가 성사된 이후로 라일리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정말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단은.


“첫째 아가씨, 식사 준비되었습니다.”

“……그래. 지금 내려가면 되니?”

“예, 아가씨.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사용인들의 대우가 달라졌다.

특히 하녀장 맥달린의 변화가 놀라웠다. 언제나 냉대하고, 막말을 서슴지 않던 그녀에게서 더 이상 이전의 싸늘하고 역겨운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오히려 노골적으로 라일리를 피해 다녔다.

사용인들의 우두머리 격인 맥달린의 변화는 자연스레 그 아래의 변화도 가져왔다.

자유로운 외출이 허락되었고 클레어가 드레스룸으로 쓰던 큰 방도 넘겨받았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드레스룸도 제공받았고 그 안에는 최신 유행 스타일의 드레스와 외출복, 일상복이 빼곡하게 채워졌다.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용돈도 받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클레어보다 10% 정도 더 많은 금액을 받았다.

물론 이는 클레어에게 비밀이었다. 가뜩이나 드레스룸을 뺏겨 화가 많이 난 그녀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화산이 되어 있었으니까.

또 이제 가족 식사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많이 먹으렴.”

남작 부인의 살가운 챙김에 라일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 착석했다. 그녀가 민망한지 호호 웃음 지었으나 딱히 맞장구쳐주고 싶지 않았기에 얌전히 식사를 시작했다.

방에서 홀로 딱딱한 빵과 다 식어버린 수프를 먹는 그런 식사는 이제 제공되지 않았다. 가짓수가 푸짐하게 차려진 정찬을 즐길 수 있게 된 건 참 좋다.

다만 그럼에도 그다지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블레스티지에서 너무 입맛을 높여놨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브넨이랑 같이 먹던 코스 요리가 정말 맛있었는데.

게다가.


‘역겨워.’

다른 의미로 이 식사 자리가 역겹다. 음식이 역겨운 게 아니라,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역겨웠다. 위선적이다. 가식적이다.

이 가족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건 그렇게나 바라던 일인데 이 상황이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비위가 상해서 토기가 쏠렸다.


“……잘 먹었습니다.”

“왜 그거밖에 안 먹어? 더 먹지 않고.”

“소화가 잘 안 되네요. 평소 먹던 양이 아니라 그런가 봐요.”

라일리의 말에 클레어가 발끈하며 일어섰다.


“뭐? 너 무슨 말을 그따위로 해? 마치 우리가 네 밥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단 식으로 말하네?”

이에 숙모가 식은땀을 흘리며 그녀를 말렸다.


“얘, 언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어머니! 쟤 말하는 꼴을 보라고요! 화 안 나게 생겼어요?”

“진정하렴.”

“……진짜 다 왜 이래요? 이제 와서 쟤한테 잘한다고, 여태 했던 짓이 사라져요? 왜 내숭이냐고요, 전부!”

“앉아.”

보다 못한 라이언이 미간을 좁히며 클레어를 타박했다.


“이 무슨 예의 없는 짓이냐.”

“아버지, 예의 없는 건 라일리가 먼저…….”

“앉으라 했다.”

“……예.”

“라일리, 그만 먹어도 좋다. 굳이 무리해서 먹을 필요는 없지. 클레어 말은 흘려듣도록 해라, 너도 알다시피 아직 어려서 철이 없지 않느냐.”

클레어는 주먹을 꽉 쥔 채 고개를 숙였다.

바들바들 떨리는 어깨가 보였다. 울고 있는 걸까, 아니면 미치도록 화가 난 걸까.

라일리는 라이언을 바라보았다.

지독한 남자라 생각했다. 하루아침에 친딸을 냉대할 정도로 출세에 미친 양반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출세를 위해서라면 가족까지 버릴 수 있다는 건가?

고작 그 정도 부성애였단 말이야?

그렇다면 여태 내가 애물단지 취급을 당한 건 단순히 친딸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클레어보다 더 쓸모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산지기의 딸보다는 어릴 적부터 교육을 받았던 클레어가 훨씬 더 낫다는 판단이었겠지.

하루아침에 처지가 바뀐 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에 대한 혐오감과 불신만 커졌다.


‘그들에게 난 평생 쓸모가 없어지면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존재에 불과하겠지.’

라일리는 불쾌함을 애써 감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전 일어나 보겠습니다.”

라일리는 클레어를 흘끔 바라보았다.


‘……불쌍하구나, 너도 참.’

살다살다 클레어를 동정하는 순간이 오게 될 줄이야.


“잠깐 라일리.”

“예, 숙부님.”

“내일부터 가정교사가 방문할 것이다.”

“……가정교사요?”

“그래, 네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렵게 모신 분이니 잘해주었으면 한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기초적인 교육은 받아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시집가고 나서, 그 집안에서 흠이라도 보였다간…… 네 입장이 난처해질 것이 아니냐.”

글쎄요, 가정교육도 제대로 안 된 여식을 시집보냈다는 망신을 당하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고요?


“시간이 촉박하겠지만, 최대한 배우고 많이 익히도록 해라. 네 스스로도 리안스터 가문의 안주인이 되기에 자질이 부족한 건 알고 있지?”

“…….”

“네가 모자람이 많은 걸 알면 리안스터 공께서도 돌변할지도 모른다. 그쪽 집안의 반대도 거세질 거고 말이다. 가뜩이나 집안 차이가 많이 나는데 그 집안 차이를 조금이라도 메꾸기 위해서는 네가 잘해야 하지 않겠느냐.”

라일리는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구겨 넣으며 웃었다.


“알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참기로 했다.

어차피 예법 교육은 꼭 받았으면 했다.

집안의 격차, 교육의 수준 차이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니까. 라이언의 말은 얄미웠지만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현실적인 조언에 가까웠다.

뭐 하나 모자란 것이 없는 그에 비해 나는 너무나 모자람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그게 내 탓이 아니라며 억울해한들 누가 알아줄까.

당연하게 주어져야 했던 권리가 이제야 하나씩 주어지는 사실이 서글펐다.

많은 게 달라졌는데,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 이 모든 것들은 여태 간절히 바라고 바랐던 것인데 왜 하나도 즐겁지가 않은 걸까.

목적지 없이 그저 망망대해를 떠돌아다니는 부표가 된 기분이었다.

***

이 남자는 대체 뭘까.


“왜 그렇게 봐?”

“그냥…… 신기해서요.”

“뭐가.”

“당장이라도 멀리 보내신 라일리 아가씨를 보러 달려갈 줄 알았거든요. 애틋해 보이셨는데.”

그는 평소의 워커홀릭 모습으로 돌아왔다.

산더미처럼 쌓인 일들을 훌륭하게 해냈다. 게다가 그는 포렌코의 광산왕에게 거래도 따내고 왔다.

아주 잠깐 원나잇에 결혼까지, 파격적인 걸 넘어서 미친 행보를 보이던 그가 내심 걱정스러웠던 삭은 괜한 걱정이었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완전 죽고 못 살 정도로 불타니까 결혼까지 결정한 거 아닌가?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딱히.”

“……진짜요?”

“그 정도로 죽고 못 살 사이는 아니야.”

“그런 사이가 아닌데 그렇게 빠르게 결혼을 진행하십니까?”

“결혼은 비즈니스지.”

담담한 말에 삭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오, 이런 제가 여태 들은 말 중에 가장 쓰레기 같은 발언이십니다.”

“어쩔 수 없어. 난 그녀와 함께한 시간이 고작 3일인걸. 거기에 사랑까지는 무리지. 호감은 있지만.”

“그런데도 3일 만에 청혼에 결혼까지 아주 완벽하십니다. 초고속 시대에 걸맞은 초고속 인재십니다.”

삭은 이제야 뼛속까지 합리적인 마탑주가 드디어 원래대로 돌아왔구나 생각했다.

리셉션 때는 아주 살짝 정신이 나간 거였지. 그래 이게, 그의 본 모습이지.

그러면서 오늘 자 따끈따끈한 가십지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 쓰레기 발언에 걸맞은 쓰레기 가십지입니다.”

“오늘도 내가 1면이야?”

“예, 무려 헤드라인입니다.”

“헤드라인 장식은 오랜만이라 설레네.”

기브넨은 잠시 일하던 것을 멈추고 오늘 자 가십지를 넘겨받았다.

「호라이즌의 마탑주, 기브넨 리안스터 공작 결혼 임박. 상대는 에르메인츠 백작의 약혼녀였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 세기의 치정극 본격화 되나?」

자극적인 헤드라인에 자신의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박혔음에도 기브넨은 태연했다.

단순 염문설이 아니었다. 무려 불륜관계를 암시하는 치정설이었다.

이에 기브넨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혼사는 극비리에 진행하는 중인데 어디서 정보가 샜을까.”

“그게 요지가 아니잖아요.”

삭은 기가 막힌다는 듯 ‘치정극’ 단어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게 본질이죠!”

치정극, 말 그대로 건강하지도, 건전하지도 않은 병적, 부도덕, 비윤리적 애정극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인가.

사실 상세한 기사를 읽을 필요도 없었다. 내용은 안 봐도 뻔했다. 헤드라인대로 ‘에르메인츠 백작의 정혼녀를 빼앗은 파렴치한’에 대한 비난적 논조겠지.

애당초 에르메인츠 백작과 라일리 에아달린의 혼사도 극비로 진행되는 사항이었다. 이 부분이 노출되었다는 건 이 기사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안 봐도 뻔했다.

기브넨은 기사를 읽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노인네가 화가 많이 났군.”

“웃음이 나오십니까? 이는 아주 심각한 사안입니다. 그간의 염문설과는 결이 다릅니다, 치정설이라니…… 이건 역대급 망신입니다!”

“나만 망신일까? 노인네도 망신이지.”

에르메인츠 백작 역시 이 논란으로 평판에 타격을 입을게 뻔했다.

벌써 다섯 번째, 어린 여자와 혼인을 준비 중이었다는 사실은 그에게도 좋지 못한 이슈니까. 그러나 그는 이를 감행하면서까지 이 기사를 터트렸다. 그만큼 심사가 뒤틀렸단 거겠지.

기사의 내용은 솔직히 말해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니 할 말이 없다 쳐도,


“노인네가 내가 결혼까지 하는 걸 어찌 알았을까.”

“혹시 에아달린 남작이 말한 건 아닐까요?”

“굳이? 말해봤자 좋을 게 없을 텐데.”

“하긴, 오히려 에르메인츠 백작의 화만 자초하는 꼴인데…….”

“그리고 어째서인지 라일리에 대한 신상은 풀지 않았군. 왜지? 눈이 뒤집혀서 이런 기사를 낸 거면 라일리 에아달린의 신상을 감춰줄 필요가 없을 텐데.”

“마스터를 엿 먹이는 데만 중점을 둔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더 신상을 풀었어야지. 집안의 차이가 심한 만큼 훨씬 이슈화되는 부분일 텐데.”

어차피 그의 전처들의 집안만 보더라도 대부분 가세가 심하게 기울거나, 변방의 이름 없는 한미한 집안이 대다수였다.

아무리 에르메인츠 백작의 권세가 대단한들 정상적인 집구석은 대외적인 평판과 자식을 생각해 그의 아내로 시집보내는 걸 고사해 왔으니까.

그러니 에아달린 가문이 한미한 남작 가문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해도 에르메인츠 백작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런데 왜 굳이?

그 성격에 라일리를 배려했나? 아니, 절대.

그렇다면 노쇠해 총기가 흐려져 뜻하지 않은 실수를 했나? 아니, 남 괴롭히는 데는 누구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양반이다.


“확실히 일반적인 염문설이 아닌 치정극에 대한 보도라…… 조금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흐음.”

“어떻게 대응할까요?”

“일단 놔둬.”

“알겠습니다.”

“에르메인츠 백작 쪽에 붙여둔 놈들 있지?”

“예.”

“인원을 더 늘리고 24시간 상주시켜. 수상한 행보가 보이면 즉각 보고하라 하고.”

“알겠습니다.”

더러운 언론 플레이야 어차피 하루 이틀 겪는 것도 아니니 크게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물론 치정극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타격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 한들, 호라이즌의 위세에 흠집 낼 정도는 아닐 것이다.

에르메인츠 백작 같은 놈도 잘 먹고 사는 게 이쪽 세상이니까. 솔직히 일주일 정도 시끄럽고 마려나.

다만 그럼에도 미미한 찝찝함이 남아 있다.

뭔가를 놓친 듯한 느낌.

기브넨은 의자를 뒤로 젖힌 후 이마를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거슬리네. 뭐지.’

뭘 빠트린 걸까.

기브넨은 이 순간 라일리를 떠올렸다.

오늘의 염문설이 그녀가 사는 곳까지 닿기에는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 라일리의 신상이 까지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에르메인츠 백작이 답지 않게 허술한 일 처리를 보인 게 찝찝했다.

이게 과연 실수인 건지, 아니면 의도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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