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 질투라도 하는 것 같잖아 (33/151)


34. 질투라도 하는 것 같잖아
2022.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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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잠시 어머니께서 부르셔서. 두 분 이야기 나누고 계세요.”

홀리기라도 한 듯 넋을 놓고 엘리시아를 바라보던 일레온의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온 건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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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 이 디저트 좀 드셔보시겠어요?”

카리나가 생글거리며 그에게 말을 걸었지만 일레온은 방금 자리를 비운 엘리시아에 대한 생각으로 바빴다.

오늘 엘리시아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쩐지 ‘로나’ 같았다.

로나는 늘 활기차고 명랑했다. 곁에서 듣기 좋은 목소리로 이것저것 떠들어대면 눈이 멀어 온통 깜깜한 제 세상도 밝아지는 착각이 들 정도로, 힘이 넘치고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엘리시아는 달랐다.

그런데도 예민한 자신의 기감이 말하고 있었다. 로나와 엘리시아는 같은 사람이라고.

눈을 감으면 더욱 또렷하게 알 수 있는 같은 목소리, 가벼운 발걸음, 그리고 가까이에 머물 때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향긋하게 풍겨오는 체리블러썸 꽃향기.

그런데 눈을 뜨고 보면 다른 사람 같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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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행복해 보이지 않는 거지?’

일레온의 기억 속에 로나는 소소하고 작은 것들로 쉽게 행복해하곤 했다. 오늘 먹은 밥이 맛있거나, 간식으로 쿠키를 얻었다든지, 베르나르가 수고가 많다며 보너스를 주거나 하는 것들로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가 대신 보고 들려주는 세상은 고운 것들로 가득했다. 깜깜한 눈먼 남자의 세상에 유일하게 온기가, 빛이 느껴지는 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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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찾게 되면 기쁘고 좋은 게 아니었나.’

카페 카르디날에 갔던 로나는 증발한 것처럼 사라졌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대공저에서 쓰던 물건과 차곡차곡 모은 급료까지 전부 다 두고 사람만 없어졌으니 말이다.

로나를 찾을 수 없을 때는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그녀의 입장도 이해가 갔다. 되찾은 신분이 무려 공작가의 영애라니, 그런 여인이 기억을 잃은 동안 대공저에서 일을 했다는 사실을 어딘들 떳떳하게 내놓을만한 건 아니었다.

일하며 신세진 곳이라고 인사를 오거나 물건을 챙겨가느니 그 사실 자체를 도려낸 것처럼 모든 것을 끊었어야 했을 터. 추문이라는 건 사실보다는 덧붙여지는 망상으로 생기는 것이니까.

일레온은 매일 엘리시아를 보러왔다. 그녀는 기운 없는 초식 동물처럼 보였다. 잔잔하고 차분하게 눈만 깜빡이고 있다가 손을 뻗으면 폴짝 뛰어 도망가서는 한 발짝 떨어져서 언제 놀랐냐는 듯 무감한 눈동자로 쳐다보는 토끼를 연상하게 했다. 일레온을 마주하는 그 순간에만 눈에 활기가 돌아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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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웃는 걸 보고 싶었는데.’

나도 못 본 얼굴을 집사는 보았다던데. 그 생각만 하면 유능한 베르나르를 애꿎게 영지에 관리인으로 내려보내 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베르나르가 그토록 세세하게 로나의 웃는 얼굴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한 건, 그가 눈이 멀었던 시절의 습관과도 같은 거였다.

일레온이 눈을 되찾은 후에도 수년간 보이는 것처럼 묘사해서 상세히 알려주던 버릇을 쉬이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일레온은 질투했다. 지나간 로나의 모습을 본 자들을, 내가 보지 못한 로나를 본 자들은 모두 대공저에서 쫓아내고 싶을 정도로.

일레온은 베르나르가 묘사해준 것처럼 웃는 엘리시아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집착했다. 그런 밝은 웃음을 도대체 언제 볼 수 있는 것인지.

하지만 제 방문을 그리 반기지 않는 엘리시아를 보며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초조해지던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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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시아에게 그녀가 로나라는 걸 안다고 말해볼까?’

그러면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내 앞에서는 엘리시아인 척 나를 모르는 척 가면을 쓰지 않아도 좋다고.

아침 해가 뜰 때면 햇살을, 밤에 산책할 때는 달빛을 네가 말해주는 대로 기억을 더듬어보던 눈먼 사내를 기억하느냐고.

조금은 낡고 오래된 카페 카르디날의 풍경도 네가 곱다면 그런대로, 고풍스럽다면 그리 말한 대로 상상하던 나를 잊은 건 아니냐고.

내가 네게 오롯이 의지하던 세월이 있어 그대가 아니면 마음 둘 곳이 없노라고 말이다.

그리하면 달라질까.

유테르 공작가의 기억을 잃은 여인으로 앉아 낯선 외부인을 대하듯 선을 긋는 엘리시아를 볼 때마다 일레온의 머릿속엔 온갖 잡념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보게 된 엘리시아의 웃는 얼굴에 그동안의 고민도, 상념도 모두 잊혀졌다.

일레온은 좀체 정리되지 않는 속내를 겨우 차곡차곡 접어 갈무리했다. 티 테이블에 앉아 있는 그를 보며 카리나가 살갑게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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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디저트는 별로이신가요?”

대답이 없자 잠시 눈치를 보던 그녀가 뚜껑이 달린 그릇을 일레온이 앉은 쪽으로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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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걸 드셔보세요. 동방에서 가져온 과일절임인데 소금을 뿌려서 특이한 맛이랍니다.”

카리나는 마치 엘리시아가 자리를 비켜주길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둘이 되자 제게 적극적으로 말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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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무슨 상황이지?’

일레온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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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시아 아가씨.」

 
조금 전 그녀를 모시러 온 하녀는 그저 제 주인을 찾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엘리시아의 태도는 어떻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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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잠시 어머니께서 부르셔서. 두 분 이야기 나누고 계세요.」

 
하녀가 용무를 고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어머니께서 부르신다’며 사라지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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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갑작스레 불쑥 든 생각에 그는 불쾌해졌다.

일레온이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자, 카리나는 의기소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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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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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시오. 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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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제가 엘리시아 영애에게 부탁해서 전하를 뵙게 해달라고 하였어요.”

카리나의 말에 일레온은 눈썹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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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그런 거였나?’

비스듬해진 눈썹만큼이나 삐딱해지는 그의 마음을 읽지 못한 카리나는 준비해온 말을 꺼내는 데 급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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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저를 곤란할 때 도와주셨으니 제대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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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와주었다고?”

전혀 기억에 없었다. ‘도와주었다’는 카리나의 말에 찬찬히 그녀를 살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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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카르디날에서요. 무뢰배들이 제게 시비를 거는데 도와주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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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제야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로나의 뒤를 쫓아 카페 카르디날에 갔을 때, 제가 눈이 멀었던 여느 날처럼 거칠어 보이는 사내들과 옥신각신하는 또래 아가씨가 보였다.

로나가 생각나서.

그들을 대신 쫓아주었다.

그렇지만 로나가 겪었던 일과 비슷해서 손을 내밀었을 뿐, 누구를 도와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일레온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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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인사치레 받을만한 일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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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제가 도움을 받고 곤경을 벗어난 건 사실이지요. 감사합니다. 대공 전하.”

카리나의 초록빛 눈동자가 생기를 담고 빛났다. 익숙한 감각이 느껴졌다. 분명 제게 호감을 표하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 다름 아닌 엘리시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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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제가 엘리시아 영애에게 부탁해서 전하를 뵙게 해달라고 하였어요.」

 
카리나의 말을 듣는 순간 어딘가 아슬아슬하게 늘어나 가늘어져 있던 신경이 툭 하고 끊긴 느낌이었다.

일레온은 몹시 기분이 상했다.

제 곁에서 새근새근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는 로나를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조심스레 이불자락이나 끌어다 덮어주던 때가 있었다.

그의 곁에서 시중을 들 때 자그마한 손을 타고 닿아오는 체온을 느끼며 그 손을 맞잡고 싶은 충동을 이겨야 할 때가 있었다.

너는, 눈을 뜨고 널 본다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보지 않고도 이토록 마음에 둔다면 분명 눈에 담고는 다시는 그녀를 향하는 마음을 돌이킬 수 없을 거라고 혼자 상상하곤 했다.

그리고 망상의 끝은 늘 나 같은, 나 따위 눈먼 짐승이라 불리는 이를 로나가 남자로 봐주지는 않겠지? 그것이었다.

지금은 온전히 오데르의 상징, 붉은 눈동자를 되찾았다.

무엇하나 결핍이 없던 예전으로 돌아갔는데, 로나는 제 곁에 부재했다.

그리고 여전히 일레온 그를 남자로 보아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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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알 줄 알았는데.’

로나에게는 무엇이든 말로 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제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그가 원하는 걸 척척 눈치채곤 했다.

일레온이 로나를 여자로 마음에 둔 걸 눈치채지 못하는 게 이상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여태 유효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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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뜻으로 식사 초대를 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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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를 도우려 했던 게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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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맥락 없는 말에 카리나가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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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서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이 있었지. 예전 일이 생각나 나선 것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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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저를 도우신 거고. 꼭 보답을 하고 싶습니다. 대공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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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하지.”

일레온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그를 보던 카리나가 깜짝 놀라며 덩달아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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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디 가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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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잠시 어머니께서 부르셔서. 카리나 영애는 여기서 차를 즐기는 게 좋겠군.”

그가 해사한 얼굴로 손을 휘젓자 카리나는 홀린 듯 도로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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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일레온이 멀어져가자 뒤늦게 제가 방금 무슨 말을 들었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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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유테르 공작가인데.”

그의 어머니라 함은 레브 황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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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러 온 사용인도 없었는데.”

갑자기 저렇게 가버리다니.

그제야 퍼뜩 일레온이 제게 불쾌하다는 뜻을 돌려 표현하고 떠났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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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좋아.”

카리나는 울상을 지었다.

그녀라고 엘리시아를 찾아와 이렇게까지 부탁하기가 수월했던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며칠 클레벤트 대공이 유테르 공작저에 매일 드나든다는 소문이 들리자 살짝 제정신이 아니었다. 곧 클레벤트 대공이 엘리시아에게 구혼장을 보낼 것 같다나?

뒤늦게 알게 된 바에 의하면 신관 엘리시아는 다섯 주신 모두에게 신탁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신력이 뛰어난 신관이라 했다.

그런데 엘리시아가 기억을 되찾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에 대해서만은 기억이 남아 있다면, 그건 굉장히 중요한 신탁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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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하고말고.’

카리나 자신이 사비엘과 이어지든, 제국 유일의 대공과 이어지든 콘스탄스 제국의 명운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여겨졌다.

황태자인 사비엘과 이어진다면 제국의 황후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고, 직계에서만 태어나는 오데르의 피를 가지고 태어난 일레온과 이어진다면 이변이 일어난 이상 다음 대 오데르의 어머니는 자신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점쟁이 노파가 그러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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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먼저 갖게 될 것처럼 말했는데. 축복받을 거라고 말이야.”

하지만 사비엘과는 사이가 멀어졌고 일레온과 한자리에 마주 앉기조차 힘드니 뭘 어째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굴욕적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엘리시아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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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대공에게 아무 마음이 없어 보였는데.”

그러니 멍청하게 자신이 저를 도와주겠다고 하지 않던가. 귀족 남자가 이렇게 매일 찾아오는 건 청혼을 염두에 둔 구애라는 아주 기본적인 것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샤프롱이 귀띔을 했을 법도 한데 엘리시아는 전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저를 돕겠다고 하지 않던가.

기억을 잃었다더니, 게다가 본래 신관 출신이라 그런지 허술한 데가 있는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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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됐지. 반드시 대공을 내가 차지해야 해.”

카리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

엘리시아는 높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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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이야기 잘 하고 있겠지?”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엘리시아는 자신의 집 안에서 몸 둘 곳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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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마리엘라를 보기에도 껄끄럽고 말이야.”

엘리시아의 어머니는 데뷔탕트 무도회 이후로 예민했다.

그 이유를 엘리시아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마리엘라는 그녀의 데뷔탕트를 치른 걸 후회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충 딸이 기억을 되찾으면 하듄샤로 돌아갈 걸 기대했는데 본격적으로 사교계에 복귀 선언을 한 셈이 되어 심경이 복잡한 게 아닐까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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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기 좋은 곳에 내 몸 하나 누일 곳이 없네.”

엘리시아는 이리저리 서성거리다가 정원 사이를 구분 짓기 위해 줄지어 심어놓은 동백나무 아래에 웅크리고 앉았다.

바닥에 떨어진 싱싱한 카멜리아 꽃을 주워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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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그녀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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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왜 이러지?”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있던 일레온과 카리나의 모습만이 눈앞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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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까 마치 내가 질투라도 하는 것 같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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