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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보고 싶어 (20/31)


20. 보고 싶어
2023.05.06.



 
라일리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이 여자가 누구인가. 아마도 꽤 높은 확률로 기브넨의 복잡한 여자관계에 뒤얽힌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다. 기브넨의 수많은 염문설은 라일리도 잘 알고 있었으니, 사실 이 상황이 크게 놀라울 것도 없었다.


“대체 여기가 어디라고 여길 기어들어 오는 거죠? 겁대가리를 상실한 건가?”

게다가 그녀는 입이 꽤 험했다. 아름다운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펍에서 맥주를 곁들이며 들을 법한 거친 언변이었다. 그 탓에 라일리도 기분이 나빠졌다.

그녀가 누구이든 이름 모를 여자가 이곳에서 행패를 부리는 걸 곧이곧대로 받아줘야 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제가 여기서 나가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만해주세요.”

……갈 곳도 없고요.

뒷말은 애써 흐렸다.

그러자 여자가 눈을 가늘게 치켜떴다.


“여기 있겠다고요?”

“예.”

“후회할 텐데, 인생 나락 갈 텐데?”

“……누구신데 이렇게 무례하게 구는 건가요?”

여자가 자기 소개를 하려는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사용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일자로 섰다. 그러곤 들어서는 저택의 주인을 환영했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님.”

기막힌 타이밍에 기가 막힌 등장이 아닐 수 없었다.


“웬 소란인가 했더니.”

그가 라일리와 함께 있는 여자를 보고 정색했다.


“네가 여기 왜 있어.”

“왜 있긴? 결재받을 사항이 있는데 마탑주란 놈이 나사가 빠져서는 연애하러 돌아다닌다고 나흘씩이나 자리를 비웠으니 내가 여기까지 찾아오지 않고 배기겠어?”

뭘까, 이 살벌한 대화는. 연인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대화다. 오히려 기브넨과 정이 통한 게 아닐까 추측했던 여인은 기브넨을 극도로 혐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기브넨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니 둘 다…… 은발에 잿빛 눈동자를 가진 게 묘하게 닮았다.

설마?


“그나저나 아주 재밌는 일을 저질렀네? 결혼도 전에 살림부터 차렸어? 오빠답지 않게 왜 이럴까? 마음이 얼마나 급했으면…….”

“남의 결혼에 신경 끄고 네 앞날이나 신경 쓰지.”

“온갖 구설수로 집안 망신시키는데 일등공신인 망나니가 누굴 걱정해?”

“그중 팔 할은 루머지.”

“이 할은 진짜라는 거잖아. 게다가 이번에는 정말 역대급이더라? 임자 있는 여자를 뺏어? 하다 하다 경쟁사 소유주와 혼사까지 오가던 여자를?”

그녀의 말에 기브넨이 웃음을 터트리며 벽에 기대어 섰다.


“가지고 싶으면 뺏는 거지.”

“천하의 파렴치한.”

“새삼.”

“네가 누굴 만나든 내 알 바 아닌데, 좀 점잖게 만날 순 없어?”

“내가 시끄러운 게 아니라, 사람들이 시끄럽게 만드는 거지. 난 누구보다 조용한 걸 원하는 사람이야.”

“그런 놈이 리셉션 때 그런 짓을 했어?”

라일리는 그제야 확신이 섰다.

이 대화는 연인 간의 대화라 볼 수 없었다. 칼과 방패의 대결을 보는 것만 같은 이 살벌한 대화는, 그래, ‘남매’의 것이 분명했다.


“연인과의 로맨틱한 야반도주? 모두가 보란 듯이 중앙 홀을 가로질러 호텔까지 직행한 주제에? 관종 아니고?”

리브네의 말은 라일리도 양심의 가책에 찔렸다. 아, 저, 그가 진짜 야반도주를 작정한 게 아니라 거기에는 진짜 말 못 할 사정이…… 라고 말해봤자 씨알도 안 먹히겠지.

남매는 대체로 사이가 나쁜 경우가 많다더니 정말인 모양이었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두 사람은 다른 의미로 클레어와 라일리의 관계보다 더 사이가 나빠 보였다.

한쪽도 지고 들어가는 법이 없다. 그것도 아주 점잖고 우아한 자태로 벌이는 살벌한 대화에 숨이 턱 막혔다.


“저…….”

라일리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제야 옥신각신 말다툼을 하던 남매가 입씨름을 멈췄다.

기브넨은 마른 얼굴을 쓸어내리며 리브네를 소개했다.


“여긴 리브네 리안스터, 내 쌍둥이 여동생.”

“동생은 빼지?”

“동생을 동생이라 하지, 그럼 누나라 할까.”

리브네는 기브넨을 가볍게 무시한 채 라일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리브네 리안스터에요.”

라일리가 당황하며 그녀의 손을 꽉 움켜잡았다.


“라, 라일리 에아달린입니다.”

“그래요, 만나서 반가워요. 아니, 사실 전혀 반갑지 않아요. 여기서 나가요, 진짜 후회하지 말고.”

라일리는 리브네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하긴 그렇겠지. 집안의 격차도 너무 크고 저들의 입장에서는 따지고 보면 기브넨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결혼이니 얼마나 당황스럽겠나. 게다가 일전의 스캔들까지 생각해 보면……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야 심어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라일리의 예상과 달리 리브네는 전혀 다른 이유를 내놓았다.


“정신이 조금이나마 멀쩡할 때 저 망할 놈에게서 벗어나요. 인생 코 꿰지 말고요.”

“……예?”

“저놈이 말이죠,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도 멀쩡한 놈이 아니에요. 진짜 미친놈이라까. 단언컨대 난 살면서 저런 미친놈을 본 적이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천재라고 되도 않는 추켜세움을 받아서 그런가? 애가 나사 하나 빠지고 상태가 이상하다니까…… 아니, 나는 이해가 안 돼, 저런 놈이 뭐가 좋다고. 아니, 저깟 놈이 인기가 많다고? 그거 다 모르는 놈들이 하는 말이죠. 우리 집안이 좀 괜찮긴 해도, 쟤는 괜찮은 게 아니거든. 나는 쟤랑 만나는 여자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해.”

당사자가 면전에 있는데도 리브네는 눈 하나 깜빡 안 하며 제 오빠에 대한 악담을 쏟아 냈다.

더 웃긴 것은 면전에 대고 욕을 먹고 있는 기브넨은 이런 상황이 익숙하기라도 한지 무척 태연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이 상황은 일상처럼 평온해 보였다.


“뭘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아서 말해주는 거예요.”

“오지랖은.”

기브넨이 피식 웃으며 리브네를 향해 비꼬았다.


“그게 할 말이면 이제 볼일은 다 끝난 거 같으니 이만 가지?”

“볼일이 끝이긴?”

그녀는 서류를 기브넨을 향해 던졌다. 바닥으로 떨어져야 할 서류가 그의 얼굴 주변에서 둥둥 떠다녔다.


“학술원 분과 추가, 청사 신축 관련 보고니까 잘 읽어보세요, 마탑주님. 응? 연애고 결혼이고 내 알 바 아닌데, 자기 일은 확실히 해놓고 하셔야죠?”

“학술원 일은 그쪽에서 다 알아서 할 테니 신경 끄라고 할 때는 언제고?”

“망할 영감탱이들이 오빠 결재를 받아오라는데 어떡해 그럼? 게다가 나는 지금 학술원 학생이야, 내 공부하기에도 아주 바쁜 몸이라고. 그런데 왜 내가 네 혈육이라는 이유로 이런 귀찮은 짓까지 떠안아야 하지? 네가 하도 싸돌아다니니까 그런 거 아니야.”

“평의원들의 지지를 그렇게 못 받아서야, 학술원의 미래가 어둡군. 그 자리가 벅차면 말해. 네 자리를 대신할 추천인이야 얼마든지 있으니까.”

“……못된 새끼.”

“새삼.”

“으으으으!”

치를 떨며 몸을 파르르 떨던 리브네가 신경질적으로 돌아섰다. 그러곤 마법으로 문을 통째로 날리고 나가버렸다.

거대한 철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저택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자 기브넨은 혀를 끌끌 차며 마법으로 문의 잔해들을 깡그리 치워버렸다.


“이번에는 정말 문 값을 청구해야겠어, 이러다간 문 값으로 재정이 거덜 나겠군.”

뭐지, 이 살벌한 남매는……?

임시로 문이 있는 곳을 막은 기브넨은 그제야 돌처럼 굳은 라일리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안색이 창백한데.”

……눈앞에서 거대한 문을 날리고 사라지셨는데, 누구든 기절초풍하지 않을까요?


“입이 거칠어도 성격이 고약한 편은 아니야. 그러니 걱정 말고.”

문짝을 한 번에 날렸는데요……?

라일리는 대답도 못 하고 한참을 눈만 껌뻑거렸다.

기브넨 리안스터와의 결혼에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있었다.

살벌한 시누이의 존재.


‘……나도 눈 밖에 나면 저렇게 걸레짝이 되어버리는 걸까.’

시누이가 저 정도인데, 시아버지는……? 다른 분은?

라일리는 괜스레 등골이 서늘해졌다.

……괜찮겠지? 이 결혼?

***

예비 시누이와의 살벌한 만남 뒤로, 라일리의 일상은 꽤 순탄하게 흘러갔다.

걱정과 무색하게 한 성격하는 리브네는 문짝을 박살 내고 튀어버린 전적이 있는 탓인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혹여나 다시 찾아와 결혼과 관련해 타박을 놓지 않을까 걱정했던 라일리는 5일 차가 되고 나서야 그녀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 내려놓았다.

업무에 복귀한 기브넨은 본격적으로 바빠졌다.

정말 바빴다.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연락용 소쩍새를 날려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마탑주 자리를 때려치우고 촌구석으로 귀농하고 싶다는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사업상 미팅이 있어 나갔다가 좋은 걸 발견했다며 옷과 드레스, 구두, 맛있는 디저트 등을 던져주고는 했다.

먹고 싶은 건 마음껏 먹을 수 있고, 하고 싶은 것 또한 마음껏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택의 사용인들은 그녀가 저택 안에서만 지내는 걸 안타깝게 여겼다.

그리고 라일리 역시도 슬슬 집순이 생활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삶이 이렇게 무료할 수가 있나.’

외출도 통제된 채 방안에 갇혀 지내다시피 한 옛날을 생각하면 이는 정말 팔자 좋은 투정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고먹으며 보내는 시간은 정말 길었다. 하루가 이렇게 길었나 싶을 정도로 체감이 확실히 됐다.

지난 한 달은 예법 교육을 받느라 무료할 틈이 없었는데, 이젠 기브넨이 새로 구해준 가정교사가 있어도 일주일에 세 번밖에 수업하지 않았으며, 그마저도 하루에 세 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들어보니 이곳 가정교사들은 근무시간이 법으로 정해져 있는 듯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세 번, 3시간을 제외하면 그저 열심히 놀고, 먹고, 자고, 싸며 가끔은 책을 읽는 일이 전부 다 보니 지루함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곳 사용인들 모두 친절하고 착해서 말동무가 되어준다는 점이랄까?


“갑갑하지 않으세요?”

“……사실 조금 갑갑해.”

“밖에 나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우리 주인님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요. 특히 스캔들 건으로 아직도 시끄러워서……. 정정 보도가 나왔지만 잠잠해지지 않네요. 밖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저희도 답답해 죽겠어요. 기사님들이 쫓아내도 어찌나 거머리같이 질긴지.”

리첼의 하소연에 라일리가 조심스레 물었다.


“여론이 여전히 안 좋아?”

“전보다는 낫죠.”

“그나마 다행이네.”

“원래 사람들은 소문이 허위사실인지 진실인지의 여부는 관심 없어요. 물고 뜯고 맛볼 수 있는 걸 찾는 거지. 그런 점에서 우리 주인님은 참 좋은 안줏거리랄까요.”

“왜?”

“화제성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잖아요. 이 제국에서 우리 주인님 이름 모르는 사람 있을까요? 생긴 건 몰라도 이름은 다 알 걸요. 어렸을 때부터 워낙 유명세를 타서요.”

“어렸을 때부터? 왜?”

“그야 리안스터 가문의 적통인데 바로 마법사로 태어났잖아요. 마법사로 태어난 아이들은 신생아때부터 마력 측정 검사를 받거든요? 근데 주인님께서는 타고난 마력이 어찌나 많은지 감당을 못해서 측정 시험관이 박살이 났대요. 우스갯소리로 영생을 사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있었을 정도라니까요.”

마력은 마법사들의 생체 에너지이다 보니, 엄청난 마력을 소유한 이들은 200년이 넘게 사는 경우도 있다고 듣긴 했다. 이들은 일반인보다 노화도 늦는 편이고 면역력도 강한 편이니까. 누군가에게 의도적으로 살해당하지 않는 이상 마력을 많이 타고나면 타고날수록 수명이 길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거야 다 옛날 말이긴 하죠. 요즘은 소수의 대마법사를 착취하는 시대잖아요. 세금 대신 뜯어가는 마력이…… 상상을 초월할걸요. 그 마력으로 마탑 굴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고요.”

“그렇구나.”

“근데 저만큼 많은 마력은 폭탄이에요. 몸 자체가 움직이는 폭탄인 거죠. 마법사들은 마력이 흐르는 혈류가 따로 있는데 그게 꼬이는 순간 죽는대요. 특히 마력이 강할수록 그게 감당이 안 되서 몸이 폭발한다더라고요. 산산조각이 난다고…….”

몸이 산산조각이 난다고?

상상도 못 할 끔찍함에 라일리는 고개를 내저었다.


“무섭구나.”

“그래서 마법사들은 태어날 때부터 마법사 신고를 하고 관리받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귀한 인재를 그렇게 날려 먹으면 아깝잖아요? 또 그렇게 마력이 꼬여서 신체가 폭발하기라도 하면 자기 혼자만 죽는 게 아니라 민간인 사상자도 나오니까…… 출생신고와 마법사 신고는 의무에요.”

“……의무.”

라일리는 멈칫했다.


‘그럼 난……?’

잠시 잊고 있던 의구심이 다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왜 아버지는 내가 마법사로 태어났는데도 신고하지 않은 거야? 저렇게 위험한데? 목숨과 연관된 일인데?’

“마법사들이 관리받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럼 언제든 폭발할 수 있죠. 마력의 혈류라는 게 제 의지대로 다스릴 수 있는 게 아니래요. 오랜 훈련과 정신 수양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했어요.”

‘……그럼 난?’

라일리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이름도 모를 숙부가 갑자기 찾아왔을 때보다도 훨씬 더 많이.

생명 문제와 직결된 일인데 아버지가 그걸 생략했다고? 일반인이었으면 몰라, 호라이즌에서 일했던 적이 있는 마법사가? 마법사와 마법에 대해 능통한 엘리트였던 사람이 이런 실수를 할 리가 있나? 아니 이건 실수할 수 없는 문제다.

그렇다면 실수가 아닌가?

실수가 아니어도 문제다.

라일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여태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게 용했다. 게다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돌연사할지도 모른다는 뜻이 아닌가.


“아가씨, 왜 그러세요? 안색이 창백하세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라일리는 자신의 몸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상태라는 걸 깨닫자마자 덜컥 겁이 났다.

라일리는 일단 말을 아꼈다. 리첼이 그녀의 궁금증을 해결해 줄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이 문제는 기브넨과 상의하는 것이 맞았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했지만…… 마력 측정 검사, 마법사 등록 절차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까.


‘그래. 신고 과정에서 모종의 이유로 누락된 걸 수도 있잖아. 아버지가 미치지 않고서야…….’

라일리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심호흡을 하며 불안한 마음을 가다듬었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때가 있다는 말이 심히 공감이 갔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시한폭탄 같은 몸 상태라는 걸 알게 되자마자 죽음에 대한 극도의 공포와 불안이 엄습했다. 몸이 폭발해 산산조각 난 채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속이 뒤틀리는 느낌,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숨이 턱 막혔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졌다.

라일리는 리첼을 내보내고 침대에 몸을 눕히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대체 뭘 감추고 계셨던 거예요, 아버지.'

무서웠다.

당장 몸이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앞으로 아버지의 낯선 모습을 얼마나 많이 마주하게 될까 그것이 훨씬 더 두려웠다.

***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고도 기브넨은 귀가하지 않았다.

요 며칠 귀가하지 않은 걸 보면 아마 오늘도 들어오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그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지? 같이 살면 매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과 달라진 점이 없다.


'많이 늦나…….'

물어볼 게 많은데.


“아가씨, 밤바람이 차가운데 여기서 왜 이러고 계세요?”

“……그냥 답답해서.”

“주인님 기다리시는 거예요?”

라일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리첼이 웃으며 뭔가를 내밀었다. 연락을 할 때 쓰는 소쩍새였다.


“그렇다면 편지를 보내보시는 건 어때요? 아가씨의 편지를 보고 일찍 귀가하실지도 모르잖아요.”

과연 그럴까.

라일리는 리첼이 건네주는 깃펜과 종이를 어색하게 받았다.

편지라…… 뭘 써야 하지?

고민하던 그녀가 조심스레 종이에 끄적이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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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툭, 툭.

손을 움직이던 기브넨이 우뚝 멈춰 섰다. 거슬리는 소리, 가뜩이나 처리해야 할 업무가 쌓여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그에게 참 불쾌한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창문에 열심히 부리를 박아대고 있는 소쩍새가 보였다.

이 야밤에 전언을 보내다니, 누군지 모르겠지만 예의라곤 쥐뿔도 없이 짜증 나는 녀석이군.

기브넨은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내며 창문을 열었다. 푸드덕 날아온 소쩍새가 기브넨의 손바닥 위에 작은 쪽지 하나를 떨어트렸다.

쪽지의 내용을 확인한 기브넨은 곧바로 외투를 챙겼다.


“나 퇴근, 그리고 내일 결근.”

밖에서 대기 중인 삭에게 딱 한마디만을 남긴 채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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