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이제 와 혼사를 무르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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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이제 와 혼사를 무르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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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이제 와 혼사를 무르진 않겠지?
2023.04.12.
“처음 뵙겠습니다, 영애. 알리사 베이릭시드 입니다.”
결혼에 앞서 본격적인 가정교육이 시작되었다.
라이언이 데리고 온 가정교사는 한때는 귀족이었으나 지금은 몰락해 평민이 되어버린 베이릭시드 가문의 안주인, 알리사 부인이었다.
그녀의 나이는 지긋한 편이었으나 가정교사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업계 내에서는 유명하지 않은 햇병아리였다.
클레어는 영지 내에서 가장 유명한 예법 선생인 힐브린 부인에게 전담 교육을 받았으나 라일리는 그럴 수 없었다.
당장 라일리와 클레어의 처지가 달라졌다 해도 저택을 수시로 드나들던 힐브린 부인은 에아달린 가문에서 라일리가 어떤 처지인지 모르지 않았기에 교사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게다가 보통의 귀족들은 어린 나이부터 교육을 시작한다. 그렇기에 수많은 가정교사의 교육 상대는 대부분 어린아이였다.
통제가 쉬운 어린이들과 다르게, 다 큰 성인 여자들의 교육을 전담하고 싶어 하는 교사는 거의 없었다.
“비록 경력은 짧지만, 태생부터 귀족이었기 때문에 질적으로는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라이언은 혹여나 라일리가 경력도 없는 교사를 구해놨다고 역정을 낼까 봐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라일리는 진심으로 베이릭시드 부인을 반겼다.
“라일리 에아달린입니다. 제가 사정이 있어 배움이 늦었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배움에 빠르고 늦음은 상관이 없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할 뿐. 영애께서 저를 믿고 충실히 따라오신다면 저도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성심성의껏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인사치레를 끝내고, 라이언은 둘이 얘기를 나누라며 자리를 피해줬다.
“기간이 촉박하니 최대한 필요한 것만 간추려 교육할 예정입니다.”
“예.”
“궁정 예법과 외국어, 글쓰기와 낭독은 기본으로 교육할 것이며 원하신다면 노래나, 하프, 춤도 가르쳐드릴 수 있습니다. 그 외의 것들은 따로 교사를 구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은 시간이 없으니 궁정 예법과 외국어, 춤을 중점으로 가르쳐주세요.”
귀족들은 기본적으로 하나에서 두 개의 악기를 다룰 줄 안다고 하지만, 당장 악기까지 배우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궁정 예법을 최우선으로 하고 글쓰기나 외국어 등을 배워 내적 소양을 다지는 게 효율적이겠지.
“최대한 빨리,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수도를 시끌벅적하게 한 치정설은 정확히 한 달 뒤, 이곳 루플라에까지 전해졌다.
“주인님, 이것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집사장 레오가 라이언에게 다급히 뭔가를 전했다. 물을 마시러 나온 라일리가 이 광경을 목격했다.
“이게 뭔가?”
“한 달 전 수도에 돌던 가십지입니다.”
“이걸 왜 날 주는가? 설마 결혼 소식이 보도되었나?”
신문을 받아든 라이언이 정색했다.
“이게 뭔가, 세기의 치정극? 무슨 이딴 기사가 나와?”
“큰 아가씨께서 에르메인츠 백작과 약혼했었다는 사실이 새어나간 듯 보입니다.”
“뭐라? 이미 파혼한 건데 어째서 보도가 나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마, 마탑주께서는 따로 공식 입장을 냈는가?”
“……아니요, 알아본 바로는 어떤 입장도 내지 않고 무대응으로 일관한 듯 보입니다.”
“그럼 에르메인츠 백작 그 노인네겠네! 애초에 극비로 진행된 혼사인데 이게 그 노인네 입을 통해서 새어나간 게 아니라면 어디서 새어나가겠나!”
망할 노친네가, 노망기가 있더니 정말 정신이 나가버렸나.
라이언은 타블로이드지를 구긴 채로 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리고 이는 때마침 지나가던 라일리의 발아래에 떨어졌다.
라일리는 구겨진 타블로이드를 주워 펼쳤다. 그리고 보도문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리셉션 당일, 호라이즌의 마탑주와 함께 야반도주했던 여인의 정체는 에르메인츠 백작과 비밀리에 혼사를 진행 중이던 남작가의 여식이 그날 눈이 맞아 서로 밀회를 즐겼다는 내용이었다.
라일리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진짜 쓰레기는 그가 아니라…… 에르메인츠 백작인데.’
충격받은 채 서 있는 라일리에게 클레어가 다가왔다. 클레어는 라일리가 들고 있던 가십지를 가로채 읽더니, 분위기 파악 못 한 채로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러게 주제를 알았어야지! 너 때문에 마탑주께서 난처해지셨잖아!”
“…….”
“서로 눈 맞을 거면 파혼을 하고 눈 맞던가, 파혼도 전에 눈 맞아버리면 그거야말로 불륜이지! 기본 상식 아닌가? 덕분에 호라이즌의 마탑주께선 남의 약혼녀를 가로채버린 내연남이라는 불명예를 떠안게 됐네! 너 때문이야!”
이에 라일리 대신 라이언이 노발대발하며 고함을 쳤다.
“클레어! 당장 방으로 올라가거라!”
그의 고성에 클레어가 화들짝 놀라 도망치듯 2층으로 올라갔다.
“대체 누굴 닮아 저 모양인지, 원.”
라이언은 마른 얼굴을 쓸어내리며 의자에 앉았다. 탐탁지 못한 시선이 라일리를 향했다.
지금 이 순간, 라일리가 기브넨을 염려하고 있을 때 라이언은 여식인 라일리의 안위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다른 쪽으로 염려를 드러냈다.
“설마…… 이제 와 혼사를 무르진 않겠지?”
본의 아니게 속내를 털어놓은 라이언이 뒤늦게 흠칫하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이런 와중에도 그는 혹여나 어렵게 성사된 혼사가 파투날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라일리는 신문을 구겨 쥔 채로 방으로 올라왔다.
“……순간적으로 같은 생각을 했어.”
기브넨이 걱정되면서도, 혹시나 혼사가 파투나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나는 것도 있었다.
지금의 달라진 대우는 오로지 ‘기브넨 리안스터’와의 결혼 때문에 주어진 것들이니까. 라이언과 마찬가지로 속물적인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역겹게 느껴졌다.
‘……나 때문인데.’
라일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도와준 죄밖에 없다. 이 일에 우연찮게 말려들었을 뿐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마탑 아래에 싸늘한 시신이 되어 있었겠지.
은인이 하루아침에 더러운 추문에 휩싸여 쓰레기가 되었다.
물론…… 실제로 에르메인츠 백작과 정혼한 사이인 건 맞지만, 그래도…….
‘내가 너무 욕심냈어.’
기브넨은 분명 두 가지 선택지를 줬다.
결혼과 후견인.
물론 기브넨은 전자를 더 선호하는 듯했으나, 그래도 후자를 택했어야 했던 것 같다. 그랬다면 이런 더러운 추문에 휩쓸려 그가 피해 보는 일은 없었겠지.
라일리는 종이를 꺼냈다.
‘지금이라도 혼사를 무른다면…….’
크게 문제 되진 않을 거야. 후견인 관계가 되는 것도 상관없잖아.
절차가 복잡하다곤 했지만,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
라일리는 깃펜을 꾹, 꾹 눌러가며 기브넨에게 전달할 편지를 쓰려다 멈칫했다.
‘……싫어.’
싫다. 그와 혼사를 무르고 싶지 않다.
이기적이라 하더라도 싫은 건 싫은 것이다.
‘혼사를 먼저 제안한 건 그 남자잖아, 내가 아니잖아…….’
이 상황이 곤란하다면, 상대측에서 먼저 혼사를 무르겠지. 당장 혼사를 무르겠다는 의사를 전한 것도 아닌데 괜히 양심에 찔려서 이런 짓을 할 필요가 있나?
라일리는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숙였다.
지금 주어진 것들을 모두 놓고 싶지 않았다. 이기적이고 속물적이라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 남자와 결혼 약속하고 주어진 모든 것을 잃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적응할 수 있을까?
그가 남편이 아닌 후견인이 되려고 든다면, 숙부님께선 당장 나를 아무 집안에나 팔아넘기려 할지도 몰라. 사위와 후견인은 엄연히 다른 거니까. 숙부님 입장에선 득될 것 없는 선택이지.
아마 기브넨이 후견인이 되려고 나서면 엄청난 적대감을 보이며 막아서려고 할 것이 뻔하다.
라일리는 실소를 내뱉었다.
‘……진짜 쓰레기 같아.’
이런 와중에도 자기 안위를 먼저 챙기는 이기적인 마음이 구역질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스스로 착한 아이가 아니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남의 곤란한 처지를 애써 모른 척 외면하는 마음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정도는 되지 못했다.
라일리는 자괴감과 죄책감을 애써 꾹꾹 눌러 담았다.
그러면서 끝내 깃펜을 다시 잡지 않았다.
***
일개 지라시가 삽시간에 전역으로 퍼져나갈 수 있는 이유는, 이러나저러나 오랜 기간 쌓아온 인맥 덕분이었다.
특히 변태적인 성향 탓에 온갖 구설수에 휘말리기로 유명했던 에르메인츠 백작은 언론사에 몸담고 있던 이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돈을 쏟아부어 가며 다져놓은 인맥이 오늘 힘을 발휘한 것이다.
“수고했어. 정산은 오늘 저녁까지 해주겠네.”
“감사합니다, 어르신.”
“하하하, 이제야 속이 좀 뚫리는군.”
“하지만 괜찮으십니까……?”
“뭐가?”
“어르신의 파혼도 함께 노출한 거라 평판에도 타격이 갈 텐데요.”
“남의 여자를 뺏은 도둑놈만 할까?”
사실 남의 여자를 뺏은 도둑놈이나, 자식뻘 되는 어린 여자와 결혼하려는 파렴치한이나 그게 그거 같습니다만.
기자는 할 말을 목구멍으로 쑤셔 넘기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르신.”
“그럼, 정말 수고 많았네.”
“전 가보겠습니다.”
“잠깐, 하나만 더 물어보지.”
“예, 말씀하십시오.”
“그놈이 정말 그 여자와 결혼한다는 말이 있는가?”
“아니요, 그럴 리가요. 그 부분은 그냥 자극적으로 보도하기 위해서 부풀린 내용입니다.”
사실에 허위사실을 덧대어 부풀리는 경우는 상대를 흠집 내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그렇군, 알겠네.”
그래, 그놈이 뭐가 모자라서 한미한 남작가의 여식을.
“……나도 늙긴 늙었나 보군. 온갖 쓸데없는 생각이 나는 걸 보면.”
스캔들 보도 역시도, 그의 주변에 얼쩡거리던 다른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즐기려고 잠깐 데리고 있던 것이 보도된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 계집은 기브넨의 손밖이라는 건데.
“호라이즌 측에서는 대응했나?”
“무대응으로 일관 중입니다.”
“입장 발표도 안 했어?”
“예.”
“대응할 가치도 없다는 거군.”
“그냥 지라시로 치부하고 말 뿐인 모양입니다.”
그래, 이대로 지라시 치부돼도 상관없었다. 그의 평판에 흠집 난 걸로 되었으니까.
그리고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계집에게 당한 수모를 갚아야지, 아무렴.”
이런 치정설은 그 계집에게 아무런 타격이 없다. 물론 기브넨에게도 타격이 크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이걸로 확실해졌다.
기브넨 측에서 스캔들도, 치정설도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을 보면 그에게 그 계집이란 고작 하룻밤 즐기고 놓아버린 상대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긴 그날 처음 본 걸 텐데 깊은 관계로 진전할 리가 없지.
그렇다면 그 계집을 가만히 내버려 둘 필요가 있나?
기브넨 리안스터에게 그녀는 고작 하룻밤을 보내고 갈아치운 여자라면, 그의 눈치 볼 필요 없이 그 여자를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게 아닌가?
‘……나랑 결혼할 바에야 죽는 게 낫다고 했지? X 같은 X. 그럼 진짜 죽어야지!’
고작 이 정도로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
기브넨 리안스터에게는 고작 이 정도의 보복이 전부이지만, 그 하찮은 여자는 다르다. 다른 건 몰라도 그 계집의 목숨은 꼭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이 속에 응어리진 화가 좀 사라지지 않을까.
에르메인츠 백작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당장 모이거라!”
***
기브넨은 무려 한 달 만에 전해진 에르메인츠 백작의 수상한 행보에 미간을 좁혔다.
“소보스터 행 텔레포트를 예약했다?”
삭은 고개를 끄덕이며 보고를 이었다.
“예. 그것도 다수의 이름으로 예약했는데, 그 모든 비용을 에르메인츠 백작이 지불한 것으로 보입니다.”
“소보스터가 키예프 후작령이었던가?”
“예, 국경 근처에 있는 땅입니다.”
에르메인츠 백작은 나이가 많은 데다 지병까지 있어 거동이 불편하다. 제아무리 텔레포트를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먼 타지까지 나가는 건 상당한 부담일 것이다.
그런데도 소수도 아닌 다수를 대동한 채 국경 부근의 영지로 향했다?
“백작이 거긴 무슨 볼일이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2시간 전 출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브넨은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좋지 않은 예감. 썩 좋지 않은 촉.
이런 촉은 쓸데없이 정확해서 짜증이 났다. 뭔가 놓친 것이 있나? 기브넨은 최대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떠올려보다가 문득 라일리를 떠올렸다.
「목적지는 어디십니까?」
「소보스터요.」
그래. 분명 텔레포트 접수를 할 때 목적지를 소보스터로 얘기했다.
하지만 그녀가 사는 곳은 분명…….
“에아달린 남작이 사는 곳은 소보스터가 아니잖아.”
“예? 아, 예 근데 가깝긴 합니다.”
“가깝다?”
“예, 에아달린 남작이 사는 루플라가 소보스터 근방일 겁니다.”
키예프 후작령은 애초에 기브넨의 관심 밖인 땅인 데다 연고도 없었다. 아는 거라곤 그저 에아달린 남작이 그곳에 산다는 것뿐.
“에아달린 남작은 그곳의 소영주가 아니었나? 왜 소보스터가 아닌 루플라에 있는 거지?”
“키예프 후작령의 자치 방식이 좀 특이한데 구역별로 나눠서 여러 명의 소영주를 두고 운영하는 구조인 것 같습니다. 워낙 땅덩어리가 크지 않습니까.”
“루플라에는 텔레포트기가 없나?”
“아마도 그럴 겁니다, 키예프 후작령 중에서도 가장 작은 지역이거든요. 그런 변방에까지 텔레포트기가 보급되었을 확률은 낮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소보스터를 경유해서 루플라로 갔다는 건가.
‘에아달린 남작이 뒤로 은밀히 접촉이라도 한 건가.’
아니지, 혼사와 관련된 만남이라면 굳이 노인네가 직접 그 먼 데까지 행차할 리가 없다.
게다가 백작은 이미 스캔들을 접했을 텐데? 성적 경험이 없는 여자에게만 집착하는 성적 취향을 고려해 보면 에르메인츠 백작이 굳이 라일리와의 결혼을 강행할 이유가 없다.
애초에 직접 치정설을 뿌리며 ‘파혼’을 사실화한 놈이 아닌가.
게다가 에아달린 남작도 에르메인츠 백작이 파혼을 통보했다고 말했고.
그렇다면 설마!
‘……보복인가.’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는 유독 여성들에 한해 잔혹한 짓을 한다는 흉흉한 소문을 몰고 다녔다. 그의 전처들 역시 시체가 되었거나 행방불명이 되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물론 그럴 마다 그녀들을 직접적으로 죽였다거나 실종에 연관이 있다는 증거가 없어서 풀려났지.
애초에 어리고 미성숙한 여성들에게만 집착하는 여성 편력을 생각해 봤을 때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 외근.”
“예? 갑자기요? 어디 가십니까?”
“아내를 만나러 가야겠어.”
“……그 먼 곳까지 혼자 가시게요? 저도 함께…….”
“아니, 됐어. 혼자가 움직이기 편해.”
“아니면 최소한의 호위라도 동원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삭은 끈질겼다. 전대 마탑주가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당연히 그는 주인의 안위가 염려되었다.
호라이즌의 마탑주란 그런 자리였다. 언제 어느 때 이름 모를 적에게 살해될 수 있는 자리.
“위대한 대마법사이신 융 님조차, 타인에게 살해당하셨습니다. 혼자서 그 먼 타지로 나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고집은.”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할 일이니까.”
“그럼 같이 가, 기사단에게는 미리 대기하라 일러. 언제든 바로 이동할 수 있게 호라이즌의 텔레포트를 열어두도록 하고.”
“예, 준비 후 뒤따르겠습니다.”
미리 조심해 봤자 나쁠 건 없겠지.
예측이 빗나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 늙은이가 쓸데없는 흑심을 품고 있다면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자, 그럼 사랑스러운 아내를 만나러 가볼까.”
그가 유쾌하게 걸으며 앞장섰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삭이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은 비즈니스라고 매정하게 선을 긋던 인간이 맞나?
외투를 챙겨 입는 얼굴이 꽤 즐거워 보였다. 그는 그녀가 보고 싶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지만, 그런 사람치곤 너무 신나 보였다.
아무리 봐도…….
‘레이디 라일리가 보고 싶은데, 에르메인츠 백작을 핑계 삼아 그럴듯하게 합리화하는 걸로 보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